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1일 토요일

[번역글] 우크라이나 전쟁 : 전차 문제에 대한 인도 육군의 침묵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졸전을 하면서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한 국가들도 많은 고민을 하는 듯 합니다. 특히 전쟁 초 러시아군이 전차를 대량으로 상실하자 또다시 러시아 전차의 성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도 육군은 러시아제 전차를 대량으로 운용하고 있어서 인도 내에서도 러시아 전차의 성능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는 듯 합니다. 2022년 12월 21일에 공개된 카르티크 보마칸티의 글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 이 글의 필자는 러시아 전차의 성능 보다는 러시아군의 작전 수립 및 작전 수행 능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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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 전차 문제에 대한 인도 육군의 침묵


카르티크 보마칸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차의 역할에 대한 분석과 논평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전차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는 러시아 기갑 부대의 막대한 손실이 전차라는 무기체계가 한계에 봉착했는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 지상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약 1,400대의 전차를 상실한 걸로 추정된다. 이 추정치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전차 손실 중 상당수는 부분적인 파손, 승무원의 전차 유기, 우크라이나군의 노획으로 인한 것이다. 러시아 기갑부대의 졸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도 육군은 러시아군의 전차 손실에 대해서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또한 인도 육군의 편제에 전차가 적합한지 또는 부적합한지를 분석한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단 하나의 전쟁만 가지고 전투 효율성을 추론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인도의 한 분석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 기갑부대의 형편없는 작전 수행을 보고는 인도 육군 기계화 전력의 90%에 해당하는 전차를 감축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인도육군 북부사령부의 사령관을 지냈던 데핀데르 호다(Deepinder Hooda) 중장도 이 의견을 지지했다. 심지어 그는 이런 발언까지 했다. "히말라야 산맥의 좁은 고갯길에서는 대전차 미사일 발사기 하나로도 전차 연대 1개의 발을 묶어놓을 수 있다." 전차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아예 전차의 시대는 끝장이 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인도 육군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놓지 않는데에도 책임이 있다. 인도 육군이 고려해야 할 문제는 두가지다. 현재 러시아 기갑부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T-72 전차와 T-90 전차의 기계적 성능과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전차를 전술적-작전적으로 형편없이 운용한 것이 러시아 기갑부대의 성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는가이다. 드론과 재블린 같은 새로운 대전차 무기가 등장하기는 했어도 전차와 대전차무기의 경쟁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사실 전차도 경계 및 정찰 목적으로 드론을 운용할 수 있다.

먼저 러시아군 전차가 파괴된 원인이 T-72와 T-90 전차의 성능 문제이므로 인도 육군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전차의 역할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의 성과는 전차를 완전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인도의 주요한 경쟁 상대인 파키스탄과 중국은 러시아제 전차나 러시아의 기술적 영향을 받은 전차를 운용하고 있다. 인도군이 운용하는 전차와 인도의 적국이 운용하는 전차는 비슷한 수준이므로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도군의 T-90과 T-72에 대해서 파키스탄과 중국의 전차가 우세하고 보기는 어렵다. 러시아군은 T-72와 T-90 뿐만 아니라 T-80도 대량으로 투입했다. T-80 또한 다른 러시아제 전차와는 다른 높은 연료 소비량과 연료 종류로 인한 승무원의 방기와 노획 등으로 많은 손실을 냈지만 전투에서 격파된 숫자는 많지 않다.

다음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을 과소 평가해서 키이우를 신속히 점령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때문에 침공 초기 단계에서 러시아 기갑부대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군은 다른 모든 것 보다 신속한 기동과 은밀성, 혹은 기밀 유지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러시아군은 많은 전차를 잃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1965년의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파키스탄 기갑 부대가 기밀 유지와 은밀성을 통한 기습 효과를 노리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이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전쟁 초기에 황급하게 이루어진 작전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군대는 군 지휘부의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본국 정부의 압박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소한  1965년 전쟁을 연구하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문가들은 이 점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전차의 형편없는 성능이 아니라 형편없는 지휘 때문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1965년 전쟁 당시 주요 기갑전이었던 유명한 "아살 우타르(Asal Uttar)"  전투를 보면 파키스탄 육군은 미국제 패튼 전차를 보유하고 있어 인도 육군의 구형 센추리온을 기술적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제1기갑사단은 9월 9일과 10일에 인도군이 운하의 제방을 무너트려 형성된 습지대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한심한 짓을 했다. 그래서 파키스탄군 전차들은 앉아있는 오리 같은 꼴이 됐다. 어떤 유명한 파키스탄 연구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파키스탄 전차병들이 버리고 도망간 멀쩡한 전차가 많았다. 9월 11일 오전 파키스탄 제4기병연대장과 12명의 다른 장교들이 포로가 됐다. 인도군은 파키스탄 전차 75대를 격파했다고 주장했다. 아살 우타르 전투에서 인도군의 피해는 센추리온 1대와 셔먼 4대에 불과했다." 현재 러시아군도 이때의 파키스탄군 처럼 형편없는 전술과 보병ㆍ포병ㆍ공군과의 제병 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많은 수의 전차를 그냥 버려버렸다. 그러므로 파키스탄군이 보전협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과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나는 것 처럼 러시아군이 제병협동 작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점이 기갑 부대의 형편없는 성과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많은 전차를 상실한 가장 큰 요인은 군수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 전차는 군수지원 소요가 큰 무기체계이다. 러시아군이 너무 많은 축선에서 공세를 하는 바람에 러시아군의 보급선은 매우 길어지고 취약해졌다. 우크라이나군은 노출된 러시아군의 보급선을 타격했다. 이때문에 러시아군은 전차를 제대로 운용할 수 없었다.

1971년의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인도군 푸네 기병연대(Poona Horse)가 투입된 바산타르(Basantar) 전투에서 인도 육군이 승리한 가장 큰 원인은 하누트 싱(Hanut Singh) 이라는 지휘관이 작전상 매우 과감하고 능동적인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싱이 지휘하는 전차부대는 지뢰 지대를 통해 진격했다. 같은 해에 있었던 롱게왈라(Longewala) 전투도 공지협동작전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롱게왈라 전초기지에서 인도 육군이 고수방어를 하는 동안 인도 공군이 공세 작전을 수행해 파키스탄군 제22기병연대의 전차와 제38발루치 연대의 보병에 막대한 타격을 가해 파키스탄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이 전투에 투입된 파키스탄군 전차 부대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러시아군 처럼 군수지원이 형편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이며 주관적이고 역동적인 변수는 부대의 사기이다. 설사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연구하는 많은 관찰자들이 놓친 중대한 요소는 바로 러시아군 사기가 낮았기 때문에 러시아군 전차 부대의 지휘관과 병사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전차를 비판하는 인도인들은 인도 육군이 T-72 전차와 T-90 전차의 퇴역을 서두르지 않고, 고지대의 기갑 작전을 위한 국산 경전차 개발을 추진하는데 속도가 붙지 않는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인도 육군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지상군의 작전 수행에 대한 여러 논의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인도 육군의 편제에서 전차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도 공개적으로 확실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2023년 1월 19일 목요일

『스탈린의 전쟁』이 간행되었군요.

 열린책들에서 제프리 로버츠의 Stalin's War의 한국어판을 낸 걸 알게 됐습니다. 한국어판은 무려 744쪽에 달하는군요. 영문판의 2배 정도 되는 분량입니다.


스탈린의 전쟁




 이 연구는 스탈린의 전략가적 자질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1941~1942년에 스탈린이 저지른 군사적 실책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43~1944년에 스탈린이 보여준 전략적 식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1950년대 스탈린 격하운동의 영향으로 스탈린의 군사적 업적은 과도하게 폄하당한 경향이 있는데 로버츠는 이런 비판에 대해서 선을 긋고 있습니다. 로버츠는 1943년 이후 소련군의 반격 과정에서 스탈린이 전략적인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때로는 작전술 차원에서도 탁월한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스탈린의 전략가적 면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1944~1945년 소련군의 동유럽 진출 과정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로버츠는 스탈린이 전후 처리 과정에서도 소련의 군사적 성과를 충실하게 활용해 소련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했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이 연구는 독일 문제 처리 과정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냉전 초기 단계에서 스탈린의 전략적 결정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에서 스탈린의 의도가 무엇이었는냐는 해석이 주목할 만 합니다. 로버츠는 스탈린이 미국이 유럽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아시아에서 제한적인 군사적 충돌을 구상했고 그 결과물이 한국전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전략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군사작전에 대한 설명은 매우 간략하게 개요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군사작전에 대한 내용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독소전쟁사』를 함께 보시면 보완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간행된 저작임에도 군사작전에 대한 몇몇 서술은 모호하거나 다소 부정확해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서술입니다. 저자는 이 전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갔으나 다소 2000년대의 최신 연구경향을 반영하지는 못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연구이기 때문에 저도 번역본으로 한 번 읽어볼 생각이 있습니다. 이제는 간행된지 16년이 넘은 책 이지만 여전히 일독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1월 12일 목요일

우팔리즈 전투 직후에 촬영된 흥미로운 사진 한 장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을 봤습니다. 미국 시사잡지 라이프의 사진 기자가 1945년 1월 하순 벨기에의 우팔리즈(Houffalize)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우팔리즈 시가지의 폐허 속에 3호전차 한대가 있는게 보입니다. 

ⓒLife Magazine Archives

재미있는 점은 우팔리즈 전투에 투입된 독일군 제116기갑사단은 기록상 3호전차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Kamen Nevenkin의 Fire Brigades : The Panzer Divisions 1943-1945의 제116기갑사단 항목(594쪽)을 보면 이 사단은 아르덴느 공세 직전인 1944년 12월 10일에 4호전차 26대, 판터 45대, 3호돌격포 25대를 보유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944년 12월 17일 부터 12월 29일까지 추가로 4호전차 5대, 판터 23대, 4호 구축전차 5대, 3호돌격포 14대를 보충받았다고 합니다.

Thomas L. Jentz의 Panzer Truppen 2권 198쪽을 보면 제116기갑사단이 1944년 12월 16일 기준으로 4호전차 21대, 판터 41대, 4호대공전차 3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추가로 4호전차 5대, 판터 23대, 돌격포 14대가 사단에 배치되기 위해 이송중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제116사단에 배치됐다는 기록이 없는 3호전차가 우팔리즈에 있는게 재미있습니다.

제116기갑사단 부대사는 다른 곳에 두고 있어서 지금 없는데 나중에 한번 아르덴느 공세 당시 3호전차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원래 부대가 보유하지 않았던 장비가 나오는 사례는 간혹 있습니다. 나중에 한번 이야기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 제5기갑사단도 작전 투입 당시에는 3호전차를 보유했다는 기록이 없으나 작전 도중 제5기갑사단 소속의 3호전차에 대한 보고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우팔리즈의 3호전차도 그 이력이 궁금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