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3일 일요일

러시아의 전차 생산에 볼베어링 수급이 끼치는 영향

지난 4월 19일 포브스에 아주 재미있는 기사가 한 편 올라왔습니다. 


What’s Perfectly Round, Made Of Metal, And Keeping Russia From Replacing the 2,000 Tanks It’s Lost In Ukraine?


이 기사의 요점은 러시아의 정밀기계공업 수준이 너무 낮아서 전차 생산 및 개량에 필요한 볼베어링 수급이 어렵다는 겁니다. 러시아군이 T-62나 T-55 같은 고철을 끌고나오는 이유도 이런 고물들은 저급한 볼베어링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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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잃은 2,000대의 전차를 보충하는데 필요한 강철로 만들어진 완벽한 구체는 무엇인가?

데이비드 액스(David Axe)


러시아는 현대적인 광학부품이 부족해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쟁에서 잃어버린 수천대의 전차를 대체할 신형 T-72B3M, T-90M 전차의 신규생산과 구형 T-72, T-80, T-90을 정비하는데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차 생산 기업들이 부족한건 광학부품 뿐이 아니다. 러시아는 볼베어링도 심하게 부족하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산업계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화하기 전 까지는 볼베어링을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했었다.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에서 발표한 최근의 연구를 보면 독립 연구자들이 이 문제를 수개월 전 부터 언급해왔다. 전차를 비롯한 현대적인 기갑차량들은 볼베어링이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러시아는 신형 기갑차량을 꾸준히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볼베어링이 없다.

특히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 또 러시아 경제 전체가 철도 수송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열차 또한 대량의 볼베어링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선택을 해야 한다. 전차를 더 생산하는 대신 철도 교통 체계가 붕괴하도록 두는 것이다. 아니면 철도 교통 체계를 유지하면서 전차 생산 속도를 늦추는 방법도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분석가 맥스 버그만(Max Bergmann), 마리아 스네고바야(Maria Snegovaya), 티나 돌바야(Tina Dolbaia), 닉 펜튼(Nick Fenton), 새무얼 벤데트(Samuel Bendett)는 이 문제를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최고급 베어링을 서구 기업에서 수입해 왔다. 예를들어 2020년에 러시아는 4억1900만 달러 상당의 볼베어링을 수입했는데 이 중 55퍼센트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독일은 2020년 한해 동안 러시아가 수입한 볼베어링의 17%를 공급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북부, 동부, 남부로 진격해 들어가 전쟁이 확대되고 양측에서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나라들은 러시아의 전략 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볼베어링 수출은 최우선 순위에 있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분석가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서구의 베어링 제조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러시아에 대한 판매를 중단했다."

볼베어링 수출 중단의 영향은 아주 빠르게 나타났다. 중단 조치를 취한지 몇 주 되지도 않아서 러시아의 신형 전차 생산과 구형 전차 정비를 담당하는 스베르들롭스크의 우랄바곤자보드와 시베리아의 옴스크트란스마쉬는 일시적으로 생산을 중단했다.

얼마 있지 않아 생산이 재개되기는 했지만 러시아 전차 제조업의 장기적 전망은 매우 나쁘다. 신형전차인 T-72B3M과 T-90M은 신형 광학장비가 필요하지만 이것들은 대개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프랑스 정부가 제재를 강화하자 러시아 전차생산기업들은 신형 전차의 소스나U 디지털 조준기에 필요한 부품을 얻을 수 없었다.

러시아 정부는 소스나U 조준기 부족분을 러시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아날로그 방식의 1PN96MT-02 조준기로 교체했다. 이 조준기는 소스나U 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최소한 러시아 전차병들이 우크라이나 전차병들과 교전을 할 수는 있게 했다.

그런데 볼베어링 문제는 러시아 정부가 해결하기에는 더 어려울 수 있다. 소스나U 조준기를  1PN96MT-02 조준기로 교체한 이후에도 우랄바곤자보드와 옴스크트란스마쉬는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노동자들이 전차를 거의 생산하거나 정비한 상태에서 부품이 떨어져 버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14개월간 악전고투를 하면서 잃어버린 2,000대의 전차를 대체하는데 애를 먹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러시아군은 전선의 전차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1개월에 최소 150대의 신규 생산, 또는 재생한 전차가 필요하다.

물론 전쟁이 장기화 되기 시작했을때 러시아는 소량의 볼베어링 재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철도  교통도 비축된 볼베어링을 필요로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충병력과 장비를 실어나르면서 러시아가 보유한 13,000대의 기관차들은 더 많은 볼베어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전차를 적게 생산할 것이냐 아니면 러시아 전역의 교통망을 마비시킬 것이냐는 선택지 중에서 현명한 선택을 했다. 전차 생산을 줄인 것이다.

우랄바곤자보드와 옴스크트란스마쉬의 활동을 신중하게 분석한 결과 이 두 공장은 매달 몇십대 정도의 신형 전차를 출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형 전차란 새로 생산한 T-72B3M이나 T-90M 또는 기술자들이 장기간 보관되어 있던 것을 가져와 재생한 T-72, T-80, T-90 등이다.

그러니 러시아가 '기술적인 면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이래 보관 상태로 썩어가고 있던 1960년대의 골동품 T-62나 1950년대의 골동품 T-55를 다시 끌고나온 이유를 알 수 있다.

구식 전차들은 최신 부품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고 볼베어링도 적게 들어간다. 이런 구식전차들은 장비 상태가 좋은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정면 대결을 하기에는 답이 없지만 최소한 우크라이나군의 발을 묶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어떤 러시아 당국자는 볼랴 미디어에 이렇게 말했다. "이런 면에서 T-55는 자원을 절약하고 시간을 벌 수 있는 수단입니다."

수백대의 T-62와 T-55가 일시적으로 러시아군의 뚫린 구멍을 메우는 동안 러시아의 산업계는 다른 볼베어링 수급처를 찾아 신형 전차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가장 확실한 대체처는 중국과 말레이시아이다. 하지만 중국제와 말레이시아제 볼베어링은 미국제나 유럽제 베어링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 CSIS의 분석팀이 지적한 것 처럼 질이 떨어지면 치러야 할 댓가가 있다.

"러시아는 서구로 부터 수입하던 베어링의 대체품을 찾아서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군수 분야의 생산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품으로 들여온 베어링은 대부분 질이 떨어지는 것들이라 신뢰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가 품질 좋은 베어링을 질이 낮은 베어링으로 교체해서 전차 생산을 늘리는데 성공할 수는 있다.  또한 현대적인 디지털광학장비를 질이 떨어지는 아날로그광학장비로 교체했던 것 처럼 말이다. 이렇게 만든 전차를 최신형 전차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이렇게 만든 물건들도 껍데기만 보면  T-72B3M이나 T-90M 같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부를 뜯어보면 성능도 떨어지고 내구도도 낮은 전차일 것이다.

2023년 4월 9일 일요일

1945년 6월 노르웨이 주둔 독일 전차부대의 항복 및 무장해제 장면


유튜브에서 1945년 6월 노르웨이 주둔 독일군이 항복하고 무장을 해제하는 장면을 기록한 영상을 봤습니다. 이 영상에 나오는 부대는 노르베겐 기갑여단(Panzer-Brigade Norwegen) 예하 부대입니다. 여러 회사에서 나온 3호전차 모형을 만들어 보고 있던 차에 전쟁 말기에 사용된 3호전차가 여러대 나오는 영상을 보니 재미가 있네요. 그런데 1945년인데도 이 영상에 나온 3호전차들은 모두 궤도의 가이드혼에 구멍이 뚫린 형식의 궤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궤도는 소모품인데 전쟁 중반기에 생산된 궤도가 이때까지도 사용되는걸 보면 재미있습니다. 제가 높게 평가하는 아카데미 3호전차에 들어있는 궤도는 전쟁 말기의 3호전차에도 쓰는게 곤란하겠군요.물론 저는 고증을 무시하고 그냥 조립합니다만.^^


 

2023년 4월 2일 일요일

우크라이나군의 소모에 대해 우려하는 분석

 Global Politics and Strategy 65-2에 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여름~가을 전역을 분석한 IISS의 가디(Franz-Stefan Gady)Center for Naval Analyses의 코프만(Michael Kofman)이 공동으로 집필한 글이 실렸습니다.

 

Ukraine’s Strategy of Attrition

 

가디와 코프만은 전쟁 발발 이래 우크라이나는 소모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군에 대해 결정적인 타격은 입히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가 큰 성공을 거둔 하르키우와 헤르손 지구 반격에 대해서도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현 상태로는 장기적인 소모전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예측을 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상당히 부담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방식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은 전술 단위에서 전쟁을 수행하는데 주로 소모전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기동전에서 작전적 성과를 거두려면 먼저 광범위한 소모가 있어야 한다. 이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재래식 전쟁은 소모, 기동, 재편성의 양상을 띄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원한 하이마스와 같은 서방의 첨단 무기와 정보-감시-정찰 자산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은 지속되는 소모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정보 지원을 해 준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하이마스를 사용해 장거리 정밀 타격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이마스가 지원되기 전에는) 우크라이나군은 이런 장거리 타격 능력이 없었다. 하미마스는 러시아군의 포병 전력 우위를 감소시켜서 우크라이나군이 공세 작전을 감행하는데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우크라이나군은 기동전 이론에 입각해 러시아군의 지휘통제망과 보급소와 같은 핵심적인 지원 체계를 타격해 러시아군의 물리적, 심리적 응집력과 사기를 깎아 내리려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동과 정밀 타격 보다는 소모와 대규모 화력 투사를 해야 이를 달성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 포병은 종종 단독으로 작전을 했으며, 우크라이나군이 병력 밀집도가 높은 준비된 방어선에 공세작전을 전개했을 때의 결과는 복합적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공세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전통적인 화력 투사와 반복적인 지상 공격을 결합했다. 러시아군의 지휘통제 체제와 탄약 보급 체계, 교통선에 대한 장거리 정밀타격은 우크라이나군의 기동전 수행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지 못한 걸로 파악된다. 장기간의 소모전을 통해 기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기동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병력과 물자, 탄약 보급을 대폭 확충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군이 단기간에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군의 하르키우와 헤르손 공세는 우크라이나군의 강점 뿐만 아니라 한계점도 보여주었다.

Franz-Stefan Gady and Michael Kofman, “Ukraine’s Strategy of Attrition”, Global Politics and Strategy 65-2(2032), p.8

 

하르키우 반격 작전에 대해서는 미국이 제공한 정밀 타격 무기의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으며 러시아군이 초기 패배의 충격에서 상당히 신속하게 회복했다고 평가합니다.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 공세작전에 최소 6개 여단을 투입했고 여기에는 제92기계화여단과 제3전차여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이 지원한 16대의 하이마스로 서방의 정보 지원을 받아 3개월에 걸쳐 정밀 타격을 실시했으며 러시아군 전선 후방의 탄약 집적소, 지휘소, 군수보급 허브, 철도 교차점, 교량 등 400여개의 목표를 타격하면서 공세를 준비했다.

많은 분석가들이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 반격에서 성공을 거둔 핵심 요소가 하이마스라고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다른 전선으로 병력을 이동시킨 점을 감안하면 하이마스로 하르키우주의 러시아군 보급 체계를 타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할 만한 근거가 희박하다. 비록 최소한 러시아군의 지휘소 세곳이 하이마스 타격에 당하기는 했으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하르키우 방면에 하이마스가 배치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던 걸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군수보급 허브를 재배치하고 지휘소를 강화하고 기만책을 강화하여 하이마스 포격의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킨 걸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예비대 운용을 늦추고 방해하거나, 다른 곳으로 예비대를 돌리도록 하거나 보급선을 차단하는 결정적인 종심전투를 수행하지 못한 걸로 판단된다. 러시아군의 주요 문제는 후방 지역이 타격 받는게 아니라 보병 부족, 예비대 부족, 소모된 부대를 순환시킬 능력 부족 등 최전방의 병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데 있었다. 소모와 우크라이나군의 기만 때문에 러시아군이 하르키우 방면 증원과 헤르손 방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를 받은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포병 소요는 한달에 90,000발 정도였다. 여름 기간 내내 이 정도 규모가 유지되었다. 즉 야전포병의 화력에 대한 의존이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겨울 기간 중 러시아군의 포병 사격이 크게 감소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은 전투의 강도가 약해지고 방어해야 할 전선이 단축되면서 포병 사격 소요가 감소한데 있을 수도 있다. 하이마스로 인해서 러시아군이 탄약 집적소를 하이마스 사거리 밖으로 이동시키고 보급 체계를 재조직 하도록 강요당한 결과 러시아의 군수지원 효율이 감소하고 포병 사격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하이마스가 실전에 투입된 직후인 여름 전역 기간의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러시아군이 포병 탄약 사용에 제약을 겪은 더 중요한 요인은 가용한 탄약의 재고와 탄약 생산 능력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수 있다.

수개월에 걸쳐 격렬한 포병 대결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소모의 핵심적인 요소는 양측 모두 막대한 사상자를 감당하면서 반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돈바스에서 전개된 여름 전역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소모되었으며 그 결과 러시아군은 하르키우주에서 병력을 빼서 다른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재배치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우크라이나군은 이지움 방면에 국한된 공세를 개시하기 전 6개월에 걸친 소모로 인한 이점과 넓은 전선에 배치된 러시아군의 구조적 결핍에 따른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군의 하르키우 작전은 정밀 유도 탄약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속적인 소모 등의 요인으로 러시아군이 방어하는 면적에 비해 적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이 기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러시아군은 7월부터 8월에 걸쳐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 방면에 집결하는걸 관측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부군집단 예하의 우크라이나에 배치한 가장 강력한 지상군 부대들을 남부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바흐무트 방면에서 싸우던 부대와 중부군집단 소속의 부대들은 증원군을 차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하르키우 방면에는 심각하게 소모되어 응집력이 결여된, 효과적으로 방어를 할 수 없는 부대들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르키우 공세 초기 단계에서는 러시아군의 지휘 통제 체계가 와해되는 징후가 있었다. 러시아군 수백명이 생포되고 수많은 장비가 노획당했다. 하지만 러시아군 지휘부가 총체적으로 마비되고 와해되지는 않았다. 초반에 패배를 당하자 서부군집단 사령관은 중부군집단 사령관을 지냈던 인물로 교체됐다. 새로운 서부군집단 사령관은 러시아군에 대한 확고한 통제를 회복하는 임무를 맡았다. 새로운 사령관은 처음에는 오스킬 강을 따라, 다음에는 크라스나 강을 따라 새로운 임시 방어선을 구축했으며 러시아군은 여러 차례 지연전을 수행했다. 러시아군이 오스킬 강을 건너 감행한 역습은 실패했다. 하지만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고 조율된 역습을 감행할 수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하르키우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지휘 통제 체계가 전면적으로 붕괴되었다고 볼 수 는 없다.

Gady and Kofman, ibid., pp.10~12.

 

헤르손 공세에 대한 평가는 조금 더 부정적입니다. 일단 우크라이나군이 장기간의 소모전을 전개한 결과 큰 피해를 입은 반면 러시아군 주력을 섬멸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합니다. 이 지적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하르키우 전선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군의 헤르손 공세도 준비단계에서 소모전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하르키우와 달리 헤르손 전선의 소모전은 매우 어렵게 진행됐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전선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러시아군은 드니프로 강 때문에 보급지원에 어려움이 있었다. 드니프로강 우안은 크름 반도에서 시작되는 러시아군의 보급선과 두개의 자동차 도로와 두개의 철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헤르손의 러시아군은 인훌레츠 강 때문에 분단되어 있었다. 즉 공세가 시작되면 헤르손 전선은 더 고립될 수 있었다. 수개월간 하이마스로 타격을 당해 러시아군의 보급로는 카호우카 댐을 지나는 교량 한 개와 선박 운행으로 제한되었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방면에 상당한 숫자의 여단을 집중했으며 야포와 하이마스, 드론과 고정익 항공기로 지원했다. 러시아군은 역습을 가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우크라이나군은 주도권을 쥐고 공세를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르키우 전선과 달리 헤르손 방면은 러시아군의 병력 밀집도가 높았고 여기에는 남부군 집단 및 동부군 집단, 정예 부대인 공수군 등의 정규군 부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집된 예비역과 새로 동원된 병력이 증원되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군은 여러 겹의 러시아군 방어선에 직면했다. 양측은 야포와 로켓포, 공격용 드론을 이용해 힘겨운 소모전을 전개할 수 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북부, 중부, 남부 등 3개 축선에서 진격하려 했다. 세 방향에서 진격해 드니프로강 우안에 배치된 러시아군을 교란하고 여러 방면에서 포위하여 궁극적으로는 소모된 러시아군이 강을 건너 퇴각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였다.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 전선과 유사하게 2022년 봄 이래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국지적인 공격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선의 상황은 유동적이었고 많은 마을이 여러 차례에 걸쳐 주인이 바뀌었다. 우크라이나군은 공세를 개시하기 전 두 달에 걸쳐 포병, 그리고 보다 중요한 하이마스 체계를 이용해 러시아군의 보급 중심지와 교량, 중요한 기간시설을 타격했다. 8월 말 개시된 최초의 공세는 금방 돈좌되었고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휘관을 교체한 뒤 10월 초 공새를 재개해 드니프로 강을 따라 진출하여 돌출부를 형성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인 이 돌파구가 확대되는걸 막으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차단 작전과 장거리 정밀 타격에도 불구하고 방어 포격을 지속할 수 있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러시아군 지휘관은 방어 전략으로 전환하고 병력을 보존하려고 했다. 이렇게 되자 우크라이나군은 유리하게 소모전을 전개하면서 러시아군이 어쩔 수 없이 철수하도록 강요했다. 러시아군은 수주간에 걸쳐 질서정연하게 철수했으며 운용 가능한 장비들도 함께 가져갔다. 서방의 분석가들은 장거리 정밀 타격으로 러시아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을 거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장거리 정밀타격으로는 헤르손에 배치된 30,000~40,000명 규모의 러시아군이 철수하는걸 방해할 수 없었으며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붕괴시키지도 못했다. 러시아군은 상대적으로 큰 손실 없이 철수했다.

Gady and Kofman, ibid., pp.12~13.

 

2023년 하계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어느 정도 공격 능력을 회복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2022년 추계 전역에서 상당한 작전적 성공을 거두긴 했으나 피해도 무시못할 수준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지난 겨울 기간에 우크라이나는 추가로 전투력을 확보하고 러시아군의 국지적인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크레민나 외곽에서 점진적으로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202211월부터 20232월에 걸쳐 러시아군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전선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해야 했으며, 기후도 악화되었고 러시아군이 바흐무트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전쟁 지속 능력을 파괴하기 위해 기간 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원을 돌려야 했다. 중포병과 방공포병 탄약과 같은 물자 부족도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노력을 저해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2023년 내내 지속될 걸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는 탄약을 대량으로 소모하고 있는데 탄약 공급과 생산 능력은 안정적이지 못하다. 우크라이나군은 하루에 2,000발에서 4,000발 가량의 포병 탄약을 소모하고 있는데 이것은 외국의 생산능력과 서방 국가들의 비축량을 웃도는 수준이다. 또한 전차포와 야포의 포신과 같은 각종 무기체계가 많은 사격량으로 인해 소모되면서 갈수록 문제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으로부터 원조받은 350문의 야포 중 3분의 1 가량이 운용 불가 상태에 있다. 서방 국가들이 생산량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중기적으로는 부족한 수량을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미국의 비축분에서 충당해야 한다.

총동원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의 인력은 전반적으로 충분한 편이며 대규모의 예비 전력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훈련을 잘 받고 숙련된 인력이 사망하고 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군의 최정예 부대는 소묘율이 높아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지역방위군은 제외하고, 동원편성한 예비 부대를 포함해 대략 40개의 기동여단을 보유했다고 추정된다. 미국에서 추산한 사상자 규모와 지금까지 알려진 우크라이나군의 장비 손실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군의 기동 여단 중 상당한 숫자가 소진되어 전쟁 중에 재편성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우크라이나군 사령관 잘루즈니 장군과 또 다른 우크라이나 장군은 지난 9월 이런 글을 썼다. “전략적 상황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심할 바 없이 2023년 전반에 걸쳐 연속적인 반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반격을 쉬지 않고 감행한다면 더 이상적일 것이다.” 잘루즈니 장군은 우크라이나군의 의도와 구상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대규모의 공세작전을 수행하려면 1개 혹은 그 이상의 작전(작전-전략적) 집단이 필요하며 작전집단은 각각 10개에서 20개 사이의 제병협동여단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모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에 현저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어느 한 쪽도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한 대규모의 제병협동 기동전을 감행할 수 없어 보인다. 핵심적인 문제는 우크라이나군이 얼마나 빨리 공세에 필요한 잠재력을 회복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에 대한 지속적인 지상 공세를 시작할 수 있느냐이다. 현재 편성된 기동여단들의 전투 효율성을 회복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는 지표 중 하나는 지난 수개월간 양측의 주요 전술 단위는 대대나 여단이 아니라 중대 규모였다는 점이다. 한 서방 분석가는 러시아측의 자료에 근거해 20226월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군의 중대전술집단은 20~25대의 궤도식 보병전투차량과 10~12대의 전차, 6~12문의 자주포, 최대 6대의 다연장 로켓포, 250~450명의 병력으로 편제된다고 추정했다. 사상자 추정치와 장비 손실 추정치를 감안했을 때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중대전술집단의 규모는 더 작아졌을 걸로 보인다.

Gady and Kofman, ibid., pp.14~15.

 

결론 부분에서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 많은 원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크라이나가 봄 기간 중 여러가지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한편으로는 또다른 대공세를 위해 부대를 증편하면서 동시에 러시아군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려 한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수행 전략을 분석해 보면 세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1,000km에 달하는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더 많이 소모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선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압박을 가해 러시아군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군이 충분히 약화되면 기동전 방식의 공세 작전(제병협동 작전으로 수행하는게 이상적이다.)을 시작하는 것이다.

서방의 원조로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크게 개선됐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추가로 작전적 수준의 돌파를 달성하거나 전략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화력 우세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인지는 확실치 않다. 전황 분석이 축적될수록 장기간의 대치상태가 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 국방부와 다른 동맹국의 국방부는 제병협동훈련 과정을 더 확대하고 더 다양하고 많은 정밀유도무기를 지원해야 한다. 제병협동작전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면 우크라이나군은 보병전투차량과 전차, 자주포와 방공무기체계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효과적으로 통합 운용하여 전장에서 질적 우세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제병협동 훈련과 정밀 타격능력을 질과 양적으로 더 강화한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군이 소모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Gady and Kofman, ibid., pp.17~18.

 

저는 개인적으로 작년 우크라이나군의 성과를 매우 높게 평가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매우 암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글 또한 많은 분석 중 하나일 뿐이고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실태가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올해 상반기 중에 공세 작전이 시작될 수 있을지, 그리고 공세작전이 시작된다면 어떻게 진행 될 지 지켜봐야 겠지요.

2023년 4월 1일 토요일

아브라함 라비노니치 저, 『욤 키푸르 전쟁』

 2022년에 간행된 아브라함 라비노니치의 『욤 키푸르 전쟁』 한국어판을 읽었습니다. 한국어판 번역을 담당한 분이 이승훈씨 인데 이 분은 일조각에서 간행한 『미드웨이 해전』을 번역하신 바 있습니다.

 플래닛미디어에서 간행한 한국어판은 2017년에 나온 개정판을 모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2017년에 나온 개정판은 여러가지의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총참모부에서 간행한 욤키푸르전쟁 공간사를 참고하여 주요 국면에서 이스라엘군 수뇌부가 내린 결정과 그 영향을 잘 서술한 점이 강점입니다. 2017년 판에 추가된 흥미로운 내용들은 이렇습니다.

- 나세르의 사위를 포함한 이집트인 정보원들이 이스라엘의 반격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 전쟁 전 이스라엘군 특수부대가 이집트에 침투해 이집트군의 통신을 감청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했으나 정작 개전 직전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치명적 실책을 저질렀다.

- 국방장관 모세 다얀이 아랍측을 위협하기 위해 핵을 사용할 구상도 했으나 메이어 총리가 거부했다.

- 개전 5일차에는 전황이 너무 불리해서 자신감을 상실한 이스라엘군 총참모장이 정부에 휴전협상을 요청할 정도였다.

 2017년 판에는 이렇게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 중에서 나세르의 사위가 이스라엘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는 넷플릭스 영화로도 만들어 졌지요. 

 논픽션으로서 구성이 매우 탄탄합니다. 이스라엘 정부와 군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정부의 정책적 결정, 군 수뇌부와 야전 부대 지휘관들의 결정, 일선의 장교와 사병들의 경험을 생동감 있게 보여줍니다. 원서를 읽다 보면 간혹 일선 전술부대들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버거울 때가 있는데 한국어판은 충실한 역자주를 통해 이런 아쉬운 점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 또한 이스라엘의 시각으로 욤 키푸르 전쟁을 보여주는 저작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관점의 책은 지금까지 매우 많이 나왔습니다. 이 책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이스라엘의 입장을 매우 상세히 보여주는데 비해 여전히 이집트와 시리아 등 아랍쪽의 움직임에 대한 서술은 소략합니다. 이집트군 일선 병사의 입장을 보여주는 인물로 마흐무드 나데의 일화가 실려있긴 합니다만 이 이야기도 나데의 일기장을 이스라엘군이 노획했기 때문에 알려진 것 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영어권도 비슷한 편 입니다. 다니 아셔의 저작 The Egyptian Strategy for the Yom Kippur War 같은게 있긴 하지만 이것 조차 이스라엘 쪽에서 쓴 책이죠.

 매우 훌륭한 논픽션이고 한국어판의 번역도 좋습니다. 번역을 할 때 역자주를 최소화 해서 가독성을 높였는데, 이건 매우 좋은 방식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