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8일 일요일

에른스트 폴크하임에 관한 논문 한편

 미국의 군사사가 제임스 코럼(James Corum)이 1990년대 초반 The Roots of Blitzkrieg이라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전간기 독일군의 기계화전 교리의 발전에 대한 논의가 크게 진전됐습니다. 특히 이 연구의 중요한 업적은 1980년대 까지 독일군의 기계화전 교리 발전을 구데리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던 틀을 깨고 에른스트 폴크하임(Ernst Volckheim), 오스발트 루츠(Oswald Lutz) 등의 이론가들을 발굴한 데 있습니다. 이후 메리 헤이벡(Mary Habeck)의 Storm of Steel, 러셀 하트(Russell Hart)의 Guderian : Panzer Pioneer or Myth Maker?와 같은 연구가 나오면서 그동안 잊혀졌던 독일 군사이론가들의 업적이 발굴되고 구데리안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언 존슨(Ian Ona Johnson)이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87호(2023)에 발표한 Ernst Volckheim, Heinz Guderian, and the Origins of German Armored Doctrine은 위에서 언급한 연구들의 연장선 상에서 에른스트 폴크하임의 업적을 조명하는 연구입니다. 존슨의 연구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폴크하임의 제1차세계대전 당시 경험과 전후 기갑전 교리 연구, 두 번째는 폴크하임이 독일군의 교리 발전에 끼친 영향, 마지막은 폴크하임이 잊혀지게 된 원인입니다.

 폴크하임은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차 부대에서 복무한 소수의 장교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1917년 창설 중이던 전차부대에 부임해 1918년 공세에 참가했습니다. 전후에도 군에 남게 된 폴크하임은 1923년 부터 본격적으로 기갑전 교리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합니다. 폴크하임은 1923년에 발표한 Die Deutschen Kampfwagen in Weltkriege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수뇌부가 전차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지 못한 점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전차는 여러가지 약점이 있지만 제병협동하에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사용한다면 큰 전술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미래의 전쟁에서는 대량의 전차를 집중운용해야 하며 적 방어선 돌파를 위한 중전차와 돌파 이후 전과확대 임무를 수행할 경전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전차를 지원하기 위한 공군력의 발전도 강조했습니다. 폴크하임은 제병협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다면 전차는 보조적인 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폴크하임은 전선돌파를 위한 중전차는 독립된 전차사단으로 편성하고 전과확대를 수행할 경전차는 기병사단과 보병사단에 편성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가 구상한 중전차사단은 450대의 전차를 보유하는 강력한 전투부대였습니다. 즉 독일군 내에서 처음으로 기갑사단 편성을 주장한 이론가는 에른스트 폴크하임 이었습니다.

 폴크하임은 전차 부대를 지휘한 장교였기 때문에 전차의 기술적인 면에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차가 기술적으로 발전한다면 미래에는 진지전이 불가능할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효과적인 기동작전을 위해서는 전차의 기술적 수준이 높아야 했습니다. 그는 미래의 전차가 충분한 연료와 예비 탄약을 탑재하고 시속 30km의 순항속도로 12시간 이상 작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정도의 기술적 수준을 갖춰야 전차가 작전적으로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본 것 입니다. 

 폴크하임은 1923년 첫 연구를 발표한 이래 잇따라 기갑전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폴크하임은 직접 전차를 운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전차의 기술적인 측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1924년 8월에 발표한 글에서는 '중형전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돌파구가 형성된 뒤 전과확대를 위해 투입될 전차는 빠른 속도와 긴 행동반경 뿐만 아니라 적 전차부대와 교전을 하기 위한 강력한 무장과 장갑이 필요한데 경전차는 기술적으로 이것을 충족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당시 세계 각국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경전차나 탱켓(Tankette) 개발에 주력했는데 폴크하임은 이런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봤습니다. 독일에서도 엔지니어 빌헬름 브란트(Wilhelm Brandt)와 같이 탱켓 개발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폴크하임은 탱켓 개발은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전차 개발을 책임진 차량화부대총감 오스발트 루츠 장군은 폴크하임의 주장을 지지했습니다. 병기 개발을 총괄하는 병기-장비국(Inspektion für Waffen und Gerät)의 폴라트-보켈베르크(Alfred von Vollard-Bockelberg) 장군도 폴크하임의 이론을 받아들 중형 전차와 중전차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유명한 3호전차와 4호전차입니다.

 폴크하임이 주목한 또다른 기술적 요소는 전차의 통신수단이었습니다. 폴크하임은 초기부터 터 제병협동하에서의 전차 운용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차부대가 공군은 물론 보병, 포병 등 다른 병과와 원활하게 통신을 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폴크하임은 전차의 통신 수단이야 말로 미래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단언했습니다. 1920년대의 무전 기술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폴크하임이 1923년 부터 1924년 사이에 발표한 연구들은 큰 반향을 일으켜서 바이마르 공화국군 군무청(Truppenamt)은 폴크하임에게 기갑 병과 교육을 위한 교육 과정을 연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즉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육성되기 시작한 기갑장교들은 폴크하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 입니다. 구데리안 또한 폴크하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인물입니다. 구데리안은 훗날 회고록에서 폴크하임의 영향을 축소하는 왜곡을 했습니다만 1920년대 중후반 구데리안의 사상이 형성되는데는 폴크하임과의 교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928년 이후 폴크하임은 교리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습니다. 이 논문의 필자인 이언 존슨은 폴크하임의 보직이 자주 바뀌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없었고, 여기에 가족 문제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반면 구데리안은 폴크하임의 연구가 침체되었던 시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구데리안이 Achtung Panzer!를 출간해 큰 명성을 얻고 히틀러와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데 비해 폴크하임은 전쟁 발발 직전에야 중령으로 진급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에는 노르웨이 침공작전에서 제40특수임무전차대대(Panzer-Abteilung z.b.V. 40)를 지휘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련 침공당시 제203전차연대장으로 참전해 부상을 입은 뒤로는 일선 지휘관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 전선에 복귀하지 못 합니다. 구데리안이 승승장구한 것과 크게 대비되지요.

 폴크하임을 재조명하는 연구는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만 이언 존슨의 연구는 폴크하임의 초기 연구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 합니다. 좋은 연구 같습니다.

2024년 1월 9일 화요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어떤 논평

 작년 3월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낸 책에 실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평론을 한 편 읽었습니다. 먼저 읽어본 분이 대략적인 내용을 이야기 해 주셨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꽤 재미있군요. 일본식 조롱(?)이라고 할까요? 점잖게 러시아를 조롱하는게 제법 웃깁니다. 제가 읽다가 폭소가 터진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군사력을 다시 생각해보는 데도 매우 흥미로운 계기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참모본부가 매월 <군사사상>이라는 잡지를 내고 있는데, 과거 20년분 정도를 몇 년에 걸쳐 읽어보니,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라이벌은 역시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우크라이나나 조지아 같은 구 소련의 국가가 상대라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전제다.

 특히, 최근 15년 정도 러시아군 내에서 ‘신세대전쟁’ 혹은 ‘신형전쟁’이라는 논의가 매우 활발하다.(이 두 논의는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허위정보나 테러, 제한적인 공습 등을 가미하여 상대 국내에서 내란을 일으키면 공적인 전쟁에 의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논의다. 이러한 비재래적 투쟁 이론은 구 소련 국가가 표적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2008년의 조지아와의 전쟁, 2014년의 첫 번째 우크라이나침공을 계기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요컨데 구 소련 제국에 대한 개입 전략이라는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전쟁을 시작해보자 이길 수 없다. 허위정보나 사이버전에서 우크라이나는 굴복하지 않았고 전면적인 무력침공에도 불구하고 지지 않고 저항을 계속했다. 이것은 러시아군은 물론 외부 관찰자에게도 예상 외의 전개였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자신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중략)

 반대로 러시아 측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실력이 없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러시아가 생각하는 질서가 실현되지 않는 경우 힘을 사용해서라도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렇기 때문에 불균형한 군사력을 지녀야 한다면서 불필요하게 자신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개전 이전 이미 러시아의 국방비는 GDP대비 2.6%, 연방예산의 15.1%나 되는 약 3조8천억 루블에 달했는데, 2023년에는 추경을 포함해 5조 루블 이상, GDP 대비 4%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광대한 국토를 가지고 있고 천연자원도 풍부하며 엘리트의 교육 수준도 높다. 제국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시 러시아는 제국이 아니라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러시아의 우파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이 1997년의 저서 <지정학의 기초>에서 말한 대로 “축소판이라도 좋으니 초대국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서 아무리 해도 벗어나지 못한다.

 러시아가 그런 환상에서 해방될 때 우리들은 비로소 제대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지는 아주 어려운 문제다.


고이즈미 유, ‘일본의 시각에서 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 포커스 2023 : 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재와 미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23) 107~108쪽.

2024년 1월 1일 월요일

프리드리히 프롬 상급대장에 관한 사료집이 나옵니다

 Generaloberst Friedrich Fromm: Diensttagebuch beim Chef der Heeresrüstung und Befehlshaber des Ersatzheeres 1938–1943 – Ein Dokument aus dem Zentrum der deutschen Kriegsrüstung | Brill


 2024년에 새로 나오는 책이 뭐가 있는가 살펴보다 보니 흥미로운 책이 하나 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육군 보충군(Ersatzheer) 사령관이었던 프리드리히 프롬 상급대장에 관련된 사료를 엮은 사료집이 나오는군요.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프롬 상급대장이 직접 작성한 기록을 엮은 사료집으로 전시 동원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수록된 걸로 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사료집입니다만....


 가격이 무려 700유로에 달하는군요. 한국 돈으로 1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라서 개인이 소장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저도 이거는 못 사겠네요. 대한민국의 공공도서관에서는 들여놓을 수 있겠습니다만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입니다. 그래도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곳에 신청은 해보는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