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9, 2016

한국전쟁 시기 공산군의 F-86 운용?


정보문서들을 읽다 보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 중에는 나중에 사실로 드러난 것도 많고, 단순한 착오나 역정보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지요. 아래에서 인용하는 미공군 정보보고의 진위는 제가 아직 확인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꽤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소개를 해 봅니다.


적군이 F-86 기종을 운용할 가능성

(1952년) 9월 26일 15시 30분경 정주(定州) 남서쪽 5마일 지점 상공 22,000피트에서 두 대의 F-86이 적대적인 F-86 한대로 부터 사격을 받았다. 피해는 없었다. 
이 두대의 F-86은 같은 날 15시 35분경 순천(順川) 서쪽 5마일 지점 상공 28,000피트에서 다시 적대적인 F-86 한대로 부터 공격을 받았다. 아군을 공격한 항공기에는 뚜렷한 표식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조직에 속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아군의 F-86한대가 오른쪽 주익에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 두 차례의 공격 모두 같은 F-86이 한 것으로 추정된다. 

9월 29일 13시 45분경 신의주 동쪽 30마일 지점에서 본대와 떨어져 비행 중이던 한 대의 F-86은 후방에서 접근 중이던 두 대의 F-86과 합류하려다가 선두에 있던 F-86이 기종을 알 수 없는 항공기에 사격을 가하는 것을 목격했다. 같은 시각 아군의 F-86한대는 두 대의 F-86으로 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아군의 손실은 없었다. 

극동공군사령부 정보참모부는 과거에도 적대적인 F-86으로 부터 공격받았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초의 보고는 1952년 2월 3일에 있었다. 

공군본부 정보참모부의 평가: 9월 18일에 전투 지역에 있던 한대의 T-6과, 같은 지역에 있던 네 대의 F-80은 공격을 가하지 않는 한 대의 F-84와 조우했다. 직후 검증을 거친 결과 그 시각 해당 장소에는 아군의 F-84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같은날 아군의 F-86 한대가 구성(龜城) 상공에서 두 대의 F-80을 목격했다. 직후 제5공군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그 시각 해당 장소에는 아군의 F-80이 없었다. 그러므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 입증하거나 이 정보가 잘못됐다는 점을 밝힐 수 없는 이상, 공산군 측이 소수의 F-80, F-84, F-86을 재생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난 2년간의 전쟁으로 적군의 점령지역에 많은 수의 해당 기종이 추락했기 때문에, 아군의 기종을 재생하는데 충분한 부품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Directorate of Intelligence USAF, Daily Korean Resume”(1952. 10. 1), Record Group 341: Records of Headquarters U.S. Air Force (Air Staff), 1934 - 2004, Records of the Office of the Director of Intelligence, Office of the Deputy Chief of Staff, Operations 1942~56. p.2,


Friday, September 23, 2016

제가 번역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그동안 블로그에는 제가 번역한 책 이야기를 거의 안했던 것 같습니다만, 이번에는 책 광고를 좀 해야 겠습니다^^



이번에 번역한 책은 유명하지만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그 『전쟁론』의 해설서입니다. 저자인 베아트리체 호이저 박사는 영어권에서 활동하는 독일인 연구자입니다. 책은 영어판이 먼저 나왔고 독일어 증보개정판은 몇년 뒤에 나왔습니다. 한국어판은 독일어 증보개정판을 옮긴 것 입니다.

번역 자체는 꽤 일찍 시작했는데 개론서라 그런지 다루는 범위가 넓어서 번역하는 동안 애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영어로 된 책은 몇권 번역했습니다만 독일어 책은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이 책 보다 늦게 시작한 책이 먼저 나오는 참사(?) 까지 있었지요. 제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총력전, 국민동원을 다룬 부분은 비교적 쉽게 번역한 편이지만 뒤로 가면서 냉전기 핵전략 등 평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내용이 나오고는 꽤 애를먹었습니다. 역시 개설서를 쓰거나 번역하려면 많은 공부가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번역을 하면서 『전격전의 전설』로 유명한 진중근 중령님 등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일조각의 편집자 분께서도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영어판과 독일어판의 몇몇 오류를 한국어판에서 바로잡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거의 대부분 일조각 편집부의 꼼꼼한 교정 덕분이었습니다.

다만 번역을 꾸준히 하면서도 실력은 제자리 걸음인 번역자가 문제겠습니다(;;;;;) 꽤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직역투의 문장이 여전히 보이고, 명사를 옮기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꽤 많은 개념, 용어가 등장하는데 몇가지는 일본식 용어가 그대로 사용됐습니다. 감수자 분들의 지적이 있었습니다만 역자의 역량 부족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감수자분들이 지적해 주신 사항이 많은데 역자주와 같은 부분은 모두 반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면의 제한, 역자의 역량 부족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서 자체는 매우 재미있는 좋은 개설서 입니다. 이제 심판의 날이 왔으니 독자분들의 심판을 달게 받겠습니다.

Wednesday, September 21, 2016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에 실린 벌지전투 당시 미 3, 4기갑사단의 전투 데이터



며칠전에 올린 스티븐 잘로가의 저작에 관한 글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표 두 개를 올립니다.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에서 분석에 활용한 벌지전투 시기의 교전데이터 입니다. 지난번 글들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 보고서는 오직 미군의 전투 보고서만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서 교차검증이라곤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이야기 하지요.


BRL798에 실린 벌지전투 당시 미 3기갑사단의 교전 기록은 사례 32부터 54까지 입니다. 제가 참고한 Merriam press에서 발행한 판본에는 34, 36, 38, 45, 50등 총 5건의 사례가 누락돼 있습니다. 추후 원본을 확인할 기회가 있으면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겠습니다. 아래의 표는 해당 교전사례를 일련번호 순으로 정리한 것 입니다. 미군이 교전상대를 판터로 파악한 사례는 노란색으로 표시합니다.


표1. BRL798에 사용된 벌지전투 당시 미 3기갑사단의 교전 데이터

미군 장비 숫자
미군 장비 손실
독일군 장비 숫자
독일군 장비 손실
공격 진영
격파거리
(야드)
미군 장비 형식
독일군 장비 형식
32a
6
2
4
0
독일
2000
M4
TD
판터
32b
5
5
4
0
?
1400
M4
판터
33
?
4
2
0
미국
300
M4
대전차포
35
3
2
1
1
독일
600
M4
판터
37
3
2
2
2
독일
75~400
M4
M5
바주카
판터
39
7
4
2
1
미국
650
M4
M5
대전차포
지뢰
40
16
2
2
0
미국
650
M5
대전차포
(88)
41
14
0
3
3
미국
40?
M5
바주카
4호×1
대전차포×1
42
14
4
1
0
미국
1000
M4
M5
?
43
12
6
7
0
미국
300~1800
M4
M5
전차
대전차포
박격포
44
10
10
7
0
미국
300~1200
M4
M5
판터
대전차포
46
?
0
?
2
미국
500
M4
M5
TD
바주카
자주포×1
4호×1
47
11
2
3
0
미국
800
M4×7
TD×4
대전차포
48
11
3
3+
0
미국
1300~2500
M4×7
TD×4
대전차포
49
?
3
?
0
미국
1500~1700
?
대전차포
51
16
2
2
2
미국
400
M4
M5
자주포(88)
52
8
1
2
2
독일
200
M4
TD
판터
지뢰
53a
6
4
?
0
미국
1000
M4
대전차포
53b
9
9
3
0
미국
200
M5
판터
53c
1
1
3
0
미국
200
M4
판터
53d
1
1
?
0
미국
1200
M4
대전차포
53e
4
3
?
0
미국
1700~2000
M4
판터
54
32
9
3
1
미국
1200
M4
대전차포
[표 출처: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1954. 6), Appendix; Data on World War II tank Engagements: Involving the U.S. Third and Fourth Armored Divisions, (Merriam press, 2012), pp.33~37.]
※ 37번 사례에서 격파된 미군 차종은 M4 1대, M5 1대로 모두 75야드 거리에서 판터에게 격파됐다. 격파된 판터 중 1대는 바주카포에 의해 75야드 거리에서 격파됐으며, 다른 한대는 400야드 거리에서 M4에게 격파됐다.
※ 43번 사례에서 두 대는 300야드에서, 두 대는 1000야드에서, 두 대는 1800야드에서 격파됐다.




다음은 벌지전투 당시 미 4기갑사단의 전투 데이터입니다. 전반적으로 3기갑사단 보다 양호한 전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좀 수상한 사례가 섞여 있습니다. 4기갑사단의 교전 사례는 89~98까지입니다.

표2. BRL798에 사용된 벌지전투 당시 미 4기갑사단의 교전 데이터

미군 장비 숫자
미군 장비 손실
독일군 장비 숫자
독일군 장비 손실
공격 진영
격파거리
(야드)
미군 장비 형식
독일군 장비 형식
89
10
1
?
1
미국
200
M4
M5
판터
90
5
4
2
0
미국
200
M5
자주포
91
16
4
21
0
미국
200
M4
판터
92
15
4
3
3
미국
400미만
M4
판터×2
자주포×1
바주카포
93
5
1
0
0
미국
?
M4
?
94
14
3
1
1
미국
1400
M4
대전차포
95
5
1
1
0
미국
1500
M4
대전차포
96
30
3
1
1
미국
900
M4
자주포
97
4
0
1
1
미국
1300
M4
판터
98a
6
0
5
5
독일
1000
M4
판터
98b
6
0
6
6
독일
100
M4
판터
[표 출처: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1954. 6), Appendix; Data on World War II tank Engagements: Involving the U.S. Third and Fourth Armored Divisions, (Merriam press, 2012), pp.33~37.]
※ 91번 사례에서 원래 손실은 11대이나 이 중 7대는 뒤에 회수했기 때문에 손실을 4대로 계산한 것임. 실제 독일군 장비는 판터가 아니라 1개 중대의 돌격포였음.
※ 92번 사례의 비고란에는 최소 5대 이상의 셔먼이 격파됐다고 적혀있음.(1소대 3대, 2소대 1대, 3소대 숫자 미상)
※ 96번 사례에서는 P-47의 공습도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 자주포의 격파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음.


91, 92번 사례와 같이 이 보고서에는 미군 손실을 축소해서 집계한 흔적이 있습니다. 보고서 작성자가 왜 그런 방식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91번 사례(Chaumont전투)는 독일군의 전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전후 독일군 포로 심문과 노획 문서를 바탕으로 편찬된 미육군 공간사에서는 Chaumont 방어에 투입된 독일군이 제5공수사단 14공수연대의 1개 중대와 11돌격포여단에서 파견된 돌격포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손실은 보병 65명 사상, 셔먼 11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주)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잘로가가 독일군의 손실 집계 방식을 비판할 때 '완전 손실만 집계해 실제 손실보다 축소되어 있다'는 주장을 한다는 것 입니다. 어째서 잘로가는 미국 기록에 그런 사례가 있을때는 같은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집니다.  


주) Hugh M. Cole, THE ARDENNES:  BATTLE OF THE BULGE, (1965, Center of Military History) pp.528~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