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싱크탱크인 Institut Action Resilience에서 올해 8월 말에 How many tanks left for Russia now? - Study of Russian Army's tanks stockpile since the beginning of Ukraine's invasion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수많은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특히 러시아군 기갑부대의 형편없는 작전 능력과 막대한 피해, 그리고 현황에 관해서도 많은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이 보고서는 우크라이나군의 공세가 시작된 이후 발표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끕니다. Institut Action Resilience에서는 9월에 이 보고서의 부분 개정판을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러시아의 예비 기갑차량 비축기지의 현황과 여기에 비축된 전차의 숫자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련이 붕괴한 뒤 러시아가 인계받은 예비 비축기지들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군은 9개의 예비 전차 비축기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다수는 중부군관구와 동부군관구에 있습니다. 중부군관구에는 제349, 1311, 2456, 2544, 6018기지가, 동부군관구에는 제111, 769, 1295기지가 있습니다. 또한 다른 예비 비축기지에도 소량의 기갑차량이 비축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가까운 서부군관구에는 제22기지 한 개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군은 전차를 정비하기 위해 8개의 정비공장을 운영 중 이라고 합니다.(제61, 71, 72, 81, 103, 144, 163, 560공장)
2022년 전쟁 발발 이전에 러시아군이 비축한 전차는 최대 7,000대 가량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이 중에서 야외에 보관된 차량이 5,538대입니다. 야외에 보관된 차량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형식이 확인된 예비차량 중 T-72가 1,945대이고 T-62는 1,239대라고 봅니다. 예비 차량 중 T-72와 T-62의 수량이 큰 차이가 안나는게 인상적입니다. 물론 실내에 보관된 차량과 형식을 알 수 없는 차량도 있으므로 이걸 액면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만 이번 전쟁에서 T-62 같은 고물들이 대량으로 튀어나온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 러시아군의 비축 차량들을 분석해 보면 거의 대부분이 1980년 이전에 생산된 차량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T-72 중 1,100대가 우랄, 또는 A형이라고 하는 군요. B형은 330대 정도라고 평가합니다. T-90 같은 최신 차량은 극소수가 서부군관구의 제22기지에만 보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이 보고서의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은 전쟁 발발 이후 비축차량의 감소를 분석한 부분입니다. 가장 많은 차량이 줄어들은 기지는 T-62등의 구식 차량을 보관하던 동부군관구의 제769기지입니다. 전쟁 발발 직전 1,117대의 차량을 야외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전쟁 발발 이후인 2023년 4월에는 630대 까지 감소했다고 평가합니다. 역시 T-62와 T-54/55, 소수의 T-80을 보관하고 있던 동부군관구의 제111기지는 전쟁 발발직전 890대에서 전쟁 발발이후 690대로 감소했습니다. 러시아군이 전쟁 초기에 대량의 전차를 상실해 이른 시기 부터 T-54/55와 T-62를 동원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T-72를 보관하고 있던 기지들도 마찬가지로 비축차량들이 줄어든 징후가 뚜렷하다고 평가합니다.
러시아군이 비축 차량 재생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예비기지에서 바로 가져온 전차를 재생하는데는 일반적으로 30일에서 최대 60일 가량이 걸린다고 합니다. 예비기지에 보관된 차량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입니다. 전쟁 이전의 통계를 보면 제103공장은 3년 동안 92대의 T-72B1을 재생했다고 합니다. 전쟁 발발 이후의 재생 실적은 더 좋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103공장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개월에 평균 8대 가량의 전차를 재생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61공장은 2016년 부터 2019년 까지 약 120대의 T-80BV를 재생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평가하면 이 공장도 현재 제103공장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정부의 목표에 미달한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여기에 예산 문제도 있습니다. T-72 한대를 창정비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3천만 루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T-72B를 T-72B3 사양으로 개량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120만 달러, T-90을 T-90M 사양으로 개량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280만 달러 정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전쟁 발발 이후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전차를 대량으로 생산/개량하는건 큰 부담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2022년 우랄바곤자보드의 신규 전차 생산을 10대, 구형전차 개량을 174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옴스크트란스마쉬는 구형전차 31대를 개량했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같은 기간 제61, 103, 163공장 세곳을 합쳐 90대에서 최대 180대의 창정비를 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서방의 경제제재와 러시아의 노동력 문제가 있으니 러시아의 생산 역량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보는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전차 생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생산 능력은 다소 증가할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2024~2025년에는 러시아가 연간 최대 390대의 신형 전차를 신규생산/개량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여기에 창정비를 한 구식 전차까지 포함하면 상당한 규모가 될 겁니다.
러시아가 전차를 확보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현재 러시아군의 전차 보유량은 전쟁 발발 당시 보다 근소하게 증가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22년 가을 이후 러시아군이 수세로 전환하면서 전차 손실이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2023년 8월 말 러시아군이 보유한 전차 중 작전가능한 차량을 3,044대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직전 2,987대의 작전가능한 전차가 있었으므로 아주 근소하게 증가한 셈 입니다. 물론 이중 상당수가 구식인 T-54/55 및 T-62이지만 일단 구식 전차라도 있으면 쓸 수 있습니다.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지요.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3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러시아군의 전차 손실이 2022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계속되는 경우 입니다. 이 경우에는 2025년 1/4분기에 러시아군의 가용 전차 전력이 400~600대 수준으로 감소할 거라고 예측합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성공할 경우입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러시아군의 기갑전력이 급속히 감소합니다. 2025년 1/4분기가 되면 러시아군의 가용 전차 전력이 250대 가량으로 급감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경우에는 방어작전 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은 지지부진하고 러시아군 기갑전력도 작년 처럼 큰 피해를 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이건 우크라이나에게 비관적인 시나리오입니다. 이 경우 러시아군은 현재의 생산역량으로도 2024년 쯤 되면 상당한 규모의 기갑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거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전선의 교착상태를 보면 세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제법 있어 보입니다. 만약 러시아의 전차 생산/재생 역량이 이 보고서에서 예측하는 것 이상으로 높다면 더 희망이 없을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걸 바라는 입장에서 썩 기분이 좋지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