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30, 2009

에바잡담 - 초호기와 제르엘의 전투에 대해서

조조로 에바 破 10회차 관람을 마쳤습니다. 이제 급한불은 거의 다 끄고 약간 여유가 생겼으니 내일 모레는 중앙시네마에서 느긋하게 서와 파를 동시 관람할 계획입니다.

이번 破에서 제가 가장 집중해서 본 부분은 초호기가 제10사도(TV판의 제르엘)를 격파하는 장면이었습니다. TV판과 유사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많아 흥미롭더군요. 물론 빔을 발사하며 제르엘을 쪼개버리는(!!!) 초호기의 박력넘치는 전투장면도 큰 화면으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몇번을 반복해서 봐도 근사했습니다.

제가 제르엘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가 처음으로 본 에반게리온이 바로 19회의 대 제르엘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에반게리온에 빠진 친구가 재미있다면서 한번 보길권하며 보여준게 19회였고 저는 처음 본 순간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르엘을 쓰러트린 초호기가 안광을 번득이고 기괴한 소리를 지르면서 네 발로 돌진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르엘을 말 그대로 산채로 뜯어먹는 장면은 어떠한 공포영화의 장면보다도 소름끼쳤고 여기서 받은 강렬한 인상은 한동안 머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처음 봤을 때는 너무나 암울하고 비장한 분위기 때문에 한 다음화 정도에 끝나는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레이는 우울한 혼잣말을 되뇌며 자폭을 하고 아스카는 절박한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제르엘에게 일방적으로 패배를 당하게 되죠. 게다가 본부가 박살났으니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마지막화가 아닌가 착각하게 만들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고 나서야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만.

그래서 에반게리온을 즐겨보게 만든 계기가 바로 제19화였던 셈 입니다.

그리고 거의 15년이 다 되어 훨씬 세련된 기술로 다시 만들어진 제르엘과의 전투를 커다란 화면으로 보게 되니 묘한 감정이 듭니다. 초호기와 제르엘의 전투는 분명 더 박진감 넘치고 호쾌하게 변화했지만 처음 봤을때 만큼의 강렬한 충격은 주지 못했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아쉽다고 해야 겠군요.

하지만 제르엘이 발령소의 메인스크린을 부수며 난입했을 때 미사토의 얼굴 표정만큼은 신극장판의 압승입니다. 아무래도 작화의 우월함이란;;; 말 그대로 사도의 침입을 허용한 데 대한 분노+마지막 방어선이 돌파당했다는 절망+이제 죽게생겼다(!)는 공포 등이 모두 나타나는 오묘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는 표정이지요. DVD가 나오면 그 장면을 캡쳐해 바탕화면으로 할 생각입니다.

Friday, December 25, 2009

하지와 제이콥스의 이승만에 대한 평가

1947년 9월, 미 육군부 차관 드레이퍼(William H. Draper)가 남조선 문제로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사령부와 미군정의 주요 인사들은 드레이퍼에게 한국의 정치정세를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물론 이 자리는 주한미군과 미군정의 입장을 옹호하고 육군부의 지원을 얻어내려는 목적이 있었으므로 드레이퍼에 대한 설명은 객관적인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은 꽤 재미있습니다. 당시 대화의 녹취록이 남아있는 덕분에 후대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을 대부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던 만큼 이 자리에서도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특히 이승만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사령관 하지와 미군정 정치고문 제이콥스는 이승만을 맹렬히 비난합니다.

드레이퍼 : 이승만도 과도입법위원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제이콥스(Joseph E. Jacobs, 미군정 정치고문) : 아닙니다. 이승만은 어떠한 공식적인 직함도 없습니다. 이승만은 여전히 조선인들에게 자신이 미국 정치인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 처럼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승만은 민족대표자대회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작은 집단에 웨드마이어(Albert C. Wedemeyer)가 그들을 방문해 회견을 할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물론 웨드마이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은 사기를 쳐 볼까 하다가 이 일로 체면만 구긴 셈입니다. 물론 이것이 문제의 근원은 아닙니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드레이퍼 : 이승만에게 과도입법위원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거나 또는 참여하지 말 것을 권유한 일은 있습니까?

하지 : 만약 이승만이 과도입법위원에 참여한다면 그의 권위는 크게 실추될 것 입니다. 이승만은 스스로를 조선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드레이퍼 : 알겠습니다. 이승만은 그런 사람인가 보군요. (이하 이승만의 미국인 로비스트 관련 내용은 생략)

(중략)

하지 : (앞부분 생략) 물론 공산주의자들이 남조선을 장악할 위험성이 꾸준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 위험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조선 우익집단들이 벌이는 짓은 우리가 이곳에서 조선인들의 지원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인들의 저항을 받으며 동시에 러시아인들을 상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승만을 추종하는 집단은 지난해 12월 이승만이 출국했을 때 남조선에서 봉기를 일으켜 이승만을 정부 수반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이러한 봉기가 일어나기 전에 조선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김구는 이승만의 계획에 따라 우익의 정부를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려 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을 죽이는 것을 포함해 무슨 짓이든지 할 생각이었습니다. 심지어 우익들은 미국인을 몇 명 살해해 미국 본토에서 미군정이 인기가 없으며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주한미군을 철군시키도록 하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승만은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승만의 추종세력은 때가 적당하다는 판단만 있으면 언제든 그런 짓을 하려 들 것입니다. 저는 우익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그들만의 단독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익들이 원하는 것은 독재정권입니다.

드레이퍼 : 물론,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된다면 이승만도 오래 버티지는 못 할 것 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 : 이승만은 단 15분도 버티지 못 할 것입니다. 이승만도 그 사실은 알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점 (정권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승만의 아내는 이승만에게 이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승만의 아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고약한 여자입니다. 우리는 이승만의 아내가 소련놈들로 부터 돈을 받아먹는건 아닌가 의심할 정도입니다. 이승만의 집단은 정권을 잡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이승만은 워싱턴을 방문했을때 국무부의 힐드링(John R. Hilldring, 국무부 민정담당 차관보)을 만난 것을 통해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귀국할 체면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의 미국인 로비스트들은 이승만이 전쟁부장관과 만날 수 있도록 하려고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승만은 이 모임에 참석했지만 우리가 이 소식을 전했을 때 전쟁부 장관께서는 너무 바빠서 이승만에게 내 줄 시간이 없었습니다. 국무부는 이승만이 조선으로 귀국할 때 군용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드레이퍼 : 먼슨(Munson) 대령이 이 항공편이 준비된 것을 알고 그것을 취소했지요.

하지 : 이승만은 중국을 방문할 허가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장개석은 여전히 임시정부의 늙은이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웨드마이어는 중국을 방문하고 있을 무렵 장개석이 김구 일당에게 미국돈 2십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20만 달러는 장개석이 2년 전에 김구에게 제공한 것 입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는 이승만이 이 돈에 손을 대려 했었기 때문입니다. 이 돈은 김구에게 주어진 것이었지만 이승만 일파는 김구의 돈을 먹으려 했습니다.

드레이퍼 : 하지 장군, 이승만과 김구는 잘 협력하지 않았습니까?

하지 : (두 사람의 협력 문제는) 그들이 무엇을 하려느냐에 좌우됩니다. 현재 이승만과 김구는 결별한 상태입니다. 작년 겨울 이승만이 출국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들은 한 패였습니다. 우리는 이승만과 김구가 과거 중국의 군벌들이 하던 식으로 봉기를 일으키려 했다는 자료를 잔뜩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이승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승만이 중국을 방문할 허가를 얻었을 때 저는 이승만에게 선박편으로 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 무렵 조선을 오가는 항공편은 모두 미육군의 항공기였기 때문에 만약 이승만이 항공편으로 가게 된다면 조선인들은 그것이 미육군이 제공한 항공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됐다면 이승만은 "미국 정부는 내가 미국을 떠날 때 비행기를 마련해 주었소. 국무부와 전쟁부가 나에게 이 비행기를 마련해 준 것이오"라고 떠들었을 것 입니다. 조선인들은 이승만이 무슨 비행기를 타고 오건, 그게 L-5건 C-54건 상관없이 그것을 이승만의 전용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승만도 조선인들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을 것이며 사람들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는 이승만이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습니다. 어쨌든 이승만은 국무부의 도움으로 비행기를 얻어 중국을 방문했고 장개석은 이승만에게 전용기를 내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지나친 대접이었으며 이승만은 장개석으로 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귀국해 조선인들에게 저를 당장 쫒아내겠다고 떠들었습니다. (이승만은) 내가 당장 떠나야 한다, 남조선에 지금 당장 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힐드링 장군이 단독정부 수립을 약속했다, 나를 제외한 미국 정부의 모든 사람들이 단독정부 수립을 약속했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이승만이 미국 방문중에 저를 지독하게 공격했기 때문에 저는 2월에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고위층에 계신 분들에게 제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변론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몇몇 국회의원들과 제가 접촉한 많은 인사들, 그리고 언론은 제가 공산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친공적인 인물이라고 보고 있었고 저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소문을 재빨리 잠재웠지만 뉴욕을 방문했을 때 이승만도 뉴욕을 방문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뉴욕의 헨리 루스(Henry Luce)는 이승만의 패거리들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며 록펠러 빌딩의 사무실 한 칸, 그리고 다른 사무실 한 곳과 행정적인 지원을 공짜로 제공했습니다. 이승만의 패거리들은 자신들을 공산주의자들의 적이라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적이긴 합니다만 조선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적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 입니다. 우리는 매년 우리를 방해하는 이 자들과 일을 함께 하기 위해 고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차관님께 말씀드리는 이유는 조선의 우익들이 싫어하지 않을 만한 인물을 이곳으로 보내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야 그 놈들에게 쫒겨난다는게 불쾌하겠지만 한 번쯤은 고려해 봐야 할 것 입니다.

'Orientation for Undersecretary of the Army Draper and Party, by Lt. Gen Hodge at 0900 23 September 1947', RG 338, Records of the United States Army Force in Korea, Lt. Gen John R. Hodge Official File, 1944~48, Entry 11070, Box 103, AG File, 340.

이승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많이 나타나지만 꽤 흥미로운 평가입니다. 특히 이승만의 권력욕에 대해서는 꽤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프란체스카에 대한 평가인데 이승만 대통령 당시 비서실에 계시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프란체스카 여사의 정치 개입문제도 다시 한번 검토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뒷부분은 나중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CHO의 댓글문제

할로스캔을 대신해 설치한 ECHO가 약간 말썽을 피우고 있군요. 아직 할로스캔으로 부터의 이전이 완전히 이루어지 지지 않아 댓글 다는 것이 지연되거나 잘 표시되지 않는 등 문제가 있습니다. 할로스캔 서비스는 공식적으로 26일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한동안은 계속 유사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트랙백이 되지 않는 이유도 할로스캔의 데이터를 완전히 이전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해결되려면 꽤 기다려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ECHO의 안내사항을 읽어보니 지금 당장 블로그에 할로스캔의 코드 대신 ECHO의 코드를 설치하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변환이 완료되지 않은 할로스캔의 댓글과 트랙백은 지워진다고 하니 기다리는 수 밖에요. 원래 ECHO로 갈아탄 이유도 할로스캔의 댓글과 트랙백을 모두 이전해 준다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한동안 불편이 계속될것 같은데 제가 댓글을 지우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시는 분들은 없으셨으면 합니다^^;;;;;

Tuesday, December 22, 2009

관계가 없는 듯 하면서도 있는것 같은 약간의 이야기

오늘 드디어 사업최종보고회를 마쳤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빴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보고를 받아야 할 제일 높은 분과 주요 실무진들이 관련 법안문제로 국회에 출석하신 덕인지 보고회는 다소 맥빠진 분위기였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지적도 있었고 영 알맹이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성공적인(???) 보고를 마치고 식사를 하다가 이번 사업과 관계가 있는 전직장관 S선생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분은 손녀들을 통해 어떤 전직 대통령과 어떤 당의 총재와 인척관계에 있기도 합니다. 이 양반에 대해서는 모두가 '귀족이다'라는 일치된 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남조선은 세습적인 귀족제 사회로 복귀한 것이 틀림없다는 썰렁한 농담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간단히 회식을 마치고 돌아와서 구글리더를 확인해 보니 몇몇 사람들의 신세한탄이 이어집니다.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좌절되었다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워하는 글을 읽으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일찌감치 제가 있어야 할 작은 자리에 만족하고 있는 입장이라 그런 좌절감을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어쨌든 그 사람이 고통을 이겨냈으면 합니다.

어쩌면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는 것 처럼 우리사회의 구조를 결정짓는 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지금은 약간의 빈자리만 남은 상태인지도 모르겠다는 암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Friday, December 18, 2009

러시아식 저녁식사에 대한 여운형의 추억

1921년, 코민테른은 워싱턴회의에 맞불을 놓는 차원에서 '극동피압박민족대회'를 개최합니다. 이 대회는 서유럽과 미국 등 서방열강의 전후처리에 실망한 식민지 지식인들의 호응을 얻었고 조선에서도 많은 대표자를 파견합니다. 여기에는 여운형, 김규식, 이동휘, 홍범도 등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민족운동의 거두들이 대거 참여하게 됩니다. 여운형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모스크바로 가게 되는데 내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상태라 고생이 꽤 심했던 모양입니다. 여운형은 모스크바를 향해 출발하기 전날의 저녁식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일부러 역부(驛夫)대신 우리를 차깐으로 안내한 러시아동무가 준비해 가지고 온 초에 불을 켜니 얼룽거리는 누런 광선의 히미한 조명이 그려내는 차실(車室) 한복판의 광경은 자못 황량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의자의 '쿳숀'은 다 떨어저서 밑바닥의 나무가 보기 싫게 노출되어 있고 천정에는 거미줄까지 보였다. 마루판에는 물론 두꺼운 먼지가 우리의 발자국을 번듯하게 색여주었다.

일행이 먼지를 툭툭털며 한복판에 모여앉어 자리를 잡고나니 곧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보다 훨신 뒤떨어져서 들어온 다른 러시아동무가 검은 나무토막을 하나 가슴에 안는 듯이하고 들어오더니 가지고 온 도끼로 패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스토-브'에 땔나무인 줄만 알았더니 그것은 의외에도 검정'빵' 이었다. 밀가루 뿐만 아니라 집푸래기 가루까지도 다분히 섞인 이 검정'빵'을 원악 오래 묵힌데다가 추위에 꽝꽝 얼어서 나무패듯이 도끼로 찍기전에는 도저히 쪼개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검정빵 밖에 연어알과 무엇인지 이름 모를 소름에 저린 생선이 우리에게 급여된 저녁음식의 전부였다. 물론 차도 붙었으나 때무든 양철찻잔과 집이나 삶은 물 같은 누르틉틉한 차물빛은 그다지 식욕을 끄는 것은 되지 못하였다. 양고기 밖에는 먹지를 않는 몽고 동무들은 물론 조선 동무들도 모도 이 심히 살풍경한 반찬에는 감히 손도 대려고 하지 않었다. 그러나 나는 연어알을 조금하고 검정빵을 찻물에 충분히 축인것을 조금 먹어 보았다. 내가 먹는 바람에 다른 동무들도 차물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각사탕도 오직 한개 씩 밖에는 차레에 오지 않었다.

그럭저럭 저녁밥의 흉내를 내고나니 이 뜻밖에 황량한 저녁식사는 우리들 일동의 활발한 이야기 꺼리가 되었다. 내일도 모레도 여행하는 동안에 때마다의 식사가 늘 이러면 어떨까하는 불안이 누구의 말틈에도 새여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론 당시의 러시아를 전국적으로 휩쓸고 지나간 저 대기근의 뒤를 이은 극도의 식량결핍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또 그 조악한 식량에 의하여서도 능히 역사가 그들의 어깨우에 얹어주는 모든 짐을 하나로 거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지어나가는 이 땅의 새로운 민중정신의 감화력이 우리의 이따위 불안같은 것은 오직 웃음거리에 지나지 못한 것임을 잘 알게 하여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呂運亨,「모스크바 印象」, 夢陽呂運亨先生全集發刊委員會, 『夢陽 呂運亨 全集 1』, 한울, 1991, 64~65쪽에서 재인용.

독립운동을 위해 모스크바로 떠나는 심각한 상황에 대한 묘사이건만 빵을 도끼로 쪼개는 부분에서는 살짝 웃음이 나오는걸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독립운동을 하려면 식성부터 좋아야 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식성이 까탈스러우니 저당시 살았다면 독립운동은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Thursday, December 17, 2009

에바 잡담

영등포 CGV에서 일곱번째로 에반게리온破를 관람했습니다.

다음주에 끝나는 일의 최종보고서 작성을 주말동안 마무리 해야하는지라 금토일은 시간이 안되니 수요일 밤에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원래는 일을 일찍끝내고 10시30분 것 부터 2회 연속으로 이어서 볼 생각이었는데 마음같이 일이 끝나는게 아니라 12시 50분 것만 보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부터 에반게리온 포스터를 나눠준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 아쉽지만 일을 마무리해야 하니 금토일 관람은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심야상영인데도 아기를 데리고 부부동반으로 오신 분이 있던데 연애시절 에반게리온 팬이 되셨던 분들이 아닐까 싶더군요.(아니면 말고요)

일곱번째 관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10번째 사도가 발령소의 메인스크린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 초호기가 돌진하며 막아내는 부분이었습니다. 사도가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 미사토의 표정이 아주 인상 깊더군요. 사도가 돌입하는 장면에서 미사토의 얼굴에 공포+절망+분노 등의 감정을 잘 담아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DVD가 나오면 이 장면을 캡처해서 바탕화면으로 쓸까 생각중입니다.) 그리고 바로 직후에 신지가 초호기로 난입해 미사토를 구해냈으니 신지+미사토도 괜찮은 조합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이왕이면 신지 하렘이 좋지만 굳이 한 명 고르라면 지금 같아서는 미사토를 밀겠어요.)

화요일에 보고를 끝내면 2009년의 일은 완전히 종결되니 그 이후에 에바를 더 볼 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도착한 책 몇권

얼마전 중국 아마존에 주문한 책들이 도착했습니다. 발송했다는 이메일을 받은 뒤 9일만에 도착했는데 지금까지 선박편으로 주문했던 것 중 가장 빨리 도착한 것 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빨리 도착한 게 10일 걸렸고 보통 2주정도 걸렸는데 드디어 배송기간이 한자리수로 내려갔군요.


뭐 언제나 그렇듯 군사서적 위주로 주문했는데 이번에 도착한 서적 중에서 가장 반가운 녀석은 이놈입니다.

『국민당군사제도사(国民党军事制度史)』는 예전에 조금 썼던 국공내전 후반기 국민당군에 대한 글을 이어서 써볼 생각으로 샀습니다. 겨울에 간단하게 써보고 싶은 글 중에 중공군이 3대전역에서 압승을 거둔 이후 국민당군이 재편되는 과정에 대한 글이 있거든요. 이 책은 상하 두권으로 되어있는데 상권은 육해공군의 전투부대의 편제와 전투서열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고 하권은 후방지원부대, 헌병, 준군사조직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상권을 조금 훑어보고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육군의 전투서열 변화를 시기별로 잘 정리해 놓아 베껴써먹기 좋은것 같습니다.


『국민당 역사상의 158개군(国民党历史上的158个军)』은 중화민국 수립부터 국공내전이 종결될때 까지 편성된 국민당군의 군(군단급)단위 부대들의 부대사를 간략히 정리한 서적입니다. 역시 국민당군의 재편성 과정에 대한 글을 쓸때 참고하려고 샀습니다.
예전에 글을 쓸때 국민당군의 편성에 관해서는 주로 『국민당군간사』를 참고했는데 참고할 만한 서적이 늘어나는건 괜찮은 일이지요.

이것들 말고는 모두 인민해방군에 대한 책인데 나중에 따로 소개를 하던가 하겠습니다.

Tuesday, December 15, 2009

2차대전 중 소련군의 주요 장비별 생산단가

넵. 땜빵포스팅입니다. 뭔가를 쓸까 했는데 생각이 안나서.

대신 2차대전 중 소련군의 주요 장비별 생산단가에 대한 표를 하나 올려봅니다. 단위는 루블입니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땜빵에는 뭔가 내용이 있는 도표를 넣는게 최고인듯 싶군요.

Sunday, December 13, 2009

翼をください - Chorale Résonances

다들 잘 아시는 그 노래입니다. 느낌이 좀 묘하지만 아주 좋군요.

히틀러 집권기 독일의 보탄(Wotan)신앙

히틀러 집권기의 보탄(Wotan, 오딘) 신앙은 과거 이글루스 시절에 댓글로 한 번 언급했던 문제인데 이글루스를 날려먹었으니 재탕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용한 책은 "그 때의 그 책" 입니다.

히틀러가 독일을 통치하던 시기(1933~1945)에는 이단 신앙이 널리 고취되었다는 서술이 많은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원인 중에는 1933년 의회에서 가톨릭 정당의 나치당 지지가 있었는데 이로인해 나치당은 집권당이 될 수 있었다. 수많은 가톨릭과 개신교 성직자들이 나치 정권을 열렬하게 지지했다. 나치 정권이 이교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은 2차세계대전 중의 전시선전을 통해 형성되었다. 신비학자(Occultist) 루이스 스펜스(Lewis Spence)는 대독일선전의 일환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오딘과 토르 신앙'으로 알려져 있는 고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신앙은 수많은 문학적 찬양의 대상이었다. 나는 민속학과 신화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고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신앙이 다른 하급 종교는 물론 폴리네시아나 고대 페루의 신앙과 비교하더라도 특별히 품격있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고대 독일신앙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극단적인 나치 광신자들이 부활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히틀러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몰락한다면 인위적으로 부활시킨 다른 이교신앙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히믈러와 헤스라는 두 명의 '극단적인 나치 광신자'들은 우수인종이 미래의 지배자가 된다는 믿음을 고무하는 아리아 신비주의를 적극적으로 추종했던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1941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보탄(Wotan) 신앙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 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야. 우리의 고대 신화는 기독교 신앙이 확립되었을 때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스펜스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군사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국가사회주의를 "나치의 이단 교회"인 다신신앙과 결부시키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존 요웰(John Yeowell)의 최근 연구는 다신교도들이 나치 독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커녕 박해받는 존재였다는 점을 밝혀냈다. 다신종교의 지도자들은 나치정권에 의해 탄압받고 체포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루네마이스터(Runemeister) 프리드리히 베른하르트 마르비(Friedrich Bernhard Marby)는 1936년에 체포되어 이후 9년동안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마르비만 체포된 것이 아니었다. 1941년에 하인리히 히믈러의 명령에 의해 수많은 다신교와 밀교 단체가 불법화 되었다.(이 중에는 보탄 숭배자이며 아리아주의자였던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추종자들도 포함되었다.) 수많은 다신교도들이 다른 히틀러 정권의 희생자들처럼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Prudence Jones and Nigel Pannick, A History of Pagan Europe, (Routlege, 2000), pp.218~219

물론 여기서 제가 인용한 구절은 사실의 일부분을 전달할 뿐 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프리드리히 마르비가 탄압받았던 원인으로는 다신교간의 교파 분쟁으로 히믈러의 지원을 받은 교파가 승리한 결과라는 주장이 있으며 히틀러의 경멸에도 불구하고 나치당의 소수 인사들이 이교도 신앙에 심취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치 집권기를 통해 독일의 전통 신앙이 광범위하게 부활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와 만화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이런 이상한 선입견이 확산되는 것은 찝찝한 일이지요.

Saturday, December 12, 2009

할로스캔으로 부터 해방(???) 되었습니다.

할로스캔의 서비스가 2009년 12월 26일부로 종료된다기에 JS-KIT의 ECHO로 갈아탔습니다.

1년에 9.95달러인 유료서비스인데 할로스캔의 데이터를 그대로 이어받아 쓸 수 있으니 이것을 쓰는게 좋을 것 같더군요. 아무래도 2년 가까이 쌓인 댓글을 날려먹는 것은 아까우니 1년에 만원을 내는게 좀 더 나을 듯 싶었습니다.

한번 써 보니 한글지원기능이 확실히 할로스캔보다 좋아진 것 같습니다. 세글자 이상의 한글 아이디도 잘리지 않고 제대로 표시되니 앞으로 방문객 분들의 아이디를 몰라서 당혹스러울 일은 없어질듯 싶군요. 그동안 할로스캔의 부족한 한글지원 기능으로 애를 먹었는데 이것하나는 해결된 것 같습니다.

유료서비스라 살짝 아쉽지만 기존의 댓글이 그대로 남았으니 적당히 만족할까 합니다. 일단 써보고 신통치 않으면 다른 서비스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추가 - ECHO의 공지사항을 보니 아직 할로스캔의 데이터 전환이 완료되지 않아 트랙백은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댓글의 경우 몇가지 선택사항이 있는데 댓글이 등록되면 블로그 운영자가 댓글을 선별해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있더군요. 일단 저는 게을러서 댓글이 올라오는대로 달리도록 해 놓았습니다. 욕설이나 광고메일만 골라서 삭제하면 되겠지요.

앞으로도 욕설이나 광고메일이 아니라면 삭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ECHO 서비스는 할로스캔보다는 안정적일 듯 싶으니 예전 처럼 지우지도 않은 댓글을 지웠다고 난리를 치는 인간들은 더이상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추가2 - 새로 설치한 댓글창에 글자가 너무 작게 나온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ctrl을 누르시고 마우스휠을 굴리는 것으로 글자크기를 조정하실 수 있습니다.

Wednesday, December 9, 2009

Weapons and Warfare in Renaissance Europe

번동아제님이 쓰신 군기시(軍器寺)터 발굴에 대한 글을 읽던 중 '건물지 11호'에서 조선시대의 화약이 출토되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번동아제님이 지적하신 것 처럼 이를 통해 조선시대 화약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읽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Bert S. Hall의 Weapons and Warfare in Renaissance Europe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중세말기~르네상스 시기의 군사적 발전을 '기술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인데 3장 전체를 할애해 15세기의 화약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어서 읽을 당시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생각이 난 김에 이 책에 대해서 조금 소개를 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출간한 기술사연구(Johns Hopkins Studies in the History of Technology)의 열 다섯번째 저작입니다. 몇 년전 2차대전에서 근대유럽전쟁 전반으로 관심사가 옮겨가면서 근대전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기의 전쟁에 대해 쓸만한 서적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Bert S. Hall은 중세말~르네상스 시기의 군사기술이 전쟁의 양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라면 유사한 주제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과 어떠한 차이점이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올 법 합니다. 네. 그래서 Hall은 화약 무기에 대한 기술적 분석과 전술의 변화를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약 무기의 생산을 뒷받침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분석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저자는 14세기에 공성병기로서 화약무기의 사용이 확산된 데 대해 대포의 위력뿐 아니라 1380년대를 기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한 화약의 가격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반에 걸쳐 화승총으로 대표되는 개인용 소화기가 급속히 발달하게 된 데에도 단순히 화약의 개선과 기술적인 요인만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자는 화승총의 개발과 확산이 독일과 이탈리아에 의해 주도된 데 주목하여 이 지역의 분열된 정치체제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봅니다. 즉 영국, 프랑스와 달리 작은 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치자들은 공세적인 전쟁을 치르기 보다는 자신들의 영역을 방어하는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이때문에 방어 전투에 적합한 개인용 소화기가 급속히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입니다.(이러한 주장은 초기 화승총의 운용이 야전에서도 창병과 참호의 지원을 받아 방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단순히 군사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전쟁의 변화를 고찰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중한 설명으로는 해결하기 곤란한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또한 기술적 측면에 대한 분석도 충실합니다. 15세기 화약 생산을 분석한 3장과 초기 화약무기의 탄도적 특성을 분석한 5장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장의 경우 20세기에 실시된 15~16세기 화약무기에 대한 실험 등 초기 화약무기의 기술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을 분석하여 기술적 한계가 어떻게 화약무기를 활용한 전술을 형성했는지 고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1988년 부터 1989년 사이에 오스트리아에서 실시된 실험인데 이 실험의 결과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저자는 활강식 총신과 탄두의 형태로 인한 낮은 명중율과 원거리에서의 위력 부족으로 초기의 소화기는 근거리에서 대규모 일제사격을 퍼붓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런 전술에서는 명중율 보다 발사속도가 중요해 질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총신에 강선을 파는 방식으로 명중율을 높이는 방법이 있음에도 널리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장전속도가 느려져 대규모 보병전투에는 약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이런 구성은 꽤 마음에 듭니다. 이렇게 한 시기의 전술적 변화에서 다른 시기의 전술적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면서 중간에 변화의 요인이었던 기술적 문제에 대해 별도의 장을 활용해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지는 장을 이해하는데 훨씬 편리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술적 변화와 전술적 변화를 함께 서술하는 것 보다 명료한 구성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예로 들고 있는 역사적 사례가 매우 풍부하다는 점 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영미권 학계에서 이 시기의 전쟁을 기술 할 때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어느정도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독일, 이탈리아, 보헤미아, 스페인 등 기술적, 군사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다른 지역의 사례도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후스전쟁과 이베리아 반도 재정복전쟁 말기의 화약무기 운용에 대한 부분입니다. 후스전쟁에 대한 군사적 분석은 꽤 드문편이라 읽으면서 반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대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Monday, December 7, 2009

용자왕 이카리 신지

오늘 아침에 삼성역 메가박스에서 '용자왕 이카리 신지'를 조조로 관람했습니다. 이번이 네번째로군요.

제가 평일에도 이러고 다니는 것을 알면 제게 일을 맡긴 분들이 엄청나게 황당해 하시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재택근무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날자만 맞춰드리면 되는 것이죠.(아닌가???)

그리고 이렇게 재미있는게 극장에서 하는데 놓칠 수는 없잖아요.

이번 '용자왕 이카리 신지'는 정말 감동했습니다. 진심입니다. DVD 구매는 당연히 확정.(뭐, '序'도 있으니)

눈에 빨간불 들어온 신지가 제르엘을 떡실신 시키고 레이를 구해내는 장면은 정말 '유치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진심입니다. 저는 유치한게 너무 너무 좋습니다.

신지가 이번 극장판에서 레이를 공략(???)하는데 성공했으니 남은 두 편의 극장판에서 분발하여 모든 여캐들을 구원해 주길 희망합니다.(혹자는 레이는 엄마라서 안된다는데 그러시면 안되죠)

아스카가 떡실신 당한 것은 안타깝지만 다음편에 부활할테니 그것으로 됐고.

마지막 편의 엔딩이 소외받는 리츠코까지 포함한 하렘완성으로 끝나게 된다면 저는 진심으로 감동할 것입니다. 정말이에요.

※ 이번 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음악은 사하퀴엘을 저지하기 위해서 에바 세대가 질주할 때 깔리는 배경음악입니다. 친절한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군요.

후발주자가 누리는 이점

요즘 읽는 어떤 책의 서문에 꽤 마음에 드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현대 정치사에 대해 역사학적 접근이 가지는 이점에 대한 글인데 핵심을 잘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볼까합니다.

동방정책(Ostpolitik)에 대한 연구는 넘쳐나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접근을 할 여지가 있는지(나의 연구는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동방정책에 대한 연구에 기여할 여지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매우 간단하다. 이 연구는 1차사료에 근거하여 신동방정책(新東方政策)이 공식화되고 구체화되어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최초의 연구이다. 베르너 링크(Werner Link)가 옳게 지적한 것 처럼 최근 공개된 문헌 자료들에 의거해 신동방정책을 총괄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역사가들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최근 공개된 문헌 자료들은 과거 동방정책에 대한 연구들이 구술자료, 신문, 또는 개인이 소장한 부분적인 문서를 활용했던 것과는 달리 외교문서와 그밖의 문헌자료들을 통해 '총괄적인 역사상'을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동방정책이라는) 잘 알려진 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새로운 연구를 촉진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von Dannenberg, Julia. The Foundations of Ostpolitik : The Making of the Moscow Treaty between West Germany and the USSR,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p.11

현대사에 대해 역사학적 접근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을 잘 보여줬다는 생각입니다. 현대 정치 문제는 자료의 문제 때문에 정치학 등 다른 학문이 먼저 다루게 됩니다. 현대 정치문제는 1차사료라고 할 수 있는 정부문서가 공개되어야 본격적인 역사학적 접근이 가능해 집니다. 그러나 정부의 공문서, 특히 외교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문서들은 공개가 수십년간 제한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역사학은 현대 정치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대부분 정치학에 대해 후발주자일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니 역사학적인 접근이 시작될 때 쯤 되면 해당 주제는 이미 수십년 동안 정치학 등 다른 학문 분야에서 많은 연구성과를 내놓은 이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연구들이 활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료의 활용은 (뒷북을 치는) 역사학적 접근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후발주자가 누리는 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unday, December 6, 2009

아이구 좋구나!

타미야에서 근사한 녀석을 하나 뽑아주는군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타미야의 1/48 Sd.Kfz 251은 AFV클럽 물건보다 살짝 아쉽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 시리즈가 꾸준히 나온다는게 아주 즐겁군요.



ドイツ ハノマークD型 “グランドスツーカ” ロケットランチャー搭載型


사실 24구경 75mm를 탑재한 4호전차를 신제품으로 뽑아주거나 셔먼 계열을 계속해서 1/48로 뽑아주길 원하지만 이런것도 아주 나쁘진 않습니다. 2차대전기의 AFV를 1/48로 뽑아준다는게 즐거운 일이죠.

Saturday, December 5, 2009

중국서적 구입문제

책을 사다 보면 가끔씩 이해가 안가는 일이 있습니다.

대 표적인것이 중국서적 구입문제입니다. 중국은 바로 바다 건너 마주보는 나라이고 한국과의 교역규모도 엄청난데 희한하게도 중국책을 구입하는 것은 은근슬쩍 까다롭습니다. 작년에 채승병님도 중국 인터넷 서점의 이용문제에 대해서 글을 한편 쓰셨는데 이문제는 정말 사람을 은근슬쩍 화나게 합니다.

실망스러운 중국 인터넷서점 당당망(当当网)

예를들어 국내의 중국서점들은 구입할 수 있는 책이 한정되어 있고 기간도 오래걸리는 편 입니다. 사당역의 중국도서문화중심이나 대학로의 화문서적이 나 주문을 넣으면 들어오지 않는 책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데다 화문서적의 경우 주문할 때 시기를 놓치면 다음달 주문할 때 책을 구해오니 최악의 경우 6주 이상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6주씩이나 기다려서 원하는 책을 구하지 못하면 정말 울화통이 터지죠. 국내 중국서점들이 실제 환율에 100원 정도 더 얹는 환율을 적용하는 것이야 중국 인터넷 서점에서 직접 구입할 경우 붙는 황당한 배송료와 비교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느린데다 필요한 책도 구하지 못하는건 정말 짜증나는 일입니다.

※ 얼마전 화문서적에 책을 사러 가보니 연말 특가라고 1위안에 300원에서 270원으로 인하한 환율을 적용하고 있더군요.

중국 인터넷 서점들도 짜증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아마존은 배송면에서 나쁘지 않지만 의외로 없는 책이 많습니다. 당당망은 재고가 충실한 편이지만 배송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해결책이라면 중국 아마존의 취급 도서가 더 많아지거나 당당망의 배송 서비스가 개선되거나 하는 것일텐데 단기간 내에 해결되긴 어려울 듯 싶습니다.

Wednesday, December 2, 2009

모스크바 용팔이

한국전쟁당시 중국이 무기 구입을 위해 소련에 대표단을 파견했을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공군은 제4차 전역(1951년 1월 25일~1951년 4월 21일)에서 비로소 대규모로 투입되기 시작했으며 그 뒤로 중국인민해방군은 한국전쟁에 총 10개 전투기사단(총 22개 사단 중)을 순환체제로 투입했다. 소련측은 처음에는 충분한 숫자의 MiG-15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MiG-9만 판매하려했다. 중국측이 구식화된 MiG-9로는 미국의 최신예 항공기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항의하자 소련 당국자들은 중국측이 소련제 무기를 깎아내린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 문제를 보고 받자 중국측이 372대의 MiG-15를 구입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중국과 소련의 협력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굳건해져갔으며 그것은 저우언라이가 1960년에 스탈린은 한국전쟁이 진행되어 가면서 중국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다고 말하게 할 정도였다.

Goncharov, Lewis and Xue, Uncertain Partners : Stalin, Mao, and the Korean War,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3, p.201

아마 당시 중국측의 불평에 발끈했다는 소련측 담당자도 MiG-9가 F-86의 상대가 된다고는 믿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 대표단과 소련측 간에 오고간 대화의 녹취록이 있다면 꽤나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