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 특무부대장, 육군 제주도 제1훈련소 부소장 등을 역임한 김종면 장군이 육군사관학교 나종남 교수와 면담한 내용입니다. 이승만 시기에 군 생활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역경을 겪은 탓인지 당시 상황에 대해 시니컬한 평가를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꽤 있습니다. 이 분이 한국전쟁 중 훈련소 부소장으로 있을 당시를 회고한 내용이 꽤 흥미롭더군요. 이 내용을 읽고 나니 군인이야 말로 가장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해당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면담자 : 전쟁 중에 활동했던 다른 상황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김종면 : 전쟁 중에는 주변에서 별 달아 줄 테니까 전선의 사단장으로 나가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전방에는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중공군이 인해전술 했다고 그랬지만 우리도 인해전술 많이 썼지요.
대체로 미군은 산악지역에서는 거의 작전을 하지 않았고, 대체로 한국군이 산악지역 작전을 담당했습니다. 왜 동부전선에는 미군 부대가 없었고 한국군 부대만 작전을 했을까요? 동부지역은 아무래도 지형이 험하고 미군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의 효과가 적었으니, 자신들이 활동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또한 미군들은 어떤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해군과 공군의 지원을 받아서 적을 완전히 초토화 시킨 다음에 그 고지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군은 미군 고문관이 와서 "got damm! 올라가라!" 하면 올라가는 것 입니다. 병사들이 많이 죽어도 올라가는 것 입니다. 내가 사단장으로서 병사들을 고지로 올려 보내는 것이 곧 그들을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 입니다. 이처럼 부하를 죽이고 나서 계급장이나 훈장을 달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리고 훈장이라는 것도 실제로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이 받거나 달아야 할텐데, 항상 후방에 앉아서 사무실에 근무했던 사람들, 자격도 안되는 사람들이 훈장을 달고 다니더군요. 나는 훈장을 받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무실에서 근무한 사람보다는 실제 전장에서 적과 싸웠던 사람들에게 훈장을 줘야지요. 나는 나 스스로에게 6ㆍ25전쟁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할 자격이 있어요? 동작동에 갈 자격도 없는 것이지요.
면담자 :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김종면 :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가져야 할 정신 자세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간적으로 어떤 자세가 되어야 할까요? 1952년에 내가 훈련소 부소장 시절에 부대에서 나에게 훈련병들을 상대로 정신훈화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구태여 정신훈화 할 것이 있냐? 정신 훈화 할 것이 없다. 정신훈화 한다는 사람들이 백두산 상상봉에 태극기를 꽂자고 이야기 하는데, 백두산 상상봉에 태극기를 꽂을 것이라면 네가 가서 꽂아야지 왜 병사들에게 그런 주문을 하느냐?"라고 대꾸했습니다.
당시 훈련소에서 많은 병사들이 어려운 훈련을 안 나가려고 취사병에 지원하더군요. 물론 취사장에서는 배 든든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포복해서 철조망 밑을 지나가는 병사들 중에서는 교관의 숫자가 적으니, 교관 눈치 봐서 빨리 기어가지 않고 뛰어가면서 쉽게 훈련하려는 병사들도 많더군요. 그러니 훈련이 제대로 되겠어요?
그래서 부대에서는 나에게 정신교육을 시켜달라고 요청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꼭 1~2분 정도 걸쳐서 짤막하게 연설을 하곤 했습니다. 연대의 모든 병력을 모아 놓고, "죽고 싶은 사람 손 들어봐라"라고 하면,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더군요. "부상당해서 병신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라"라고 해도 손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너희들이 배우고 있는 훈련이 매우 힘들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다. 물론 보리밥에 부식도 시원찮은 것을 먹고, 기운도 없는데 열심히 훈련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나도 이해한다. 나도 그런 것은 하기 싫다. 그런데 왜 어려운 훈련을 해야 하느냐? 전쟁을 하는 것은 내가 적을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을 죽이는 연습을 하는 것은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훈련인 것이다. 여기서 훈련 제대로 안 받은 사람은 총에 맞아서 병신이 되거나, 상이용사로 돌아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백골이 되어 돌아오거나, 어떤 사람들은 시신도 못 찾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을 하는 것이니,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한마디로 훈련을 받고 싶으면 받고 안 받고 싶으면 안 받고, 마음대로 하라는 것 이었습니다.
내 정신교육이 있은 다음부터는 취사병으로 지원하겠다는 병사들이 줄어들더군요. 그러니까 연대장이 나에게 와서 "부소장님이 정신교육을 시킨 이후에는 취사병 하겠다는 병사가 없다"고 보고하더군요. 취사병은 하사관이나 고참병 해서 하면 되지 신병훈련 받는 녀석들을 골라서 취사병이나 당번병 시키면 훈련할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훈련 효과가 좋아졌다고들 했습니다. 다행이었지요.
나종남 편집,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사료선집 19 : 한국군 초기 역사를 듣다 - 군사영어학교 출신 예비역 장성의 구술』, (국사편찬위원회, 2012), 242~2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