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8일 화요일

몇 가지 궁금한 점

지난번에 땜빵 포스팅으로 올렸던 'M60에 대한 슈트라우스의 평'에 달린 답글에 우마왕님이 피드백을 해 주셨습니다.

먼저 제가 쓴 댓글의 경우는 현재 시점에서 평가한 것이지 냉전 전 기간의 경쟁을 두고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역사왜곡'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궁금한 점 몇가지만 질문 드리려고 합니다.

우마왕님의 지적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해당 포스팅의 배경이 된 1960-61년에는 서방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가졌다고 착각할 수 있었지만 소비에트는 다음해에 115mm 활강포와 BM-3/6 APFSDS탄을 장착한 T62를 등장시켜 잠시나마 우위를 가졌다는 서방의 착각을 떡실신시킵니다. 1970년대 이색렬의 IMI가 105mm APFSDS탄 M111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독일을 시작으로 서방 각국이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에 나섰다는 사실이야말로 당시 서방 각국이 소비에트 전차포에 대한 열세임을 느끼고 있었다는 반증이지요. 그랬기에 당시 서독도 레오1에 만족하지 못하고 MBT/KPz70 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지요.

우마왕님은 T-62의 115mm포를 언급하시면서 1970년대에 신형 APFSDS탄이 도입된 이유가 서방 각국이 소련 전차포에 대한 열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시는데 미국 쪽에서는 1970년대 초반에 말씀하신 115mm 탑재 T-62가 M60 보다 특별히 나을게 없다는 평가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111이 개발된 것은 1978년으로 알고있는데 이미 1974년에 Dupuy장군이 T-62에 대해 M60과 fair match라고 평가한 걸 보면 우마왕님이 쓰신 떡실신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MBT 70의 개발도 소련 기갑의 '숫적우위'를 상쇄할 수 있는 '기술적우위'를 추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요?

'떡실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미국이나 서방이 T-62에 열세를 느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자료는 어떤게 있을까요? 우마왕님이 쓰신 글을 보면 실제 미국측의 판단 보다는 정황증거로 설명하시는 것으로 보이는데 좀 더 직접적인 자료는 없을까요? 제가 기술적인 문제는 잘 모르니 우마왕님께서 관련된 자료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만일 저 댓글들의 주장대로 레오2 이전의 서방 전차가 전차전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었다면 대 WTO 방어전술은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전차의 전투력에 분명한 우위를 갖지 못했기에 1980년대까지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지상군을 막기 위해 공격 헬리콥터와 전술핵을 조합한 방어대책이 거론되었던 게고 80년대 중후반, 아니 사실상 90년대 초반까지도 서방 각국, 특히 미국이 T72의 존재에 부담을 느끼던 이유가 단순히 프로파간다 때문이었을까는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요.

이 부분도 좀 의문인데 NATO가 전술핵과 공격 헬리콥터를 조합한 방어대책을 거론한 것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기갑 전력의 '숫적 우세'를 '기술적'으로 상쇄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마왕님께서는 나토의 방어전술에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요인으로 전차 자체의 성능 문제를 꼽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읽었던 냉전기 서유럽 방어 계획에 대한 몇 편의 글을 보면 전차 자체의 성능 문제는 숫적 열세에 비해 부차적 문제였던 것으로 이해가 되어서 말입니다. 작전계획에서도 개별 전차의 성능적 열세를 언급하는 것 보다는 압도적 숫적 열세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보이더군요.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미국과 서방이 실제로 어떤 판단을 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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