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22, 2010

[妄想大百科事典] 두근두근 여의도

[妄想大百科事典] 두근두근 여의도


"두근두근 여의도TM"는 2010년 출시된 National Assembly사의 연예시뮬레이션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여의도의 초선의원 강용석이 되어 여러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1. 주인공

강용석 : 여의도의 초선의원으로 별 생각없이 내뱉는 말이 매력포인트. 과연 여의도의 카사노바로 거듭날수 있을 것인가.


2. 공략가능 캐릭터(ver.1.0 기준)

박근혜 : 공주님으로 카리스마가 있으며 아치형 허리가 매력포인트. 여왕님형 캐릭터.

나경원 : 판사출신의 국회의원으로 미모를 겸비했다. 키가 작은(?) 로리형 캐릭터.

전현희 : 60대 이상에게 인기가 많은 맏며느리형 캐릭터.

모 방송국 아나운서 모씨 : 은근히 강용석 의원을 짝사랑하는 츤데레 캐릭터

※ National Assembly사는 확장팩에서 더 많은 공략가능 캐릭터를 추가한다고 공지하였다.


3. NPC

주성영 : 대구의 밤문화에 통달한 터프가이. 강용석의 라이벌.


4. 기타사항

이 게임은 주인공의 몇몇 대사로 인해 심의끝에 18세이상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베타테스터들은 주인공의 행동양식이 유치해 전체관람가도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妄想大百科事典] 진실

[妄想大百科事典] 진실


특정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맛에 맞다고 느끼는 것을 일컫는 한국어. 종종 영어의 Truth와 같은 뜻으로 혼동되는 경우가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논리적인 사고와는 하등 관계가 없으며 단지 특정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선입견을 척수반사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진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이 공격받을 경우 황당할 정도로 공격적이 되니 극도의 주의를 요한다.

특정 정치인의 정신병적인 지지자들이 특히 진실을 좋아한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군인들

한국전쟁은 여러모로 괴상한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에게는. 근대화된 전쟁을 치를 능력은 커녕 제대로 된 군대조차 조직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에게 전쟁은 대재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전쟁이 터졌으니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싸워야지요.

가장 큰 문제는 갑자기 늘어난 군대를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이 시절 한국의 처지는 그야말로 딱해서 군인들을 먹이는 것 조차 똑바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한국전쟁 이전에도 군인들을 배불리 먹일 능력이 없었으니 전쟁이 터지고 군대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안봐도 뻔한 상황이 연출 될 수 밖에요. 1948년 9월 26일의 미군사고문단 기록을 보면 이범석 국방부장관이 국회에 사병의 급식 개선을 위해 추가 예산 편성을 요청하면서 병사 한 명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이 육군의 기준치인 3,162칼로리에 못 미치는 2,322칼로리에 불과하다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1) 한국전쟁 당시 미육군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은 4200~4500칼로리 정도였으니 창군 초기의 한국군의 급양  수준은 미군의 절반 수준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습니다.2) 사실 식단의 질로 따지면 더 형편 없었겠지요. 예전에 썼던 ‘한국군 5사단의 일일 식량 지급’ 이 라는 글에서  한번 다루었지만 전쟁 초기 한국군 전투부대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은 대략 3100칼로리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식단을 보면 영양소의 대부분을 밥에 의존하는 형편이지요. 보급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훈련소 같은 곳에서는 3600칼로리 수준이었던것 같습니다.3)

먹는게 형편없으니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긴 어려웠을 겁니다. 전쟁 당시 한국군의 비전투 장비손실 중 상당수가 춥고 배고픈 병사들이 장비를 팔아 먹을것이나 땔감을 구입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미군사고문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많은 한국군 병사들이 음식이나 땔감을 구하기 위해 소총까지 팔아 치웠으며 자신의 소총을 팔아버린 뒤에는 다른 사람의 소총을 훔쳐 채워넣는 사고가 꽤 많았다고 합니다.4) 가난한 한국군 병사들이 배를 곯는 동안 돈 많은  미군들은 전투식량이 맛이 없어 내다버리고 있었다죠.  백선엽의 회고록에는 포로수용소를 가 보니 포로들이 한국군 보다 더 잘 먹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죠.5) 1953년 5월 12일에 의무병과 선임고문관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군병원에 입원한 한국군 병사 중 7.6%가 영양실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양부족으로 인한 질병인 결핵환자도 포함하면 이 수치는 조금 더 높아집니다. 여기에 11.9%의 결핵환자까지 합하면 거의 20%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6) 게다가 이 외에도 많은 질병이 영양실조가 주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었으니 꽤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것도 그나마 보급체계가 정비되고 미국의 원조가 꽤 들어온 1953년 5월의 상황이니 1950~1951년 경에는 더 심각했을 것 입니다.

병사들에게 밥도 제대로 못주는 형편이었으니 봉급도 제대로 챙겨주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한국군의 비참한 상황은 미국도 우려하는 문제였습니다. 전쟁 통이라 군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챙겨줘야 할 판인데 줄게 없을 정도로 엉망이니;;;;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한국군의 비참한 실정 때문에 미국측에서 한국군이 각종 부대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묵인해 줄 정도였지요.

1953년 기준으로 한국군의 급여체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7)

1953년도 기준 한국군의 급여
계급
급여(원화)
실질급여
급여(달러환산)
대장
90,000
85,400
14.23
중장
72,000
68,000
11.35
소장
66,000
62,500
10.41
준장
60,000
56,800
9.46
대령
56,100
53,400
8.90
중령
51,300
48,835
8.14
소령
46,500
44,275
7.38
대위
38,100
36,457
6.07
중위
35,700
34,126
5.68
소위
33,300
31,801
5.30
준위
32,300
30,937
5.15
상사
26,100
25,012
4.17
중사
24,300
23,171
3.86
하사
7,200
7,200
1.20
병장
6,000
6,000
1.00
상병
4,500
4,500
0.75
일병
3,600
3,600
0.60
이병
3,000
3,000
0.50

대한민국 육군 대장의 급여가 14달러 밖에 안되는 것도 안습입니디만 이것은 그나마 공정환율인 1달러당 6,000원으로 계산한 것 입니다. 1953년 초 암시장 환율은 1달러당 21,000~25,000원이었으니 이 환율을 적용하면 한국군 대장의 한달 급여가 3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 되는 것 이었습니다. 육군 이등병은 한달 50센트에 목숨을 걸어야 하니 정말 비참하지요.

글자 그대로 외부의 원조가 없으면 당장 붕괴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 전쟁을 위한 대규모 동원을 해야 했으니 국가는 물론이고 동원되는 국민으로서도 난감할 수 밖에요. 국민방위군 같은 대규모 동원계획이 참사로 끝난데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이 한 몫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자체가 그러한 대규모 동원을 할 역량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Supplemental Budget - FY 1948/1949’(1948. 9. 29), RG 338, PMAG 1948-49/KMAG 1948-53 Box 1
2) ‘Ration for the Armed Force, Korea’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8),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3) ‘Ration for the Armed Force, Korea’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8),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4) ‘Individual Rifles for ROK Army Soldiers’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2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장비가 부족했던 국립경찰이 병사들의 소총을 강제로 빼앗은 사례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5) 백선엽, 『군과 나』(서울, 시대정신, 2009) 299~300쪽
6) ‘Alleged Undernourishment of ROK Army Patients’(1953. 5. 1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7) ’Pay of ROK Army’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2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Monday, July 19, 2010

비 피해는 없으셨습니까?

큰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아 여름이 여름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던 중 큰비가 내렸습니다. 들러주시는 분들께서는 간만의 폭우에 피해는 없으셨습니까?

저는 가벼운 피해가 하나 있었습니다. 책 한권이 비에 젖어버렸더군요. 가방에 방수커버를 씌웠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책의 한쪽 귀퉁이가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종이가 물에 젖어 너덜너덜했는데 몇시간 말리고 보니 조금 나아졌습니다. 가방에 책이 많이 들어있었다면 대참사가 발생할 뻔 했네요. 역시 가방은 최소한의 방수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Wednesday, July 14, 2010

지금 당장 더 많은 군대를!

 1948년 8월 30일,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이범석은 임시군사고문단장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과 국방부 조직, 국방조직법*을 협의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이 밖에 임시군사고문단 참모장 라이트(W. H. Sterling Wright) 대령, 보스(Voss) 대령, 하우스만(James H. Hausman) 대위와 이범석의 통역(신원미상)이 동석했습니다.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의 문서철에는 8월에 진행된 이범석과의 회의 속기록이 남아있어서 이날 회의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날 논의된 내용 중에서는 국방부와 각군 본부의 조직문제가 핵심사안이었는데 한국측은 규모가 큰 조직을 원했던 반면 미국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전 략 - 헌병병과 관할 문제)

이범석 : 좋습니다. 좋습니다. 해군과 공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국방부 편제에 추가할 겁니까?

로버츠 : 여기서는 육군만을 논의하는 것 입니다. 해군이나 공군은 아닙니다. (국방부 조직도를 보여주며) 라이트 대령이 짠 조직도는 육군만 해당되는 것 입니다.

라이트 : (이범석의 통역에게) 국방부장관께 이것은 국방조직법이며 의회에 상정되어 법안으로 확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십시오. 이것은 상위조직에 대한 문제이며 저것은 하위조직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범석 : 하위조직이라. 알겠소. 대령은 이것이 육군에만 해당된다는 것이군요.

로버츠 : 그렇습니다. 장관님께서 규정을 만드시는 겁니다.

이범석 : 알겠소. 알겠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국방부 참모총장의 아래에 해군과 공군의 참모장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로버츠 : 국방부 참모총장과 육군총참모장은 여기에 있습니다.

라이트 : (로버츠에게?) 한국측에게 이것(국방조직법 초안)을 주기 전에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해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상위조직에 대해 한미간에 합동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입니다. 육군, 해군, 국립경찰, 그리고 공군 총참모장은 이 조직 아래에 두게 될 것 입니다. 오늘 오전에 논의할 것은 육군 문제입니다.

통역관 : 한국에서는 이것을 그냥 참모총장으로 번역합니다. 이것은 총참모장보다 더 높은 직위를 뜻하는 것 입니다.

이범석 : NP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이트 : 국립경찰입니다.

이범석 : 한국에서는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을 총괄하는 단 한명의 참모총장이 있을 뿐 입니다. 채병덕(Mr. Chae) 입니다.

라이트 : 미국에서는 (합참의장을) 한번은 해군이, 다음에는 육군이, 다음에는 공군이 맡는 식 으로 합니다.

로버츠 : 이 조직도에 있는 국방부 참모총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습니다. 합동참모본부입니다. 삼군과 하나의 위원회, 하나의 협의체를 두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국방부 참모총장은 아마도 육군 출신으로 임명될 테니 말입니다. 미국에서 하는 것 처럼 하나의 협의체인 합동참모본부를 두는 것이 더 잘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이범석 : 그 문제는 여기서 논의할 사안이 아닌 것 같소.

로버츠 : 합동참모본부를 법안에 의거해 만들어야 한다면 현재의 초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국방조직법을 만들면 될 것 입니다. 새로운 법안 말입니다.

로버츠(?) : 국립경찰도 국방부 예하에 두는 것 입니까?

이범석 : 아니오. 그건 아니오.

로버츠 : 그렇다면 경찰 부분은 지우고 그 자리에 공군을 넣으면 되겠군요.

이범석 : 3군의 총참모장이 국방부 참모총장(Big C/S)를 보좌할 것이오.

라이트 : (로버츠에게?) 이범석은 국방부장관의 직속으로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를 하나 두려는 모양입니다.
(이범석에게) 그 법안은 무엇입니까? 저희는 이것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 했습니다.

이범석 : 국회에서 만든 법안이오. 헌법 말이오.

로버츠 : 마샬은 육군만을 지휘했습니다. 그는 해군이나 공군까지 통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참모총장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모든 병종을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통제합니다. 하나의 협의체 말입니다.

로버츠 : (통역에게?) 이러다간 하루가 36시간이 되겠군. 국방부 장관에게 말하게.

이범석 : 육군에 대한 구상은 매우 좋습니다. 첫 번째는 강력한 참모총장, 두 번째가 육군과 해군, 공군이오.

로버츠 : 그것은 장관님이나 국방부 차관이 담당할 업무입니다.

이범석 : 유감스럽게도 그게 불가능하오.

라이트 : 저희가 반대하는 이유는 국방부 참모총장은 육군 출신이 될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육군에만 신경을 쓸 겁니다. 해군에 대해서는 지랄같겠죠.(to hell with the navy)

로버츠 : 미국에서는 매우 좋은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삼군의 참모총장이 한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를 명확하게 처리하는 것 입니다.

이범석 : 육군 출신은 참모총장이 되어도 육군 위주로 생각할 것이오. 나도 국방부장관인데 육군 문제만을 생각하고 있소.

로버츠 : 그런데 그는 공군 출신입니다.(누굴 지칭하는지 불명)

이범석 : 국방부 장관은 삼군 모두를 신경써야 하는 직위요. 국방부 참모총장도 삼군 모두를 신경써야 하오. 넓은 아량과 지혜를 갖춘 좋은 인물이어야 하오.

라이트 : 국방부 참모총장은 어디 출신입니까? 육군입니까, 해군 아니면 민간인 출신입니까?

이범석 : 아직은 국방부 참모총장을 어디 출신으로 할 지 말할 수 없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육군 장교들 말고는 좋은 사람을 구할 수 없소.

라이트 : 그게 문제입니다.

이범석 : 그래서 육군 출신으로 임명하게 될 것 같소. 그렇지만 국방부 참모총장 아래의 각군 총참모장은 해군, 육군 그리고 공군 출신이 될 것이오. 국방부 참모총장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요.
인도에서 전문을 하나 받았소. 해군 장교인데 매우 유능한 인물이오.***

하우스만 : 아마 영국해군 출신이었지오? 아닙니까?

이범석 : 그렇소 영국 해군 출신이지. 선장이오. 장군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오. 56살인가 54살인가 할 것이오.

라이트 : 그가 해군총참모장이 되는 것 입니까? 허?

로버츠 : 그를 국방부 참모총장에 임명해도 되겠군요.

이범석 : 유감스럽게도 그는 육군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오. 해군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오.
내 생각에는 아마 1년 정도의 협력으로는 육군 업무 만을 다룰 수 밖에 없을 것 같소. 두번째 단계에서는,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다면 1년이나 2년 정도 미국의 협력으로 해군 업무를 조금 추진할 수 있을 것이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세가지 구상이 있소. 4년 내지 5, 6년이 지난 뒤 미국 대통령이나 맥아더 장군과 회견을 하는 것이오. 이 문제는 한국의 고위 정치, 고위급 문제이오(? 통역의 문제로 미국측이 이해를 못함) 만약 대한민국이 전시에 미국과 협력하지 못한다면 나는 물러나야 하고 여기서 죽어야 할 게요. 우리 나라는 민족적 민주주의 국가요. 우리는 미국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오.

로버츠 : 설사 지금 올바르게 하지 못하더라도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범석 :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 참모총장 세명 말이오?

-라이트 대령과 로버츠 준장은 합동참모본부의 업무, 임무, 기타 제반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이범석 : 귀측의 구상이 마음에 들지만 나는 권한이 없소.

하우스만 : (국방부) 참모총장을 민간인으로 해도 되겠지요.

라이트 : 아냐. 이범석 장관에게 물어봤지만 아직까지는 모르겠다잖아.

로버츠 : 나는 삼군을 모두 총괄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인재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하우스만 : 우리 미군에서도 찾을 순 없을 겁니다.

이범석 : 만약 참모총장이 무능하다면 교체할 수는 있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로버츠 : (통역에게) 이범석 장관에게 미국에서도 그런 인재를 찾을 순 없을 거라고 말하게.

이범석 :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로버츠 : 왜 국방부차관이 그 업무를 담당할 수 없습니까? 한국 내에서 유능한 인물을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국방부차관을 국방부 참모총장으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범석 : 큰 문제가 있소. 한 사람이 두개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오.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로버츠 : 그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그 업무를 다룰 수 있을 겁니다.

이범석 : 장군과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정치인들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에는 많은 문제가 있소. 정치인들은 국방부를 비난할 것이고 아마도 엉망이 될 것이오.

로버츠 : 국방부 조직을 우리가 제안한 대로 하고 한 두달 정도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도록 하지요. 천천히 진행하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조직을 개편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범석 : 만약 국방부 참모총장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헌법에서 국방부 참모총장을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오.

라이트 : 우리는 국방에 대한 부분을 언급한 대한민국 헌법의 영문 번역본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역시 유능한 번역가가 담당해야 겠지요...

이범석 : 아마도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개념은  만주국군, 소련군 또는 일본군 등과 비슷한 것 같소.

로버츠 : 명칭은 무엇으로 합니까? 우리는 이 참모총장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범석 : 영어로는 Chief of Stafft이오. 한국어로는 다르오.

라이트 : 이 직위를 국군 참모총장으로 불러도 되겠지요. 그리고 한국어로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단어로 부르면 될 겁니다.

<이 단어의 번역을 두고 토의가 이어졌는데 내가[속기록 기록자] 듣기로는 COMO CHONG JON 이었다. CHONG은 모든 것을 총괄한다는 뜻으로 로버츠 준장이 제안한 supreme에 해당된다>

로버츠 :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Supreme C/S로 부르기로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누굴 임명합니까? 어떤 사람을 임명합니까?

이범석 : 대통령 각하께 여쭤보겠소. 만약 쓸만한 사람이 아니면 대통령 각하께 다른 사람을 제안해 보겠소. 전문가들 몇몇에게 문의해 볼 수도 있겠고. 만약 참모총장이 신통찮다면 000<한국어로 길게 이야기 했는데 로버츠 준장은 이것을 kick him out으로 요약했다> 할 수 있을 것이오.

라이트 : 참모총장은 매우 중요한 직위이기 때문에 조언을 할 참모진이나 그 비슷한 것이 필요할 겁니다.

로버츠 : 한국의 문제는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높은 직위에 몰려있어 각 연대를 지휘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만약, 국방부 참모총장을 두게 된다면 그도 유능한 장교들을 필요로 할 것 입니다. 이 유능한 장교들, 이 유능한 장교들을 참모총장의 참모진으로 데려간다면 일선 연대장 자리에는 쓰레기 같은 자들 말곤 남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이범석 :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만약 그가 생각을 잘 한다면 유능한 인재를 모두 쓸어가진 않을 거요.

로버츠 : 아닙니다. 저는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범석 :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능력이 있소. 어떤 사람은 보급에, 어떤 사람은 일선 지휘관에, 어떤 사람은 의무나 그밖의 다른 능력이 있을 것이오. 이런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을 참모부의 각 직위에 임명하는 것이오.

로버츠 :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군이) 학교에 가야 할 어린아이 같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기 전에 잠옷, 교복, 정장과 제복을 사줘야 합니다. 시작은 단순합니다. 뒤에 계속 추가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군은 아직 초창기이고 앞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 입니다. 한국군의 성장에 맞춰 추가해 나가는 것 입니다.

이범석 : 맞소. 맞소. 같은 것이오. 미국은 지금 대국입니다. 미국의 육군, 해군, 공군은 전쟁을 치르면서 세계 최고가 되었소. 장군도 아시다 시피 이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니잖소? 아마 300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소. 일본은 60년에 걸쳐 육군과 해군을 건설했소. 그리고 그들은 아마 25년이면 다시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오. 대한민국은 지금 당장 신속히 대규모 육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해군과 공군도. 장군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소.<시계를 보니 0900였다>
미안하오.
한국군은 500명의 대위와 100명의 소령만 있소. 작은 군대요. 반드시 증강되어야 하고 고급 장성도 많이 필요하오.(Must expand; many big generals)

라이트 : 추장만 있고 부족원은 없군요.(All Chiefs and no Indians)

이범석 : 대한민국 전역에서 군 문제에 대해 경험이 있는 인재를 모아들이고 있소. 현재 사정이 매우 어렵소. 우리는 많은 육군을 가져야 하오.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오. (한국어로 길게 이야기 함)

라이트 : (통역관에게) 내 생각에는 국군조직법을 이범석 장관의 뜻에 따라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공군은 육군 예하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범석 : 해군은 사소한 문제요. 육군은 큰 문제고.

로버츠 : 당분간 공군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논의할 수 있겠지요.

이범석 : 우리는 미국으로 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

로버츠 : 예. 우리나라가 귀국에 비행기를 준다면 공군부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후략 - 족청단원의 군입대 문제)

“Conference between Lee Bum Suk, Premier of Korea, Gen Robts(1948. 8. 30)” RG338, KMAG, 1948-53, Box 4, Files : Brig. General W. L. Roberts

*이 당시에는 아직 명칭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만.
**1948년에는 국방부장관과 국방부차관, 국방부 참모총장과 참모차장 아래에 육군 총참모장과 해군 총참모장이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크게 다르죠.
*** 신성모 이야기인데 사실과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통역이 실수한 것인지 아니면 이범석이 실수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성모는 2차대전 중 소식이 두절되어 있다가 1948년 8월에 생존해 있다는 것이 한국에 알려졌지요. 신성모의 생존에 대한 동아일보기사(1948. 8. 5)

 농담삼아 이야기 하면 이미 건국초부터 육방부의 재앙(???)을 예측한 사람들이 있군요. ㅋ

 이미 로버츠 준장의 지적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한국군의 증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는 유능한 장교의 부족이 꼽히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1947년 부터 시작된 조선경비대 증강당시에도 지적된 문제입니다. 단순히 원조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닌 것이죠. 실제로 한국전쟁이 터진 뒤에 미국의 원조가 본격화 되었지만 육군의 증강, 특히 포병이나 기갑등의 증강이 매우 매우 더디게 진행된 이유 중 하나도 유능한 장교의 부족이었습니다. 사실 냉전의 최전방에 던져진 대한민국으로서는 군대의 증강이 시급한 문제였지만 여러가지 제반여건들은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습니다.

Tuesday, July 13, 2010

요즘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왠지 공감가는 이야기가 있어서...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는 보행자가 필요하면 자동적으로 바꿔지는 신호등을 마음대로 눌러서 차를 멈추게 하고 길을 건늘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보행자에게 우선권을 주고 보행자의 생명을 보전하는데에 만전을 기하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땅의 자동차는 보행자의 생명에 대하여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고 교통순경의 눈이 더 무서운 모양으로 순경만 안보이면 어떤 횡포한 짓이라도 감행할 권리가 무제한으로 부여되어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이런 무법천지에 목숨을 유지하고 산다는 것이 꼭 기적만 같이 느껴진다.
자동차의 수량이 많아졌다고 하여 그것을 미국적이라고 생각 하기에는 너무도 비미국적인 것 같다. 자동차를 많이 들여오기에 앞서 우리는 자동차를 부리는데 필요한 정신적인 훈련을 쌓는 것이 좀더 급한 일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鄭炳昱,「물과 기름의 對話 - 우리는 얼마나 美國的인가」, 『靑脈』5號(1965. 1),177쪽

요즘은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지만 본질적으로 자동차가 보행자보다 우위에 있는 지랄같은 점은 변하지가 않았지요. 여행을 다닐때 자동차의 횡포에 분위기를 망친게 한두번이 아니라 더 공감이 갑니다.

Sunday, July 11, 2010

やられメカ

 오후에 모형을 하나 조립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희대의 야라레메카, M4A1으로.


75mm를 탑재한 M4A1는 실제 차량은 물론이고 모형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전차입니다. 왼쪽에 있는 놈은 처음에 조립한 M4A1이고 오른쪽의 녀석이 오늘 오후에 조립한 녀석입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몇번씩 만드는데 이것 말고 하비보스의 76mm 탑재 M4A1도 두대를 조립했지요. 지금까지 제가 가장 많이 조립한 모형이 셔먼 계열입니다.

이 뭔가 모자라 보이는 전차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충 만든듯한 둥글둥글한 외모에 꾸역꾸역 숫자로 밀어붙이는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물건이잖습니까. 뭔가 얼빵해 보이는 둥글둥글한 차체를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ㅋ

Thursday, July 8, 2010

글 하나를 삭제합니다

글 하나를 삭제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게 썩 보기 좋은 것도 아니고 생각해 보니 그 황당한 주장에 성실하게 반박글을 쓰는 다른 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니 말입니다.

Monday, July 5, 2010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 0

이제 그동안 예고편만 때려댔던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원래는 2009년에 논쟁을 간단하게 정리한 글을 썼는데 중간에 빼먹은 논문도 많고 게다가 2010년에 논쟁의 주인공인 테렌스 주버(Terence Zuber)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는 새로운 논문을 쓰기도 했으니 그동안 진행된 논쟁을 다시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예전 글에서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빼먹은 논문들을 모두 정리할 생각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 논쟁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 많은데 군사사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다른 분들도 저와 같으시리라 짐작해 봅니다. 위에서 적은 것 처럼 이 논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문과 서적들을 최대한 소개할 것이기 때문에 글을 몇 편으로 나눠서 연재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썼던 글들은 제 귀차니즘과 블로그 글을 손에 책 잡히는 대로 쓰는 습관 때문에 논쟁 중간에 발표된 논문들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폐해(!!!)가 있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런 폐해를 줄여보려 합니다.


슐리펜 계획

먼저 슐리펜 계획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군사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계획의 하나인 만큼 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들은 아주 잘 아시겠지만 그래도 예의상 간략히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네요.

주버가 슐리펜 계획의 실체를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하기 전 까지 학계의 통설은 슐리펜 계획의 입안자인 독일군 총참모장 슐리펜이 양면전쟁의 불리함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쟁 초기 서부전선에 주력을 집중해 단기결전으로 승리를 이끌어내고자 했으며 이때문에 우익에 주력을 최대한 집중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 입니다.
기존의 통설은 독일군 수뇌부는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닫게 될 경우 독일이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해 진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총참모장에 임명된 슐리펜도 이점을 염두에 두고 개전 초반에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결전을 치르기 위한 계획을 준비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독일과의 국경지대의 요새선을 강화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이 때문에 1870/71년 전역과 같이 프랑스 국경을 조기에 돌파할 가능성이 사라진 것 입니다. 슐리펜은 1905년 퇴임하게 될 때 까지 다양한 대안을 구상했으며 그 결과 최종적으로 1905년에 슐리펜 계획이 완성됩니다. 이 계획은 서부전선에서 조기에 승리를 거두기 위해 독일군의 가용한 전력을 서부전선에 집중하는 것 이었고 프랑스의 국경지대 요새들을 무력화 하기 위해서 중립국인 벨기에를 통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습니다. 주력은 독일군의 우익을 담당할 1, 2, 3군이었으며 이 중에서도 최우익에서 포위망을 형성할 1군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독일군의 주력은 벨기에를 돌파한 뒤 대규모 포위 기동을 실시하고 특히 최우익을 맡은 제1군은 루앙(Rouen)을  우회하여 프랑스군을 섬멸하는 포위망을 형성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렇게 대규모 포위망으로 프랑스군 주력을 조기에 포위 섬멸하는 것으로 슐리펜 계획은 마무리 될 것 이었습니다.
실제로 1차대전 초기 독일군의 작전이 이렇게 수행되었고 전후 독일측의 공간사도 동일한 주장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는 없었습니다.


주버의 주장, 슐리펜 계획의 실재 여부에 대한 논쟁의 시작

그런데 1999년 War in History 6권 3호에 당시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테렌스 주버(Terence Zuber)의 "The Schlieffen Plan Reconsidered"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 논문은 꽤 도발적인 내용으로 이후 10년이 넘는 슐리펜 계획의 실재여부에 대한 논쟁의 시발점이 됩니다. 이 논쟁에는 여러명의 학자가 참여했으나 주버가 처음 논문을 투고한 War in History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테렌스 주버가 논쟁의 포문을 연 뒤 그를 상대한 테렌스 홈즈(Terence M. Holmes)와의 논쟁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주버가 The Schlieffen Plan Reconsidered를 발표해 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뒤 테렌스 홈즈와 논쟁을 진행하다가 2003년 같은 학술지에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 Again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포했을 때 까지입니다. 이때까지의 논쟁은 주버와 홈즈간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 논쟁에 대한 주요 논문과 저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Terence Zuber, “The Schlieffen Plan Reconsidered”, War In History 1999; 6(3)

Terence M. Holmes, “The Reluctant March on Paris: A Reply to Terence Zuber's `The Schlieffen Plan Reconsidered'” War In History 2001; 8(2)

Terence Zuber,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1; 8(4)

Terence M. Holmes, “The Real Thing: A Reply to Terence Zuber’s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2; 9(1)

Terence Zuber, Inventing the Schlieffen Plan: German War Planning 1871-1914(Oxford University Press, 2002)

Terence M. Holmes, “Classical Blitzkrieg: The Untimely Modernity of Schlieffen's Cannae Programme”,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2003;  67(3)

Terence Zuber,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 Again”, War In History 2003; 10(1)


두 번째 단계는 이 논쟁에 다른 1차대전 전공자들이 개입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입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로버트 폴리(Robert T. Foley)가 The Origins of the Schlieffen Plan라는 논문으로 전통적인 학설을 보완ㆍ지지하면서 논쟁에 개입했습니다. 이어 아니카 몸바우어(Annika Mombauer), 독일의 게르하르트 그로스(Gerhard P. Groß) 등이 논쟁에 참여함으로써 판이 아주 커졌습니다. 이 시기의 주요 논문과 저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Robert T. Foley, “The Origins of the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3; 10(2)

Terence M. Holmes, “Asking Schlieffen: A Further Reply to Terence Zuber”, War In History 2003; 10(4)

Terence Zuber, “The Schlieffen Plan Was an Orphan”, War In History 2004; 11(2)

Terence Zuber, German War Planning, 1891-1914: Sources and Interpretations(Boydell Press, 2004)

Annika Mombauer, “Of war plans and war guilt: The debate surrounding the Schlieffen Plan”,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2005, 28(5)

Robert T. Foley, “The Real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6; 13(1)

Terence Zuber, “Der Mythos vom Schleffenplan”, Der Schlieffenplan : Analysen und Dokumente, (Schöningh, 2006)

Annika Mombauer, “Der Moltkeplan : Modifikation des Schlieffenplans bei gleichen Zielen?”, Der Schlieffenplan : Analysen und Dokumente, (Schöningh, 2006)

Robert T. Foley, “Der Schlieffenplan : Ein Aufmarschplan für den Krieg”, Der Schlieffenplan : Analysen und Dokumente, (Schöningh, 2006)

Gerhard P. Groß, “There Was a Schlieffen Plan: Neue Quellen”, Der Schlieffenplan : Analysen und Dokumente(Schöningh, 2006)

Terence Zuber, Everybody Knows There Was a `Schlieffen Plan': A Reply to Annika Mombauer, War In History 2008; 15(1)

Gerhard P. Groß, There Was a Schlieffen Plan: New Sources on the History of German Military Planning, War In History 2008; 15(4)

Terence M. Holmes, "All Present and Correct: The Verifiable Army of the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9; 16(1)

Terence Zuber, There Never Was a ‘Schlieffen Plan’: A Reply to Gerhard Gross, War In History 2010; 17(2)

두번째 단계 부터는 약간 복잡해 집니다. 전통적인 학설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이 대거 개입했기 때문에 주버가 반박논문을 발표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납니다. 먼저 위에서 언급한 아니카 몸바우어가 2005년에 발표한 Of war plans and war guilt: The debate surrounding the Schlieffen Plan에 대한 반박논문은 2008년에 씌여졌으며 게르하르트 그로스의 2006년 논문,  There Was a Schlieffen Plan: Neue Quellen에 대한 반박 논문은 2010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재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주요 논문과 저작들을 모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전 글에서 좀 불성실하게 이야기를 진행한 것에 대한 반성이라고나 할까요. 좀 느긋하게 연재하되 하나도 빠짐없이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