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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보리스 소콜로프의 바그라티온 작전 연구

 러시아의 역사연구자 보리스 소콜로프가 2022년에 발표한 Операция "Багратион"이 최근 Operation Bagration : An Incimplete Truth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책은 꽤 흥미롭습니다만 저자인 소콜로프가 극단적으로 소련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주의를 해야 합니다. 소콜로프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사망자를 굉장히 높게 추산해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 책에서도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전사한 소련군을 무려 515,700명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전사한 소련군이 178,507명입니다. 소련의 통계가 전반적으로 엉망이긴 하지만 소콜로프가 주장한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은 소련군의 완승이다 보니 지금까지 간행된 관련 연구들은 소련군의 작전적-전술적 문제점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소콜로프는 독일군이 초반의 참패 이후 기갑예비대를 투입하면서 소련군이 고전한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스크 축선에서 소련 제5근위전차군이 독일 제5기갑사단과의 교전에서 고전한 사례, 바르샤바 인근의 반격으로 소련군이 큰 타격을 입은 사례들을 들고있습니다. 주요 교전에서 발생한 양측의 장비 손실과 인명 손실을 잘 정리했는데, 독일군과 소련군 양측의 장비 손실은 비교적 정확하게 정리를 잘 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기간 중 소련 공군의 문제점도 지적을 하고 있는데, 이 비판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중 소련 공군의 숫적 우위를 감안하면 소련 공군의 성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1944년 여름의 작전은 소련군이 작전술 면에서는 큰 발전을 이루었으나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문제점이 많았다는걸 보여줍니다.

 재미는 있는데 추천하기는 좀 애매합니다. 독소전쟁에 진짜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실 필요는 있을 듯 합니다. 전반적으로 같은 러시아의 역사연구자인 알렉세이 이사예프가 쓴 같은 제목의 책 Операция "Багратион" 쪽이 소콜로프의 연구 보다는 균형이 잘 잡혀있는 듯 합니다. 마침 내년에는 유명한 독소전쟁 연구자인 프리트 부타(Prit Buttar)도 바그라티온 작전에 대한 책을 낸다고 합니다. 부타의 연구도 평균 이상은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0년 7월 25일 토요일

찰스 딕의 From Defeat to Victory: The Eastern Front, Summer 1944에 인용된 통계 문제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사료가 꾸준히 공개되고 기존에 공개된 사료에 대한 분석이 심화되면서 제2차세계대전 시기 러시아 전선에 대한 연구는 크게 발전했습니다. 냉전시대에 독일이나 소련 어느 한쪽에 편향된 연구가 이루어졌던 것과 비교했을 때 큰 발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료 활용에 있어 문제를 보이는 저작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2차문헌을 비판 없이 인용하는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요. 1944년 러시아전선 하계전역을 분석한 찰스 딕(Charles J. Dick)From Defeat to Victory: The Eastern Front, Summer 1944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딕은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소련군과 독일군의 전력비가 병력에 있어서 2.5:1, 박격포와 다련장포를 포병전력은 2.9:1, 기갑전력은 4.3:1, 항공전력은 6.3:1로 소련군이 우세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 이 통계는 소련의 제2차대전 공간사에서 제시한 것 입니다. 소련측의 주장은 꽤 오랫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딕이 From Defeat to Victory: The Eastern Front, Summer 1944의 바그라티온 작전 부분을 쓰면서 인용한 자료 중에는 게르트 니폴트의 Mittlere Ostfront Juni’44의 영어번역본인 Battle for White Russia가 있습니다. 니폴트는 이 연구에서 소련 공간사의 통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2) 니폴트가 소련 공간사의 잘못된 통계를 인용한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연구가 나왔을 당시인 1985년에는 중부집단군의 전체 전력을 집계할 만큼 사료 분석이 되어 있지 않아 소련 공간사의 통계를 인용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니폴트가 이 연구에서 제시하고 있는 독일군의 전력 통계는 당시 사료의 한계 때문에 불완전 합니다. 4군과 제9군의 전력 통계를 제시하고 있는데 제4군은 병력 및 장비 통계를 제시하고 있지만 제9군은 병력 통계만 제시하고 있습니다.3)

물론 소련 공간사의 통계는 틀린 것 입니다. 역시 딕이 인용하고 있는 소련군 총참모부의 작전연구 영어번역본인 Belorussia 1944: The Soviet General Staff Study는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독일 중부집단군의 총 병력이 1,036,760, 야포 7,760, 대공포 2,320, 전차 800, 돌격포 530, 항공기 1,000~1,300대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4) 소련 자료에 실려있는 양군의 전력비는 바로 이 통계를 기반으로 한 것 입니다. 소련군 4개 전선군의 총병력 250만에 독일 중부집단군 1백만명으로 2.5:1의 병력비가 나온다는 계산입니다. 그러나 1944년 6월 1일 기준으로 독일 중부집단군 총병력이 578,225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독일 중부집단군 병력이 1백만명을 넘었다는 소련측의 추산은 크게 잘못되었음 알 수 있습니다.5) 소련측 통계는 양군의 기갑전력 비율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과장하고 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독일 중부집단군의 기갑전력에 대해서는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중부집단군 소속 사단급 부대들의 기갑 및 대전차전력"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독일측 사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보다 정확한 전력비는 칼-하인츠 프리저의 연구에 실려 있습니다. 프리저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소련군과 독일군의 전력비는 병력에서 3.7:1, 기갑전력 8.2:1, 포병전력 9.4:1, 항공전력 10.5:1로 소련군이 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6)

딕이 훨씬 정확한 프리저의 통계를 인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확한 소련 공간사의 통계를 인용해 독일군의 전력을 과장한 이유는 의문입니다. 그는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의 손실 통계는 프리저의 연구에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7) 이런 식으로 양군의 전력비를 부정확하게 평가하면 제대로 된 작전 연구를 할 수 없습니다. 독일군의 전력을 과장하는 서술은 자연히 소련군의 전투 효율성을 과장하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2018년에 썼던 러시아 연구자의 '최신 연구' 얼마나 신뢰할 있는가?: 이고르 네볼신의 사례”에서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만, 최근에 나오는 연구 중에서도 냉전 시기 소련에서 제기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는 사례가 간혹 발견됩니다. 군사사, 특히 작전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교차검증과 문헌 비판이 필수적이라 하겠습니다.



1)     Charles J. Dick, From Defeat to Victory: The Eastern Front, Summer 1944 Decisive and Indecisive Military Operation, Vol. 2 (Lawrence: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16) p.99.
2)     Gerd Niepold, Mittlere Ostfront Juni’ 44, (Hamburg: Mittler und Sohn, 1985), p.55. 니폴트의 연구에서 소련 자료를 인용해 정리한 전력비는 병력 2.5:1, 포병 2.9:1, 기갑 4.3:1, 항공기 4.5:1 소련군이 우세했다고 되어 있음.
3)     Niepold., Ibid., pp.35~36.
4)     David M. Glantz and Harold S. Orenstein, Belorussia 1944: The Soviet General Staff Study (London: Frank Cass, 2001), p.6.
5)    Walter S. Dunn, Jr., Soviet Blitzkrieg: The Battle for White Russia, 1944 (Boulder: Lynne Riuenner Publishers, 2000), p.61.
6)     Karl-Heinz Frieser, “Der Zusammenbruch der Heeresgruppe Mitte im Sommer 1944“,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8L: Die Ostfront 1943/44, Der Krieg im Osten und an den Nebenfronten (München: Deutsche Verlags-Anstalt, 2011), p.534. 전투병력 1,254,399:336,573, 전차 2,715:118, 자주포 1,355:277, 야포 24,383:2,589, 항공기 6,334:602. 프리저는 독일 제3기갑군, 제9군, 제4군의 전투병력과 같은 구역에 투입된 소련군 전투병력을 기준으로 양측 전력비를 계산하였음.
7)     Dick, Ibid., p.117.

2020년 1월 18일 토요일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32-4호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32-4호에 실려있는 글들을 대략 훑어보았습니다. 이번호에는 개인적으로는 다행히도 2 세계대전과 관련된 논문이 2 실려있습니다.

번째 글은 레스터 그라우(Lester Grau) “River Flotillas in Support of Offensive Ground Operations: The Soviet Dnieper River Flotilla Experience”입니다. 글은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 해군이 강과 호수에서 운용한 분함대의 작전이 소련 지상군의 작전을 어떻게 지원했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분함대는 드네프르강 분함대 입니다. 글은 드네프르강 분함대가 지상군에 대한 화력지원, 도하작전 지원, 군수지원, 해군육전대 작전 등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그라티온 작전 시기에 대한 분석이 좋습니다. 하천이 많고 도로망이 빈약한 벨로루시 지역에서 소련 지상군의 신속한 기동전이 가능했던 원인 하나로 드네프르강 분함대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번째 글은 미하일 수프룬(Mikhail N. Suprun) “Lend-Lease and the Northern Convoys in the Allied Strategy During the Second World War”입니다. 연합국이 수행한 렌드리스 북극해 방면으로 수행된 부분을 다루는 짤막한 입니다. 저자는 미영 연합의 유럽 우선 전략에있어서 북극해 방면의 렌드리스 수송선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번째는 노르웨이에 주둔한 독일 해군을 끌어내는 미끼로서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역할은 영국이 1943년까지 채택한간접행동(indirect action)’ 전략의 일부로서 두드러졌다고 봅니다. 간접행동 전략은 해상봉쇄 전략폭격, 제한적인 특수부대 공격 등으로 연합국 인명희생을 최소화 하면서 독일에 타격을 입히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북극해 방면의 수송선단은 간접행동 전략의 일부로서 기능을 수행했다는 입니다. 또한 반히틀러 동맹을 공고하게 하는 정치적인 역할도 수행했다고 평가합니다. 수프룬은 렌드리스가 전쟁 수행에 기여한 역할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장합니다. 단순히 물자의 총량이나 달러 환산 가치 등으로 단순하게 접근하는 방식에 비판적입니다

밖에도 연합국의 러시아 내전 개입 100주년을 맞아 특집 논문들이 다수 실려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운 특집이네요.

그리고 1877-78년의 러시아-오스만 투르크 전쟁 당시 발칸 전역을 다룬 Alexander Staiev 논문도 주목할 합니다. 러시아군이 겨울철의 불리한 산악 지형에서 어떻게 기동을 하여 오스만 투르크군의 허를 찔렀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오스만 투르크군에 비해 우수한 전술적 기량을 보여주었고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작전을 전개했다고 높게 평가합니다.

Taras Kuzio “Old Wine in a New Bottle: Russia’s Modernization of Traditional Soviet Information Warfare and Active Policies Against Ukraine and Ukrainians” 최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정보전 수행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련 시절 형성된 정보전 수행 방식을 현재의 러시아군이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활용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같습니다. 러시아 군부가 미디어를 활용해 대여론전을 전개하는 양상이 흥미롭습니다.


2016년 3월 23일 수요일

독일군 일선부대의 장비 표기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 하나

아래 자료는 독일 제4군 작전참모처의 1944년 7월 15일자 보고의 일부입니다.

보고의 1번 항목을 보시면 중부집단군 사령부가 742대전차대대에 구두명령으로 장비를 38(t) 전차로 교체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38(t)는 '헤처'입니다. Panzerjäger도 아니고 그냥 전차라고 지칭하는게 재미있지요. 아래의 2번 항목에서 언급하고 있는 마더, 즉 Sf 38(t)와 구분하기 위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군의 일선부대 보고서에서는 장비를 칭하는 방식이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은데 이 자료도 그런 사례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Stopa AOK4 A.H.Qu., den 15.7.1944", AOK 64231/8, 4 Ia Anlagen A zum KTB(1944.7.14~7.19), RG242 T312 R246

2013년 1월 8일 화요일

어떤 명령문

1944년 7월 27일 오후에 제4군 사령부가 모길료프 요새지구(Fester Platz) 사령관 에르드만스도르프(Gottfried von Erdmannsdorf) 소장에게 내린 명령문입니다.



"총통각하의 명령에 따라 모길료프 요새지대를 포기하지 말고 최후까지 방어하라."

2차대전 말기에 히틀러에 의해 내려진 수많은 사수명령 중 하나이지요. 이런 짤막한 명령문에 수천, 수만명의 생사가 좌우되었습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료입니다.

2013년 1월 4일 금요일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독일 제4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현황

독일 제4군의 문서를 읽다가 재미있는 통계를 발견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인 1944년 6월 10일에 집계한 독일 제4군 예하 사단의 장비 보유량에 대한 통계입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각 사단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량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단이 인가량을 훨씬 초과한 보병용 대전차화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이 시기 독일군의 보병사단들을 살펴보면 사단 직할 대전차대대에 1개의 돌격포대가 배치되는 등 대전차전력이 크게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보병용 대전차화기의 대량 배치도 그 일환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시 중부집단군 소속 사단들의 중화기 현황은 이 글을 참고하십시오.

재미있는 통계입니다. 한번 보시죠.

표. 독일 제4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량(1944. 6. 10)

사단
판처슈렉
판처파우스트
대전차소총
인가량
30
1,000
-
18기갑척탄병사단
71
1,500
-
267보병사단
88
1,430
-
57보병사단
72
983
-
기갑척탄병사단FHH
88
1,550
-
12보병사단
80
1,179
5
31보병사단
119
1,147
-
337보병사단
86
1,182
4
110보병사단
66
1,236
-
260보병사단
141
1,366
6
25기갑척탄병사단
55
1,313
-
78돌격사단
58
1,248
3
[표출처 : “Armeeoberkomando 4, O.Qu./WuG(T), Az 72g, Nr.3794/44geh, Waffenlage”(1944.6.11), RG242 T312 R239]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전차 및 돌격포 손실률

지난번에 올렸던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대전차포 손실률」의 후속 포스팅입니다. 넵. 또 통계자료 하나로 대충 때우는 땜빵 포스팅입니다. 이왕 읽으시는 김에 역시 지난번에 썼던 「후퇴전에서 기갑부대의 전차 손실에 대한 잡상 - 바그라티온 작전의 독일 제4, 5기갑사단의 경우」도 같이 보시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통계부터 나갑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인용한 통계와 마찬가지로 손실률의 단위는 %이고 매달 1일 보유하고 있던 차량 숫자를 기준으로 그달 마지막 날까지 집계된 손실 대수로 나눈 것 입니다.

표. 독일군의 전차 및 돌격포 손실률(1943.7~1944.9)


돌격포
3호전차
4호전차
5호전차
6호전차
1943.7
12
15
28
41
18
1943.8
10
15
22
32
22
1943.9
10
9
15
25
15
1943.10
13
11
16
26
15
1943.11
14
18
23
20
11
1943.12
9
10
24
19
23
1944.1
15
10
22
30
22
1944.2
14
9
12
24
5
1944.3
13
4
9
3
9
1944.4
18
15
18
31
23
1944.5
7
2
6
15
5
1944.6
8
10
15
15
20
1944.7
36
12
28
28
45
1944.8
16
5
23
22
24
1944.9
26
29
52
60
35
[표 출처 : “Anl zu Nr.3730/44 gkds Gen.Insp.d.Pz.Tr : Pz u. Stu.Gesch Verluste 1943/44” (1944.11.6), NARA RG242 T78 Roll145]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돌격포가 회전포탑을 가진 전차들에 비해 낮은 손실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 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1944년 7월에는 티거 다음으로 높은 손실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겠지만 돌격포는 티거 만큼이나 높은 피아 교환비율을 보이는 장비입니다. 1944년 7월에 유독 높은 손실률을 보이는 이유는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중부집단군의 기갑전력 핵심을 이루던 돌격포여단들이 대거 괴멸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추후 바그라티온 작전 관련 포스팅을 할 때 다룰 기회가 있겠지요.

1943년 7월에 판터가 유독 높은 손실률을 기록한 것은 다들 아시다 시피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한 판터D형이 기계결함 등으로 지독한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손실이 점차 줄어들어 4호전차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요.

역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지난번에 올렸던 대전차포의 손실률과 마찬가지로 1944년 7월부터 폭증하는 손실률입니다. 노르망디 전역과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인한 패배의 타격이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1944년 9월에는 엄청난 손실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시기에 집중적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독립 기갑여단들의 피해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