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29, 2008

취향테스트

라피에사쥬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아주 재미있어 보여서 한 번 해 봤습니다. 제 결과는 대충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거 제법 그럴싸 하군요. 꽤 많은 부분에서 맞는다는 느낌입니다.

간결하고 냉정한 인공지능 로봇 취향


메마르고 독창적인. 당신은 전통적인 엔지니어의 취향입니다.


당신은 인과관계가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입니다. "그래서? 그게 왜 그렇게 됐는데?"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죠. 마치 if-then 구문이 골수 깊이 박힌 엔지니어와 같다고나 할까요. 질서정연하지 않은, 장황한 감정에 의존하는 순정 만화 영화 소설은 당신이 좀처럼 가까이 하기가 힘들 겁니다.



"공각 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
임무 달성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 군인.
쿠사나기 소령의 철두철미함과 냉혹한 결단력은 당신 취향의 이상형입니다.

당신은 너무 흔하고 뻔한 것에 쉽게 싫증내는 비주류 지향입니다. 매일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는 멜로 드라마, 매일 똑같이 성형한 연예인들이 나오는 TV 광고, 매일 똑같은 멜로디와 창법의 발라드 노래, 당신에겐 모두 짜증나는 것들입니다. 도대체 이런 똑같은 것들을 지겨워 하지도 않고 즐겨 보는 사람들은 제정신일까 궁금합니다.

현실 세계에선 '까다로운' 비주류일지 모르지만, 인터넷 시대에 당신 같은 부류는 주류가 될 수 있습니다. 지루하고 개념없는 대중에 반항적인, 현실에 불만 가득한 사람끼리 모여 영향력을 발휘하고, 무개념 인간들을 조롱할 수 있을테니까요.


좋아하는 것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특이한 것이 좋습니다. 딱 부러지게 예를 들자면 SF 소설이죠. 물론 SF 소설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SF 소설의 상당수는 장황하게 길기만 하니까요. 취향이 상당히 특이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대중적인 영화 소설 음악에 끌리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보면, 특별히 당신의 취향에 시금석 같은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은 뭔가 새롭고 독창적일 것, 그러나 당신이 아는 상식과 논리에 벗어나지 않을 것. 이 정도 조건이면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근접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광고 정도면 괜찮을까요?




저주하는 것
비논리, 비이성, 군중심리, 이유도 묻지 않는 따라쟁이들, 오빠부대. 당신이 저주하는 것들입니다. 물론 당신 취향만 특별히 저주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말이죠.


사실 당신은 특별히 어떤 취향을 혐오하거나 멸시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주도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남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남들이 뭘 하던 당신은 기본적으로 무관심한 편입니다. 문제는 남들이 관심없는 취향을 당신에게 들이밀 때죠. 상호존중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당신은 그저 평안히 세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Tuesday, February 26, 2008

시인 패튼

They will disband their armies,
When this great strife is won,
And trust again to pacifists,
To guard for them their home.

They will return to futileness,
As quickly as before,
Though Trust and History vainly shout,
There is No End to War


패튼(George S. Patton, Jr.)이 1917년 경에 지었다는 시

무인이 갖춰야 할 품성에는 시니컬한 태도도 있는 듯 싶습니다.

나쁜 일과 더 나쁜 일,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일

먼저,

나쁜 일은

새 대통령이 너무 못생겼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더 나쁜 일은

그 얼굴을 5년이나 봐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앞으로 이보다 더 못생긴 대통령은 없을테니

다들 긍정적으로 지내보는건 어떻겠습니까?

Saturday, February 23, 2008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갑전력에 대한 80년대의 서방측 시각 - 찰머스와 잘로가의 International Security 논쟁

얼마 전 친구와 채팅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 : 거 참. 소련이 망하고 어지간한 자료들은 널리 공개됐는데 어째 한국에는 러시아 무기에 환상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을꼬?

어린양 : 그건 무슨 소리냐?

친구 : 뭐,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의 T-72가 M1A1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이유가 이라크에 수출된건 소련제 ‘내수정품’ 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는 물건이기 때문이라는 애들이 있더라고. 뭐 소련제 ‘내수정품’은 무안단물이라도 바르는 모양이지?
뭐 소련의 기갑웨이브는 나토를 한큐에 발라버리느니 나토는 공군 없으면 쓸려버린다느니 80년대 내내 나토가 소련군의 기갑에 벌벌 떨었다는 등 유치한 헛소리가 21세기에도 통용 된다는게 정말 놀랍지 않냐?

어린양 : 그것 참;;;;;;

저는 무기체계, 특히 2차대전 이후의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완전 깡통이지만 저런 소문이 돌아 다닌다는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80년대라면 나토측에 레오파르트 2도 있고 M1A1도 있는데 왜 나토군의 기갑전력이 바르샤바 조약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망상이 냉전이 끝난지 20년이 다 돼 가는 이 시점의 한국에는 퍼져있을까???
소련의 철통 같은 보안 유지 덕분에 냉전기간 동안 소련제 무기에 대한 과대평가는 흔한 일이었고 또 이런 과대평가에는 예산도 더 타먹자는 군대의 엄살도 제법 작용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는 것 입니다. 소련제 전차들이 아주 못 써먹을 쓰레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오파르트 2나 M1A1 같은 서방의 제 3세대 전차와 비교한다면 성능적으로 열세인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냉전시기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에 대해서는 폴 케네디가 아주 간단히 핵심을 잘 짚은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중부 전선에서는 나토군이 대규모의 소련군 기갑 및 자동차 소총사단들에 비해 크게 열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바르샤바 동맹군의 우세는 안심할 정도가 못된다. 그것은 혼잡한 북부 독일의 지형에서는 신속하고 공격적인 기동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렵고 또한 소련의 주력 전차 5만 2000대 중 다수는 도로소통이나 방해하기에 알맞은 낡은 T-54형 전차들이기 때문이다. 나토가 군수품, 연료, 대체용 무기 등의 충분한 예비 비축량만 보유한다면 소련군의 재래식 공격을 격퇴하는데 1950년대 보다도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설 것이 확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일주, 전남석, 황건 공역,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한국경제신문사, 1988, 588쪽.

어쨌든 1980년대 후반 까지는 소련의 신형전차들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21세기 한국의 일부 밀리매냐(????) 들의 망상처럼 서방측이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에 덜덜덜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찰머스(Malcolm Chalmers), 운터제어(Lutz Unterseher)와 잘로가(Steven J. Zaloga) 간에 있었던 논쟁이 좋은 예가 될 것 입니다.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1988년 International Security 13권 1호에 Is There a Tank Gap?: Comparing NATO and Warsaw Pact Tank Fleet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에는 잘로가가 역시 같은 잡지 13권 4호에 The Tank Gap Data Flap라는 제목으로 반대되는 논지의 글을 투고 했습니다. 이 토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찰머스와 운터제어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전차 전력의 숫적인 격차는 크지 않다.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서방보다 2.6배 더 많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인 소련군은 그 기갑전력의 상당수를 극동지역에 돌리고 있다. 서부전역에 국한할 경우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은 불과 1.6배의 우세를 보일 뿐이며 특히 주 전장인 중부 전선에서는 겨우 1.4배에 불과하다. 중부전선의 나토군은 12,8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바르샤바 조약군은 18,100대 정도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나토가 보유한 전차들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그것에 비해 기술적으로 월등히 우수하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전차들은 서방 전차의 탄도계산 컴퓨터, 열영상장치, 그리고 명중률 높은 전차포와 같은 것을 갖추지 못 하고 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보유한 전차 중 상당수를 이루는 T-55, T-62는 M-48, M-60 계열이나 레오파르트 1 수준의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신형 전차인 T-64, T-72, T-80은 125mm 포를 탑재하고 있지만 그 명중률이 극도로 낮다. 또한 소련제 전차의 기계적 신뢰성은 매우 낮다. 소련의 신형 전차들은 방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반응장갑을 장착하고 있지만 이것은 서방의 120mm포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며 또 소련 전차의 중량을 증가시켜 기동성에 제약을 가한다.
셋째, 나토의 전차전력은 전체적인 규모에서는 바르샤바 동맹군 보다 적지만 신형 전차의 비중을 놓고 보면 바르샤바 동맹군의 우위는 줄어든다. 나토는 1981년부터 1987년 사이에 7,200대의 제 3세대 전차를 도입했는데 이것은 1981년 나토가 보유한 전체 전차전력의 27%에 해당된다. 같은 기간 소련은 16,700대의 신형 전차를 도입했는데 이 경우 양 측의 숫적 격차는 더욱 줄어든다.
넷째,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동원능력은 나토에 비해 제한적이다. 카테고리 1으로 분류되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사단 중 소련군 사단과 동독군 6개 사단을 제외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군 사단은 최소 동원 개시 10일 이전에는 전선에 투입하기 어렵다. 카테고리 2 사단은 동원 개시 후 30일은 지나야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정보에 따르면 바르샤바 조약군의 동원 능력은 매우 형편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개시될 경우 전쟁 첫날에는 양측의 전차 전력의 비율이 1 대 1.42 지만 동원 개시 40일이 지나면 그 비율은 1 대 1.24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나토군은 신형 전차의 성능면에서 바르샤바 조약군을 압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 2세대 전차의 경우도 지속적인 성능 개선을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켰다. 반면 바르샤바 조약군의 T-55나 T-62는 이렇다 할 성능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련은 경제적 능력의 제약 때문에 T-72와 T-80의 추가 생산에 주력하고 있을 뿐 구식 전차의 성능 개선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잘로가가 투고한 반박문은 1989년 봄에 나온 13권 4호에 실렸습니다.

잘로가는 먼저 나토의 신형 전차들이 원거리 교전과 야간 전투에서 소련의 신형전차에 대해월등히 우수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첫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바르사뱌 조약군의 전차 전력에 대해서 IISS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의 추정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신형전차의 생산량은 찰머스와 운터제어가 추측한 것 보다 더 많다. 1981년부터 1987년 사이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국의 신형 전차(T-72 이상) 생산량은 2만대 이상이다. 또 미국이 같은 기간 동안 대량의 M1과 M1A1을 생산했지만 그 반대로 유럽에 배치된 M60A3들이 퇴역하기 때문에 중부유럽에 배치된 나토군의 기갑전력은 증가했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분석의 대상을 전차에 한정하고 있다. 바르샤바 조약군이 보유한 대량의 보병전투차를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치명적 오류이다.
셋째, 바르샤바 조약군, 특히 소련군은 중부전선에 신형전차를 배치하고 구형 전차는 대부분 퇴역시켰다. 극히 일부의 소련군 부대만이 T-62를 장비하고 있다. 후방에 돌려진 대량의 구형 전차는 나토군이 신형전차를 대규모로 소모한 뒤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체코의 T-55 개량이나 소련의 T-62 개량 등 바르샤바 조약군의 구형 전차 성능개선에 대해 무시하고 있다.
넷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술수준에 대해 지나치게 저평가 하고 있다. 비록 소련제 전차들은 나토군의 전차들에 비해 야간 장비가 뒤쳐져 있긴 하지만 30% 이상의 전차는 수동형 영상증폭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형 T-72와 T-80의 방어력에 대해서도 저평가 하고 있다. 또 나토군 전차들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원거리 전투 능력은 중부 전선의 지형에서는 그 우위를 잃는다. 서독과 동독 국경 지대의 55% 이상의 지역은 실제 교전거리가 500m 수준이다. 1500m 이상의 교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은 17%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역시 같은호에 반박문을 투고했습니다. 이들은 잘로가의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첫째, 우리의 추정치가 부정확하다는 잘로가의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우리는 추정치이기 때문에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전제하고 논지를 전개했다. 하지만 잘로가 또한 IISS의 추정치가 부정확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둘째, 잘로가는 보병전투차와 자주포 등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토가 보유한 공격헬리콥터와 대전차 미사일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셋째, 잘로가가 지적한 바르샤바 조약군의 구형 전차 성능 개량에 대해서는 우리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동독의 예를 보더라도 소련의 동맹국들은 구형장비의 도태와 성능개선이 극히 저조함을 알 수 있다. 잘로가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의 T-55 개량사업이나 소련군의 T-62 개량사업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런 구형전차들이 성능개선을 통해 화력개선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넷째, 잘로가는 주 전장이 될 중부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원거리 교전이 가능한 지형이 매우 적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소련제 전차의 낮은 기계적 신뢰성과 제한된 기동성은 지형의 활용도를 극히 제약할 것이다.
다섯째, 잘로가는 우리의 글이 소련전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저평가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면 소련전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지나친 과대평가가 문제가 됐던 경우가 더 많았다. 처음 T-80에 대한 정보가 입수됐을 때 미국 국방부는 T-80이 기존의 전차에 비해 화력과 생존성이 강화됐을 것으로 추측했고 그 당시 나온 T-80의 상상도는 마치 서방의 제 3세대 전차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실제 T-80은 T-72의 강화형에 불과한 수준이다.

양 측의 견해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양측 모두 서방의 제 3세대 전차가 T-72와 T-80에 비해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로가는 바르사뱌 조약군의 기갑전력이 숫적 우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라고 전제하고 있을 뿐이지요. 소련제 ‘내수정품’에 대해 벌벌벌 떨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Friday, February 22, 2008

윈스턴 처칠의 덜 알려진 저작 - The Unknown War

서산돼지님이 쓰신 윈스턴 처칠의 문장력에 대한 글을 읽고 생각이 나서 적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윈스턴 처칠이 '훌륭한 정치가'였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만 처칠이 ‘좋은 글쟁이’ 였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일단 그는 정치인 치고는 상당히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또 그 저작들 중에는 읽을만한 책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처칠의 저작 중에는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저작도 있습니다.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The Unknown War'입니다.

The Unknown War는 처칠의 1차대전 회고록 이라고 할 수 있는 The World Crisis의 외전(?)격인 저작으로 1931년에 출간됐습니다.(제가 읽은 것은 1932년에 나온 미국판 입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1차대전 당시 동부전선에 대해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처칠은 책의 서두에서 To our faithful allies and comrades in the Russian Imperial Army라고 써서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서방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동부전선의 실상을 조명하려는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뭐, 유감스럽게도 The Eastern Front 1914~1917의 저자인 Norman Stone이 1970년대에 지적한 대로 처칠의 저서에도 불구하고 1차대전 당시의 동부전선은 무관심의 대상입니다. 이런 무관심은 여전한지 2006년에 Schöningh 출판사에서 나온 1차대전 당시 동부전선에 대한 책의 제목은 Die vergessene Front(잊혀진 전선)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Norman Stone은 처칠의 저작에 대해서 호평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저작이기도 하겠지만 처칠의 문장은 영어권에서는 좋게 평가 받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책의 대부분이 1914~1915년의 기간에 할애되어 있다는 점 입니다. 이 책의 본문은 381쪽인데 이 중 357쪽까지가 브루실로프 공세 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1916년부터 1918년까지는 30쪽도 채 안되는 것 입니다. 도데체 왜 이런 난감한 구성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1914~1915년 전역에 대한 묘사는 Stone의 평가대로 꽤 훌륭한 것 같습니다.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함락시킬 때 까지는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물론 그 후 브루실로프 공세 이후로는 휙휙 날아갑니다만.

이 책은 1950년대에 한국의 대학들에 원조된 미국방부의 수많은 기증 도서 중 한 권 이다 보니 아직 학생이신 분들은 재학 중인 학교의 도서관을 잘 찾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Norman Stone의 동부전선에 대한 저작도 꽤 호평을 받은 물건입니다. Niall Ferguson이 ‘Without question one of the classics of post-war historical scholarship’이라고 평했더군요. 이 책은 가격도 싸고 구하기도 쉬우니 1차대전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Thursday, February 21, 2008

sonnet님의 이공계위기론에 대한 글을 읽고

sonnet님의 이공계위기론에 대한 글을 읽으니 이번 명박 정부에서 어떤 부처의 장관 내정자로 임명된 K교수님이 생각납니다. 이 양반은 이 어린양이 나름대로 암흑시대를 겪을 무렵 업무 때문에 뵌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분은 근본적으로 이공계 전공자들은 열정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능력을 사회 전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야 한다고 강조하시더군요. 예를 들어 중국과 같이 테크노크라트 관료가 되어 공직에 폭넓게 진출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학부 단계에서 전공과 관련된 교육 외에도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쪽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재미있었던 점은 이 분이 말씀하시는 중간 중간 이공계가 법대나 상경계에 비해 사회적으로 낮은 처우를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더라는 것입니다. 즉 이공계는 사회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학문인데 법대나 상경계는 그렇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위나 처우가 더 높다는 것 이었습니다.(물론 이 중에는 공직 쪽으로의 진출도 포함되었고요.) 그 이후에도 관련 분야의 교수님을 몇 분 더 뵐 수 있었는데 이런 불만은 이공계에 계시는 꽤 많은 분들이 느끼시는 것 같더군요.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K교수님은 평소에 생각하시던 대로 공직에 진출하는게 확실 합니다. 이공계인의 폭넓은 사회진출(특히 공직)을 말씀하시던 분이니 만큼 공직자로서 어떤 길을 걷게 될 지 궁금합니다.(한겨레에서는 이 양반의 역량에 대해 좀 회의적으로 보더군요)

Wednesday, February 20, 2008

친위대 사관학교 중국음식점이 되다 - 다하우 수용소와 바드 퇼츠 친위대 사관학교

여행 둘째 날은 다하우(Dachau), 그리고 바드 퇼츠(Bad Tölz)를 가기로 정했습니다. 그 때문에 원래 갈 계획이었던 잉골슈타트(Ingolstadt)의 바이에른 육군 박물관(Bayerisches Armeemuseum)은 다음 기회로 미뤘습니다. 그래도 좀 아쉬워서 잉골슈타트를 잠깐 가 봤습니다.

잉골슈타트 역 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야간이라 바이에른 육군 박물관은 못 찾았습니다. 비도 조금 내리고 있어서 길 찾기가 어렵더군요.

잉골슈타트 역은 매우 작지만 따뜻한데다 구내서점도 괜찮았습니다. 이곳 구내서점은 무려 오전 5시 30분에 여는데다 쓸만한 책이 더러 있더군요.

잉골슈타트 역의 대합실에는 도시의 발전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진이 흔들린게 유감입니다. 빨리 좋은 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야 겠습니다.


잉골슈타트 역에서 책을 한 권 산 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하우 수용소로 향했습니다. 뮌헨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나치 시대의 유적이니 만큼 구경을 하고 가야 겠더군요.


정문 안 쪽에는 다하우 수용소를 해방시킨 미육군 제 20기갑사단의 공적을 기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다하우 수용소는 유명한 사적지인지라 단체 관람객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한가한 분위기더군요.




다하우 수용소에서 희생된 유명인사 중 한 명인 Vojtech Preissig의 데드 마스크 입니다.


전쟁 당시 다하우 수용소의 축소모형입니다.


이 곳은 다하우 수용소의 화장터 입니다. 괴이하게도 수용소의 다른 건물들에 비해 훨씬 평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하우 수용소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걸어서 갔습니다. 다하우 기차역까지 대략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중간에 제 3제국 시절 친위대가 연병장으로 쓰던 곳의 터가 있더군요.


그리고 조금 더 가니 케네디 광장이라는 곳도 있더군요.


그리고 다하우 역에 도착했습니다. 걸어다니면서 게으름을 피운 탓에 뮌헨으로 가는 기차를 놓쳤습니다.;;;;;


바드 퇼츠로 가려면 뮌헨으로 돌아가서 다시 기차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합니다. 사진 오른쪽 끝에 있는 기차가 바드 퇼츠로 가는 녀석입니다.


바드 퇼츠 역입니다. 다른건 다 좋은데 유별나게 플랫폼이 지저분한 역이었습니다. 쓰레기가 정말 많이 떨어져 있더군요.;;;;


바드 퇼츠의 시내는 꽤 예쁘장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정말 장난감 집 같더군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바드 퇼츠에 온 목적은 예쁜 집들을 구경하는게 아니고 친위대 사관학교(SS-Junkerschule)를 답사하러 온 것 이었습니다.;;;;; 이런 정신상태하고는.

그런데 관광상품 파는 곳에 가서 물어보니 그런 곳이 있다는게 금시초문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뭐, 젊은 아가씨들이니 그런 우중충한 역사에 대해 모르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관광상품 파는 곳 옆에 있는 바드 퇼츠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박물관 매표소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공짜 지도와 함께 위치를 잘 알려 줬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들어오니 박물관 구경도 하고 싶어지더군요. 바드 퇼츠 박물관은 전형적인 민속박물관이었습니다. 생활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군요. 그런데 이 박물관의 마루 바닥은 너무 삐걱 거려서 걸어다니기가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바로 친위대 사관학교 터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뭐가 씌였는지 지도를 잘못 보고 얼마 안되는 거리를 한참 돌아갔습니다.

친위대 사관학교는 바드 퇼츠 주민들을 위한 스포츠 센터와 상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스포츠 센터에는 태권도장도 있더군요.



우수 인종 중의 엘리트들을 교육시키던 장소에서 열등인종의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니 이거야 말로 나치들대한 최고의 조롱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태권도장 간판을 바라보며 한참 즐거웠습니다.

친위대 사관학교의 정문입니다. 처음 만들어 질 당시에는 아치가 있는 구조였다는데 전쟁이 끝난 뒤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건물 내로 들어가 보니 태권도장은 약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병장 터에는 아예 중국음식점이 들어섰더군요. 지옥에 있을(?) 히믈러가 약이 오를것 같습니다.

Monday, February 18, 2008

독빠의 전통은 유구하다

독일은 그때만 하여도 훌륭하드군요. 입으로 핥은것 같아요. 산이니 사람이나 집이나 길이나 모다 기름칠한 것 같이 반지르하고 윤택(潤澤)이 나요. 그러나 노서아에 들어서니 천양지판(天壤之判)이드군요. 빈민이 많고 길이 좁고 똑 원시시대 같습니다.

윤치호, 니콜라이 2세 즉위식에 참석할 무렵의 러시아를 회상하며. 조광 1937년 5월호 38쪽

독빠의 전통은 참으로 유구합니다.;;;;;

Sunday, February 17, 2008

남대문 화재 사건에 대한 잡담

어제 모처에서 문화재 담당 공무원으로 있는 후배를 만났습니다.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히 장안의 화제인 남대문 방화사건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아무래도 식사하러 모인 사람들의 성향상 시니컬한 방향으로 대화가 흐르더군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어린양 : 남대문이 불에 타고 나니 전 국민이 문화재 애호가가 됐구만.

후배A : 낄낄. 아마 풍납토성 발굴 조사 때문에 아파트 공사가 늦어진다고 발광하던 새끼들도 숭례문 전소에 가슴 아파 할걸요.

어린양 : 어떤 교수 찾아가서 항의했다는 그 재개발업자들 말이냐. 아마 그럴것 같은데. 낄낄

후배A : 아니, 왜 한 예전에 경당지구에 불법으로 난입해서 굴삭기로 박살냈었잖아요.

어린양 : 아. 맞아 그랬었지.(잠시 마음속으로 반성)

후배B : 푸. 동래성 해자 소식은 들었냐? 거긴 지하철 뚫잖아.

어린양 : 하여간. 이벤트만 터지면 집단 발광하는 건 도데체 뭐람. 이럴 때 발광하지 말고 평소에 경복궁에 쓰레기나 함부로 버리지 말라지.

후배B : 아직 대한민국은 후진국이라.

어린양 : 생각하는 수준이 여전히 꿀꿀이죽 시절이라니깐.

이제 남대문 관련 소식들도 점차 잠잠해지는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한 두어달 지나면 새까맣게 잊혀지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속에서 문화재 파괴를 계속하겠지요.

Saturday, February 16, 2008

세 달 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세 달 만에 극장에 갔습니다.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극장에 가는 편이니 한참 만에 간 셈 입니다.

오늘은 두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한 편은 시사회 부터 호평이 줄을 이었던 '추격자'고 다른 한 편은 뭔가 요상한 제목으로 개봉한 '명장'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추격자는 평론가들의 호평이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수작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라고 하니 감독이라는 양반은 내공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비슷하게 정신세계가 기묘한 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룬 '세븐데이즈'는 도입부가 지나치게 요란해서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추격자'는 약간의 추격 장면을 제외하면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점이 신선했습니다.(물론 느리다고 해서 지루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미 스포일러가 충분히 돌고 있으니 흥미를 잃은 분들도 더러 계실 듯 한데 이야기는 평범(?) 하지만 그걸 끌고 나가는 방식이 대단히 훌륭합니다.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진행이 정신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말 그대로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진행 방식과 함께 인물 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연인 김윤석은 이런 이야기에 제법 어울리는 인간쓰레기 부류를 연기하고 있는데 이 인물은 사건이 진행되면서 인간성이 개선됩니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잘못 묘사하면 굉장히 유치해져서 영화를 말아먹을 공산이 큰데 다행히도 그런 참사를 피했을 뿐 아니라 상당히 설득력 있게 묘사됐습니다. 연쇄살인범의 묘사도 좋았지만 주연배우 만큼 인상 깊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 잔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사지절단 피칠갑 영화가 될 수 있었지만 그랬다면 역효과가 났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말이 매우 우울한데 허접한 해피엔딩 보다는 바람직 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명장'은 제목이 다소 요상해 지긴 했습니다만 좋은 영화였습니다. '영웅' 이래로 허우대만 그럴싸한 중국제 '대작' 영화들이 계속해서 신경질을 나게 했었는데 명장은 다행히도 물량을 잘 활용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의형제의 의리에 목숨을 거는 바른생활 마초들이라 정은 가지 않더군요. 이연걸은 '영웅'에서 대의를 위한답시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니 '명장'에서는 대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도륙하고 의형제까지 죽입니다. 중국인들이 대작영화에서 '대의'를 뺀다면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Friday, February 15, 2008

여자를 군대에 집어넣을 경우의 심각한 문제점(농담)

그냥 농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에 대한 의무병역제가 지속되는한 온라인상의 혈투는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블로그질을 하다 보면 이 떡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낚고 있더군요.

뭐, 사실 대한민국 육군이 터무니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사람을 부려먹고 있으니 병역 피해자(?)인 남성들이 정신나간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입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여자를 군대에 보내는 것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순전히 농담따먹기 입니다만 한 사회에 남성 100명 여성 100명이 있을 경우 전쟁으로 남성 90명이 죽더라도 여성의 인구가 격감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나는데 비교적 짧은 기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여성 90명이 죽어버린다면 남성 100명이 멀쩡하더라도 그 사회는 끝장입니다.;;;;;;;;

고로 여성을 군대에 집어넣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Thursday, February 14, 2008

뮌헨

뮌헨에 도착한 첫날 밤은 유일하게 미리 예약해 둔 방에서 잤습니다. 물론 이 이후의 여행은 마음 내키는 대로 일정을 바꾸다 보니 예약이란 걸 할 필요가 없었지요. 예약한 호텔은 Hotel Dolomit라는 호텔로 역에서 가깝고 가격도 그럭 저럭 나쁘지 않은 편 인 것 같아서 예약했습니다. 물론 한인 민박이 호텔보다는 압도적으로 싼게 사실인데 어차피 당분간 돌아다니게 되면 호텔에서 잘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아 일반 호텔로 정했습니다.

첫 날 묵은 방은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방 안에 뭔가 하나 있더군요. 성냥인가? 싶었는데...

열어 보니 바느질 도구입니다. 아이구 이런 알뜰한 독일인들을 보았나...

다음날 아침 시내로 나가는 길에 잠깐 뮌헨역을 지나갔습니다. 참 밋밋하게 생긴게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역 입니다.


시 중심가의 관광지는 낮에 보기로 하고 일단은 펠드헤른할레(Feldherrnhalle)로 직행했습니다.

가는 길에 뮌헨 오페라하우스가 있더군요.


드디어 펠드헤른할레에 도착했습니다.


펠드헤른할레는 바이에른의 국왕이었던 거대 건축물狂 루드비히 제 1세(Ludwig I. 1786-1868)가 뮌헨을 공사판으로 만들던 무렵 건설한 건축물로 바이에른 육군이 배출한 걸출한 용장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청년 히틀러가 1차대전 선전포고 소식을 들으며 환호하던 바로 그 곳 입니다.

참 유명한 사진이지요. 펠드헤른할레 앞에서 환호하는 청년 히틀러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히틀러가 뮌헨 폭동을 일으켰을 때 경찰의 저지를 받고 풍비박산난 곳이기도 합니다. 총통에게는 꽤 의미있는 장소이지요.

펠드헤른할레에 있는 틸리 원수의 동상입니다.


펠드헤른할레를 지나 역시 루드비히 1세가 만든 개선문으로 향했습니다. 개선문으로 가는 길에 친숙한 이름의 표지판이 하나 있더군요.


드디어 바이에른 육군의 개선문 입니다.



개선문을 구경한 뒤에는 쓸만한 서점을 찾아 다녔습니다. 걸어다닌 거리에 비하면 성과는 아주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 이런 재미있는게 나타나서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물건... 재미있게 생기긴 했습니다.

결국 서점 수색도 허탕을 친데다 약간의 빗발도 날려서 시내 구경을 위해 부리나케 시청광장으로 향했습니다.

구시가지의 축소모형이 광장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은 뮌헨의 명소 Frauenkirche로 들어갔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야 교회에 가면 지겹게 보는 물건이지만 멋은 있더군요. 교회는 참 볼만했는데 사진을 거의다 말아먹어서 올릴 만한게 별로 없습니다;;;;

이건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루드비히의 관이라는군요.


교회 구경을 마치고 마리엔플라츠로 나왔습니다.

역시 마리엔플라츠에서는 마리아의 동상(Mariensaule)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동상의 네 귀퉁이에 조각된 아기천사들의 동상도 인상적이더군요.

정말 역동적(!!!) 입니다.

에. 그리고 역시 관광명소인 뮌헨의 시청건물...


멋지긴 한데 뭔가 번잡해 보이는 건물입니다.




마리엔플라츠를 구경한 뒤 일반적인 관광객의 패턴에 따라 시장으로 가서 소세지를 사먹었습니다. 먹고나니 뭔가 허무한 느낌이 밀려오더군요. 시차적응이 안된 탓인가...


잠시 시내를 더 돌아다닌 뒤 뮌헨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날 뮌헨의 박물관 같은 곳은 귀국하는 길에 구경하기로 정했습니다. 물론 여행 후반기에 오스트리아에서 죽치느라 결국은 못 갔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