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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한미관계에 대한 어떤 논평

최근 이글루스에서 한일회담과 관련된 토론이 진행중입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논쟁거리여서인지 좋은 글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저는 특히 번동아제님의 '한국이 원하는 돈을 받지 못한 이유'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번동아제님께서는 이 글에서 한일협정이 진행되던 과정의 국제적 정세와 당시 한국이 처한 한계점에 대해 명료하게 정리를 해 주셨는데 저 또한 이 글의 주된 논지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도 뭔가 사족을 조금 달아볼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한일협정과 관련된 문서는 주로 이승만 정부 시기에 이루이전 협상에 대한 문서만 조금 읽었는지라 박정희 정부 시기의 한일협상에 대해서는 마땅히 적을 만한 것이 없더군요;;;; 대신 당시 한일협정 문제로 고조된 반미/반일감정을 경계하는 보수적인 지식인들의 견해를 보여주는 글을 한 편 소개해 볼까 합니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박준규(朴俊圭)는 시사잡지인 청맥 1965년 1월호에 「條約協定으로 본 韓美關係」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 글의 결론부분에서는 당시 한일협정 체결문제로 격앙된 민족감정을 다음과 같이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전략)

이상에서 몇 가지 주요 조약과 협정을 통하여 한미관계를 고찰하였다. 결과적으로 느껴지는 것은-적어도 조약 및 협정의 조문을 통해서는- 과연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마땅히 받어야 할 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 다음에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회피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 문제를 하나의 가외(加外)의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아심이다. 그리고 최근의 미일관계를 조감할 때 미국의 한국과 일본에 대한 비중의 격차가 너무나 현격하다는 비애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느낌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한미관계를 어떻게 조정해나가느냐가 한국의 당면한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한미관계를 국가대 국가의 외교관계로서 고찰할 때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기대를 걸고 있는것이 아닌가를 재삼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란 도덕사회도 자선사회도 아니며 그곳에서는 '힘'의 서열에 따라서 응분의 지위가 규정되며 각자의 지위에 따라서 응분의 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한 비중의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것도 그러한 원리로 부터 연유하는 것이며 어느 의미에서 한국은 미국의 대우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무력함을 한탄해야 할 입장인지도 모른다.

일본이 받고있는 정도의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받지 못한다고 반미적 감정에 흐른다거나 한미관계의 역사적 의의를 망각하고 미국 이외의 다른 강국(예컨데 일본)과 새로운 기축(基軸)관계를 형성하려고 덤벼드는 것은 모두가 '한국의 국가이익'에 배치되는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2차대전 말기에 한국을 분점(分占)하게 된 것은 대일전쟁 종결을 위한 전략적 고려의 결과였으며 한반도에 항구적으로 고착할 의도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한정책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한미관계의 기축이 변동할 리는 없을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대미일변도니 사대주의니 하고 비판할는지도 모르나 세계정치의 현세하(現勢下)에서 소위 중립국가를 제외한 국가로서 미국 혹은 쏘련과의 기축에 크고 작고간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가 몇개나 되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국, 서독, 일본 등은 말할 필요도 없고 '드골'의 프랑스가 큰소리 칠 수 있는 것도 역시 미국 세력의 배경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한국처럼 미국의 전쟁처리 과정에서 탄생한 나라가 대미관계를 국가 이익의 기축으로 삼는것은 자명의 이치라 하겠다.

(후략)

朴俊圭,「條約協定으로 본 韓美關係」, 靑脈 第5號(1965.1), 82~83쪽

지금은 이 당시보다 사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큰 틀은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입니다. 물론 '민족감정'에 입각해서 본다면 당시 협상은 굴욕적인 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어쩔수 없는 당시의 국제적 역학관계가 그대로 반영된 것 이었습니다. 우리가 강화협상에 승전국의 지위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수는 없었지요.

사실 논쟁의 시발점(?) 이었던 슈타인호프님의 글이나 번동아제님의 글은 어디까지나 당시 협상이 진행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필요이상으로 흥분하는 분들이 보이는 것 같아 구경하는 입장에서 약간 난감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1964년이 아닌데 말입니다.

잡담하나. 한일협정관련문서가 공개된 뒤 동아일보에서는 이 협정 문서 전체를 PDF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한일회담 관련 공개 문서 全文 다운 받기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정말 대단한 민중의 호민관

연합뉴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더군요.

세계에서 살인폭력 심각한 도시는

영광의 1위를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대통령이 통치하는 베네주엘라의 카라카스가 차지했습니다. 살인률이 10만명당 130명이라는군요.

하도 재미있어서 기사의 원래 출처인 Foreign Policy 웹사이트로 들어가 봤습니다.

The List: Murder Capitals of the World

넵. 역시 원판이 더 재미있군요.

차베스가 집권한 이후 살인율이 67%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하하하. 민중의 호민관께서는 빈민들에게 빵만 뿌릴줄 알았지 갱단을 소탕할 줄은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이런 병신같은 나라를 모범적인 국가로 치켜올리는 바보들이 같은 나라에 산다는게 정말 부끄러워 지는군요. 反美라면 앞뒤 안가리고 열광하는 얼간이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습니다.

2007년 8월 28일 화요일

최지룡 만화 실사 버전 주인공

오마이뉴스에 들어가니 아주 재미있는 기사와 사진이 있었습니다.

이순신을 놀라게 한 '주한미군 철수' 기습시위


이 친구를 보니 최지룡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친구가 생각납니다.

바로 이 친구...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건 이 어린양 혼자만이었을까요?

오마이뉴스 기사에 달린 동영상을 보니 참 쌀이 아까운 찌질이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런 정박아들이야 말로 명랑사회의 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