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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6일 목요일

책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전략)

그러나 과연 독일 장군들은 리델 하트가 생각했던 것 처럼 정치와는 무관한 군인들이었을까? 또 독일 장군들은 리델 하트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2차대전 경험을 바탕으로 군사사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하려고 했을까? 또는 리델 하트에게 한 말들은 아무런 의도가 없는 것이었을까?

(리델 하트와의 대화 중에 있었던) 한 사건은 독일 장군들이 리델 하트를 어떤 생각을 가지고 대했는지 보여준다. 그리즈데일(Grizedale) 수용소에서 근무하던 장교 중 한 명인 헨리 펄크(Henry Faulk) 중령의 회고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945년 12월 28일에 리델 하트가 독일 장군들에게 면담을 신청했을 때 펄크 중령은 그들에게 리델 하트가 찾아 왔으니 만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독일 장군들은 모여서 리델 하트와 이야기 할 때 어느 정도 선 까지 정보를 알려 줄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독일어가 유창했던 펄크 중령은 독일 장군들의 대화를 엿듣고는 이것을 그대로 리델 하트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런데 리델 하트는 펄크 중령의 말을 듣고도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펄크 중령은 아마도 리델 하트는 독일 장군들은 엘리트적이고 기사도 정신에 바탕을 둔 집단이므로 신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정말 리델 하트가 펄크 중령의 말대로 독일 장군들의 인격을 믿고 있었다면? 전범재판이 시작될 무렵인 1945/46년 겨울에 리델 하트는 독일 장군들에게 우호적인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리델하트 자신도 영국측의 전범 기소 책임자인 쇼크로스(Hartley Shawcross)를 만난 1945년 9월 무렵부터 전범재판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리델하트는 자신이 전쟁성과 영국 정부의 고위층에 가지고 있는 모든 연줄을 동원해 독일 장군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Alaric Searle, "A Very Special Relationship : Basil Liddell Hart, Wehrmacht Generals and the Debate on West German Rearmament 1945~1953", War in History Vol 5 Issue 3,(1998), pp.332~333

이 이야기는 리델 하트가 포로가 된 독일 장군들을 면담하면서 The Other side of the Hill의 저술을 준비할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다 시피 The Other side of the Hill은 2차대전 초기 아주 큰 삽질로 거의 매장(???) 당할 뻔 한 리델 하트가 다시금 명성을 되찾도록 해 준 저작이고 또 냉전시기 독일 국방군 장성들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정립되는데 큰 기여를 한 저작입니다.

이 글의 저자인 Alaric Searle은 2차대전이 끝날 무렵 군사이론가와 군사사가로서의 명성에 타격을 받았던 리델 하트가 자신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포로가 된 독일 장군들에게 우호적으로 접근했으며 독일 장군들은 리델 하트의 이런 점을 잘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펄크 중령의 증언은 리델 하트의 저작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잘 지적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진위 여부가 어떻든 간에 리델 하트는 자신의 명성을 상당 부분 회복하는데 성공했으며 독일 장군들은 리델 하트를 이용해 독일 장교단은 나치나 히틀러의 범죄와는 무관한 애국적인 집단이었다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퍼트릴 수 있었습니다. 리델 하트는 지속적으로 독일 장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만토이펠은 프랑스에 억류되어 있던 무장친위대 장군 비트리히를 구하기 위해서 리델 하트의 협조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지요.

사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런 종류의 뒷이야기들은 꽤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