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8, 2009

공산당(;;;;)의 난행(;;;;)

꽤 유명한 이야기죠. 반공물에서 많이 다루어진 여수 경찰서 여경 살해에 대한 어떤 '반공서적'의 묘사입니다.

폭동지휘자는 다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또 여자 경찰관은 어떻게 죽였을까?

여수경찰서 보안과 민원담당 정현자(鄭玄子) 순경은 경찰서에 잡혀 온 후 반도들에게 옷을 갈기 갈기 찢겼다.

"하. 고놈의 계집 젖퉁이 좋은데, 죽이기는 아까워...."

반도들은 정순경의 목에 쇠사슬을 매어가지고 역시 시내를 일주하였다. 1시간 후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다.

"너 똑똑히 말해. 고서장 하고는 과거 어떠한 관계였어, 엉!"

정순경은 말이 없었다.

"남조선 경찰은 남자녀석들만 지독한 줄 알았더니 계집은 더 독하구먼...."

"시간없다. 처치해 버려!"

이 말이 떠러지자 마자 여경에게 2발의 총탄을 퍼부었다. 여인이 나체로 넘어진 것을 보자 반도들은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너무 일찍 죽였어."

반도 중 어느 한 녀석이 뒤에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宋孝淳, 『붉은 大虐殺』, 甲子文化社, 1979, 123-124쪽

네. 묘사가 참 저질이죠;;;; 나름대로 경의를 표하고 싶은 상상력입니다. 저자께서 요즘 활동하신다면 인터넷 야설로 이름 좀 날리셨을 듯.

그리고 백두진(白斗鎭)은 국회의장씩이나 한 양반이면서 이런 덜떨어진 책에 추천사를 써 줬습니다. 사실 책 자체의 내용 보다 이 양반의 추천사가 더 한심합니다.

14연대 반란 당시 여경을 나체로 살해했다는 소문은 반란 당시 부터 돌았는데 이 이야기를 포함해서 여순사건 당시 돌았던 괴소문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을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갑자문화사는 반공서적을 많이 찍은 출판사인데 이 출판사의 또 다른 걸작(?)으로는 '북괴 여자 암살공작조의 정체'를 파헤친 『모란꽃 소대』가 있습니다. 이건 소재도 그렇거니와 더 한심합니다. 땜빵 포스팅에 적합한 책이라고나 할까요.

Tuesday, August 25, 2009

아 짜증나

예전에 썼던 글에 뻘플이 계속 달리고 있다.

난독증 환자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남조선이 실질문맹률은 꽤 높다더니 사실인가보군.

짜증나고 피곤하고 귀찮아서 댓글은 안달란다.

Thursday, August 20, 2009

러시아 국방부의 임금 체불;;;;

러시아 북해함대의 군함들을 수리하는 로슬야코보(Росляково) 조선소의 노동자들이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Again payment delays for shipyard workers

이 조선소 노동자들의 임금은 러시아 국방부가 직접 지급한다고 하는군요. 이미 올해 초에도 한 차례의 임금 미지불 사태가 있어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했었는데 밀린 임금이 지불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또 임금 체불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러시아군은 군 간부들의 월급도 충분히 챙겨주지 못하는 형편이니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 일 입니다만 안습이군요.

그리고 이 조선소는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키로프급 미사일 순양함을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곳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설 조차도 임금을 지불 못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걸 보면 러시아군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허세를 부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듯 싶습니다.

Wednesday, August 19, 2009

독일 영토 내에서의 전술핵 사용문제

sonnet님께서 아데나워 총리의 핵무기에 대한 시각에 대해서 소개해 주셨습니다.

저도 독일과 핵무기 문제에 대해서 읽은 것이 조금 있어서 댓글을 하나 달았는데 생각해 보니 기억에 의존해 쓴 것이라 원래 읽은 내용과 약간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댓글로 단 내용을 올려봅니다.

1964년 11월에 있었던 미국 국방부장관 맥나마라와 독일연방공화국 국방부장관 하셀(Kai-Uwe von Hassel)간의 회담에서는 소련의 침공시 대응방안이 논의되었습니다. 관련 문서는 1998년에 기밀해제 되었습니다. 이 회담의 요약본에 따르면 독일측은 전술핵 사용을 독일 영토내로만 한정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프라이탁(로링호벤, Bernd von Freytag-Loringhoven) 장군은 설명을 계속하면서 만약 초기에 ADM(Atomic Demolition Munitions)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략군의 공격 작전을 중단시키지 못 한다면 서방측은 방어 지대에서 재래식 전투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략군의 숫적 우세를 감안한다면 서방측은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방어군이 격파될 위험에 처한다면 전술핵무기(nuclear battlefield weapons)를 지체없이 선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만약 핵무기의 선별적인 사용으로도 침략을 저지할 수 없다면 확대(escalation)가 불가피해질 것이다.

(중략)


(독일) 국방부장관은 독일측의 개념은 지연지대(Delaying Zone) 내에서는 오직 ADM만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독일측은 ADM의 사용은 서독의 영토내로 한정할 것이기 때문에 확대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또한 ADM을 사용한다면 침략군에게 공격을 계속할 경우 더 높은 단계의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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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inuing with the briefing, Gen von Freytag pointed out that if early firing of ADMs did not force the aggressor to cease his offensive operations the West would have to continue the conventional battle in the defense area. In view of the numercial superiority of aggressor forces, the West must expect heavy losses.

If the defending forces are in danger of destruction, nuclear battlefield weapons must be selectively employed immediately. If selected employment of nuclear weapons does not stop the aggression, it will no longer be possible to avoid escalation.

(중략)


The Defense Minster summarized the German Concept, stating that in the Delaying Zone the Germans would use only ADMs. The FRG believes this will not lead to escalation because these would be employed on West German Soil. This would also be a clear demonstration to the aggressor that continuation of the attack would result in a Higher Level of Response.

'Memorandum of Conversation : Secretary McNamara's Meeting with FRG MOD von Hassel, 12-13, November', RG 200, Box 133, pp.5-6

독일측의 입장이 안습인 것은 핵무기를 함부로 쓰면 핵보복으로 독일이 쑥대밭이 되겠지만 쓰지 않으면 빨갱이들에게 밀려버린다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충안으로 '독일 영토에서만' 전술핵을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내 놓고 있습니다. 독일측은 초기에 전술핵을 사용한다면 바르사뱌 조약기구의 공세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프라이탁 로링호벤 장군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 만약 그게 먹히지 않는다면 전면 핵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러나 저러나 박살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자국 내에서 핵무기를 쓰자고 제안해야 하니 안습입니다.

Sunday, August 16, 2009

[美利堅史] 권42 빌 클린턴 본기

[美利堅史] 권42 빌 클린턴 본기

변화(Change) 원년(오바마 원년) 3월, 북괴가 두만강을 유람하던 '로라 링'과 '유나 리'라는 부녀자 두 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끌고 간 일로 천하가 소란스러웠다. 조정에서도 이들을 구할 방도가 없어 근심만 할 뿐이었다.

클린턴 태상황제가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백성들의 어버이가 되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곧 예부(禮部)에 전하여 평양으로 가 부녀자들을 구해 올 뜻을 밝혔다.

변화 원년 8월, 태상황제가 비거(飛車)를 타고 평양에 이르니 추장 김정일이 크게 놀랐다.

"미리견의 태상황제는 호색한이라 들었는데 지금 평양에 온 것을 보니 필히 기쁨조를 취하러 온 것이다."

김정일이 근심하니 여러 두목들이 앞다투어 간하였다.

"미리견의 태상황제는 호색한이라 평양에 오래 머무르면 반드시 큰 화가 될 것입니다. 평양에 처녀의 씨가 마르기전에 일전에 사로잡은 미리견의 부녀자들을 돌려보내소서."

김정일이 두목들의 말을 옳게 여겨 사로잡은 부녀자들을 돌려보냈다.

클린턴 태상황제가 사로잡힌 부녀자들을 구해 돌아오니 모든 백성들이 그 덕을 찬양하였다.

그러나 부녀자의 가족들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니 이웃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이렇게 기쁜 날에 오히려 수심이 가득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로라 링의 모친이 눈물을 흘리며 말 하였다.

"태상황께서 색을 밝히는것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제 여식이 태상황 폐하와 같은 비거에 탔으니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웃 사람들도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하였다.

Friday, August 14, 2009

미국 정부의 동방부대 소속 포로 처리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포로 관리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찾았습니다. 한국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입니다만. 2차 대전 중 동방부대(Osttruppen) 포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그래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격리를 하기 이전인 전쟁 초기에 수많은 독일 포로가 수용을 위해 미국으로 이송되었다. 이들 포로 중 약 4,300명이 뒤에 소련 국적자로 판명되었다. 이들의 존재가 밝혀지자 이 포로들은 곧 다른 독일인 포로들과 격리되었으며 소련으로 송환시키기 위해서 미국에 파견된 소련 대표단의 심사를 받을 특수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소련정부가 이들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일반 (독일) 포로와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소련은 뒤에 가서야 이들을 소련인으로 취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 포로들은 소련 당국이 선박편을 준비하는 것에 맞춰 소련으로 송환되었다.

George G. Lewis and John Mewha(1955), History of Prisoner of War Utilization by the United States Army, 1776-1945, Department of the Army, p.148

소련 국적의 독일군 포로에 대한 내용은 이게 전부여서 매우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흥미로운 점이 있긴 합니다. 먼저 미국으로 이송된 동방부대 소속의 포로가 4,300명 정도라는 겁니다. 생각보다는 적은 숫자이고 외교적으로 특별한 사례이기 때문에 만약 뒤에 관련 연구를 한다면 의외로 수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소련정부와 송환 협상도 이루어 졌으니 관련 문서가 별도로 분류되어 있을 것 같네요.

두 번째는 소련 정부가 초기에 이들의 존재를 부인했다는 점 입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수천명의 자국 국민들이 독일군의 편에 서서 총을 들었다는게 알려지면 이래 저래 난감할 것 입니다. 그래도 반역자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빨리 송환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씁슬함

전두환前대통령, DJ 병상찾아 쾌유기원

씁슬한 기사로군요. 기사의 일부만 발췌해 봅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전직 (대통령) 들이 제일 행복했다"며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 10년 가까이 초대받아 세상 돌아가는 상황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치켜세웠다.

예. 전두환은 역사의 승리자는 될 수 없겠지만 인생에서는 승리를 거둔것 같습니다.

우울하군요.

Thursday, August 13, 2009

The Ideological Origins of Nazi Imperialism, 그리고 잡담 약간

Woodruff D. Smith의 The Ideological Origins of Nazi Imperialism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읽은지 꽤 돼서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어수선해서 그런지 한 번 더 읽었지만 읽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최근의 ‘간도떡밥’ 때문인지 재미있게 읽히긴 하더군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인 9장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입니다. 저자인 Smith 또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제국주의적 정서’가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1920년대에 제국주의적 팽창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는 1926년에 출간된 그림(Hans Grimm)의 소설 “Volk ohne Raum”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유사한 종류의 소설 중 성공한 작품으로 1926년부터 1935년까지 315,000부가 팔렸다고 하는군요.
이 소설의 저자인 그림은 유럽 외부의 식민지 획득을 옹호하고 Lebensraum을 동유럽에서 찾는 나치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팽창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Lebensraum 사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며 정치적 보수주의를 확신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게 읽힌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얼마 전 튀어나온 간도 반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간도 반환 문제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 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주기적으로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같은 언론사가 간도 회복 캠페인 같은 짓을 앞장서서 하기도 했지요. 2009년이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간도 떡밥은 미래에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런 대책 없는 망상을 무책임하게 유포하고 있는 대중매체들입니다. 한국이야 독일 같은 강대국이 아니니 극우 정당이 집권해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개념 없는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판을 치는 것은 단순히 웃어 넘길 일은 아닙니다.

독도와 같이 민감한 문제가 튀어 나올 때 마다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호들갑에서 볼 수 있듯 민족주의적인 정서는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입니다. 그리도 한반도 균형자론 같은 외교적 망신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싸구려 민족주의를 팔어먹으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것은 어떻게든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끼칠 것 입니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나치 독일처럼 파국적으로 폭주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Monday, August 10, 2009

스탈린 동지의 농담실력

스탈린 동지는 농담에 일가견이 있으셨다죠.

나는 아첨꾼을 정말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찬사의 말을 지나치게 하면 그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낍니다.

1949년 7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류샤오치에게 스탈린이

Sergei N. Goncharov, John W. Lewis, and Xue Litai, Uncertain Partners : Stalin, Mao and the Korean War,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3), p.232

이 말을 믿지 않으면 시베리아 힐튼 장기 투숙객이 됩니다.

Saturday, August 8, 2009

대륙의 기상

Uncertain Partners을 읽다보니 각주에 재미있는 내용이 하나 있더군요.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뒤 국내의 치안 안정을 위해 대대적인 반혁명진압운동을 벌였는데 이 운동의 성과가 꽤 엄청납니다. 류샤오치가 중국공산당 제7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이 운동으로 처형된 인원이 71만명, 징역에 처해진 인원이 129만명, 사회교화형에 처해진 인원이 123만명이었다고 합니다.
뒤에 마오쩌둥이 루산(廬山) 전원회의에서 이 운동기간중 백만의 반혁명분자를 처형했다고 이야기 한게 과장은 아닌 셈이죠.

The Road to Terror에 따르면 스탈린의 대숙청이 절정에 달했던 1937년 부터 1938년까지 소련에서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된 인원이 68만명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반혁명 진압운동도 1950년 12월 부터 1952년까지 진행되었으니 기간으로 볼때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규모입니다.

게다가 반혁명 진압운동과 함께 토비(土匪)의 토벌도 진행되어 1950년 부터 1952년까지 140개 사단이 이 작전에 투입되었으니 굉장하지요. 밖으로는 미국과 싸우는 와중에 국내에서도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셈 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대륙의 기상인듯. 물론 뒤에 닥칠 대약진이나 문화대혁명에 비하면 예고편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만.

Thursday, August 6, 2009

저도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간혹 링크를 보면 트위터에 걸린 링크를 따라 오시는 분들이 있으시더군요. 왠지 재미있어 보여서 저도 부화뇌동해보기로 했습니다.

주소는 대략 이렇습니다.

http://twitter.com/straylittlelamb

원래는 예전에 漁夫님께서 하사하신 Astray Little Lamb이라는 이름을 쓰려 했으나 애석하게도 글자수 제한에 걸리더군요. 그 결과 앞의 A를 떼고 Stray Little Lamb이 돼 버렸습니다(;;;;) 뭐 그래도 Astray에서 뒤의 Y가 빠진것 보다는 나았을 듯 싶네요.

그랬다면 Astral-ittle Lamb이 되었을 듯...

방문해주시는 분들 중 트위터 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주소나 이름 좀 알려주십쇼.

Wednesday, August 5, 2009

스탈린의 생일선물

1949년 겨울, 우리의 마오 주석은 스탈린의 70회 생일을 앞두고 선배 예우를 위해 작은 성의표시를 하기로 합니다.

산둥분국 :
스탈린 동지께서 올해 12월 21일에 70회 대수(大壽)를 맞이하시오. 당중앙은 산둥산(産) 배추, 무, 골파, 배를 선물로 보내기로 결정했소. 이 전보를 받고나서 3일 이내(즉 12월 4일 이전)에 각각 5천근, 전체 2만근을 구입하면 중앙에서 수송할 비행기를 지난(濟南)으로 보낼 것이오. 비행기는 12월 4일 지난에 도착할 것이오. 시간에 주의하시오. 동지들은 위에서 말한 각 물품(배추, 무, 골파, 배)을 살 때 가장 좋은 것을 고르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오.

(당)중앙, 12월 1일 오후 5시

「中央关于为斯大林送寿礼给山东分局的电报」, 『建国以来毛泽东文稿 第一冊』, 中央文獻出版社, 1987, p.172

어딘가 황제가 오랑캐에게 물품을 하사하는 느낌이 납니다.
어딘가 오랑캐가 황제에게 조공하는 느낌이 납니다.

Tuesday, August 4, 2009

아흙... 나의 소중한 추억이....

지난달에 이준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포스팅이 올라왔습니다.

아아, 마침내 이 책도 나왔구나

저도 국민학교 시절에 계몽사 문고판으로 감명깊게 읽었던 터라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다고 해서 큰 기대를 했습니다. 읽은지 오래되어 단편적인 구절만 머리에 남아있었지만 압제자 폴란드군대에 맞서 '독립을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카자크들의 전쟁은 그 당시 정말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새로 출간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일단 한번 읽어보고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서점에 가서 한 번 읽어 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읽고 나니 흥이 깨졌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 보니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이 폴란드 농민들을 상대로 벌이는 학살행각도 나오더군요;;;; 어릴때는 주인공의 투쟁이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됐는데 다시 한번 읽고나서 주인공의 잔인함에 놀랐습니다;;;; 소설 중에서는 여자건 어린아이건 상관없이 주인공의 칼질에 요단강을 건너더군요.

책의 번역도 잘 된 것 같고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가 날아가 버려서 사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졌습니다;;;;

잡담하나. 어릴때 이 소설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Cossack라는 게임이 출시됐을 때는 정품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카자크를 선택해 폴란드군대를 무찌르고 놀았지요.

Monday, August 3, 2009

Strangers in a Strange Land (2)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의 2층에는 '동북아자료실'이 있습니다. 이 동북아자료실은 '국가지식포털'에 나와있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 '동북아관련 정책입안 및 조사ㆍ연구활동을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료실에는 러시아, 중국, 일본 등에서 출간된 관련 서적들이 주로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뭔가 요상한 책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것과 같은 책 들이지요.


넵. 체르카시전투에 대한 더글러스 내쉬(Douglas E. Nash)의 역작, Hell's Gate의 일본어판 입니다. 아주 재미있고 좋은 책이긴 합니다만 비치되어 있는 곳이 이 책의 주제와는 뭔가 맞지 않다 보니 참 기묘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국민의 세금이 올바르게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만...

그런데 일본어판은 상,하 양권으로 나뉘어 발간되었고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상권만 있더군요.

반가우면서도 기묘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잡담 하나. Hell's Gate에 대해서는 채승병님 블로그에 좋은 서평이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 헉. 다시 확인해 보니 채승병님 블로그의 링크가 깨져있습니다. 죄송;;;;

잡담 둘. 사실 일본어판을 보고 감동받은 게 작은 판형으로 만들어 두권으로 나누었다는 점 입니다. 영어판은 큼지막해서 한가할 때 뒹굴면서 보기에는 부담스러운 크기입니다. 영어판이 왜 이렇게 큼지막 한지는 도데체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Saturday, August 1, 2009

추억의 General 시리즈들...

sonnet님 블로그에 달린 답글 중에서...


Peoples General의 국내 발매 금지에 상처받은(?) 분이 계셨다니 이렇게 반가울수가!

저는 Panzer General 2를 너무나 재미있게 한 덕분에 SSI에서 동일한 엔진을 사용한 3차대전을 다룬 게임이 나온다고 하기에 엄청나게 기대를 했었습니다. 아. 그러나 이게 왠일인지.

정권이 교체되자 '남북간의 전쟁'을 다룬 게임이라는 이유로 피플스 제너럴의 국내 발매가 좌절된 것 이었습니다. 상식 이하의 일이다 보니 공무원들에게 실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뱀다리...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용산에서 떨이로 팔고 있는 Panzer General 3D를 구입해서 해 봤는데 너무나 재미가 없었습니다. 최대 100개 까지의 유닛으로 부대를 편성할 수 있던 2편에 비해 규모가 줄어든데다 좀 신통치 않은 3D 그래픽을 사용한 덕에 실망이었습니다. 2편의 수채화같은 배경은 정말 일품이었지요.

Panzer General 1부터 쭉 해본 입장에서 역시 최고로 칠 수 있는 것은 2가 아닌가 싶습니다. Peoples General을 해 봤다면 순위가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약간의 추가 설명

지난번의 글, 몇 가지 궁금한 점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우마왕님이 지적하신 기본적인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댓글의 특성상 짤막한 답변을 남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것은 오해의 소지를 남기는 경우가 많지요. 짧은 답글이라 하더라도 논리적인 완결성은 갖춰야 하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는 것은 좀 곤란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가 이루어 졌으니 제가 최초의 질문을 했던 이유에 대해서만 약간의 보충 설명을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으신 분들이 있으면 곤란할 테니 말입니다.

처음에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우마왕님이 기본적인 논지인 전차포 문제에 이외에 몇 가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추론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번 이야기를 오가게 한 ‘우마왕님의 과연 서방 전차포가 소비에트 전차포를 넘어선 적이 있기는 했나?’로 다시 한 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해당 포스팅의 배경이 된 1960-61년에는 서방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가졌다고 착각할 수 있었지만 소비에트는 다음해에 115mm 활강포와 BM-3/6 APFSDS탄을 장착한 T62를 등장시켜 잠시나마 우위를 가졌다는 서방의 착각을 떡실신시킵니다.
(1970년대 이색렬의 IMI가 105mm APFSDS탄 M111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독일을 시작으로 서방 각국이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에 나섰다는 사실이야말로 당시 서방 각국이 소비에트 전차포에 대한 열세임을 느끼고 있었다는 반증이지요. 그랬기에 당시 서독도 레오1에 만족하지 못하고 MBT/KPz70 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지요.)

굵게 표시한 부분들은 우마왕님이 근거로 제시하시는 기술적 문제로는 설명을 하기가 어려운 것 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마왕님께 ‘미국이나 서방이 T-62에 열세를 느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자료’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실제 통계상으로 소련의 115mm 탑재 전차가 서방의 105mm 탑재 전차를 능가한다는 것과 1960-70년대에 서방측이 소련의 115mm 탑재 전차와 자신들의 105mm 탑재전차를 어떻게 생각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우마왕님은 기본적으로 실제 성능을 바탕으로 당시의 서방도 소련의 115mm 전차포에 대해 열세를 느꼈을 것이라는 가정을 이끌어 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실제로 서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에 대한 자료가 필요할 것 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사례인) 1974년에 미육군의 Dupuy 장군이 M60과 T-62를 fair match로 평가한 사례를 들어 서방이 과연 소련의 115mm 전차포에 ‘떡실신’을 당할 정도로 열세를 느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우마왕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번 글에서도 역시 장비들의 성능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 하셨습니다.(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원문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2-A. 1974년에 Dupuy 장군이 T62에 대해 M60과 fair match라는 평가의 근거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전- 이후 상황을 돌이켜보면 대략 3가지 정도의 고려가 가능한데 우선 가장 큰 변화는 1973년 영국에서 105mm L7 전차포를 위한 새로운 APDS-T 포탄인 L52A3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L28과 관통력에서 큰 차이는 없지만 1500미터를 넘기면 명중을 장담하기 힘들던 L28과 달리 L52A3은 제대로 2km 거리의 목표를 맞출 수 있었던 듯 합니다. 아울러 T62 초기 생산형에선 조준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탄착 조절이 쉽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으로 봅니다.

(중략)

2-C. 다시 말해 Dupuy 장군이 T62와 M60이 fair match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HEAT 교전 능력은 비슷한데 떨어지는 AP 능력도 신형탄으로 어느 정도 개선되었고, T62의 화기관제 능력이 M60 보단 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인용한 Dupuy 장군의 T-62에 대한 평가는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의 교전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 입니다. Dupuy 장군은 T-62를 상대로 M60을 운용한 이스라엘의 평가를 기초로 두 전차를 fair match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해당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Although the Israelis prefer the Centurion and M-60 tanks to Soviet armor, these differences do not account for the difference in performance on the battlefield. For example, in one action Israeli forces equipped with Soviet tanks, although out numbered at least two to one, reportedly killed 56 Arab tanks without losing one. Israeli tank crews opened fire at ranges out to 4,000 meters and obtained kills at that range. They closed with the enemy and obtained kills at under 200 meters. Their tank crews are generally stabilized and in an extreme case had been together for 14 years. Although there was some scrambling caused by erratic mobilization, the quality of the crews made the main difference. Apparently, the T-62 tank and the M-60 tank are a fair match. Therefore, during the next 10 years battlefield outcome will depend upon the quality of the troops rather than the quality of the tanks.

(중략)

The Israelis rank the M-60 tank above the T-62 in performance but they find three problems with it which they intend to correct in their own tank. The first is that the ammunition storage in the turret of the M-60 causes a much higher percentage of catastrophic losses. More often than not the entire turret was entirely blown off the tank with a turret hit. Secondly, they found the hydraulic fluid to be inflammable causing crew injuries and tank losses by fire. Thirdly, they did not like the mounting or the functioning of the 50 cal machine gun in the cupola.

Dupuy to Abrams(1974. 1. 14), Richard M. Swain(1985), Selected Papers of General William E. Dupuy, p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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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ct of the matter is that our weapons and the weapons manufactured by the Soviet Union are in many respects very similar. For example, in the middle of this particular chart, and here again we're talking about the probability of hit over range, you can see that the Russians' T62 tank, their new best tank, and our M60A1 tank have similar characteristics. Their tank is a little bit better in close, because it has a higher muzzle velocity. Our tank is just a little bit better at the extended ranges because we have better fire control and range estimating equipment. Our new tank, the M60A3, will have even better effectiveness at the extended ranges.

Implications of the Middle East War on U.S. Army Tactics, Doctrine and Systems, Richard M. Swain(1985), Selected Papers of General William E. Dupuy, p.82

윗 글에서 나타나듯 Dupuy 장군은 M60과 T-62의 전차 자체의 성능은 실전에서 큰 격차를 보일 정도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전차 자체의 성능에서도 주포의 위력이 아니라 사격통제체계 때문에 M60이 T-62에 대해 원거리 교전능력의 우위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으로 볼 때 우마왕님이 포탄의 성능 개선을 주된 근거로 해서 미국측의 판단을 평가한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추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upuy 장군은 우마왕님이 추정하신 요인 중에서 사격통제장치는 언급하고 있지만 주된 논지의 근거인 포탄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마왕님이 중점을 두신 것 처럼 1973년 영국이 개발한 L52A3등 포탄 문제가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마왕님이 사용하신 방법, 즉 현재 알고 있는 무기의 통계적 성능만으로 당시의 의도를 추정하려는 시도는 논리적으로 위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질문을 드렸던 것 입니다.

두 번째로, 역시 제가 미국을 포함한 서방측이 실제로 어떤 구상을 하고 있었는지 질문을 드린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만일 저 댓글들의 주장대로 레오2 이전의 서방 전차가 전차전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었다면 대 WTO 방어전술은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전차의 전투력에 분명한 우위를 갖지 못했기에 1980년대까지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지상군을 막기 위해 공격 헬리콥터와 전술핵을 조합한 방어대책이 거론되었던 게고 80년대 중후반, 아니 사실상 90년대 초반까지도 서방 각국, 특히 미국이 T72의 존재에 부담을 느끼던 이유가 단순히 프로파간다 때문이었을까는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요.

그리고 굵게 강조한 부분에 대해 우마왕님은 다시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우마왕의 의견이 어디까지나 당시 가용하던 전차포탄들의 데이터와 당대에 개발된, 혹은 개발중이던 전차의 ROC등을 비교해서 내린 정황증거에 기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애초의 논제는 서방 전차포는 항상 소비에트보다 우위에 있었는가의 여부, 최소한 당대에 있어선 사실이 아니다."였지 "NATO의 대 WTO 서유럽 침공 방어계획"이 아니었으니 이쯤에서 마무리짓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미국과 서방이 실제로 어떤 판단을 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시점에서의 획득여부가 꽤나 의문스러우니 말입니다.

우마왕님께서는 저의 질문에 대해서 NATO의 대 WTO 서유럽 침공 방어계획까지 이야기를 확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 하셨지만 첫 번째 인용문에서 강조한 것 처럼 먼저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서방의 방어 전술에 대한 설명’으로 논지를 확대 하신 것은 우마왕님입니다. 우마왕님께서 먼저 추론에 의거해 서방의 방어전술에 대한 언급을 하셨기 때문에 저는 이 경우에도 실제로 미국 등 서방이 어떤 구상을 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다면 이런 추정은 논리적으로 무리일 것이고 논지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의 근거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 드린 것 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마왕님 께서도 ‘무기의 성능에 바탕을 둔 추정’ 외에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으며 논의가 확대되는 문제가 있다고 답변 하셨고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먼저 약간의 질문을 드린 이유는 실제 병기들의 성능을 바탕으로 과거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의도를 추정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평가인 만큼 ‘과거에 가능했던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과는 괴리를 보일 위험성이 다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마왕님께서 현재 설명하기 어려운 60-70년대 당시 서방측의 판단까지 논지를 확대하지 않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실제 무기의 성능 문제로 이야기를 한정했다면 논리적으로 훨씬 좋은 설명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미 공통된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가 되었으니 처음에 제가 질문을 드렸던 이유에 대해서도 이만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우마왕님께서 논리적인 문제에 대한 피드백과 함께 흥미로운 정보들을 소개하신 덕분에 매우 유익한 토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