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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일 일요일

안녕하세요

제 블로그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드릴까 합니다.

자주 들러주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 블로그가 어떤 블로그인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는 술자리 잡담 분위기를 지향합니다. 뭐, 대략 대학가 술집에서 오고가는 진지한 듯 하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그런 대화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블로그 주인장인 저의 관심사와 지식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보니 블로그에서 다루는 주제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에. 그리고.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가끔 글을 쓰는데 이런 성향이 튀어 나오기도 하니 종교, 특히 유일신 신앙을 가지신 분들께 양해를 구하는 바 입니다.



저는 정치인 빠돌이/빠순이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박빠건 노빠건 다 싫습니다. 특히 노빠는 극도로 혐오합니다. 이런데 갑자기 "왜 우리 노짱을 싫어하시나요" 같은 질문을 하시는 분은 매우 곤란하겠지요. 사실 네이버 블로그와 이글루를 거쳐 이곳으로 오기까지 정말 이런 분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물론 정치인의 빠순이, 심지어 노빠라도 나카마 유키에나 손예진 같이 아리따운 분이라면 열렬히 환영할 것입니다. 아니, 만약 그런 미인들께서 이 블로그에 왕림해 주신다면 당장 노빠 블로그로 개편하고 노비어천가로 도배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인들이 이런 재미없고 칙칙한 블로그에 들러주실 리는 당연히 없겠지요. 고로 모든 정치인 빠돌이/빠순이들은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밖에

주체사상 신봉자, 환빠, 음모론자들은 노빠 이상으로 혐오합니다. 민족자주 천년왕국의 도래나 사뷁력을 호령하는 대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분들은 환영하지 않습니다. 물론 환빠라도 나카마 유키에나 손예진 같이 아리따운 분이라면 열렬히 환영할 것 입니다. 만약 그런 미인들께서 이 블로그에 왕림해 주신다면 당장 환빠 블로그로 개편하고 치우천황을 찬양하는 글로 도배를 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인들이 찌질하게 환빠질이나 하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농담을 하는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분들은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농담을 할땐 함께 농담을 하시면 됩니다.

한마디 더 하자면

가끔 제 정치적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비를 거는 할일 없는 양반들이 있습니다. 특히 노빠계열들은 그런 짓을 서슴없이 하지요. 그런 양반들에게 제가 쓸데 없이 시비걸지 말라고 하면 대부분 블로그는 열린 공간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길바닥에서 파는 떡볶이 냄새를 맡는건 자유지만 그걸 먹으려면 합당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제 개인공간인 블로그의 글들이 마음에 안든다고 인상쓰는건 자유지만 뻘플을 싸지르는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트랙백을 달기 위해서 할로스캔을 쓰는데 이놈의 할로스캔은 한글 지원이 부실해서 한글 아이디로 답글을 다시는 분들의 닉네임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끔 댓글이 표시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글이 한 번 뒤로 밀리면 댓글을 확인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러니 오래된 글에다 댓글을 달아주시면 신속한 답변을 드리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2009년 1월 1일 목요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 제 블로그에 대해서 간단한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는 술자리 잡담 분위기를 지향합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로 진지한 듯 하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가는 대학가의 맥주집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제 관심사와 지식의 범위가 지독히 좁다 보니 블로그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관심사를 넓히기 위해 노력중인데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는 않는군요;;;;

제 재미없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은 모두 환영합니다.

그 밖에, 저의 정치적 성향이나 기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즐거운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2009년 첫 날은 어떻게 맞으셨는지요?

저는 원래 어제 쯤 강원도나 경상북도 북부의 한적한 마을로 가서 삼일 정도 조용히 쉬다 오려했으나 일이 계속 밀리다 보니 일을 하면서 2009년을 맞게 됐습니다. 지금도 일을 하는 중 입니다.(;;;;) 제가 좀 게으른 인간이다 보니 빨간 날에도 의자에 앉아 있는게 좀 고역이로군요.

그러고 보니 2009년은 구글 블로거로 옮겨온 이후 세 번째로 맞는 해 입니다.

되돌아 보면 재미있는 글을 쓰겠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썰렁한 농담이나 무미건조한 사실의 나열에 불과한 글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댓글로 격려를 해주신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9년에는 보다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역시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많은 분들을 새로 만나고 그분들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배워간다는 점일 것 입니다. 이런 점이 블로그 활동을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겠지요. 많은 분들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일일이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는 점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2009년은 모든 분들께 즐거운 일이 가득 하시길 빕니다.

2008년 12월 28일 일요일

블로거는 스프링노트와 잘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지난 며칠 간 스프링노트를 사용해서 블로그의 글을 작성해 봤는데 아무래도 제가 사용하는 블로거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림이나 표를 넣은 글을 스프링노트에서 블로거로 보낼 경우 수정하는데 손이 더 가더군요.
방금 전 한국전쟁과 관련된 글을 하나 썼는데 표와 그림을 넣었더니 엉망으로 표시되어 일단 지웠습니다. 이 글은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고쳐서 올려야 겠습니다.

스프링노트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서비스인데 블로거에서는 제대로 쓰기 어려우니 매우 아쉽습니다. 역시 구글 블로그는 단순한 것 빼고는 좋은 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2008년 12월 2일 화요일

잡담

어제 2008년의 가장 중요한 일을 완료했습니다. 마무리가 뭔가 조금 이상하게 된 것 같긴 한데 뭐 중요한 일을 끝냈다는 것에 의미가 있겠군요.

그리고 역시 어제 2008년 하반기의 가장 중요한 일도 완료했습니다. 계약 때문에 추가적인 작업이 더 있어야 할 지는 모르겠는데 이 일 덕분에 10월 부터 11월 까지 두달 가까이 정신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 덜덜덜 합니다.

11월 마지막 주는 중요한 일 두가지 때문에 거의 정신이 없었는데 12월에는 조금 여유가 생길 듯 싶군요. 번동아제님이 소개해 주신 고려대학교 박물관의 특별전시를 볼까 생각중입니다. 어제는 중요한 일을 마친 김에 두달 가까이 가지 못했던 극장을 가 봤는데 볼만한 영화가 없어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읽어야 할 밀린 책들의 압박도 있군요.

다음주에 짧게 여행을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있긴 합니다.

그리고 '링 제로' DVD를 찾았습니다. 아흙 유키짱!!!

압박감을 덜었으니 마음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 그러고 보니 이글루스에서는 며칠간 한바탕 논전이 벌어졌었군요.

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방문객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이번에 있었던 논쟁으로 많은 방문객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유익한 조언을 해 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가 감정싸움의 장이 된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로 많은 분들이 유익한 조언을 해 주셨고 앞으로는 이런 조언들을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을 해 주신 분들이 많은데 일일이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제 블로그가 원래 그랬던 것 처럼 가벼운 술자리 잡담 분위기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 방문객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유익한 조언을 주신 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 진명행님께서 이 논쟁을 정리하겠다고 하셨으니 이 논쟁은 정리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방문객 여러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요 며칠간 제 블로그에서 매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토론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결국은 상대의 인신공격에 흥분해 방문객 분들께 누를 끼쳤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방문객들께 사과드리고 저 자신도 각성을 할 겸 관련 글들을 당분간 대문에 걸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당대의 정보문서는 얼마나 정확한가?

북한인민군의 만주 파병에 대한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의 정보문제 -> 다시 확인해 보니 제 번역이 맞습니다.

아이고 배꼽이야! -> 제가 흥분해서 질 낮은 조롱글을 올렸습니다. 반성 차원에서 올립니다.

국공내전에 "조선의 아들딸"들을 지원했다는 김일성의 발언

사실 자료 문제로 할 말이 더 있고 해서 글을 더 쓸까 했는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그만 두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제 블로그가 늘 그랬던 것 처럼 가벼운 술자리 잡담 스타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 10월 25일 6시 추가

국공내전에 "조선의 아들딸"들을 지원했다는 김일성의 발언에 진명행님의 협박이 들어왔습니다.


제 글을 수정하라고 협박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렇게 문제가 생겼는데 관련 글을 수정하는 것은 방문객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 블로그는 공개된 공간인 만큼 주인장인 저로서는 방문객분들에 대해서 신뢰의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명행님의 요청만 받고 제 글들을 수정하기는 이미 늦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두 번째 글만으로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명행님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진명행님께서는 많은 분들이 지켜보는 공간에서 저를 협박하셨습니다. 그렇게 진명행님이 떳떳하시다면 협박하시지 말고 저의 질문에 대해 자료와 논리로서 대응하십시오.


※ 10월 25일 이후 추가

토론을 하려고 준비해 둔 것이 조금 있으니 가끔 올려볼까 합니다.

세기와 더불어에 실린 김일성의 증언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국공내전에 대한 국내 언론들의 보도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진명행님이 글을 하나 써 주셨습니다.


진명행님은 왜 댓글을 지우시는 걸까?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문제에 대한 반론

진명행님 블로그에 글이 또 올라왔는데

진명행님께서 사과를 하라고 하시는데

2008년 10월 29일 수요일

진명행님께서 사과를 하라고 하시는데

진명행님이 블로그에 글을 써서 자신을 사기꾼으로 매도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라고 하시는군요.

처음에 "교차검증을 할 줄 모른다" "도그마만 남았느냐"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시작하신 분이 누구시지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먼저 인신공격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올려주신 사진만 봐서는 진명행님이 이 책을 예전부터 읽었는지, 아니면 최근에야 읽기 시작했는지 확인을 할 수 가 없습니다. 진명행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오나 진명행님이 책은 가지고 있었으되 논쟁이 시작된 뒤 부랴부랴 읽기 시작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책이 있다는 것과 책을 읽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죠. 게다가 지금까지 진명행님이 꾸준히 해 오신 말 바꾸기를 생각하면 진명행님의 말을 신뢰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진만 봐서는 이게 진명행님의 책인지 아니면 어디서 빌려오신건지 확인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인신공격을 먼저 시작하신 것이 진명행님인데 제가 먼저 사과를 해야 할 이유는 딱히 없는 듯 합니다.

진명행님 블로그에 글이 또 올라왔는데

결국 말꼬리 잡기로 나가는군요.

제 번역을 확인해 보고 맞아서 다시 맞다고 정정했는데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논점일탈을 하는데 수집되는 정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왜 자꾸 말 돌리기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꾸준히 지켜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진명행님은 초기에는 오역이라고 말 꼬리를 잡더니 오역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니 자료를 취사선택했다고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오역이라고 지적한 것에는 취사선택한 것도 포함된다고 하는데 기가 막히는군요. 그렇다면 사전에 그 점을 지적했으면 될 것이지 오역문제로 물고늘어지다가 말을 바꾸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논지와 상관없는 부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어째서 취사선택인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진명행님은 자신이 한 애매모한 문장을 근거로 사전에 취사선택(?)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군요. 아니. 그럼 그때는 왜 지적안하고 글을 지워달라고 사정을 했습니까?

게다가 이 주장은 더욱 황당하군요.

ISNK의 내용을 ISNK로 검증합니까라고 하기 전에 그러는 자신은 ISNK 보고서상에 나타난 북한군 병력이 들쑥날쑥하다며 같은 보고서의 근거끼리 대차대조를 한 이유는 뭔가? 그 논리대로라면 ISNK의 내용을 가지고 ISNK의 내용을 검증한 게 아니고 뭐냐고.

신뢰성을 검증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ISNK의 내용을 통해 미군에게 수집되는 정보가 들쑥날쑥하다는 점을 지적한것인데 이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하지만 ISNK의 신뢰성 문제는 ISNK의 내부 내용으로 입증할 수 가 없는 것 입니다.

논쟁을 지켜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작 제가 문제를 제기하면 진명행님은 별다른 답을 대지 않았던 것을 아실 겁니다. 예를 들어 진명행님은 북한의 1947년 파병설의 근거로 이미 1946년에 북한에 귀국한 최광을 들기도 했지요. 제가 최광의 1946년 귀국을 지적하자 진명행님은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해명도 없습니다. 자신이 불리하면 입을 닫고 말꼬리 잡힐 만한 것은 골라서 왜곡 확대해 나가는데 황당하더군요.

애초에 주장을 입증해야 할 것은 진명행님인데 말꼬리 잡기만 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이겼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시고 있습니다.

일단 지금까지 진행된 논쟁의 논점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 ISNK의 문제

ISNK는 진명행님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내세운 주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문제를 제기했듯 이 자료의 내용을 입증하려면 중국에서 해당되는 내용을 뒷 받침해 줄 자료가 공개되어야 합니다. 그때 까지 ISNK의 자료는 그냥 신뢰도가 입증되지 않은 자료일 뿐입니다.
저는 ISNk에 수록되고 있는 자료들이 인민군의 병력 통계에서 극도로 심한 편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진명행님은 저에게 ISNK에 수록된 북한의 국공내전 파병정보가 틀렸다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환국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환빠들과도 비슷한 논리입니다. 부재증명을 하라는 말 입니까?


현 시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주장은 자료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것 뿐 입니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ISNK를 근거로 북한인민군의 파병을 주장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릅니다.

ISNK는 주사료이니 만큼 주사료의 신뢰도가 확실히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진명행님이 제시한 보조사료들은 진명행님의 주장을 입증하기에 부족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야 할 사람은 진명행님인데 진명행님은 ISNK의 북한군파병에 대한 신뢰성은 입증하지도 못하면서 말꼬리 잡기와 인신공격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누차 강조하는데 ISNk에 있는 북한군 파병 정보의 신뢰성을 입증해야 할 것은 진명행님입니다. 진명행님은 ISNK에 있는 정보의 신뢰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꼬리만 잡고 있습니다.


2. 북한자료의 문제


북한자료의 과장성과 낮은 신뢰도는 이미 제가 지난 포스팅에서 지적했습니다. 이 점은 방문자분들께서 판단해 주실 문제이기도 하지요. 북한자료, 특히 김일성의 회고등은 매우 모호한 표현으로 ISNK의 북한군 파병문제를 입증해 주기에는 신뢰도가 부족합니다. 게다가 북한측이 파병의 근거로 내세우는 사례는 조선족으로 구성된 부대들을 아전인수격으로 김일성이 파견한 것 처럼 호도하고 있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진명행님이 역시 자료로서 내세운 북한외무성 자료는 해당되는 서술주체가 불분명하고 이것이 북한군이라는 것을 입증해 줄만한 근거가 부족합니다.


3. 신문자료, 남한공보처자료의 문제

신문자료의 문제 또한 지적했습니다. 동시대의 국공내전 관련 보도들의 신뢰성이 떨어진 다는 점은 누차 지적했습니다. 진명행님은 여기에 대해서 "오보가 하나 있으면 신문기사가 다 거짓이냐"면서 논점일탈을 시도하고 있는데 당장 오보가 많은 기사 속에서 "진위여부가 명백하지 않은 보도"가 있는데 이것을 신뢰하는것은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역시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은 ISNk의 정보와 조합해서 논리를 전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남한공보처자료 또한 제가 지적했듯 내용에서 오류가 있는 등 각 사항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해당 자료의 북한인민군 파병에 대한 내용은 현 시점에서 검증할만한 자료가 없습니다.


저의 주장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 되지만 이 논쟁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단 지금까지의 제 주장은 정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말꼬리 잡기와 말바꾸기는 계속되겠지만 진명행님은 이런 일을 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ISNK의 신뢰성 문제를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은 입증하지 못하면서 말꼬리 잡기만 하면 어쩌겠다는 겁니까. 이제는 완전히 논쟁이 산으로 갔습니다.

판단은 제 블로그와 진명행님의 블로그를 들러주시는 분 들이 해 주시겠지요.

2008년 10월 27일 월요일

진명행님은 왜 댓글을 지우시는 걸까?

진명행님이 또 글을 써 주셨기에 가서 읽어 봤는데 당장 눈에 띄는 오류가 있더군요. 하늘색 선으로 표시한 부분을 잘 봐 주십시오.


그래서 본 답글을 쓰기 전에 간단히 댓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진명행님이 이 댓글을 지우셨네요.

왜 지우셨을까?

어차피 트랙백으로 또 갈텐데 말입니다.

참 재미있는 분 입니다.

진명행님이 글을 하나 써 주셨습니다.

진명행님이 글을 하나 써 주셨군요.

어느 역사학도의 훼적(毁籍)질..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입니다.

제가 고의로 글을 왜곡했다고 주장하시는데 진명행님이 주장하신 이야기는 트랙백 걸린 기린아님의 블로그나 제 블로그의 본문에서 간단히 언급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진명행님이 오히려 글을 왜곡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트랙백을 날려달라고 하시는군요.

시간나는대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

아이고 배꼽이야!

아래의 글에 진명행님께서 신속한 답변을 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보시다 시피 진명행님께서는 ISNK는 읽지도 않았다고 밝히시는군요.

아이구. 그런데 왜 전에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나요?


아니. 진명행님은 읽지도 않았다는 ISNK no.46 p.10을 저보고 참조하라고 하셨잖아요.

읽지도 않은 자료를 어떻게 내용까지 다 알고 친절히 저에게 읽으라고 하셨나요. ㅋㅋㅋ

캡쳐해 두기를 잘 했군요!

그리고 아랫 글은 별로 수고스럽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잖아도 지금 읽고 있는 Army Staff, Entry 154, Box 20 Plans & Operations Division 1946~1948, 091. Korea. Sec. I 같이 수백쪽 넘어가는 문서자료도 수십박스는 보는데 이런 간단한 정보 보고서 요약하는게 뭐 대수겠어요.

친절히 제 블로그 까지 오셔서 자폭을 해 주시니 정말 웃겨서 미치겠습니다.

2008년 8월 1일 금요일

북한의 전후 복구에 대한 전석담의 논문

며칠 전에 「전후 복구시기 북한에 대한 약간의 잡설」이란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나 했는데 나츠메님이 참고문헌에 대해서 물어 보셨습니다. 사실 네이버 블로그를 포함해서 4년 정도 블로그질을 하다 보니 재탕 또는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게 되고 그래서 가끔 참고서적을 빼고 글을 쓸 때가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 들이라면 어떤 글은 어디서 베낀 것인지 아실 것이라고 생각해서죠. 그렇다 보니 이번에도 무의식적으로 참고문헌을 생략해 버렸습니다. 어쨌건 나츠메님에게 대략 답글 형식으로 간단하게 답변을 드렸는데 그러다가 중요한 논문 하나를 빠뜨렸습니다.

바로 전석담이 쓴 「조선로동당의 령도하에 전후 사회주의 건설에서 조선인민이 달성한 성과와 그 의의」라는 논문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석담은 1940년대 조선에서는 꽤 유명했던 경제사학자 였습니다. 당연히 월북했고 월북한 뒤에도 꽤 잘 나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석담이 1960년에 력사논문집 제4집을 통해 발표한 이 논문은 전후복구기의 북한 경제에 대해서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입니다. 일단 이 시기의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남한 등 북한 외부의 연구자들은 북한의 1차 자료를 거의 활용할 수 없으니 2차 자료 중에서 신뢰도가 높은 것을 인용할 수 밖에 없지요. 일단 전석담의 이 논문은 발표 시기도 이르고 또 저자의 이름값도 있고 해서 꽤 많이 인용됩니다. 제가 자주 참고하는 김연철의 북한의 산업화의 경제정책 같은 경우도 전후 복구기의 북한 경제통계에 대해서는 전석담의 논문을 많이 인용하고 있지요. 물론 전석담의 논문은 선전 목적이 강해서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나 잔뜩 실려 있을 뿐 전후복구기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기에는 한참 부족한 글 입니다. 뭐,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백 배 낫죠. 하여튼 전석담의 논문은 1950년대 후반 북한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인용되는 꽤 중요한 논문입니다. 글에 있는 내용을 비판적으로 봐야 하지만 북한의 전후복구기의 실상을 살펴보는데 있어 꽤 중요한 글 입니다.

참고로, 전석담의 이 논문이 실린 력사논문집 제 4집은 1960년에 출간됐는데 이 논문집은 전후복구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선전 목적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석담의 논문외에 함께 실려 있는 논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덕호, 「우리나라에서 집단적 혁신 운동의 발생 발전」
리국순, 「흥남비료공장 노동자들이 걸어온 승리의 길」 – 이 논문은 일제시기부터 전후복구기까지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꽤 읽을만 합니다.
엄창동, 「제1호 용광로와 해탄로의 복구 개건을 위한 황해제철소 로동자들의 투쟁」
리상준, 「조선로동당의 농업 협동화 정책과 평남도에서의 그의 승리적 실현」

이 논문들은 모두 선전목적이 강해 수령님 보시기에 좋은 내용만 가득하지만 어쨌든 이 시기 북한의 경제정책과 산업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됩니다. 다행히도 1990년대 이후로 러시아나 동유럽의 자료를 활용해 이 시기의 북한을 다룬 연구들이 가끔 나오고 있으니 이런 연구들을 참고해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더 좋을 것 입니다.

이 논문집은 국회도서관의 독도자료실에 비치되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한번 읽어 보십시오.

2008년 7월 16일 수요일

황당한 댓글

지난달에 올렸던 뉴라이트 대안 역사교과서...라는 포스팅에 '산마로'라는 양반이 괴상한 댓글을 달았습니다. 철지난 글에 댓글을 다는 건 둘째치고 댓글의 내용이 괴이하기 짝이 없더군요.


자 그렇다면 아래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과연 합의가 필요한 것인지 방문객 여러분들께서 판단해 주십시오.

1. 1972년 미국과 중국은 국교를 수립했다.

2. 김대중은 1960년 처음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3. 박정희는 '관동군' 장교였다.

4. 1973년 남북 대화가 단절된 후 1992년 까지 남북간의 공식적인 접촉은 없었다.

제가 본문에서 지적한 내용은 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은 '이미 합의가 된' 기초적 사실 조차 오류를 내고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글의 요점이 뭔지도 모르면서 봉창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기가 차는군요.

2008년 5월 8일 목요일

난감한 경우

상대방이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계속해서 속을 뒤집어 놓을 때. 차라리 대놓고 시비를 걸면 좋겠는데 이런 경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정말 난감합니다.

2008년 3월 20일 목요일

crete님께

제 블로그에 오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제 블로그에서 생긴일이다 보니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저의 영양가 없고 시시껄렁한 블로그에 관심을 가져주신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게다가 댓글을 보아하니 머나먼 이국땅에서 접속해 주신것 같아 더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여기에 crete님의 개인 사이트에 친절하게 초대까지 해 주시니 더더욱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의 며칠 전 글 "세계에 우뚝선 개그강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달린 댓글을 보니 좀 난감한 느낌이 들어서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crete님께서 바보이반님과 배군님의 댓글에 기분이 상하신 것 같은데 거기다 다시 달아놓으신 댓글이 좀 난감하더군요.

바보이반님과 B군님께/ 세월이 더 흘러 우리나라에도 좀 더 건강한 언론이 주류가 되는 때가 온다면, 두분의 현재 현실 인식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근거에 바탕을 뒀다는 걸 깨닫을 때가 올지도 모르겠죠. 주인장의 글에 나온 북한 인민의 인식이 바로 두 분의 인식과 정확히 일치한답니다. 왜곡된 정보에 세뇌당한 이가 현실을 바로 보기는 너무나 힘든 노릇이니까요.

crete님께서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여기는 서프라이즈가 아닙니다. 방문객들께 훈계조의 발언은 삼가해 주십시오.

제가 서프라이즈를 혐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칭 논객들의 저열한 수준보다도 그들이 가진 찌질한 '선민의식'입니다. 마치 자신이 엄청난 진리를 깨달은 냥 훈계조의 망발을 날려대는게 너무 짜증이나기 때문에 서프라이즈를 혐오합니다.

그런데 제 블로그에서 서프라이즈식의 훈계조 댓글을 보니 혈압이 마구 마구 급상승합니다. 참 무례한 질문이오나 crete님께서는 바보이반님이나 배군님에 대해 얼마나 잘 아시길래 두분의 현실인식이 터무니 없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시는지요? 관심법이라도 터득하셨습니까?

2008년 2월 13일 수요일

출발

오늘부터 여러가지 일을 한번에 해 보려다 죽도 밥도 안된 재미없는 여행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출발

이번에는 왕복 모두 인천(부산)과 뮌헨을 왕복하는 루프트한자를 이용했습니다. 제 블로그에 구글광고를 달아놓았는데 거기에 계속해서 루프트한자의 겨울철 특가 광고가 뜨더군요. 제 블로그의 광고에 제가 낚인 겁니다.;;;;;;

모든 여행의 출발이 그렇듯 비행기가 이륙하니 기분이 아주 상쾌했습니다. 원래는 비행기에서 책을 읽기 위해서 읽을 책도 한 권 챙겨 갔는데 창 밖의 경치도 좋다보니 그럴 마음이 싹~ 달아나더군요. 에 그리고 기내식도 꼬박 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먼저 식사에 앞서 맥주 한병을 마셨습니다.


다음으로 점심이 나왔는데 하나는 비빔밥 하나는 생선이더군요. 비행기에 타서도 비빔밥을 먹을 의사는 없어서 생선을 골랐습니다. 의외로 먹을만 하더군요.


밥도 먹었으니 책을 읽자... 가 아니라 다시 창밖 구경을...


그리고 다시 간식이 나옵니다. 라면이군요.


간식을 먹었으니 책을 읽자... 가 또 아니라 또 다시 창밖 구경을. 슬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식사가 나왔습니다. 돈가스로군요. 이히~


배부르게 먹고 나니 독일 영공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이 좋아라~

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이런!

Statcounter에 로그인을 해 보니 독일육군의 흑역사 -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시의 사례가 엄청난 히트(???)를 쳤습니다. 천하무적의 독일국방군도 저런 멍청한 삽질을 했구나하는 점이 상당히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모양이군요. 이 포스팅 덕에 지난주 월요일에는 거의 400명 가까운 분이 이 재미없는 블로그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단순 클릭은 거의 1000회 가까이 나왔습니다.

어디서들 오셨나 보니 윤민혁님의 "화이트데스"와 "Joy SF"란 곳에서 많이 오셨더군요. 오호. 링크의 위력이란!

이거 속편으로 1939년 붉은군대가 폴란드에서 저지른 삽질을 올려봐야 겠습니다.

2006년 8월 7일 월요일

블로그질에 대한 잡생각

외국 블로그 중에는 재미있는게 많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인 이상 한글로 된 블로그에 더 정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 같다.

다행히도 올블로그 같은 것이 있어서 블로그질은 재미있다.

그렇지만 한글 블로그들이 아쉬운 것은 여전히 펌글이 많다는 점이다. 펌글로 채워지는 블로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끔 거의 펌질로만 때워지는 블로그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럴 바에는 블로그를 뭐하러 운영하는 지 알 수 가 없다. 차라리 신변잡기로 때우는 블로그가 더 영양가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네이버, 야후 등 포털업체들의 블로그에 예상외로 재미있는 글이 많더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기 때문인가?

하여튼 블로그를 개발한 사람은 대대손손 축복받을 지어다.

2006년 6월 4일 일요일

탬플릿을 약간 수정

나는 기계에 깡통이다 보니 컴퓨터도 겨우 컴맹을 면한 수준에 불과하다.

전에 쓰던 블로그들은 비교적 사용하기가 쉬운 편 이었는데 블로거는 약간 사용하는게 복잡해 아직까지 기본 탬플릿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랄라라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minima 개조 탬플릿 을 보게 됐다.

이걸로 탬플릿을 바꿔 보니 이전 보다는 댓글 달기같은 것들이 훨씬 편해졌다.

블로거는 이래서 재미가 쏠쏠한 것 같다.

나도 시간나면 탬플릿 개조하는 걸 궁리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