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재미있는 책을 몇 권 발견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Geoffrey P. Megargee의 'Inside Hitler's High Command'의 한국어판인『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였습니다. KODEF의 안보총서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는데 출간일을 확인해 보니 9월 7일이었습니다. 그동안 KODEF의 안보총서는 주로 개설서 위주로 출간되었기에 이런 심도깊은 서적이 출간되었다는데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2차대전 당시 히틀러가 군사문제에 깊히 관여한 것이 패전의 큰 원인이라는 전후 독일 장군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독일 고위 장교단은 히틀러의 집권 초기에만 어느 정도 저항을 했을 뿐 2차대전으로 치닫기 시작하면서 히틀러의 전략적 방침을 그대로 수용했으며 그때문에 패전의 책임을 히틀러와 함께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군 고위 사령부는 보급과 정보에서 비참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며 2차 대전 초기 부터 전략적으로 형편없는 상태에서 작전적, 전술적인 우위로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소련에 대한 침공등 심각한 전략적 오류를 저질렀으며 결국 패전으로 다다를 수 밖에 없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2001년 초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통념들과 배치되는 내용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제 한국어판도 나오게 되었다니 매우 반가운 일 입니다. 마치 'Blitzkireg Legende'의 한국어판, 『전격전의 전설』이 출간되었을 때 처럼 즐겁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2만5천원으로 매우 착하더군요. 많은 분들이 이 저작을 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KODEF에서 출간한 (별로 좋은 책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의 경우 '리더쉽' 이라는 측면을 강조해서 경영서적(???)으로도 호평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도 조직의 실패사례로 경영인들에게 꽤 많은 시시점을 줄 수 있을테니 잘만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모인 조직이 재앙적인 실패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독일군 수뇌부는 아주 흥미로운 소재이지요.
※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한국어판도 구입해서 원서와 대조해 보고 싶은데 지갑이 가벼워서 그런 호사는 누리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번역하신 분이 군사사적을 전문적으로 번역하신 분이니 번역은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두 번째는 한스 델브뤽(Hans Delbrück)의 'Geschichte der Kriegskunst im Rahmen der politischen Geschichte'의 번역판인『병법사-정치사의 범주 내에서』였습니다. 이 책이 번역된다는 소식은 2007년 말에 처음 들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출간되었더군요. 방대한 저작이라 한국어로 완역되어 소개되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원서에 맞춰 총 4권으로 출간되었는데 문제라면 각 권의 가격이 후덜덜하다는 것 입니다. 각권은 3만원에서 4만원대를 오가는 데 아무래도 개인이 구매하여 소장하기에는 살짝 부담스러울 듯 싶습니다.
델브뤽은 제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 뛰어난 군사사가 일 뿐 아니라 군사평론가로서 군사사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언제 한번 짤막하게 정리해서 소개를 해 보고 싶은데 그러고 보면 예고만 해 놓고 아직 쓰지 못한 글이 많군요;;;;
두 권 모두 군사사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강력히 추천하는 바 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저작들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을 보면 앞으로 또 어떤 저작이 소개될지 기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왕이면 제가 읽지 못한 것으로 번역되면 좋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