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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월드오브탱크 블리츠를 하다가 M60을 봤습니다


월드오브탱크 블리츠를 하는데 갑자기 양쪽팀에서 M60이 튀어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데이터상으로 구현해 두고 아직 내놓지 않은 전차가 많다더니 M60도 있었네요. 으으. 빨리 구매할 수 있도록 상점에 추가하면 좋겠습니다.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고객의 목소리

우리가 막 M-60 전차를 수령했을 무렵 에일즈(Stephen Ailes) (육군부) 장관이 유럽을 방문했던 일은 항상  기억하고 있네. 에일즈 장관은 천막 덮개 아래에 앉아 병사들과 점심식사를 했지. 그리고 에일즈 장관은 그 중 장관의 건너편 자리에 있던 한 병사, 그 친구는 대략 25년간 복무한 병장으로 경험많은 전차병이었는데, 그 병사에게 M-60 전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지. 그런데 그 친구는 그냥 자기 식판에서 햄을 한 조각 집어 들고는 흔들었네. 그 친구는 장관과 겨우 2-3피트 정도 떨어져 있었네.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지.

장관님. 저는 여지껏 탱크만 탔습니다. 그런데 기술자들이 이 빌어먹을 물건을 설계하면서 전차병들의 말을 들어 먹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자네들도 알겠지만 이 정도의 호평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장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찬사를 받기란 매우 어렵네. 내 생각엔 적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걸.

말이 나온 김에 더 이야기 하자면 59식 전차가 노획되어 후에(Hue)로 이송중인건 알고 있나? 베트남측은 59식이 매우 조종하기 어려운 전차라고 하더군. 그건 베트남군이 미제 전차를 조종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일세. (59식은) 파워스티어링도 없고 동기물림식 변속기(synchromesh transmission)도 없고 없는 것 투성이지. 그래서 변속이 어렵고 방향 전환도 어렵네. 한번 그걸 조종해 보라구.

에이브럼스 대장, 1972 5 27, 주간 정보 동향(Weekly Intelligence Estimate Updates)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Lewis Sorley(ed), Vietnam Chronicles : The Abrams Tapes 1968-1972(Texas Tech University Press, 2004), p.859

2009년 8월 1일 토요일

약간의 추가 설명

지난번의 글, 몇 가지 궁금한 점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우마왕님이 지적하신 기본적인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댓글의 특성상 짤막한 답변을 남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것은 오해의 소지를 남기는 경우가 많지요. 짧은 답글이라 하더라도 논리적인 완결성은 갖춰야 하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는 것은 좀 곤란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가 이루어 졌으니 제가 최초의 질문을 했던 이유에 대해서만 약간의 보충 설명을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으신 분들이 있으면 곤란할 테니 말입니다.

처음에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우마왕님이 기본적인 논지인 전차포 문제에 이외에 몇 가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추론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번 이야기를 오가게 한 ‘우마왕님의 과연 서방 전차포가 소비에트 전차포를 넘어선 적이 있기는 했나?’로 다시 한 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해당 포스팅의 배경이 된 1960-61년에는 서방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가졌다고 착각할 수 있었지만 소비에트는 다음해에 115mm 활강포와 BM-3/6 APFSDS탄을 장착한 T62를 등장시켜 잠시나마 우위를 가졌다는 서방의 착각을 떡실신시킵니다.
(1970년대 이색렬의 IMI가 105mm APFSDS탄 M111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독일을 시작으로 서방 각국이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에 나섰다는 사실이야말로 당시 서방 각국이 소비에트 전차포에 대한 열세임을 느끼고 있었다는 반증이지요. 그랬기에 당시 서독도 레오1에 만족하지 못하고 MBT/KPz70 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지요.)

굵게 표시한 부분들은 우마왕님이 근거로 제시하시는 기술적 문제로는 설명을 하기가 어려운 것 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마왕님께 ‘미국이나 서방이 T-62에 열세를 느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자료’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실제 통계상으로 소련의 115mm 탑재 전차가 서방의 105mm 탑재 전차를 능가한다는 것과 1960-70년대에 서방측이 소련의 115mm 탑재 전차와 자신들의 105mm 탑재전차를 어떻게 생각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우마왕님은 기본적으로 실제 성능을 바탕으로 당시의 서방도 소련의 115mm 전차포에 대해 열세를 느꼈을 것이라는 가정을 이끌어 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실제로 서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에 대한 자료가 필요할 것 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사례인) 1974년에 미육군의 Dupuy 장군이 M60과 T-62를 fair match로 평가한 사례를 들어 서방이 과연 소련의 115mm 전차포에 ‘떡실신’을 당할 정도로 열세를 느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우마왕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번 글에서도 역시 장비들의 성능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 하셨습니다.(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원문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2-A. 1974년에 Dupuy 장군이 T62에 대해 M60과 fair match라는 평가의 근거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전- 이후 상황을 돌이켜보면 대략 3가지 정도의 고려가 가능한데 우선 가장 큰 변화는 1973년 영국에서 105mm L7 전차포를 위한 새로운 APDS-T 포탄인 L52A3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L28과 관통력에서 큰 차이는 없지만 1500미터를 넘기면 명중을 장담하기 힘들던 L28과 달리 L52A3은 제대로 2km 거리의 목표를 맞출 수 있었던 듯 합니다. 아울러 T62 초기 생산형에선 조준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탄착 조절이 쉽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으로 봅니다.

(중략)

2-C. 다시 말해 Dupuy 장군이 T62와 M60이 fair match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HEAT 교전 능력은 비슷한데 떨어지는 AP 능력도 신형탄으로 어느 정도 개선되었고, T62의 화기관제 능력이 M60 보단 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인용한 Dupuy 장군의 T-62에 대한 평가는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의 교전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 입니다. Dupuy 장군은 T-62를 상대로 M60을 운용한 이스라엘의 평가를 기초로 두 전차를 fair match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해당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Although the Israelis prefer the Centurion and M-60 tanks to Soviet armor, these differences do not account for the difference in performance on the battlefield. For example, in one action Israeli forces equipped with Soviet tanks, although out numbered at least two to one, reportedly killed 56 Arab tanks without losing one. Israeli tank crews opened fire at ranges out to 4,000 meters and obtained kills at that range. They closed with the enemy and obtained kills at under 200 meters. Their tank crews are generally stabilized and in an extreme case had been together for 14 years. Although there was some scrambling caused by erratic mobilization, the quality of the crews made the main difference. Apparently, the T-62 tank and the M-60 tank are a fair match. Therefore, during the next 10 years battlefield outcome will depend upon the quality of the troops rather than the quality of the tanks.

(중략)

The Israelis rank the M-60 tank above the T-62 in performance but they find three problems with it which they intend to correct in their own tank. The first is that the ammunition storage in the turret of the M-60 causes a much higher percentage of catastrophic losses. More often than not the entire turret was entirely blown off the tank with a turret hit. Secondly, they found the hydraulic fluid to be inflammable causing crew injuries and tank losses by fire. Thirdly, they did not like the mounting or the functioning of the 50 cal machine gun in the cupola.

Dupuy to Abrams(1974. 1. 14), Richard M. Swain(1985), Selected Papers of General William E. Dupuy, pp.71-72

********


The fact of the matter is that our weapons and the weapons manufactured by the Soviet Union are in many respects very similar. For example, in the middle of this particular chart, and here again we're talking about the probability of hit over range, you can see that the Russians' T62 tank, their new best tank, and our M60A1 tank have similar characteristics. Their tank is a little bit better in close, because it has a higher muzzle velocity. Our tank is just a little bit better at the extended ranges because we have better fire control and range estimating equipment. Our new tank, the M60A3, will have even better effectiveness at the extended ranges.

Implications of the Middle East War on U.S. Army Tactics, Doctrine and Systems, Richard M. Swain(1985), Selected Papers of General William E. Dupuy, p.82

윗 글에서 나타나듯 Dupuy 장군은 M60과 T-62의 전차 자체의 성능은 실전에서 큰 격차를 보일 정도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전차 자체의 성능에서도 주포의 위력이 아니라 사격통제체계 때문에 M60이 T-62에 대해 원거리 교전능력의 우위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으로 볼 때 우마왕님이 포탄의 성능 개선을 주된 근거로 해서 미국측의 판단을 평가한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추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upuy 장군은 우마왕님이 추정하신 요인 중에서 사격통제장치는 언급하고 있지만 주된 논지의 근거인 포탄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마왕님이 중점을 두신 것 처럼 1973년 영국이 개발한 L52A3등 포탄 문제가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마왕님이 사용하신 방법, 즉 현재 알고 있는 무기의 통계적 성능만으로 당시의 의도를 추정하려는 시도는 논리적으로 위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질문을 드렸던 것 입니다.

두 번째로, 역시 제가 미국을 포함한 서방측이 실제로 어떤 구상을 하고 있었는지 질문을 드린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만일 저 댓글들의 주장대로 레오2 이전의 서방 전차가 전차전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었다면 대 WTO 방어전술은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전차의 전투력에 분명한 우위를 갖지 못했기에 1980년대까지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지상군을 막기 위해 공격 헬리콥터와 전술핵을 조합한 방어대책이 거론되었던 게고 80년대 중후반, 아니 사실상 90년대 초반까지도 서방 각국, 특히 미국이 T72의 존재에 부담을 느끼던 이유가 단순히 프로파간다 때문이었을까는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요.

그리고 굵게 강조한 부분에 대해 우마왕님은 다시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우마왕의 의견이 어디까지나 당시 가용하던 전차포탄들의 데이터와 당대에 개발된, 혹은 개발중이던 전차의 ROC등을 비교해서 내린 정황증거에 기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애초의 논제는 서방 전차포는 항상 소비에트보다 우위에 있었는가의 여부, 최소한 당대에 있어선 사실이 아니다."였지 "NATO의 대 WTO 서유럽 침공 방어계획"이 아니었으니 이쯤에서 마무리짓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미국과 서방이 실제로 어떤 판단을 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시점에서의 획득여부가 꽤나 의문스러우니 말입니다.

우마왕님께서는 저의 질문에 대해서 NATO의 대 WTO 서유럽 침공 방어계획까지 이야기를 확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 하셨지만 첫 번째 인용문에서 강조한 것 처럼 먼저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서방의 방어 전술에 대한 설명’으로 논지를 확대 하신 것은 우마왕님입니다. 우마왕님께서 먼저 추론에 의거해 서방의 방어전술에 대한 언급을 하셨기 때문에 저는 이 경우에도 실제로 미국 등 서방이 어떤 구상을 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다면 이런 추정은 논리적으로 무리일 것이고 논지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의 근거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 드린 것 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마왕님 께서도 ‘무기의 성능에 바탕을 둔 추정’ 외에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으며 논의가 확대되는 문제가 있다고 답변 하셨고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먼저 약간의 질문을 드린 이유는 실제 병기들의 성능을 바탕으로 과거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의도를 추정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평가인 만큼 ‘과거에 가능했던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과는 괴리를 보일 위험성이 다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마왕님께서 현재 설명하기 어려운 60-70년대 당시 서방측의 판단까지 논지를 확대하지 않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실제 무기의 성능 문제로 이야기를 한정했다면 논리적으로 훨씬 좋은 설명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미 공통된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가 되었으니 처음에 제가 질문을 드렸던 이유에 대해서도 이만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우마왕님께서 논리적인 문제에 대한 피드백과 함께 흥미로운 정보들을 소개하신 덕분에 매우 유익한 토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몇 가지 궁금한 점

지난번에 땜빵 포스팅으로 올렸던 'M60에 대한 슈트라우스의 평'에 달린 답글에 우마왕님이 피드백을 해 주셨습니다.

먼저 제가 쓴 댓글의 경우는 현재 시점에서 평가한 것이지 냉전 전 기간의 경쟁을 두고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역사왜곡'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궁금한 점 몇가지만 질문 드리려고 합니다.

우마왕님의 지적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해당 포스팅의 배경이 된 1960-61년에는 서방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가졌다고 착각할 수 있었지만 소비에트는 다음해에 115mm 활강포와 BM-3/6 APFSDS탄을 장착한 T62를 등장시켜 잠시나마 우위를 가졌다는 서방의 착각을 떡실신시킵니다. 1970년대 이색렬의 IMI가 105mm APFSDS탄 M111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독일을 시작으로 서방 각국이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에 나섰다는 사실이야말로 당시 서방 각국이 소비에트 전차포에 대한 열세임을 느끼고 있었다는 반증이지요. 그랬기에 당시 서독도 레오1에 만족하지 못하고 MBT/KPz70 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지요.

우마왕님은 T-62의 115mm포를 언급하시면서 1970년대에 신형 APFSDS탄이 도입된 이유가 서방 각국이 소련 전차포에 대한 열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시는데 미국 쪽에서는 1970년대 초반에 말씀하신 115mm 탑재 T-62가 M60 보다 특별히 나을게 없다는 평가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111이 개발된 것은 1978년으로 알고있는데 이미 1974년에 Dupuy장군이 T-62에 대해 M60과 fair match라고 평가한 걸 보면 우마왕님이 쓰신 떡실신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MBT 70의 개발도 소련 기갑의 '숫적우위'를 상쇄할 수 있는 '기술적우위'를 추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요?

'떡실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미국이나 서방이 T-62에 열세를 느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자료는 어떤게 있을까요? 우마왕님이 쓰신 글을 보면 실제 미국측의 판단 보다는 정황증거로 설명하시는 것으로 보이는데 좀 더 직접적인 자료는 없을까요? 제가 기술적인 문제는 잘 모르니 우마왕님께서 관련된 자료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만일 저 댓글들의 주장대로 레오2 이전의 서방 전차가 전차전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었다면 대 WTO 방어전술은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전차의 전투력에 분명한 우위를 갖지 못했기에 1980년대까지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지상군을 막기 위해 공격 헬리콥터와 전술핵을 조합한 방어대책이 거론되었던 게고 80년대 중후반, 아니 사실상 90년대 초반까지도 서방 각국, 특히 미국이 T72의 존재에 부담을 느끼던 이유가 단순히 프로파간다 때문이었을까는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요.

이 부분도 좀 의문인데 NATO가 전술핵과 공격 헬리콥터를 조합한 방어대책을 거론한 것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기갑 전력의 '숫적 우세'를 '기술적'으로 상쇄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마왕님께서는 나토의 방어전술에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요인으로 전차 자체의 성능 문제를 꼽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읽었던 냉전기 서유럽 방어 계획에 대한 몇 편의 글을 보면 전차 자체의 성능 문제는 숫적 열세에 비해 부차적 문제였던 것으로 이해가 되어서 말입니다. 작전계획에서도 개별 전차의 성능적 열세를 언급하는 것 보다는 압도적 숫적 열세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보이더군요.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미국과 서방이 실제로 어떤 판단을 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9년 7월 15일 수요일

M60에 대한 슈트라우스의 평

계속 땜빵 포스팅입니다;;;;

지난 번에 sonnet님이 슈트라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M47 전차를 살펴보는 의미심장한(?) 사진을 한 장 올리셨었죠. 슈트라우스의 표정을 보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는데 마침 아래에서 언급한 Trauschweizer의 책을 읽다 보니 슈트라우스 국방장관이 신형 M60 전차에 대해 평을 한 것이 실려 있어서 인용해 봅니다.

독일과 미국은 신형 주력 전차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이 일치했다. M60이 제7군에 배치되자 슈트라우스는 이 전차의 결점에 대해 지적했다. 슈트라우스는 소련의 T-10은 M60의 시야에 들어오기 300야드 앞에서 M60을 먼저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측은 슈트라우스가 M60 보다 우수하다고 믿는 전차의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독일의 신형 전차는 35톤(M60 보다 거의 10톤 가벼운)의 무게에 800마력 엔진, 200마일의 작전반경, 그리고 높이는 2.4미터(M60은 3.2미터)로 낮았으며 시속 45마일 이상의 고속에 높은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슈트라우스는 대전차화기의 발전으로 중장갑은 약점을 상쇄하는데 별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속도와 항속거리, 그리고 낮은 높이가 좋은 전차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미 육군 지휘관들은 M60이 소련 전차보다 열등하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M60의 105mm 전차포는 운동에너지탄을 사용해 T-54를 2,900미터에서 격파가 가능했지만 소련 전차가 M60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2,700미터 이내로 접근해야 했다.

Ingo Trauschweizer, The Cold War U.S. Army : Building Deterrence for Limited War,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8), p.165

슈트라우스가 지적한 M60의 단점은 M47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미국 전차의 특징이었습니다. 게다가 M47은 화력도 M60 보다 떨어지니 슈트라우스가 좋게 봤을 것 같지는 않군요.

정말 그 사진에 찍힌 슈트라우스는 착잡한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6월 8일 일요일

신의 은총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청계천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러 나갔습니다.

아. 그리고 신께서는 믿는자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신의 은총...

그것은.


パットン!


가격은

15,000


책을 살펴보니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나온 물건이었습니다. 초판은 60달러였던 모양이군요.


어쨌든 기분 좋습니다.


질렐루야!

2008년 2월 23일 토요일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갑전력에 대한 80년대의 서방측 시각 - 찰머스와 잘로가의 International Security 논쟁

얼마 전 친구와 채팅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 : 거 참. 소련이 망하고 어지간한 자료들은 널리 공개됐는데 어째 한국에는 러시아 무기에 환상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을꼬?

어린양 : 그건 무슨 소리냐?

친구 : 뭐,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의 T-72가 M1A1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이유가 이라크에 수출된건 소련제 ‘내수정품’ 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는 물건이기 때문이라는 애들이 있더라고. 뭐 소련제 ‘내수정품’은 무안단물이라도 바르는 모양이지?
뭐 소련의 기갑웨이브는 나토를 한큐에 발라버리느니 나토는 공군 없으면 쓸려버린다느니 80년대 내내 나토가 소련군의 기갑에 벌벌 떨었다는 등 유치한 헛소리가 21세기에도 통용 된다는게 정말 놀랍지 않냐?

어린양 : 그것 참;;;;;;

저는 무기체계, 특히 2차대전 이후의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완전 깡통이지만 저런 소문이 돌아 다닌다는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80년대라면 나토측에 레오파르트 2도 있고 M1A1도 있는데 왜 나토군의 기갑전력이 바르샤바 조약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망상이 냉전이 끝난지 20년이 다 돼 가는 이 시점의 한국에는 퍼져있을까???
소련의 철통 같은 보안 유지 덕분에 냉전기간 동안 소련제 무기에 대한 과대평가는 흔한 일이었고 또 이런 과대평가에는 예산도 더 타먹자는 군대의 엄살도 제법 작용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는 것 입니다. 소련제 전차들이 아주 못 써먹을 쓰레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오파르트 2나 M1A1 같은 서방의 제 3세대 전차와 비교한다면 성능적으로 열세인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냉전시기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에 대해서는 폴 케네디가 아주 간단히 핵심을 잘 짚은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중부 전선에서는 나토군이 대규모의 소련군 기갑 및 자동차 소총사단들에 비해 크게 열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바르샤바 동맹군의 우세는 안심할 정도가 못된다. 그것은 혼잡한 북부 독일의 지형에서는 신속하고 공격적인 기동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렵고 또한 소련의 주력 전차 5만 2000대 중 다수는 도로소통이나 방해하기에 알맞은 낡은 T-54형 전차들이기 때문이다. 나토가 군수품, 연료, 대체용 무기 등의 충분한 예비 비축량만 보유한다면 소련군의 재래식 공격을 격퇴하는데 1950년대 보다도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설 것이 확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일주, 전남석, 황건 공역,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한국경제신문사, 1988, 588쪽.

어쨌든 1980년대 후반 까지는 소련의 신형전차들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21세기 한국의 일부 밀리매냐(????) 들의 망상처럼 서방측이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에 덜덜덜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찰머스(Malcolm Chalmers), 운터제어(Lutz Unterseher)와 잘로가(Steven J. Zaloga) 간에 있었던 논쟁이 좋은 예가 될 것 입니다.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1988년 International Security 13권 1호에 Is There a Tank Gap?: Comparing NATO and Warsaw Pact Tank Fleet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에는 잘로가가 역시 같은 잡지 13권 4호에 The Tank Gap Data Flap라는 제목으로 반대되는 논지의 글을 투고 했습니다. 이 토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찰머스와 운터제어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전차 전력의 숫적인 격차는 크지 않다.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서방보다 2.6배 더 많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인 소련군은 그 기갑전력의 상당수를 극동지역에 돌리고 있다. 서부전역에 국한할 경우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갑전력은 불과 1.6배의 우세를 보일 뿐이며 특히 주 전장인 중부 전선에서는 겨우 1.4배에 불과하다. 중부전선의 나토군은 12,8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바르샤바 조약군은 18,100대 정도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나토가 보유한 전차들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그것에 비해 기술적으로 월등히 우수하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전차들은 서방 전차의 탄도계산 컴퓨터, 열영상장치, 그리고 명중률 높은 전차포와 같은 것을 갖추지 못 하고 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보유한 전차 중 상당수를 이루는 T-55, T-62는 M-48, M-60 계열이나 레오파르트 1 수준의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신형 전차인 T-64, T-72, T-80은 125mm 포를 탑재하고 있지만 그 명중률이 극도로 낮다. 또한 소련제 전차의 기계적 신뢰성은 매우 낮다. 소련의 신형 전차들은 방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반응장갑을 장착하고 있지만 이것은 서방의 120mm포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며 또 소련 전차의 중량을 증가시켜 기동성에 제약을 가한다.
셋째, 나토의 전차전력은 전체적인 규모에서는 바르샤바 동맹군 보다 적지만 신형 전차의 비중을 놓고 보면 바르샤바 동맹군의 우위는 줄어든다. 나토는 1981년부터 1987년 사이에 7,200대의 제 3세대 전차를 도입했는데 이것은 1981년 나토가 보유한 전체 전차전력의 27%에 해당된다. 같은 기간 소련은 16,700대의 신형 전차를 도입했는데 이 경우 양 측의 숫적 격차는 더욱 줄어든다.
넷째,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동원능력은 나토에 비해 제한적이다. 카테고리 1으로 분류되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사단 중 소련군 사단과 동독군 6개 사단을 제외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군 사단은 최소 동원 개시 10일 이전에는 전선에 투입하기 어렵다. 카테고리 2 사단은 동원 개시 후 30일은 지나야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정보에 따르면 바르샤바 조약군의 동원 능력은 매우 형편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개시될 경우 전쟁 첫날에는 양측의 전차 전력의 비율이 1 대 1.42 지만 동원 개시 40일이 지나면 그 비율은 1 대 1.24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나토군은 신형 전차의 성능면에서 바르샤바 조약군을 압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 2세대 전차의 경우도 지속적인 성능 개선을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켰다. 반면 바르샤바 조약군의 T-55나 T-62는 이렇다 할 성능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련은 경제적 능력의 제약 때문에 T-72와 T-80의 추가 생산에 주력하고 있을 뿐 구식 전차의 성능 개선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잘로가가 투고한 반박문은 1989년 봄에 나온 13권 4호에 실렸습니다.

잘로가는 먼저 나토의 신형 전차들이 원거리 교전과 야간 전투에서 소련의 신형전차에 대해월등히 우수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첫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바르사뱌 조약군의 전차 전력에 대해서 IISS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의 추정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신형전차의 생산량은 찰머스와 운터제어가 추측한 것 보다 더 많다. 1981년부터 1987년 사이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국의 신형 전차(T-72 이상) 생산량은 2만대 이상이다. 또 미국이 같은 기간 동안 대량의 M1과 M1A1을 생산했지만 그 반대로 유럽에 배치된 M60A3들이 퇴역하기 때문에 중부유럽에 배치된 나토군의 기갑전력은 증가했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분석의 대상을 전차에 한정하고 있다. 바르샤바 조약군이 보유한 대량의 보병전투차를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치명적 오류이다.
셋째, 바르샤바 조약군, 특히 소련군은 중부전선에 신형전차를 배치하고 구형 전차는 대부분 퇴역시켰다. 극히 일부의 소련군 부대만이 T-62를 장비하고 있다. 후방에 돌려진 대량의 구형 전차는 나토군이 신형전차를 대규모로 소모한 뒤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체코의 T-55 개량이나 소련의 T-62 개량 등 바르샤바 조약군의 구형 전차 성능개선에 대해 무시하고 있다.
넷째,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술수준에 대해 지나치게 저평가 하고 있다. 비록 소련제 전차들은 나토군의 전차들에 비해 야간 장비가 뒤쳐져 있긴 하지만 30% 이상의 전차는 수동형 영상증폭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형 T-72와 T-80의 방어력에 대해서도 저평가 하고 있다. 또 나토군 전차들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원거리 전투 능력은 중부 전선의 지형에서는 그 우위를 잃는다. 서독과 동독 국경 지대의 55% 이상의 지역은 실제 교전거리가 500m 수준이다. 1500m 이상의 교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은 17%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찰머스와 운터제어는 역시 같은호에 반박문을 투고했습니다. 이들은 잘로가의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첫째, 우리의 추정치가 부정확하다는 잘로가의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우리는 추정치이기 때문에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전제하고 논지를 전개했다. 하지만 잘로가 또한 IISS의 추정치가 부정확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둘째, 잘로가는 보병전투차와 자주포 등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토가 보유한 공격헬리콥터와 대전차 미사일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셋째, 잘로가가 지적한 바르샤바 조약군의 구형 전차 성능 개량에 대해서는 우리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동독의 예를 보더라도 소련의 동맹국들은 구형장비의 도태와 성능개선이 극히 저조함을 알 수 있다. 잘로가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의 T-55 개량사업이나 소련군의 T-62 개량사업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런 구형전차들이 성능개선을 통해 화력개선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넷째, 잘로가는 주 전장이 될 중부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원거리 교전이 가능한 지형이 매우 적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소련제 전차의 낮은 기계적 신뢰성과 제한된 기동성은 지형의 활용도를 극히 제약할 것이다.
다섯째, 잘로가는 우리의 글이 소련전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저평가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면 소련전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지나친 과대평가가 문제가 됐던 경우가 더 많았다. 처음 T-80에 대한 정보가 입수됐을 때 미국 국방부는 T-80이 기존의 전차에 비해 화력과 생존성이 강화됐을 것으로 추측했고 그 당시 나온 T-80의 상상도는 마치 서방의 제 3세대 전차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실제 T-80은 T-72의 강화형에 불과한 수준이다.

양 측의 견해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양측 모두 서방의 제 3세대 전차가 T-72와 T-80에 비해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로가는 바르사뱌 조약군의 기갑전력이 숫적 우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라고 전제하고 있을 뿐이지요. 소련제 ‘내수정품’에 대해 벌벌벌 떨거나 하지는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