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8, 2011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0-1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연재에 앞서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0

1. 테렌스 주버vs테렌스 홈즈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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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7

S. 번외편 및 기타 사항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S-1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0-1 : Der Schlieffenplan - Kritik eines Mythos

네. 참으로 진도가 안나가는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입니다. 이왕 큼지막한 주제를 건드린 김에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최대한 다루도록 해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주제에 대한 학위논문 중에서도 빠뜨린 것이 많아 정리 중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한가지 중요한 것을 빠뜨렸습니다.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기존의, 그리고 아직까지의 정설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슐리펜 계획은 전쟁 계획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고 핵심적인 내용도 잘 알려져 있기에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슐리펜 계획에 대해 지금까지의 정설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저작은 1956년에 출간된 게르하르트 리터(Gerhard Ritter)의 Der Schlieffenplan : Kritik eines Mythos입니다. 이 저작은 슐리펜 계획의 형성 과정을 다룬 전반부와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의 원사료인 후반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말 많은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이 그대로 실려 있기 때문에 현재 진행중인 논쟁의 세부적인 사항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단은 1905년 비망록을 번역해서 올릴 생각인데 요즘 제 일정도 있고 해서 빠른 시일 내에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저작의 영문판인 The Schlieffen Plan - Critique of a Myth가 PDF화 되어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일단 영어를 읽으실 수 있는 분들께서는 온라인에 공개된 영문판을 한번 읽어주시면 논쟁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아무래도 논쟁이 좀 복잡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논문 요약 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논쟁의 정리와 함께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이나 독일군의 부대전개 계획 같은 사료들도 번역해서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또 공수표 발행이군요;;;)

어쨌든 논쟁은 계속됩니다.;;;;;

Friday, February 25, 2011

이벤트 당첨 결과

이벤트 당첨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내일 참석해 주시는 분들은 직접 드리고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알려 주신 분들은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참석 또는 우편수령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분들의 책은 내일 모임에서 제가 임의로 처분하겠습니다.




1. 노래하는 역사



2. Panzer Battles서울향리


3. 서양인의 의식구조nishi


4. 한국인의 의식구조 1질럿


5. FIASCO腦香怪年


6. 제3물결



7. 国民党军简史syllien


8. The Army and Vietnamnishi


9. The US Army GHQ Maneuvers of 1941질럿


10. 눈으로 보는 로켓이야기스카이호크


11. Decision in Normandysyllien


12. 스크린 밖의 한국 영화사nishi


13. 베트남 10,000일의 전쟁渤海之狼


14. 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



15. 현대정치학



16. 오뎃사 파일B군


17. 당신들의 대한민국



18. 에반게리온 12권아텐보로


19. 세계를 읽는 경제지식渤海之狼


20. 원자폭탄 만들기 상, 하腦香怪年







21. 토니 타케자키의 건담만화渤海之狼


22. 전격! 독일 전차군단질럿


23. The Canadian Army and the Normandy Campaignsyllien


24. 초능력과 미스터리의 세계



25. Kursk 1943acdde


26. UFO신드롬



27. 타인의 방



28. Dictionary of Archaeology



29. Cat Shit One' 801410


30. 미국외교정책사腦香怪年


31.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oldman


32.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腦香怪年


33. 현대전의 실제maxi


34. 현대 철학의 흐름카린트세이


35. SS Steel Storm서울향리


36. 군주론스카이호크


37. 월간 플래툰maxi


38. 서바이벌 게임 핸드북



39. 디펜스 타임즈질럿


40. 바우돌리노 상, 하

2월 26일 토요일 모임 공지

2월 26일 토요일 모임 장소를 공지합니다.

장소는 옥토버페스트 종로점 앞이고 시간은 6시 30분 입니다.

회비는 기본 2만원+알파입니다.

참석 가능하신 분들은 제 이메일(panzerbear@지메일.com)으로 연락처를 알려주시고 참석이 불가능한 분들은 주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책은 정모에서 나눠드리고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그 다음주에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신청 현황은 대략 이렇습니다.




1. 노래하는 역사



2. Panzer Battles질럿, 서울향리, acdde


3. 서양인의 의식구조질럿, nishi


4. 한국인의 의식구조 1질럿, nishi


5. FIASCO하얀까마귀, acdde, 뇌향괴년


6. 제3물결



7. 国民党军简史syllien


8. The Army and Vietnamnishi


9. The US Army GHQ Maneuvers of 1941질럿, syllien, 하얀까마귀


10. 눈으로 보는 로켓이야기스카이호크, maxi


11. Decision in Normandysyllien, acdde


12. 스크린 밖의 한국 영화사nishi, 아텐보로


13. 베트남 10,000일의 전쟁B군, 질럿, 스카이호크, 渤海之狼, acdde, 01410


14. 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



15. 현대정치학



16. 오뎃사 파일B군, 아텐보로, 渤海之狼, 뇌향괴년


17. 당신들의 대한민국



18. 에반게리온 12권아텐보로


19. 세계를 읽는 경제지식渤海之狼


20. 원자폭탄 만들기 상, 하뇌향괴년







21. 토니 타케자키의 건담만화B군, 渤海之狼, maxi


22. 전격! 독일 전차군단질럿, acdde, maxi


23. The Canadian Army and the Normandy Campaignsyllien, acdde


24. 초능력과 미스터리의 세계



25. Kursk 1943acdde


26. UFO신드롬



27. 타인의 방



28. Dictionary of Archaeology



29. Cat Shit One' 801410, B군


30. 미국외교정책사oldman, 카린트세이, 뇌향괴년


31.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oldman, 질럿, 아텐보로


32.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카린트세이, 뇌향괴년


33. 현대전의 실제스카이호크, 질럿, maxi


34. 현대 철학의 흐름카린트세이, 뇌향괴년


35. SS Steel Storm아텐보로, 서울향리, oldman, acdde


36. 군주론oldman, 스카이호크


37. 월간 플래툰maxi


38. 서바이벌 게임 핸드북



39. 디펜스 타임즈



40. 바우돌리노 상, 하

책 드립니다(몇 권 더 추가)

오늘 책장 정리를 끝냈습니다. 책을 몇 권 더 골라냈는데 아랫 글에서 내놓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25일 금요일 밤에 추첨을 해서 26일 토요일 모임에서 나눠드리겠습니다.




29. Cat Shit One' 80 1~3권 : 설명이 필요없는 만화죠. 책 상태는 좋습니다.
30. 미국외교정책사 : 제목 그대로 레이건 행정부 시기까지 미국의 외교정책을 다룬 책 입니다. 번역이 좀 그렇습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31.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구려사입니다. 통사는 아니고 흥미로운 주제를 몇가지 잡고 서술하고 있는데 꽤 재미있는 편 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32.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경향신문에서 특집으로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어 낸 것 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33. 현대전의 실제 : How to Make War의 1993년 판을 번역한 구판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34. 현대 철학의 흐름 :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35. SS Steel Storm : 독일 무장친위대의 기계화 부대들이 동부전선에서 치른 전투들에 대한 개설서 입니다. 적당한 사진, 적당한 지도, 적당한 서술이 어우러진 적당한 책 입니다. 표지가 조금 바랫지만 책 상태는 좋습니다.
36. 군주론 : 네. 설명이 필요없지요. 수많은 번역본이 돌아다니는 군주론의 번역판 중 하나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학부 때 한 번 읽고 처박아 둬서;;;;)


책이 조금 더 추가됐습니다. 아는 친구가 내놓는 물건입니다.

37. 월간 플래툰 : 1995년 9/10월호, 2006년 4월호, 2006년 7월호
38. 서바이벌 게임 핸드북

39. 디펜스 타임즈 : 2005년 6월호, 2005년 10월호, 2006년 1월호

40. 바우돌리노 상, 하



올해 나눠 드릴 책은 이상이 마지막 입니다. 책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1~28번과 마찬가지로 책 번호와 제목을 적어주십시오. 많이 신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5일(금요일) 저녁에 추첨을 해서 나눠드리겠습니다.

책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해도 변함없이 제 재미없는 블로그를 들러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변함없이 재미없는 농담과 부실한 번역글로 블로그를 채우고 있는지라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도 블로그를 들러주시는 분들께 책을 몇 권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다음주 금요일에 추첨을 통해 책을 드릴 분을 결정하고 토요일에 간단한 술자리를 마련해서 책을 나눠드릴까 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책과 그저그런 책이 뒤섞여 있으니 잘 골라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작년 보다는 좀 쓸만한 책이 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1. 노래하는 역사 : 과거 수많은 사람들을 낚았던 그 책입니다. 뭐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국수주의를 조롱하면서 읽으시면 꽤 재미있습니다. 책 상태는 좋은 편입니다.
2. Panzer Battles : 멜렌틴 장군의 2차대전 회고록으로 고전이기도 합니다. 책 상태는 좋은 편 입니다.
3. 서양인의 의식구조 : 이규태 칼럼에 연재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그런대로 읽을 만 합니다. 책 상태는 좋은 편 입니다.
4. 한국인의 의식구조 1 : 3번과 마찬가지인데 이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책 상태는 좋은 편 입니다.


5. FIASCO : 이라크 전쟁을 다룬 논픽션인데 꽤 괜찮습니다. 어쩌다 보니 한권이 더 굴러들어와서 다른 분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6. 제3물결 : 이제는 좀 하품이 나는 책이죠.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튀어나왔습니다. 이 책을 거두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7. 国民党军简史 : 국민당군 간사는 작년에 신판을 구하게 되어서 구판을 내놓게 됐습니다. 상권의 상태는 좋은데 하권은 한번 제본을 해서 상태가 살짝 좋지 않습니다. 국민당군에 관심있으신 분이라면 추천합니다. 특히 국민당군 육군의 전투서열을 정리하는데 아주 편리한 자료입니다. 
8. The Army and Vietnam : 1980년대에 나온 책이지만 미육군의 관점에서 베트남을 다룬 개설서로 꽤 괜찮은 편 입니다. 미군 도서관에서 나온 녀석이라 책 상태는 약간 그렇습니다.


9. The US Army GHQ Maneuvers of 1941 : 미육군이 2차대전 참전 직전 실시한 기동훈련들을 분석한 책 입니다. 미군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추천합니다. 표지가 상했지만 나머지는 괜 찮습니다.
10. 눈으로 보는 로켓이야기 : 사진 많고 그럭저럭 볼만한 개설서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11. Decision in Normandy : 패튼 찬양하고 몽고메리를 까는 노르망디 전역에 대한 서적입니다. 저자가 패튼 평전을 쓰기도 한 패튼 빠돌이(???) 여서 그런진 모르겠습니다만. 미군 도서관에서 나온 물건이라 상태는 약간 별로입니다. 이것도 어쩌다 보니 한권이 더 굴러들어온 경우죠.
12. 스크린 밖의 한국 영화사 : 정치색이 좀 강하긴 합니다만 그걸 생각 안하고 보면 그럭저럭 볼만한 한국 영화사 개설서 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13.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 꽤 유명한 베트남전쟁 서적이지요. 번역은 평범하지만 개설서로는 무난한 것 같습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14. 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 : 사극 작가로 유명한 신봉승 선생의 책입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15. 현대정치학 : 그냥 저냥 무난한 대학교재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학부 때 한 번 보고 말아서;;;;;)
16. 오뎃사 파일 : 유명한 포사이스의 작품입니다. 일본어 중역판이라 중간 중간 이질적인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책 자체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종이가 좀 누렇게 뜨긴 했지만 책 상태는 좋습니다.


17. 당신들의 대한민국 : 요즘 과하게 오버를 해서 욕을 잔뜩 먹고 있는 박노자가 나름 신선한 글을 쓰던 시절에 나온 책이죠. 한번 읽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18. 에반게리온 12권 : 설명이 필요 없죠. 책 상태는 좋습니다.
19. 세계를 읽는 경제지식 : 그냥 저냥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 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20. 원자폭탄 만들기 상, 하 : 책 자체는 꽤 유명한 논픽션이고 나쁘지 않은데 번역이 좀 그렇습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21. 토니 타케자키의 건담만화 : 설명이 필요없는 썰렁한 개그만화죠. 책 상태는 좋습니다.
22. 전격! 독일 전차군단 : 옛날에 호비스트에서 내놓은 일러스트레이션 모음집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그리고...


23. The Canadian Army and the Normandy Campaign : 사진을 올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꽤 괜찮은 책 입니다. 제목과 달리 캐나다가 2차대전에 돌입하면서 대륙 원정군을 편성하는 과정 부터 노르망디 전역에서 실제 작전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


책장은 아직 정리중 이라서 정리하다가 처분할 물건이 더 나오면 계속해서 번호를 매겨 올리겠습니다.


몇 권 더 추가합니다.


24. 초능력과 미스터리의 세계 : 넵. 제목 그대로 怪力亂神을 다루는 책 입니다.


25. Kursk 1943 : 국내에도 번역된 오스프리의 캠페인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프로호로브카 전투에 대한 낡은 가설을 다루고 있어 이제는 한 물 간 책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26. UFO신드롬 : 표지 처럼 난감한 책은 아닙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27. 타인의 방 : 최인호의 단편 모음집 입니다. 책 상태는 좋습니다.
28. Dictionary of Archaeology : 가벼운 분량의 고고학 사전입니다. 전문적으로 쓸만한 수준은 아닙니다만 취미로 고고학에 관심 가지신 분들에게는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추첨은 다음 주 금요일 밤에 하겠습니다. 추첨에 사용할 프로그램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The Hat입니다.

책을 신청 하실 때는 번호나 책 제목을 꼭 달아 주십시오.

Monday, February 14, 2011

이제 어려운 단계가 왔다(Now Comes the Hard Part)

이집트 사태를 전망하는 다른 글을 하나 더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이번 글은 2월 10일, 그러니까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직전  포린 폴리시 인터넷 판에 올라온 콜게이트 대학 부교수 브루스 러더포드(Bruce K. Rutherford) “이제 어려운 단계가 왔다(Now Comes the Hard Part)”라는 글 입니다. 사실 이 글은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직전에 씌여진 글이라서 그냥 놔 둘까 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서 올려 봅니다. 현재 진행형인 사태이다 보니 “오 재미있는 글이 올라왔는걸?” 하는 동안 상황이 변해버리니 재미있더군요. 이 글에서는 무바라크 퇴진 이후 미국과 서방세계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따라 각 정파의 이해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날림번역이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이집트 사태의 다음단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이행 과정의 큰 윤곽은 카이로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아마도 이르면 2월 10일 목요일 쯤 호스니 부마라크 대통령이 사임하고 반대파를 포함한 과도 정부가 성립되는 것이 포함된다. 아마도 올해 말 까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이집트의 헌법과 법규를 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누가 상황을 이끌어 갈 것인지 불분명하다.

개혁 과정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은 주로 세 집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로, 물론  가장 중요한 집단은 시위대들이다. 비록 무바라크의 퇴진은 그들의 대의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부패의 척결과 시민 사회 및 정치적 권리의 확대, 그리고 경쟁 선거의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 다수가 대의를 위해 전진하면서 크나큰 고통과 상처를 감내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3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타흐리르 광장에 시위대로 모여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표에 대한 실질적인 진척이 이루어 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해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면 위로 갑자기 부상한 문제는 향후 (권력) 승계의 시나리오 -오마르 슐레이만이 9월 선거 이전까지 과도 정부를 이끌게 된다 -가 새로운 질서에 대한 시위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인 것 같다. 이 계획에 따르면 타흐리르 광장의 군중들이 반대하는 기구인 정보국의 수장을 최근까지 역임했던 슐레이만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일반 반대파 인사들과 노벨상 수상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등을 과도 정부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가 이들을 존중한다 할 지라도 이들이 리더쉽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볼만한 징후는 많지 않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것은 4월 6일 운동의 젊은 지도자들(이들은 원래 2008년 섬유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케파야(Kefaya), 가드(Ghad)당, 민주전선, 그리고 무슬림 형제단 등이 정권과 협상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 고려해야 할 문제는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를 일으킨 청년층이 더 많은 이집트인들을 무기한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집트 정부는 시위대가 지치고 일반인들, 특히 중산층들이 지난 수주간의 경제적 붕괴 상태에 분노를 느껴 점차 시위대에 반감을 가지게 되길 원하고 있다. 만약 타흐리르 광장의 군중들이 줄어든다면 시위대의 정치적 지렛대는 기울게 될 것이다. 기세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그럴듯한 방법은 더 많은 일반 시민들이 타흐리르 광장에서 그들의 휴일(과 기도일)을 시위에 쓸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을 “시위의 날”로 하는 것이다. 만약 금요일의 시위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게 된다면 시위대는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의 핵심적인 집단은 이집트의 군부로 이들은 개혁 절차가 진행되면 그들의 다양한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 장군들이 국방 예산을 지키고 국가 안보에 대한 의사 결정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고수하려 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장군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단지 국방 예산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장군들은 군대를 먹여살릴 뿐 만 아니라 민간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농장, 공장, 무역 회사 등을 통제하고 있다. 또한 군부는 이집트 전역(특히 지중해 연안과 나일강 일대)에 막대한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를 민간 기업에 임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장교단 또한 사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장교들은 정권으로 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와 식비 및 주거비 지원, 휴양지, 사교시설, 그리고 다른 이득을 제공 받아 왔다.

현재의 정치적 이행 과정은 군부에 상당한 무게가 쏠려 있다. 군부는 질서를 유지하고 정치 체제의 공백 부분을 관리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허용할 것 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군부는 이러한 모든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군부는 그들이 부여받은 안보적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어쨌든 이집트군은 465,000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군부가 정치적인 공백 상태를 관리할 능력이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군부가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혹은 민주주의가 좋은 사상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불확실하다.

실제로 장교단을 포함한 정치 엘리트의 다수는 공개된 정치적 경쟁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러한 회의주의는 (무바라크가 집권 초기에 명확히 했던 것 처럼) 이집트 인들이 민주주의에 걸맞는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문화적 소양도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정치에 완전히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민주화가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기술과 판단력을 결여한 카리스마적이고 포퓰리즘 적인 지도자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이용되어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엘리트들 사이에 이러한 견해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이 군부가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필요한 안보와 안정을 뒷받침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군부가 민주화 과정에서 중립을 지키지 않을 수 있으며 보다 명확히 하자면 무슬림 형제단이 민주화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부 이집트 인들과 (그리고 분명히 일부 외국인들은) 군부가 이러한 역할을 해 주는 것을 반길 것이다. (이집트의) 장군들이 25년전 터키의 군부와 달리 정치에 참여하는 모든 세력은 정부의 세속적인 토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건설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이집트의 장군들은 이집트와 지역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구실로 특정한 이슬람주의자들을 제외하는 식으로 정치적인 논의의 범주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장군들이 보다 급속한 변화를 요구하는 집단을 제외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참여하는 이슬람 주의자들을 참여시키는 식으로 이러한 역할을 소극적으로 수행 한다면 그들의 역할은 실제로 긍정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장군들이 강경한 방식을 택하고 (현행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이슬람주의자들을 제외한다면 민주화 이행과정의 정당성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또한 군부가 경제 개혁 과정을 감독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의 대상이다. 이집트의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는 최소한 군부가 소요한 기업 다수를 민영화하고 군부가 통제하고 있는 상당한 규모의 토지를 매각하는 것을 포함해 민간 경제 부문에서 군부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재평가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국방비의 삭감과 (미국의 군사원조의 상당부분을 경제 원조로 돌리는 것과 같은) 미국과 이집트 사이의 군사원조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포함된다. 장군들은 아마도 이러한 조치에 저항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들은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는 많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데 절실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집단은 무슬림 형제단이다. 무슬림 형제단의 시위 참여는 지금까지 미미한 수준이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시위가 시작된지 며칠이 지난 1월 28일 이전에는 공식적으로 단원들에게 시위에 참여하라는 호소를 하지 않았다. 비록 무슬림 형제단은 시위대에 참여하고 있으나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으며 타흐리르 광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에서 가장 잘 조직된 반대세력이며 어떠한 정치적 변화가 있더라도 한 축을 담당할 것이 틀림없다.

지난 15년간 무슬림 형제단의 지도부는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법률을 준수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무슬림 형제단은 현제 이집트의 법률을 받아들이며 평화적이며 의회를 통한 방식으로 법을 개정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 형제단의 위치는 완전히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무슬림 형제단은 여전히 기독교인이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는데 반대하고 있으며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데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 형제단의 대변인은 민주적인 절차에 참여하여 그들의 목표를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달성하길 원한다고 거듭 밝힌바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이집트인들은 이것을 믿지 못하고 있으며 무슬림 형제단이 비밀스러운 계획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두려워 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전체 인구의 거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콥트 기독교인들의 두려움을 달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록 콥트 기독교인들은 이집트 전역에 거주하고 있고 다양한 사회경제 계층에 분포되어 있지만 1월 초 알렉산드리아의 교회에서 일어난 차량 폭탄 테러와 같이 지난 해 기독교 사회에 가해진 여러 차례의 강도 높은 공격에 무력함을 느끼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러한 공격과는 연관이 없으며 이것들을 국가적 통합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콥트 기독교인들은 만약 이집트의 정치적, 안보적 상황이 악화된다면 기독교인에 대한 새로운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두려워 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이 그들은 양의 탈을 쓴 알 카에다가 아니라는 점을 이집트 인들에게 확신 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몇 가지 방안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무슬림 형제단의 소년 단원을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콥트 기독교도 형제들에게 보내 주는 것, 여성들을 무슬림 형제단의 고위 직책에 앉히는 것, 그리고 무슬림 형제단 지도자들과 콥트 기독교도들을 모두 포함한 정당을 건설할 계획을 공표하는 것 등이다. 대부분의 무슬림 형제단 단원들은 이러한 방안들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바로 “새로운 발상(outside the box)” 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이렇게 극적인 제스쳐를 취하는 것 만이 무슬림 형제단이 대다수의 이집트 인들로 부터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유일한 방법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평화로운 이행으로 가는 길은 어렵다는 것이다. 설사 헌법적인 도전을 극복하더라도 미국이 지지하고 있고 슐레이만이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계획은 고위 장교단이 사심이 없어야 하며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한마디로 비현실 적이다. 설사 군부가 일어서더라도 이집트는 이번 봉기로 인해 더 악화된 막대한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이행 과정은 상대적으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만약 알 카에다가 이집트에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면 약간의 차량 폭탄을 잘 활용하는 것 만으로도 - 콥트 교회 밖에서 터뜨린다던가 - 정치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이집트 대중과 국제 사회의 시각을 극단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이행과정을 성공시키기 위한 핵심은 헌법을 개정하고 경쟁 선거를 치르는데 필요한 안정적인 환경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안보와 실업문제를 해결하는데 달려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집트 경제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곧 바로 직면하게 될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원조를 제공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 이것은 아직 미국과 유럽연합 당국의 공식 성명에는 언급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국제 사회는 이집트의 제조업 분야의 개편과 광범위한 민간 경제 분야의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는 어쩌면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이라는 범위 내에서 이집트의 상품에 대한 우선적인 접근권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의회는 대외 원조를 늘리거나 더 많은 특별 무역 협정을 허용할 생각이 없다.

만약 이집트에서 민주화의 시도가 성공하게 된다면 이것은 이 지역과 그 너머의 세계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실패하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심각한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미국의 적대 세력을 강화하고 이 지역의 안정을 해치며 수십년간 민주적인 개혁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사실은 오늘 오후에 RSS 피드를 살펴보다가 이스라엘의 반응에 대한 기사가 몇 편 눈에 들어와서 이것도 조금 번역하다가 왠지 의욕이 없어져서 놔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게 현재 똥줄이 타는 이스라엘의 움직임인데 여기에 대해서 흥미로운 글이 몇 편 나왔더군요. 급박한 사태인 만큼 향후의 추이가 궁금해 집니다.

그리고 러더포드 교수는 2008년에 Egypt after Mubarak: Liberalism, Islam, and Democracy in the Arab World 라는 책을 낸 바 있습니다. 어떤 저널의 서평에 실렸을 때 그냥 보고 지나쳤는데 이 기사를 번역하다 보니 새삼 생각이 떠오르는군요. 과연 이 책에서는 어떤 전망을 했는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Sunday, February 13, 2011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주의(Mubarakism without Mubarak)

이집트 사태가 전개되는 동안 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신봉자로서 독재자 하나가 물러난 것은 축하할 일인데 이집트의 전망이 썩 밝아보이지 않는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꽤 재미있는 전망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 해 볼까 합니다. 2월 11일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실린 워싱턴 대학과 카이로의 아메리칸 대학 교수 엘리스 골드버그(Ellis Goldberg)의 글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주의(Mubarakism without Mubarak)인데 현재 이집트 군부의 강력한 영향력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현재 이집트 군부는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그리고 통합된 존재이므로 향후 사태의 전개에 가장 핵심적인 플레이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씌여진 글 입니다. 읽어보고 꽤 재미있어서 번역을 해 봤는데 다소 심한 날림번역이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가 시위대의 요구에 굴복하고 카이로를 떠나면서 권좌에서 물러났다. 무바라크는 어제 전 세계에 방송된 연설에서 퇴진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되지도 않아 물러나게 됐다. 그날 오전 최고군사위원회는 ‘첫 번째 공식발표’인 성명에서 군부가 무바라크의 평화적인 퇴진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권력은 군대의 손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동은 이집트의 2월 항쟁에서 군부가 (시민의) 지지를 받는 방관자로 부터 (사태를) 좌우하는 세력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간 마지막 단계였다. 항쟁이 처음 일어나기 시작한 1월 25일 부터 군부는 무한한 자제력을 발휘하여 (항쟁의 중심지였던) 타흐리르 광장 주변을 콘크리트 장애물, 커다란 철판, 그리고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물리적인 통제를 확대하고 심화시켰다. 군부의 늘어나는 행동범위는 그 자체적으로 점진적인 쿠데타(slow-motion coup)의 다음 단계가 되었다. 군부가 간접적인 통치에서 직접적인 통치로 돌아가는 것 이었고 그 기초는 이미 1952년에 마련된 것 이었다.

서방 세계는 이 위기로 인해 이집트에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빨리 도입되면서 무슬림 형제단이 권력을 잡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집트의 정권에서 부패한 민간 정치인들만 탈락하고 군부만이 유일한 행위자로 남게 되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난밤 무바라크에게서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신임 부통령 오마르 슐레이만(Omar Suleiman) 장군은 2월 9일에 이집트 국민들에게 현재의 정권과 군부의 쿠데타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으며 그는 이집트가 인질로 잡혀있다는 분위기만 심화시켰을 뿐이다.

무바라크 통치 하의 이집트의 정치 체제는 가말 압델 나세르와 자유 장교단에게 권력을 부여한 1952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 성립된 공화체제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 이었다. 나세르와 장교단은 이집트의 입헌 군주정을 철폐하고 사실상 한 세대 전체의 민간 정치인과 법조인들을 공직에서 몰아냈다. 나세르와 장교단은 충성적인 군부 인맥으로 그들만의 공화체제를 만들었다. 군부가 기술관료적 통치를 하면서 이집트의 법률가들에게 새 헌법을 만들게 한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법률가들이 작성한 안은 강력한 의회와 제한적인 대통령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었고 장교단은 이것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라고 여겼다. 군부는 이것을 폐기해 버리고 대통령에게 막항한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을 작성했다.

이러한 조치는 군부에게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1953년 이래로 이집트의 대통령은 모두 군대의 장교 출신들이 독점했다. 두 세대에 걸쳐 군부는 대통령을 통해 이집트의 자원 대부분을 국가 안보와 궁극적으로 재앙이 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필요한 군비 조달에 쏟아넣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정부가 경제를 무시한 것과 합쳐저 이집트를 파산 상태로 몰아넣었다. 1975년과 1977년 사이에 이집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시민 봉기가 일어났다. 군부는 통치권을 회복하기 위해 관심사를 전쟁에서 경제발전으로 돌렸다. 군부는 점진적으로 정치에 대한 직접 통제를 완화했으며 권력을 경찰과 이집트 집권당의 다른 강력한 지지세력- 정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이익을 얻은 소규모의 민간 경제인 집단 등에게 양도했다.

무바라크는 1990년대에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내전을 전개했고 군대의 역할은 더 변화했다. 정부가 국내의 경찰력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군대의 규모와 중요성이 감소했다. 그 동안 경찰과 내무부는 군대와 국방부를 대신해 정권의 초석으로 들어 앉았다. 한편, 최근 굴욕을 겪고 있는 철강부호이자 전 집권당 당수 아흐메드 에즈(Ahmed Ezz)와 같이 이집트를 먹여살려온 엘리트 사업가 집단은 더욱 더 강력해 졌다. 무바라크는 이들에게 집권당인 국가민주당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이들은 자신들에게 더 큰 부를 안겨줄 수 있도록  이집트 경제를 국제 무역에 개방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장교단도 경제적인 이익을 통해 일정 수준의 보상을 받았다. 1990년대 동안 군대는 경제에 대한 개입을 확대했다. 이 시기에 군부가 소유한 기업체는 이집트 전체 경제의 5~20퍼센트를 차지했으며 마찬가지로 군 장교들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특권과 같이 다양한 이익을 얻었다.

현재 군대는 질서를 유지하는 세력이자 경쟁하는 적대 세력들 간의 중립적인 중재자로 행세하고 있지만 군부 스스로도 지켜야 할 많은 이권이 있으며 사실은 중립적이지도 않다. 현재 존속하고 있는 이집트 국가의 기본적인 구조는 군부에 이득을 주고 있다. 시위대의 실질적인 요구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긴급 사태를 종료하고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며 국가의 개입 없이 정당을 결성할 수 있는 자유를 허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모두에게 이집트의 사회 정치 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집트를 대통령제에서 자유 선거를 통해 선출한 다수파가 (지금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를 선출하는 내각제로 개편하는 것 처럼 헌법과 기타 법률의 개정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군부가 1952년 만들어 지금까지 유지해온 권력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자유롭게 선출된 의회와 새로 구성된 정부는 군부가 자신들의 영역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공개된 선거는 새로운 기업 엘리트들이 의회에서 권력을 잡고 군부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제한하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이집트의 거의 모든 가정에 취사용 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관에서 부터 의류, 식품, 그리고 호텔에 이르는 군부의 방대한 경제적 자산들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군부는 언제나 이집트가 질서정연하고 위계질서에 따라 통치되는 것을 선호해 왔다. 군부는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설사 장교단이 1950년대의 선배들 보다는 논쟁에 대해 보다 관용적이라 할 지라도 대통령이 내각의 장관들을 임명하는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정치 참여의 대상을 군대에서 생애를 보낸 사람들로 제한하는 것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군부의 지도자들은 체제의 변화를 추구하는 대신 상징적인 제스처를 통해 대중들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군부 엘리트들이 대부분의 부패 기업가와 이들의 정부내 협력자들을 공금 및 공공재산 남용의 혐의로 조사할 것이 확실하다. 동시에 군부 엘리트들은 전직 내무장관을 위기 기간 중 시위대를 고의적으로 살해한 혐의로 수사할 수도 있다.

만약 군부가 통치권을 계속 행사하게 된다면 두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첫 번째는 군부에 강력한 연계를 가지고 있는 슐레이만으로 그는 모든 반대 세력과의 협상에서 중심에 서 있으며 거의 끊임없이 텔레비전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연하게도 슐레이만은 대통령제를 개혁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슐레이만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협상이 선거를 다루고 있는 헌법의 세 개 조항만을 바꾸는 것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이집트의 국방부장관 후세인 탄타위(Hussein Tantawi) 원수로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아니다. 탄타위는 지탄 받고 있는 경찰과 달리 군대는 이집트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낸 배후였다. 사실 군대는 시위대와 그들을 공격한 폭력배 양쪽 모두에게 발포하지 않았고 심지어 시위대는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집트 군이 시위대 일부와 인권 단체 회원들을 체포한 사례를 들었다.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에 따르면 일부 군 장교들은 무바라크가 자신은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했을 때 이를 지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슐레이만은 개혁을 제한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탄타위가 있는 한 군대는 나머지 반대 세력과 체제 이행에 대해 협상하는 동안 최소한 중립을 지키려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존속해온, 막대한 경제적 이권을 정치권과 결탁한 한줌에 불과한 경제인들에게 넘겨 주는 등 부패는 심화되고 무능했던 무바라크 정권은 무너졌다. 군부의 권한과 특권을  축소하여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보다 열린 정체 체제와 책임감을 가진 정부가 등장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리고 군부도 과도기의 권력으로서 군부가 통치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집트 군부는 1950년대와 달리 훨씬 전문적이고 잘 교육 받았으며 많은 장교들이 민주주의의 이익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점진적인 쿠데타가 최고조에 달해 과거의 엄격한 군부 권위주의가 복구되는 것이 보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Friday, February 11, 2011

윈터스 본(Winter's Bone)

어제는 심란해서 심야 영화로 윈터스 본(Winter's Bone)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도 매우 무겁고 암울한 영화여서 심란한 기분만 더해졌습니다. 차라리 김명민이 주연인 코미디 영화나 볼 걸 그랬습니다.

사실 영화 자체는 꽤 괜찮게 잘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이 시궁창 같은 상황에 처해있고 계속해서 시궁창 같은 현실이 계속되지만 어쨌든 아주 아주 약간의 희망은 있는 결말이었으니 평온한 때에 봤다면 나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영화는 폐쇄적인 시골마을이 배경이고 빈곤층 소녀가장(?!)이 주인공입니다. 이쯤되면 뭐 말 다했지요. 주인공은 원치 않게 소녀가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약을 제조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는데 집을 담보로 가석방 비용을 마련한 뒤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사라져 버렸으니 집이 압류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의 어머니는 폐인입니다;;;; 어쨌든 씩씩한 소녀가장은 가정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합니다만 아버지의 주변 인물들도 만만치 않은 인물들입니다.

스릴러에서 시골을 그리는 공식은 거기서 거기인지 이 영화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연출이 꽤 좋습니다. 범죄로 얽힌 폐쇄적인 소규모 공동체는 꽤 흔한 소재라서 연출이나 연기가 엉망이면 망하기 쉽지요.(한국 영화 '이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행히 이 영화의 연출은 정말 좋습니다. 동시에 연출이 너무 좋다는 게 문제입니다. 여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친한 친구를 제외하면 등장인물 중 제대로 된 인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마약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동네 보안관도 전형적인 부패경찰 입니다. 이 답답하고 소름끼치는 공동체의 일상을 들여다 보는 건 고역입니다.

게다가 이야기는 암울한데서 그치지 않고 제법 현실적인 방향으로 나갑니다. 현실적으로 빈곤층 소녀가장이 폐쇄적인 공동체에 맞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행히 주인공이 살해되는 최악의 상황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권선징악이 이루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폐쇄적인 시골마을은 늘 돌아가던 대로 돌아가고 주인공은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방안을 취합니다. 물론 완벽하게 암울한 결말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일상은 이미 충분히 엉망이긴 하지만 가정이 완전히 공중분해되는 상황도 피하고 길거리로 나 앉는 상황도 피하긴 합니다.

좀 여유있는 상황에서 봤으면 좋았을 영화였는데 시기를 잘못 골랐습니다. 그래도 영화 자체는 괜찮았으니 그나마 다행이군요.

Monday, February 7, 2011

형님 노릇

1965년 7월 22일, 백악관에서는 베트남전에 대한 개입 확대를 둘러싼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미 베트남은 계륵 같은 꼴이 되어 있었고 정치인들의 골머리를 썩게 하고 있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합리적인 군사적 대안을 찾고자 했는데 군에서는 강경한 대응을 제안합니다.

이 회의록에는 강대국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존슨 : 맥나마라 장관에게 이러한(베트남에 대한) 문제들과 이에 대한 방책을 상의하기 위해 여러분을 소집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각 군 참모총장들에게서 가능한 방안에 대해 들어본 뒤  군사적인 관점에서 방안을 추천해 줬으면 합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베트남을 포기하는 것인데 손실은 가장 적을 겁니다. 두 번째는 현재의 병력을 유지하면서 서서히 패배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100,000명을 추가 파병하는 것인데 이 정도로는 병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내년에 추가 파병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방안의 문제점은 사태가 더 격화되고 사상자가 늘어나며 승리할 수 없는 장기전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 입니다. 먼저 여러분이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야기 한 뒤 우리가 어떤 방안을 취해야 할 지 말 해 보십시오.

맥도날드(David. L. McDonald) 해군참모총장 : 해병대를 파병하면 상황이 호전될 것 입니다. 저는 우리가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개입해야 한다는 맥나마라 장관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만약 우리가 현재 방식대로 계속한다면 적에게 느리지만 확실한 승리를 안겨줄 뿐 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한다면 상황을 역전시키고 우리가 앞으로 뭘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줄 겁니다. 저는 우리가 진작부터 이렇게 하길 바랬습니다.

존슨 : 하지만 제독도 100,000명으로 충분할 것 인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데 제독은 왜 우리가 (개입을) 멈춰서는 안되고 이 방안을 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까?

맥도날드 : 조만간 적을 협상 무대로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존슨 : 하지만 우리가 100,000명을 증파하더라도 적이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맥도날드 : 폭격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존슨 : 우리가 이 방안을 취해야 합니까?

맥도날드 : 예. 각하. 제가 대안을 고려해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철군하거나 병력을 증파해야 합니다.

존슨 : 그게 전부입니까?

맥도날드 : 예, 저는 우리 동맹국들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존슨 : 현재 우리를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동맹국은 많지 않습니다.

맥도날드 : 태국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만약 우리가 베트남에서 빠져나온다면 전 세계가 미국의 공약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겐 달리 선택할 길이 없습니다.

Larry Berman, Planning a Tragedy : The Americanization of the War in Vietnam(W.W.Norton, 1982), pp.112~113
맥도날드 제독의 말 처럼 강대국이 되면 설사 계륵이라 하더라도 그냥 뱉고 나올수가 없게 됩니다. 언제나 형님 노릇은 고달프지요.

Sunday, February 6, 2011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S-1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연재에 앞서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0

1. 테렌스 주버vs테렌스 홈즈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1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2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3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4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5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6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7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S-1

예. 진도가 참 안나가는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에 대한 보충사항입니다. 현재진행형인 논쟁이다 보니 계속해서 새로운 논문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테렌스 주버가 War in Hisoty 17-4호에 테렌스 홈즈의 주장을 반박하는 “The Schlieffen Plan’s ‘Ghost Divisions’ March Again: A Reply to Terence Holmes”라는 논문을 실었습니다. 당연히 이 논문도 연재에 추가합니다.

그리고 테렌스 주버는 자신의 주장을 다시 정리해서 The Real German War Plan 1904-1914이라는 저작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 중으로 출간될 예정이니 이 책이 나오면 연재에 추가하겠습니다.

한편,  2009년 말에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War Planning 1914라는 저작이 나온바 있습니다. 1차대전 직전 주요 열강들의 전쟁계획을 다룬 최신 연구성과인 만큼 번외편으로 다루겠습니다.

테렌스 주버와 테렌스 홈즈의 논쟁을 일단 정리한 뒤에는 테렌스 주버의 단행본, Inventing the Schlieffen Plan: German War Planning 1871-1914와 이에 대한 서평을 다루겠습니다. 원래 홈즈와의 논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책이기 때문에 홈즈와의 논쟁에 포함할까 생각했는데 어찌보면 이 저작을 기점으로 논쟁이 더 확산된 감도 없지 않으니 별도로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테렌스 주버와 로버트 폴리(Robert T. Foley)의 논쟁을 다룰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다음 저작을 번외편으로 추가하겠습니다. 먼저 German Strategy and the Path to Verdun은 제 블로그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저작입니다. 이 저작에는 슐리펜 계획에 대한 폴리의 간략한 정리가 있으므로 이것을 요약해서 한 번 더 번외편에 소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논쟁과 관계된 논문은 아닌데 폴리의 다른 논문을 한 편 더 소개할까 생각 중 입니다.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7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연재에 앞서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0

1. 테렌스 주버vs테렌스 홈즈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1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2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3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4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5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6


안녕하세요.

진도가 참 안나가는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입니다. 아직도 테렌스 주버와 테렌스 홈즈의 논쟁을 다루고 있는데 2010년 말에 테렌스 주버가 테렌스 홈즈를 비판하는 논문을 또 냈습니다. 한마디로 이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언제 끝날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초장기 연재가 되겠군요. 일단 지금까지 나온 논문과 책을 소개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제가 매우 게으르다는 점도 문제군요.

2003 년 부터는 홈즈 외에도 전통적인 학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에 논쟁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하지만 이 연재물에서는 논쟁을 시간 순서대로 다루기 보다는 개별 연구자별로 이야기를 진행하려 합니다. 일단은 현재까지 진행 중인 테렌스 주버와 테렌스 홈즈의 논쟁을 마무리 짓고 다음 논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7

지난번 글,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1-6’에 서는 테렌스 주버의 재반론인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 Again’”을 소개했습니다. 테렌스 홈즈는 주버의 반론에 대해 “Asking Schlieffen: A Further Reply to Terence Zuber”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대응합니다.

먼저 지난번 글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테렌스 주버는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 Again”에서 홈즈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1. 테렌스 홈즈의 주장에 따르면 슐리펜 계획에서 독일군 주력, 즉 독일군 우익이 파리를 우회해서 포위하는 것은 프랑스군 주력이 조직적으로 후퇴할 경우 취하는 최악의 경우였다. 하지만 슐리펜 계획에 대한 기존의 학설들은 파리 서쪽으로 우회 포위하는 것이 슐리펜 계획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 테렌스 홈즈는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에서 당시 편성되지 않은 가상의 부대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전시에 편성되는 부대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홈즈가 예로 든 21, 22군단과 근위예비군단은 이미 1902년에 서류상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당시 독일군 내부에서는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이 부대들을 편제에 맞춰 편성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또한 슐리펜은 항상 독일군의 병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파리 서쪽으로 대규모 우회기동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3. 러일전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은 숫적으로 위협적인 규모였으며 슐리펜은 이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사실상 동부전선을 비워두고 서부에 주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4. 홈즈는 1904년과 1905년의 서부전선에 대한 참모부연습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참모부 연습에서 결전이 벌어지는 지역은 아르덴느와 로렌 지역이다. 이 시기의 참모부연습에서 대규모 우회 기동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5.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과 소몰트케가 입안한 계획은 유사하지 않다.


홈즈는 War in History 10-4에 기고한 “Asking Schlieffen: A Further Reply to Terence Zuber”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러한 주버의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슐리펜이 작성한 1905년 비망록에서 주력부대가 파리 서쪽으로 우회기동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건이냐의 문제입니다. 주버는 프랑스군이 선제공격에 나선다면 독일군 주력이 파리 서쪽으로 대규모 우회기동을 실시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슐리펜은 그럴 가능성에 부정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홈즈는 슐리펜이 프랑스군의 예상 반응에 대해 여러가지 예측을 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하나는 프랑스군이 수세로 일관하되 독일군 주력이 메지에흐(Mézières)-덩케르크 선에 도달할 경우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군 주력이 엔(Aisne)-랭스(Rheims)-라 페레(La Fère)를 잇는 선에 도달했을 때 측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라 페레 방면으로 반격을 실시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가 프랑스군이 조직적으로 철수를 단행할 경우인데 이때는 파리 서쪽으로 대규모 우회기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슐리펜은 프랑스군이 공세를 취해 최대한 독불국경 가까운 곳에서 프랑스군 주력을 섬멸할 기회를 포착하길 원했으며 프랑스군이 새로운 방어선 까지 퇴각하는 것은 독일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여겼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주버는 슐리펜 계획이 파리 서쪽으로 우회 포위를 실시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에서 독일군 주력이 우아즈(Oise) 강을 건너는 경우도 상정하고 있었던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위의 지도에서 알 수 있듯 독일군 주력이 우아즈 강을 도하할 경우 파리 동쪽으로 우회기동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슐리펜이 가장 선호한 것은 프랑스군의 주력이 공세에 나서고 독일군 주력은 우아즈 강을 건너 프랑스군 주력을 포위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군 주력이 방어에 주력하면서 조직적으로 철수한다면 세느강 하류를 도하해 파리 서쪽으로 대규모 우회기동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주버가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 Again”에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비판한 독일군의 가용병력 문제입니다. 홈즈는 먼저 주버가 지적한 Kriegskorps문제는 부분적으로 타당한 비판이라고 인정합니다. 자신이 푀르스터의 연구를 잘못 이해했지만 주버도 푀르스터의 주장과 자신이 잘못 인용한 푀르스터의 견해를 혼동했다는 것 입니다. 홈즈는 다시 한번 푀르스터의 주장을 소개합니다. 푀르스터가 말하고자 한 것은 1905/06년 부대전개계획에는 52개 현역사단과 20개 예비사단이 있었으나 1906/07년 부대전계계획에는 52개 현역사단과 27개 예비사단으로 가용병력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푀르스터의 주장을 교차검증할 사료가 없다는 주버의 비판에 대해서는 독일의 1차대전 공간사(Der Weltkrieg 1914 bis 1918)중 전시동원을 다룬 Kriegsrüstung und Kriegswirtschaft 1권을 인용하여 반박합니다. 독일의 공간사에 따르면 독일군의 예비사단이 1902년에서 1910년 사이에 27개 사단으로 증가했으며 이것은 푀르스터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것 입니다. 또 한 슐리펜은 1905년 비망록에서 독일군이 동원 가능한 병력이 971개 대대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1906/07년 부대전개 계획에 명시된 52개 현역사단과 27개 예비사단을 대대로 환산하면 970개 대대가 되므로 푀르스터의 주장은 타당하다는 것 입니다.
한편, 1905년 비망록에서 1906/07년 부대전개계획 보다 2개 사단이 더 많은 53개 현역사단과 28개 예비사단을 명시한 것에 대해서는 전시동원이 이루어질 경우 추가로 편성되는 사단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먼저 1개 현역사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904년에 2개의 Kriegskorps가 해체되면서 여기에 소속될 여단과 연대 일부는 남아서 다른 군단에 분산 배속되었는데 이러한 여분의 부대를 유사시 통합하면 신규 사단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먼저 알자스의 15군단은 1개 보병연대를 더 가지고 있었고 로렌의 16군단은 1개 보병여단을 더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통합하면 1개 사단을 편성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에는 전시에 16군단 예하에 43사단이 편성되는 것으로 나와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합니다. 그리고 1개 예비사단에 대해서는 예비 보병대대들을 통합해 편성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슐리펜은 이 정도 병력도 파리 동쪽으로 대규모 우회 기동을 하는데는 부족하기 때문에 전시 동원이 시작되는 대로 8개의 보충군단(Ersatzkorps)를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버는 슐리펜이 8개의 보충군단이 편성되도 병력이 여전히 부족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은 실제 작전계획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홈즈는 여기에 대해 슐리펜 비망록에 기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공세초기에는 우익에 23개 현역군단이 투입되고 공세가 진행됨에 따라 좌익에 있던 2개 군단이 추가로 우익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진격이 계속되어 우아즈강에 도달할 무렵 후방은 예비군단과 향토여단(Landwehr-birgade)이 담당하게 됩니다. 우선 안트베르펜 공격에 최소 5개의 예비군단을 투입하고 주력부대가 공격하지 않고 지나간 요새들을 견제하는데 14개의 향토여단을 투입합니다. 그리고 주력 부대의 측면과 후방을 엄호하는데 2개 예비군단과 1개 예비사단, 2개 향토여단을 배정하는 것 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세느강 하류를 도하해 파리 서쪽으로 우회기동을 실시하려면 병력이 더 필요합니다. 홈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8개의 보충군단을 더 편성한다면 이중 6개 군단을 파리 봉쇄에 사용하고 주력인 현역부대들은 우회하면서 포위망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주버는 슐리펜이 8개의 보충군단을 적시에 동원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하는데 홈즈는 슐리펜이 의문을 가진 것은 기술적으로 보충군단 중 몇개를 우익에 투입할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슐리펜은 8개의 보충군단이 편성된다면 세느강 하류를 도하해 파리 동쪽으로 우회 기동하는데 필요한 병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고 강조합니다.
한편, 주버는 1905년 비망록이 사실상 슐리펜이 총참모장에서 퇴임한 이후 작성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실상 부대 운용에 대한 권한이 없는 슐리펜이 보충군단 편성과 같은 신규 부대 편성에 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홈즈는 1905년 비망록에 명시된 8개의 보충군단 편성은 바로 1904년 참모부연습에서 편제상에 없던 신규부대를 동원한 것과 논리적으로 연결된다고 반박합니다. 즉 슐리펜은 이미 현역시절 부터 유사시 부족한 병력을 신규부대 동원으로 충당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고스란히 1905년 비망록, 즉 슐리펜 계획에 반영됐다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양면전쟁 문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주버는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 Again”에서 비록 러일전쟁으로 러시아군의 취약점이 폭로되었지만 러시아군은 여전히 유럽전선에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동프로이센을 텅 비워두고 서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홈즈는 이에 대해 독일군의 부대전개계획을 예로 들어 반박하고 있습니다. 주버는 빌헬름 디크만(Wilhelm Dieckmann)의 연구에 크게 의존해 슐리펜 계획이 실제 작전계획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디크만의 연구에 따르면 독일군의 부대전개계획은 서부전선에 대한 Aufmarsch I과 동부전선에 대한 Aufmarsch II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중 서부전선에 대한 전개계획 I에서는 동프로이센에 10개 사단을 남기고 주력을 서부에 집중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주버는 슐리펜이 동부전선에 대한 부대전개계획 II를 중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디크만의 연구는 1903/04년의 부대전개계획 까지만 다루고 있습니다. 양면전쟁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러일전쟁의 결과가 독일군의 부대 전개계획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므로 디크만의 연구는 한계가 있습니다. 홈즈는 주버도 인용한 1905/06년의 계획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에서는 양면전쟁이 발발할 경우 동부전선에 10개 사단, 서부전선에 62개 사단을 배치하지만 전쟁이 서부전선으로 한정될 경우에는 72개 사단을 모두 서부전선에 투입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05년 비망록, 즉 슐리펜 계획에서 81개 사단을 모두 서부전선에 투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러일전쟁 이후의 부대전개계획 I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슐리펜은 러일전쟁의 결과 러시아군이 적극적인 공세로 나설 역량이 감소했다고 생각했으므로 프랑스는 전쟁이 시작되면 방어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는 것 입니다.

네 번째로는 1905년의 참모부연습에서 독일군 우익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버는 1905년의 참모부연습에서는 결전이 아르덴느와 로렌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슐리펜 계획과 유사한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홈즈는 이 주장에 대해서 뵈티허(Friedrich von Boetticher)가 1930년에 쓴 ‘근대전쟁의 스승(Der Lehrmeister des neuzeitlichen Krieges)’이라는 소논문을 인용해 반박하고 있습니다. 뵈티허의 연구에 따르면 슐리펜은 참모부연습에서 독일군을 맡아 프랑스군이 로렌으로 공격해 올 경우 우익에서 소수의 병력을 차출해 좌익을 증원하는 한편 나머지 병력으로 우회기동을 실시, 랭스와 베르덩 사이를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군 주력이 공세에 나서지 않는 경우에는 우익의 주력 부대로 공세를 감행, 파리 동쪽으로 대규모 우회기동을 실시해 작전 56일 차에 프랑스군 주력을 격파하는 것으로 연습을 종료했습니다. 홈즈는 여기서 첫번째 연습은 바로 우아즈 강을 도하하는 슐리펜 계획의 첫번째 안과 동일한 것이고 두번째 연습은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슐리펜 계획, 즉 비망록에 명시된 두번째 안과 동일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1905년 11~12월에 슐리펜이 총참모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실시한 워게임에 대한 논평에 대한 반박도 이어집니다. 주버는 홈즈가 문법적인 문제로 말꼬리 잡기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홈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재반박합니다. 슐리펜은 마지막 워게임을 실시할 당시 양면전쟁의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일단 주버는 1905년 겨울의 워게임이 독일 단독으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양면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이것 자체가 오독이라는 것 입니다. 슐리펜은 워게임에서 독일이 고립된 상태로 양면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슐리펜은 워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부전선에서 대규모의 러시아군을 상대하는 것은 러일전쟁의 영향으로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홈즈는 슐리펜도 러시아군이 점차 러일전쟁의 피해에서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었지만 1905년 겨울의 워게임을 실시할 당시에는 양면전쟁의 가능성을 낮게 보았던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슐리펜 계획과 소(小)몰트케의 계획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주버는 양자 사이에 유사점이 적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홈즈는 몇가지 사례를 들어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1914년 8월 27일 제1군 사령관 클룩(Alexander von Kluck)에 내려진 명령은 진격방향을 남서쪽에서 보다 서쪽으로 돌려 루앙(Rouen)과 망테(Mantes)를 잇는 선으로 진출, 세느강에 도달하라는 것 이었는데 이것은 파리를 서쪽에서 우회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는 것 입니다. 홈즈는 주버가 이것을 소몰트케가 파리 자체를 포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하려 한다고 지적합니다.(파리를 우회하는 것과 그 자체를 포위하는 것은 명백히 다른 것이죠)
그리고 소몰트케는 1911년에 작성한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평에서 국경지대의 프랑스 요새선을 무력화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익을 최대한 강화해 벨기에를 통해 공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은 루덴도르프가 전후에 남긴 저술에서도 확인되는데 이에 따르면 소몰트케는 1914년에 슐리펜이 계획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익에 주력을 집중해 벨기에를 통해 공격할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몰트케가 슐리펜과 차이를 보인 것은 네덜란드를 공격하지 않는 것 정도였는데 소몰트케는 네덜란드까지 침공할 경우 병력이 분산되어 그만큼 우익의 타격력이 감소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소몰트케는 전후에 펴낸 회고록에서도 이점을 거듭해서 강조했습니다. 물론 전쟁 초기 소몰트케는 로렌 지방에 슐리펜의 원래 구상 보다 6개 사단이 더 많은 16개 사단을 배치해 우익을 다소 약화시키기도 했으며 프랑스군 주력이 알자스-로렌으로 침공해 올 경우 우익의 상당부분을 이 방면으로 돌릴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홈즈는 소몰트케가 실질적으로는 우익에 주력을 집중하는 기본 개념은 유지하고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강화된 독일군 좌익은 우익의 주공을 지원하기 위해 정면의 프랑스군을 능동적으로 붙잡아두는 임무를 가지고 있엇습니다.
한편, 주버는 독일군의 병력이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어떻게 슐리펜의 계획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습니다. 홈즈는 병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슐리펜의 원래 계획 처럼 파리를 봉쇄하는 것은 실시할 수 없었고 독일군 우익의 임무는 프랑스군 주력이 후방의 위협을 느껴 (유사시 강력한 보루가 될 수 있는) 파리를 버리게 하고 남동쪽으로 몰아 내는 것 으로 변경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지만 슐리펜의 기본적인 개념은 유지되었다는 것이 홈즈의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