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미육군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곳 저곳 들쑤시며 뉴스거리를 만드는 존재였지만 불과 100년전의 미 육군은 주요 열강의 육군 치고는 비리비리한 군대였습니다. 유럽과 같은 국가 총동원체제가 자리잡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상비군이 강력한 것도 아니고. 사실 미국은 육군이 약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 국경을 마주한 것이 캐나다와 멕시코같이 적대적이지도 않고 군사력도 그저 그런 나라들이었죠.
그래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미육군의 차량화 수준은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주요 교전국들에 비해서 크게 뒤떨어 졌습니다. 유럽에 참전하면서 미국이 기여한 것이란 총알받이가 될 청년들 뿐이었다는 빈정거림도 있었다고 할 정도로 미국은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중요한 군사 장비를 원조 받습니다. 좀 절대적인 비중이죠.
그나마 트럭의 경우는 미 육군이 자체적으로 표준화 해서 생산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워낙 전쟁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전쟁에 뛰어들었는지라 엉망이었습니다. 1916년에 스탠다드 B, 또는 리버티 트럭이라 불리는 3톤 트럭이 채용 되었지만 생산량이 부족해서 프랑스에 투입된 미육군이 사용한 274,000대의 트럭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219개 모델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습니다. 불과 20년 뒤에 가공할 차량화 수준을 달성하게 되는 것에 비교하자면 지독할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었습니다. 당연히 일선 부대는 잡다한 트럭의 부품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트럭의 가동율이 매우 형편없었습니다. 1919년 휴전직후 미육군 제 1 야전군 전체에 가동 가능한 리버티 트럭은 고작 40대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휴전이 체결된 뒤 전쟁성이 나머지 주문을 취소해 버리자 예비부품도 덩달아 취소돼 버렸습니다. 육군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고역이었겠죠.
20년대는 평화롭게, 그리고 궁핍하게 지나갔습니다. 잠시의 호황 뒤에 찿아온 대공황으로 미육군의 예산은 마구 깎여 버렸습니다. 당연히 새로운 트럭을 대량으로 도입 하는것은 꿈에나 가능한 일 이었죠. 미육군은 신형 트럭을 발주하기 보다는 이미 민간 시장에 대량으로 풀려 있는 모델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새로 트럭을 개발하는 것 보다야 후자가 예비 부품을 조달하는데 유리하고 결정적으로 비용도 적게 들었다고 하죠.
그러다 보니 각 병과 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트럭을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게 됐습니다. 포병이 사용하는 트럭의 요구 조건과 수송 부대가 사용하는 트럭의 요구 조건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각 병과별로 차량을 구매하다 보니 1936년에 미육군이 보유한 차량은 총 360개 종류에 달했고 각기 다른 예비부품이 100만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건 불과 5년 뒤에 소련을 침공한 독일 육군과 비슷한 수준의 난장판 이었습니다.
미 전쟁성은 이 난장판을 정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차량의 표준화에 한층 더 박차가 가해 집니다. 이렇게 해서 1940년에 미 육군은 ½톤, 1½톤, 2½톤, 4톤, 7½톤의 다섯 종류로 차량을 표준화 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나중에 ½톤 차량은 ¼톤 차량,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지프와 ¾톤 "Weapon Carrier"로 분화 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의 표준화, 대량생산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미국은 방대한 공업생산력으로 역사상 그 어느 나라도 이룩하지 못한 위업(?)을 달성한 것 입니다! 농담을 조금 보태서 미국이 찍어낸 엄청난 숫자의 트럭이 승리의 원동력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미육군의 차량화는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한 수준을 훨씬 넘어서게 됩니다. 정말 이거야 말로 해피엔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