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6일 월요일

『6.25전쟁 미 공군 항공전사』가 다시 번역되었습니다

 


얼마전 공군본부에서 로버트 퍼트렐(Robert F. Futrell)The United States Air Force in Korea, 1950-1953을 다시 번역해서 6.25전쟁 미 공군 항공전사』라는 제목으로 간행했습니다. 이번 번역본은 1988년에 나온 개정판을 저본(底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판이 새로 나왔으니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이야기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미국 공군의 작전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공식 역사서의 틀을 따라가고 있지요. 그래서 전쟁의 주요 국면마다 미국 공군 수뇌부와 극동공군 사령부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파악하는데 유용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책이 한국전쟁시기 공군의 작전을 다루고 있다는 점 입니다. 미국 공군은 1947년 육군에서 독립한 신생 병종입니다. 한국전쟁은 미국 공군이 독자적인 병종으로 수행한 첫 번째 전쟁입니다. 퍼트렐은 미국 극동공군이 극동군사령부 예하의 전력으로 통합작전의 틀 내에서 공군의 구상을 어떻게 관철시켰는지를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 후방에 대한 항공차단작전 수행을 위해 근접항공지원을 더 선호한 육군지휘관들(맥아더와 워커, 알몬드)을 극동공군 사령관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과 제5공군 사령관 패트리지 장군이 설득하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미국 공군의 관점에서 집필된 공간사인 만큼 합동군이라는 체제하에서 자군의 논리를 어떻게 관철시켰는가를 중요시 하는 것 같습니다. 합동작전의 틀 내에서 미국 공군이 해군 및 해병항공대 전력과 어떻게 작전을 조율했는지 보여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1951년 추계전역에서 해병대가 해병항공대의 근접지원을 독점하면서 육군에 비해 과도한근접지원을 받게 되자 육군의 리지웨이 장군이 형평성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 점이 대표적입니다. 이 책은 합동군 체제인 미군의 일부인 미국 공군이 합동작전의 경험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흥미로운 점은 세계적 냉전하에서 한국전쟁의 위치를 보여주는 서술입니다. 저자는 미국 극동공군이 전쟁 발발 이전부터 상대적으로 전략적 우선순위가 낮은 동아시아에 배치되어 있었던 까닭에 충분한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 전쟁에 참여한 점을 지적합니다. 이런 문제점은 전쟁 내내 계속됐습니다. 저자가 잘 지적하고 있듯 유럽 주둔 미국공군의 증강이 최우선 순위였기 때문에 미국극동공군, 그 중에서도 한국전선을 담당한 미국 제5공군은 격전의 와중에서도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제5공군이 한국전선의 제공권을 장악하는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 공군의 강력함을 과시하는 서술이 인상적입니다. 이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죠. 저자 퍼트렐은 미국 극동공군이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저술하고 있습니다. 비록 미국 공군의 공식 역사서이지만 서술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정치적으로 무승부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제한전에서 미국 공군이 실질적 승리를 거뒀음을 보여주려는 서술입니다. 미국의 압도적인 공군력이 공산측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은 것은 냉전 이후 스탈린과 김일성 회담 녹취록들이 공개되면서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퍼트렐은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공산측을 압박하기 위해 수행된 폭격작전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그리고 공산군이 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1952년 이후 중공군의 방공망이 강화되면서 미국 공군의 작전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습니다.(이 점은 중국측에서 자국의 승리를 주장할 때 내세우는 단골 소재이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 공군이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폭격을 통해 공산측을 협상장으로 끌어냈음을 강조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1951년 이후 미그 앨리에서 전개된 공중전의 양상입니다. 저자는 미국 공군이 실질적으로 승리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F-86MiG-15의 대결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에도 유엔군은 승리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미국 공군의 F-86 부대가 공중전에서 거둔 전과를 선전의 소재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물론 미국 공군의 F-86이 공산군의 MiG-15에 대해 우세한 전과를 거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련측 자료가 공개되면서 실제로 미국 공군이 생각한 것 만큼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었던 게 드러났지요. 이렇게 미국측 자료에만 의존해 집필되다 보니 현재 시각에서 약간 부정확한 서술이 보이는건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 공군의 입장을 대변하는 저작이다 보니 전쟁 기간 중 미국 공군의 폭격으로 발생한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점은 김태우의 『폭격』 같은 연구들이 나오면서 극복됐습니다. 민간인 피해를 외면하는 점은 이 책이 냉전시대에 미국 군부의 입장을 대변해 집필됐다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는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몇가지 단점이 있지만 훌륭한 저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집필되어 현재의 시각에서는 다소 아쉽지만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 입니다. 다만 비매품으로 간행되었다 보니 편하게 구하지 못하는 점이 단점입니다.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제2차세계대전 시기 항공모함의 전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

 


밀리터리 오타쿠의 관점에서 읽은 연구논문 중 지난 1년간 가장 재미있었던 걸 꼽으라면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84에 실린 미국 해군대학 교수 피츠시몬즈(James R. FitzSimonds)의 "Aircraft Carriers versus Battleships in War and Myth: Demythologizing Carrier Air Dominance at Sea"를 들겠습니다. 과연 제2차세계대전 당시 항공모함이 전함에 대해 압도적인 우세를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밀리터리 오타쿠 입장에서 환장할만한 주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피츠시몬즈는 레이테만 해전의 예를 들면서 항공모함의 위력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레이테만 해전에서 미국 해군은 에섹스급 7척을 포함한 35척의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항공대 소속의 항공기 1,500여대를 동원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작전상 미끼로 던진 항공모함을 제외한 일본군 주력을 상대로는 전함 1척과 중순양함 1척만이 미군 항공모함 탑재기에 격침되거나 대파되었습니다. 저자는 이상적인 조건에서 미국 항공모함 항공부대가 전투력을 최대한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함 중심의 일본군 주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지 못한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기간 중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항공기가 기동중인 주력함을 격침한 것은 야마토와 무사시 외에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히에이는 미국 수상함대와의 전투로 전투불능이 된 상태에서 항공기 공격을 받았으므로 제외합니다.) 진주만 공습 같이 정박해 있는 주력함을 공격한 경우에도 완전히 전열에 복귀하지 못하게 타격을 입힌 사례는 4척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프랑스 해군의 덩케르크, 이탈리아 해군의 로마, 미해군의 애리조나와 오클라호마) 전함보다 작고 약한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경우도 항공모함 탑재기 보다는 수상함이나 잠수함과의 교전에서 더 많은 숫자가 격침되었습니다. 

저자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항공모함 탑재기들은 전함과 같이 빠르고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군함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능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합니다. 해군 항공기용의 폭탄은 1,000파운드 정도로 전함의 갑판에 유효한 타격을 주기 어려웠고, 어뢰는 위력이 충분했으나 명중율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뇌격기들은 대부분 저고도에서 느린 속도로 움직여 전함의 대공화력에 대해 생존성이 떨어졌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저자는 제2차세계대전 시기 수상함의 대공화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대전 초기인 1942년 초의 산호해 해전에서도 미국 함대는 대공화력 만으로 일본군 항공대를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 보다 뒤떨어지는 일본 해군 함정의 대공화력도 미국항공모함 탑재기들을 상대로 충분히 유효했다고 지적합니다. 레이테만 전투 당시 일본해군의 이세가 100대 가까운 미군 함재기의 공격을 대공화력 만으로 격퇴한 점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 시기의 항공모함들의 작전 지속능력이 떨어졌던 점도 지적합니다. 항공모함은 육상기지에 비해 비축할 수 있는 물자에 한도가 있어 장기간 작전을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항공모함 탑재기의 소모율이 높았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이때문에 미 해군이 항공모함 전력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압도한 1944년이 되어서도 미해군의 항공모함 항공부대는 충분한 전과를 거둘 수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들어 필리핀해 해전에서는 미해군 항공부대가 전력 우세에도 불구하고 항공모함 한척과 유조선 2척을 격침시키는데 그쳤고 그 댓가로 출격시킨 항공기 200대 중 80대를 여러가지 이유로 상실했습니다. 게다가 장거리 출격 때문에 미군 함재기의 무장 탑재에도 지장이 있어 타격력이 더 감소했다고 지적합니다.(뇌격기들도 항속거리 문제로 폭탄을 탑재했음) 미국 항공모함의 지상 타격도 예상외로 결정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피츠시몬즈는 레이더도 부실하고 대공화력도 약하며 조종사의 수준도 뒤떨어지는 일본군을 상대로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미국 항공모함 기동부대가 유럽으로 가서 독일 공군 기지를 타격했다면 어떤 성과가 나왔겠냐고 반문합니다.

반면 전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평가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피츠시몬즈는 대평양 전쟁의 분기점은 미드웨이 해전이 아니라 미국의 고속전함부대가 전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1942년 말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함 전력없이는 태평양에서 전략적인 공세가 가능하지 않았다고 보는 겁니다. 저자는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주 요인이 미해군의 신형고속전함들의 활약이라고 평가합니다. 또한 1943년 이후 미해군의 반격작전에서도 전함의 역할을 더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자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 전함 전력이 급속하게 감축된 주된 요인은 항공모함의 우위 보다는 미해군에 대항할 수상함 전력을 가진 가상적이 소멸하고 대함미사일이 등장한데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 해군항공대가 해군 내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항공모함 항공대의 위력을 강조하는 여론을 조성한 점도 항공모함의 '신화'를 부풀리는데 일조했다고 주장합니다.

꽤 재미있는 주장을 하는 글 입니다.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역지사지 - 어떤 육사생도의 실전 경험담

오랫만에 박경석 장군의 회고록 『야전지휘관』을 읽고 있는데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한국전쟁 초기 포천 방면 방어에 투입된 일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박경석 장군 본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으로 풀어놓는 서술방식도 재미있네요. 첫 전투에서 패배하여 후퇴할때의 비참한 심정을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상당히 솔직한 회고담이 아닌가 싶어서 인용을 해 봅니다.


******************


중대장을 빼놓고 그들은 모두 동기생이었다. 1950년 6월 1일 태능 육군사관학교 생도 제2기로 입교하여 청운의 꿈을 안고 교육을 받은지 25일째 되는 날 6ㆍ25가 발발하자 M1소총 조작법도 제대로 모르는 사관생도가 국가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생도 제1기생(현 제10기)과 더불어 대대를 편성 포천 방면 전투에 투입되었다.

홍안의 청소년들인 그들은 생도 제1기생이 하라는대로 행동했다. 호를 파라면 호를 팠고 잠복조에 차출하면 잠복근무에 열중했다. 그들은 포천지역에 배치된 능선에 개인호를 파고 M1소총을 겨누면서 북쪽을 향해 응시하고 있었다. 생도 제1기생들은 포천지역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으나 생도 제2기생들은 전혀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생소한 곳 이었다. 동서남북도 잘 알지를 못했으며 겨우 다음날 이른 새벽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야 방향을 알 정도였다. 

전선에 배치된 얼마 후 이윽고 멀리서 둔탁한 북소리 같은 것이 울리더니 잠시 뒤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과 더불어 '쾅쾅 쿵쾅 쿵쾅...'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포탄이 진지 주위에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평생 처음 당하는 포탄세례인지라 모두들 호속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 감고 이제는 다 죽는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포탄소리가 뜸하면서 곧 이어 따발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따. 따. 따. 따...' 따발총 소리에 기가 질려 어쩔줄을 모르는 생도 제2기생들을 향하여 뒤에서 생도 제1기생의 호령소리가 들려왔다.

"전방 보이는 적, 사거리 500m 사격개시!"

생도들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사격을 하면서 자세히 살피니 적이 500미터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멀리 가물가물 메뚜기 같이 뛰었다가 엎드렸다 하면서 달려오는데 약 1키로미터 거리 쯤 되는 것 같았다.

적의 진출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그들도 겁이 났는지 별로 계속 전진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사격명령이 내려졌으니 안쏠 수도 없어 무턱대고 방향만 어림잡아 쏘아 대었다. 처음에는 총소리와 진동에 겁이 나는 것 같기도 하더니 몇 크립 정도 쏴보니 신이 나는 것 같았다. 계속 삽탄 장전 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일부 생도 제2기생들은 M1 8발을 다 쏘고난 다음 장전이 서툴러 호에서 뛰어나와 생도 제1기생 호를 찾아다니며 삽탄장전을 부탁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교전한 지 30분 정도 되었을까 '부릉 부릉 부릉'하는 무거운 금속성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집채만한 괴물이 이쪽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생도 제2기생들은 아무도 그 물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무조건 그 물체를 향해 M1 소총을 쏘아댔다.

"야! 전차닷! M1으론 안돼!"하는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쿵쾅 하는 벼락치는 소리에 뒤이어 "이크! 웅웅"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적의 직사포탄에 의해 아군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바로 옆 개인호 속으로 달려가니 이름모를 동기생 한 명이 죽어있었다.

"전원 후퇴! 화랑대로 집결이닷."

생도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적과 마주치면 죽을때까지 싸우는 것인줄만 알았던 그들에게 후퇴명령이 내려지니 도무지 뭐가 뭔지 알수가 없는 일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더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육사입교 25일째를 맞이하는 그들인지라 전차의 위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생도 제1기생들은 전차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맨손으로 개죽음을 당하느니 일단 후퇴하여 전열을 가다듬어야 되겠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박생도는 엉엉울면서 뛰기 시작했다. 사관생도의 긍지가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그 화려하던 꿈이 무너진 것이다. 뛰면서도 박생도는 주마등처럼 어린 시절의 일들이 생각났다. 어린시절에 본 만화책에는 중국군 병사들이 일본군에게 쫒기어 도망가는 그림이 실리곤 했다. 그당시 기억으로는 일본군은 공격만 하는 군인이고 중국군은 도망만 하는 패잔병인 줄만 알았다. 그것이 커가면서 뇌리에 박혀있어 도망은 으례히 중국인만 하는 것으로 인식이 돼 중국집에 음식 먹으러 가면 중국인들이 쏼라쏼라 떠들면서 우동을 나르는 모습과 도망가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혼자서 웃기도 하였던 것을 아스라히 생각하면서 지금 박생도는 자신이 전차가 나타났다고 하여 적에게 뒤를 보이며 뛰는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 이었다. 신라의 화랑들처럼 또한 화랑 관창처럼 멋있게 싸우겠다고 다짐한 나이어린 사관생도들의 아름다운 꿈을 무참히 꺾어 버린 것이었다. 박생도는 계속 엉엉울면서 뛰었다.


박경석, 『야전지휘관: 야전지휘관의 사생관』 (서울: 병학사, 1981) 143~147쪽.

2021년 3월 29일 월요일

Black Cross, Red Star 5권 도착

 


Christer Bergström의 Black Cross, Red Star 5권이 도착해서 조금 훑어봤습니다. 이 책의 1권을 처음 접하고 굉장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어느덧 1943년 7월까지 다루고 있군요. 저자가 좀 독일군에 편향된게 아닐까 싶을때도 있지만 독소전쟁 항공전에 천착하는 태도는 존경스럽습니다. 다루는 주제의 특성상 양측 공군의 지상지원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상당히 독일군에 우호적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연구에서는 독일군의 작전을 다소 비판적으로(어찌보면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크리스토퍼 로렌스의 연구를 많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2021년 3월 21일 일요일

제2차세계대전 말기 Bf 109의 손실 내역

 페터 슈몰(Peter Schmoll)Me 109 Producktion und Einsatz (MZ Buchverlag, 2017) 191~192쪽에 전쟁 말기 Bf 109의 손실을 정리한 통계가 있어서 인용을 해 봅니다. 적의 공격으로 인한 손실(전투손실) 만큼이나 비전투 손실의 비중이 높은게 눈에 들어옵니다.


완전손실(Totalverlust)과 대파(schwere Beschädigung)를 합친 숫자입니다.

 

 

Bf 109 E

Bf 109 F

Bf 109 G/K

합 계

19441

전투손실

3

30

258

291

비전투손실

5

65

199

269

합계

8

95

457

560

19442

전투손실

5

3

338

346

비전투손실

3

51

323

377

합계

8

54

661

723

19443

전투손실

1

1

552

554

비전투손실

22

42

379

443

합계

23

43

931

997

19444

전투손실

0

0

451

451

비전투손실

30

11

548

589

합계

30

11

999

1,040

19445

전투손실

 

5

625

630

비전투손실

 

55

418

473

합계

 

60

1,043

1,103

19446

전투손실

 

2

194

196

비전투손실

 

7

572

579

합계

 

9

766

775

19447

전투손실

 

6

955

961

비전투손실

 

13

723

736

합계

 

19

1,678

1,697

19448

전투손실

 

5

565

570

비전투손실

 

12

573

585

합계

 

17

1,138

1,155

19449

전투손실

 

1

445

446

비전투손실

 

4

401

405

합계

 

5

846

851

194410

전투손실

 

 

502

502

비전투손실

 

 

485

485

합계

 

 

987

987

194411

전투손실

 

 

345

345

비전투손실

 

 

364

364

합계

 

 

709

709

194412

전투손실

 

 

462

462

비전투손실

 

 

532

532

합계

 

 

994

994

19451

전투손실

 

 

655

655

비전투손실

 

 

562

562

합계

 

 

1,217

1,217

19452

전투손실

 

 

225

225

비전투손실

 

 

260

260

합계

 

 

485

485

19453

전투손실

 

 

381

381

비전투손실

 

 

441

441

합계

 

 

822

822

 

비전투손실의 비중은 매월 40% 후반에서 5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훈련 과정의 손실 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다양한 원인으로 발상하는 비전투 손실이 상당했던 걸로 보입니다. 19446월에는 비전투손실의 비중이 무려 74.7%에 달합니다.

 

19446월과 19447월 통계를 보면 그 전달의 손실 통계가 다음달에 합쳐지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부터 독일 공군이 대거 프랑스로 이동하면서 전투 손실이 높아졌는데 이 통계표에는 19446월의 전투손실이 194대에 불과하고 그 다음달인 7월에 955대로 폭증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6월에 발생한 손실 중 상당부분이 7월에 합산 된 걸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