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4일 월요일

토마스 젠츠의 저작들의 문제점

 판터의 기계적 신뢰성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책을 몇권 뒤지다보니 2012년 사망한 미국의 독일 기갑차량 연구자 토마스 젠츠(Thomas L. Jentz)의 영향력이 꽤 크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판터에 관한 비교적 최근의 저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크 쾰러(Frank Köhler)의 Panther: Meilenstein der Panzertechnik에서도 판터의 주요 구성품의 수명주기에 대한 내용은 거의 대부분 토마스 젠츠의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의 내용을 재인용하고 있었습니다. 쾰러의 저작은 프라이부르크의 독일연방문서보관소와 코블렌츠의 연방군 국방기술연구박물관(Wehrtechnischen Studiensammlung)이 소장한 1차 사료등 2014년 시점에서 참고할 수 있는 판터와 관련된 문헌은 대부분 활용한 저작입니다. 이런 연구자 조차 상당히 많은 부분을 토마스 젠츠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토마스 젠츠가 연구를 하면서 광범위한 1차 사료를 검토했음을 입증해 줍니다. 즉 신뢰도 면에서 토마스 젠츠는 충분히 검증된 연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젠츠가 내놓은 수많은 연구서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주석을 거의 달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젠츠의 저작들이 대부분 전문적인 연구서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젠츠가 주석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젠츠의 저작에 인용된 1차 문헌들을 찾아보려면 상당히 골치가 아픕니다. 위에서 언급한 프랑크 쾰러나 토마스 안데르손(Thomas Anderson) 같이 비교적 최근 연구를 내고 있는 독일 기갑차량 연구자들은 연구서의 경우 주석을 충실히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도 출처가 젠츠의 서적일때는 살짝 난감해 집니다. 젠츠가 본 사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1차 사료에 숙달된 연구자들은 내용만 보면 대략 어느 문서군의 무슨 문서인지 알 수 있습니다만 일반인들은 그게 아주 힘들죠. 젠츠는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만 주석을 제대로 달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명성을 고려했을때 아주 아쉬운 점 입니다.

2020년 8월 21일 금요일

밀리터리 무크지 "헤드쿼터" 창간호 "판터의 모든 것"

 밀리터리 무크지 "헤드쿼터" 창간호 "판터의 모든 것"이 도착해서 읽어봤습니다. 참 좋은 시도인데 결과물이 조금 아쉽습니다. 

이 무크지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취미가의 편집장이었던 이대영님의 글 「판터는 성공한 짝퉁이다」입니다. 옛날 취미가 시절이 생각나는 글 입니다. 이대영님의 문체는 유려하지만 좀 알맹이는 부실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판터의 변속기와 구동장치가 전쟁이 끝날때 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약간 부정확한 서술 등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판터의 개발사를 논하기에는 부족한 글 입니다.

내용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채승병님, 진중근 중령님 같은 분을 섭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들에게 지면을 적게 할애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채승병님이 집필한 판터의 첫 실전투입을 다룬 「촉박한 일정 속의 예고된 재앙: 쿠르스크 전투」는 14~21쪽에 걸쳐 실려있으나 다수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있어서 실제 분량은 이것보다 훨씬 적습니다. 채승병님의 글은 짧은 분량 내에서 쿠르스크 전투의 전략적 배경, 판터가 투입되게 된 작전적 배경,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 전술적 운용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분량이 조금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 입니다. 역시 채승병님의 글인 「에른스트 바르크만의 만헤이 활극」은 과거 채승병님의 인터넷 사이트 '페리스코프'에 실렸던 글인데 원문 보다 많이 축약됐습니다.

읽고 나니 이 무크지가 얇은 편이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제한된 분량을 낭비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54쪽 부터 59쪽 까지는 판터의 사진들이 실려있는데 딱히 고화질의 화보도 아니라서 이런걸 왜 넣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필요한 화보를 넣을 지면에 다른 분들의 글을 더 보충하는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유감스러운 부분은 이성주씨의 「나는 왜 야크트판터를 좋아하는가」, 그리고 역시 이성주씨의 소설 「요람안에서」가 상당한 분량을 잡아먹고 있다는 점 입니다. 전자는 그냥 단순한 잡담이고 후자는 소설입니다. 이성주씨의 소설은 66쪽에서 76쪽까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걸 빼고 판터의 기술적 측면이나 실전 운용을 분석한 글을 더 넣는게 이 무크지를 충실하게 했을겁니다. 

무크지의 제목은 「판터의 모든 것」인데 제목값을 못한다는 느낌입니다. 소설을 넣을 공간에 독일군이 판터를 집중운용한 노르망디 전역이나 1944년 동부전선의 작전들(예를들어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 기갑사단들의 작전)을 분석한 글을 넣는게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무크지에서는 「촉박한 일정 속의 예고된 재앙: 쿠르스크 전투」와 우에스기라는 분의 「판터의 사라지는 전설: 아라쿠르 전투」 등 두편의 글이 판터가 투입된 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판터 특집이라는데 어째 판터가 굴욕을 당한 전투만 선정을 했군요.

그리고 '판터의 모든 것'을 다루고자 했다면 판터와 관련된 참고문헌들을 정리해서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하는 것도 좋았을 것 입니다. 판터는 꽤 유명한 전차이고 이 전차를 분석한 서적은 여러종이 나와 있습니다. 과거 취미가 같은 잡지에서는 모형인들을 대상으로 간헐적으로 군사관련 참고문헌을 소개하는 기사를 마련하곤 했지요. 「판터의 모든 것」에는 이성주씨의 잡담이 들어간 지면은 있지만 판터에 대한 참고문헌들을 다루는 지면은 없습니다. 매우 유감입니다.

아카데미과학 개발부의 이선구 부장님을 인터뷰한 「독일 대전물의 라인업을 완성하다」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는 무크지 「판터의 모든 것」에 부록으로 들어간 아카데미과학의 판터G형 모형 개발에 대한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이 키트를 꽤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었습니다.

마무리는 정경찬님의 글 「전후세계의 판터는 어떻게 되었을까」입니다. 1945년 이후 각국의 판터 운용에 대해서 소개하는 글 입니다. 무크지의 성격에 맞는 마무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록은 꽤 충실합니다. 독일군의 교범인 판터 피벨의 원문 복각판과 한국어 번역판, 그리고 웹툰 70의 작가인 김재희님의 단편만화가 있습니다. 

「판터의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좋은 시도입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둬서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첫번째 타자의 단점들을 보완하면 좋겠네요.


2020년 8월 17일 월요일

체코 정부 소유의 무장친위대 사료

 냉전의 종식은 제2차세계대전 연구에 있어 일대 전환점이었습니다. 냉전 시기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많은 사료들이 공개되면서 특히 독소전쟁 연구가 급격히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러시아 정부가 독일 정부에 반환한 사료와 동독 정부가 소장하고 있던 사료가 통일 독일정부의 소유가 된 일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동유럽의 공산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새롭게 서방에 공개된 자료도 많습니다. 체코 정부가 소장하고 있던 무장친위대 사료도 그 중 하나입니다. 프라하의 군사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무장친위대 사료들이 1990년대에 공개되면서 무장친위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2012년 출간된 Norbert Számvéber의  Waffen-SS Armour in Normandy가 대표적입니다.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가 무장친위대 사료를 소장하게 된 계기는 꽤 재미있습니다. 친위대 본부는 1944년 초 부터 베를린 북쪽의 오라니엔부르크(Oranienburg)에 보관하고 있던 서류들을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프라하 동쪽의 자스무키(Zásmuky)로 옮겼습니다. 독일이 패망하자 이 문서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소유하게 됩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 된 뒤 무장친위대 문서들은 비공개로 제한적인 접근만이 가능했습니다. 동독 정부가 1950년대 부터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와의 교류하에 무장친위대 자료 중 일부를 반환받았습니다. 동독정부는 1957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로 부터 약 10톤 가량의 문서를 반환받았는데 이것은 친위대원의 신상문서, 무장친위대의 군법회의 기록 등이었다고 합니다. 동독정부는 반환받지 못한 문서에 대해서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협조하에 마이크로필름을 촬영하고 해제를 작성했지만 동독이 붕괴될 때 까지도 이 작업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야 프라하에서 보관하고 있던 무장친위대 사료들이 본격적으로 공개되게 됩니다. 통일된 독일 정부는 체코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독일 사료들에 대한 조사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991년 부터 독일 연방문서보관소와 체코 군사문서보관소 사이에 공식 교류가 시작됐습니다. 1993년에는 이때까지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Militärgeschichtliche Mitteilungen 52호에 Zuzana Pivcová가 쓴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가 소장한 무장친위대 사료에 대한 짤막한 해제 "Das Militärhistorische Archiv in Prag und seine deutschen Bestände"가 발표되었습니다.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가 소장한 무장친위대 사료군의 특징은 연대급 부대들의 문서가 주종을 이룬다는 점 입니다. 무장친위대의 야전군~사단급 문서들은 미국이 노획하여 1970년대까지 원본을 미국이 소장하고 있다가 서독 정부에 반환했습니다. 미국은 노획한 무장친위대 문서들을 다른 독일 문서와 마찬가지로 RG242 문서군에 넣어 관리했습니다.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는 연대급 부대들의 사료를 소장했는데 이러한 문서들은 보다 미시적인 전술 단위의 연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론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에도 군단급의 상급부대 사료들이 있습니다만 미국이 가지고 있다가 독일 반환한 것에 비하면 소량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Norbert Számvéber의  Waffen-SS Armour in Normandy가 무장친위대 제12전차연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2000년대 이후 간행되고 있는 무장친위대에 관한 서적 중 많은 수가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의 사료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체코 정부가 소장한 사료들은 현재 독일 정부가 소장한 무장친위대 사료들의 빠진 부분을 보완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20년 8월 3일 월요일

밀리터리 무크지 "헤드쿼터" 창간호 판터 특집

『탱크의 탄생』을 낸 출판사 '레드리버'에서 밀리터리 무크지 헤드쿼터를 낸다고 합니다. 창간 특집호는 독일의 5호전차 '판터'로군요. 헤드쿼터 창간호에는 채승병님이 쓰신 쿠르스크 전투 당시 판터의 작전에 관한 글을 비롯해 판터를 주제로 한 글이 실린다고 합니다. 부록이 풍부합니다. 부록으로 웹툰 70의 작가인 김재희님의 단편만화가 있네요. 꽤 흥미로운 구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