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당시의 독일 육군이 마필에 수송수단을 크게 의존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니 좀 식상한 이야기 입니다. 그렇지만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마필 사용은 그 규모의 방대함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산업화된 전쟁에서 산업화와는 거리가 먼 말 이라는 동물 조차도 전쟁의 규모에 걸맞게 대량으로 사용되고 소모된다는 점이 꽤 재미있더군요.
독일이 2차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에 독일 육군이 보유한 마필은 약 59만 마리였습니다. 비록 오스트리아 병합과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으로 대규모의 마필이 입수되긴 했지만 전쟁 발발과 함께 신규부대 편성이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마필의 입수는 상당히 골치아픈 일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독일 육군의 1개 보병사단은 약 4,800필 정도의 말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당시 독일군의 1개월 보충량으로는 3개 사단 정도의 소요량을 맞추는 정도에 그쳤다고 합니다. 다행히 폴란드 전은 단시일 내에 종결되었고 독일군은 아주 쓸만한 말 공급처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1940년 초부터 폴란드는 독일군에 1주일 평균 4,000마리의 말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940년의 서부전역은 비교적 단기일에 끝났지만 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기동이 이뤄진 까닭에 마필의 소모가 컸습니다. 제 4군의 경우 1940년 5월 10일 말 52,700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프랑스 전역이 종결될 무렵에는 44,000마리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부 전역이 순식간에 종결되면서 독일군은 폴란드에 이어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라는 새로운 말 공급처를 얻게 됩니다.
독일의 다음 목표는 소련이었는데 소련은 독일군의 기계화 부대는 물론 말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도전이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바르바로사 작전을 위해 625,000마리의 말을 동원했으며 이 중 13만 마리는 중부집단군의 주력 야전군인 제 4군에 소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련 전장은 독일군의 말들에게는 아주 지독한 곳이 되었습니다. 넓은 땅 만큼이나 신속한 진격이 거듭되다 보니 보급로는 길어지고 이것은 말 사료의 전방 추진을 어렵게 했습니다. 폴란드와 서유럽산의 덩치 큰 말들은 독일군의 철제 달구지와 보병사단의 주력인 105mm 포를 견인할 만큼 튼튼했지만 동시에 먹어대는 사료의 양도 엄청났습니다. 사료 추진이 제때 되지 않으니 픽픽쓰러지는 말들이 매우 많았고 그 숫자는 소련 깊숙이 진격할수록 늘어났습니다. 독일군의 마필 손실 중 폐사는 1941년 7월 1일부터 7월 10일까지는 2,839마리였는데 8월 1일부터 8월 10일에는 9,847마리로 급증했습니다. 마필의 보충은 인력과 장비의 보충 만큼이나 더뎠는데 7월 1일~10일 기간 동안 폐사 2,839마리, 부상 및 질병 9,442마리 등 총 12,281마리를 상실하는 동안 보충된 것은 1,500마리에 불과했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어 11월 1일부터 10일 사이에는 폐사 11,605마리, 부상 및 질병 7,991마리에 보충은 1,700마리로 마필의 상황은 크게 악화되어 보병사단들이 제대로 보급추진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말의 손실은 더욱 높아졌고 독일군의 수의 부대는 질병에 걸리거나 쇠약해진 말들이 급증해 기능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보통 야전군급 수의부대는 최대 550마리의 말을 치료할 수 있었는데 41년 겨울이 되면 2,000마리에서 많게는 3,000마리 이상을 치료해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소련군으로 부터도 많은 말을 노획했고 현지 징발로도 보충이 가능하긴 했지만 문제는 러시아산 말은 튼튼하기는 했으나 폴란드와 서유럽산 말들에 비해 덩치가 작고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산 말들은 독일군의 표준형 철제 달구지를 끌 수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 농촌에서 사용하는 전통적인 목재 달구지를 사용해야 했는데 이것은 보통 독일군용 달구지보다 수송량이 적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산 말로 105mm포를 견인하려면 포 1문당 더 많은 말이 필요했습니다.
독일군은 1942년 공세를 준비하면서 동부전선으로 보낼 약 21만 마리의 보충용 말을 징발했고 이 중 109,000 마리가 1942년 5월 1일까지 전선에 도착했습니다. 마필의 보충은 서부전선으로 이동하는 사단들로부터 인계받는 방식으로도 이뤄졌는데 전차와 같은 중장비처럼 서부전선으로 이동하는 부대들은 보유한 마필을 전선에 있는 부대에 넘겨주고 이동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2년 하계전역 개시당시 평균적인 보병사단들의 마필 보유량은 3,000마리 선에 그쳤다고 합니다. 다른 장비와 물자처럼 말 또한 동부전선의 지독한 소모전 앞에서는 배겨낼 재주가 없었고 일선 부대의 말 보유량은 계속 줄어듭니다. 1944년 봄에 가면 보병사단 1개의 평균 마필 보유량은 2,000마리 선으로 떨어진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