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이태준의 스탈린그라드 기행기

이태준(李泰俊)은 식민지 시기의 문인 중 가장 유명한 편인데 해방 이후 월북해버려 노태우 정권하에서 월북작가에 대한 해금조치가 있기 전 까지는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접할 수 없었습니다. 네. 물론 이 어린양도 문학쪽에는 관심이 없지만 북한 현대사에는 관심이 있다 보니 이태준의 글들을 조금 읽은 편인데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것이 논픽션인 『소련기행』입니다.

『소련기행』은 이태준이 1946년 8월 소련을 방문해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등 여러 지역을 여행한 경험을 기록한 글로 소련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강하긴 해도 종전 직후 소련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를 다룬 부분은 매우 재미있는데 이 중 마마예프 쿠르간에 대한 묘사가 아주 좋습니다. 해당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9월 19일.

일찍부터 전적(戰跡) 구경을 나섰다. 먼저 옆에 있는 전사광장, 여기는 이번 싸움(독소전쟁)보다 10월 혁명 때 혁명군 54명이 사형받은 광장으로 기념되는데 광장 중앙에는 공원처럼 된 그들의 묘가 화원과 화환과 기념비로 장식되어 있다. 광장 주위는 모다 속은 타버린 거죽만 5, 6층의 대건물들로 둘리웠는데 그 독군사령관(파울루스)이 잡힌 백화점, 혁명 때 '혁명군'이란 신문이 발간되던 집, 이런 유서 깊은 집들이 지하에서 발굴된 고대의 유적들처럼 잔해들과 침묵으로 둘려 있었다.

다음으로는 강변에 가까이 있는 침입하는 독군을 향해 최초의 공격을 개시한 '5월 9일광장' 그리고 바로 그 옆인 '빠블로브 군조관(дом павлова)'을 구경하였다. 과히 크지 않은 벽돌 4층의 건물인데 독군에게 포위되어 우군과 연락이 끊어진 곳에서 하졸 8명을 다리고 빠블로브(Якоб Павлов) 군조가 57일간 싸워 네 명은 죽고 군조와 다른 네 명은 지하도를 뚫고 생환하여 영웅 빠블로브는 지금 독일 점령지에 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공동주택으로 쓰고 있으나 이 집을 기념키 위해 먼저 나선 것이 '첼까쓰운동'의 주인공 알렉산드라 첼까쓰 여사로서 가장 맹렬한 사격을 받어 허물어진 한편을 서툴은 솜씨로나마 고쳐 쌓어서 집 면목을 유지시킨 것이 이 여사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여자들도 벽돌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에서 '첼까쓰운동'이 일어난 것이니 이 집에서 영웅 두 사람이 난 것이였다.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용케 무너지지 않었고 벽돌 한 장 한 장 성한 장이 별로 없다. 창마다 문마다에는 더욱 사격이 집중되어 창틀, 문틀은 모두 새로 고쳐 쌓었다.

여기서부터 10리나 되게 공장지대만을 지나보는데, 공장이 무너지고 불타고 한 것은 철근의 난마(亂麻) 무데기요, 큰 빌딩만큼한 석유탱크, 까쓰탱크가 무수한데 모두 불에 녹아 바람 빠진 고무주머니가 되어 어떤 것은 아주 주저앉어버렸다. 이런 공장지대엔 큰 건물들이 벌써 많이 새로 서있었다. 우리는 공장구경은 오다 하기로 하고 그 길로 '마마애브' 구릉으로 왔다.

이 언덕은 스딸린그라드의 유일한 고지로서 여기를 차지하고 못하는 것이 서로 승패의 운명을 결하는 것이 되였다. 주위 10리는 넘을까 고도도 시가에서 4, 50척 될지한 정도다. 나무도 별로 없다. 잔숲이 군데군데 있으나 그 뒤에 자란 것들일 것이다. 큰 전차 한 대가 보인다. 이것은 기념으로 남겨둔 것으로 우군 응원전차대가 가장 깊이 들어왔던 선봉전차였다 한다. 탄피는 걸음마다 밟히고 가장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은 여기 저기 해변에 조개껍질 나부끼듯 하는 임자 없는 쇠 전투모들이다. 산적했던 전차, 트럭, 대포, 비행기, 기관총 등의 잔해를 기계로 긁어가고 철모, 혹은 벌써 자루가 썩고 녹투성이가 된 총신들은 다시 부스러기로 떨어진 것이라 한다. 뒹구는 철모는 탄환에 구멍 뚤린 것도 많었다. 독군 시체만 14만이 넘었다니 이 임자 없는 전투모인들 얼마나 많었으랴! 장비 좋은 독군으로도 가장 중장비와 중포(重砲), 중전차(重戰車)로 들어왔던 곳이 여기라 한다. 이 언덕에서만 독군의 시체 14만 7천, 포로가 9만 1천, 그 중에 장관만 25명, 장교 2천5백, 대포 4천, 자동차 6만, 비행기 3천여대 였다 한다. 적시(敵屍)만 14만7천! 얼마나 많은 피였을까! 여기 저기 피 묻은 군복자락 썩는 것이 그냥 나부낀다. 푹신푹신한이 붉으레한 황사언덕, 걸음마다 아직도 신바닥에 피가 배일 것 같다. 더욱 언덕 밑에서 독군포로들이 수도공사로 땅을 파고 있는 것과 건너편 마을 가까이서 꽝 소리가 나더니 검은 연기가, 영화에서 보던 폭탄처럼 올려솟는 것이 실감을 준다. 전적을 설명해주던 장교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지뢰가 가끔 저렇게 터지기 때문에 길 이외에는 들어서기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태진, 『소련기행ㆍ농토ㆍ먼지』, 깊은샘, 2001, 112~114쪽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