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30, 2008

무서워라;;;;

어제는 하루종일 두통에 시달려서 거의 아무일도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고 자다 깨보니 무시무시한 미국발 뉴스가 뜨는군요.

왠지 올 연말은 여러모로 훈훈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입니다.;;;;;

Saturday, September 27, 2008

조지 오웰의 수류탄에 대한 추억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다 보면 조지 오웰이 장비 부족에 대한 불평을 자주 늘어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전 초반 쓸만한 정규군 부대들은 프랑코 쪽에 많이 합류했고 소련의 지원도 내전 초기에는 외국 지원병들에게 잘 들어가지 않아서 장비 부족은 꽤 심각했던 모양이더군요. 조지 오웰의 무기에 대한 불평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사제 수류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철모도, 총검도 없었다. 리볼버나 피스톨도 없었다. 폭탄은 다섯 명이나 열 명에 하나 씩이었다. 이 시기에 사용되던 폭탄은 ‘F.A.I.수류탄’으로 알려진 무시무시한 것 이었다. 전쟁 초기에 무정부주의자들이 생산하던 것 이었다. 이것은 원리상으로는 달걀 모양의 밀스 수류탄과 같았으나, 레버가 핀이 아닌 테이프 조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테이프를 떼는 즉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수류탄을 던져야 했다.

이 수류탄을 “공평하다”고들 했다. 맞은 사람과 던진 사람을 다 죽였기 때문이다.

다른 종류도 몇 가지 있었는데, ‘F.A.I. 수류탄’보다 더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 그러니까 던지는 사람에게 – 덜 위험할 것 같았다. 그나마 던질 만한 수류탄을 보게 된 것은 (1937년) 3월 말이 지나서였다.

조지 오웰/정영목 옮김,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2001, 50쪽

※F.A.I.는 1927년에 조직된 무정부주의 단체입니다. Federación Anarquista Ibérica의 약자이죠.

예전에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에서 수류탄 개발에 참여하셨던 원로 기술자 한 분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찾아 뵈었을 무렵에는 화장품 회사 고문으로 계시면서 가끔 글을 쓰고 계셨지요. 그 분 말씀이 수류탄을 개발하면서 시험할 사람이 따로 없다 보니 기술자들이 직접 수류탄 시제품 시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한 기술자들이 어이없게 희생된 사례가 꽤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의 증언을 들으면서 수류탄도 의외로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구나 싶었는데 뒤에 조지 오웰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 분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17세기 말에 원시적 수류탄이 사용된 뒤 요즘과 같은 모양을 가지기 까지 거의 300년 정도가 걸렸으니 지금 보면 참 단순한 물건 이라도 우습게 봐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Tuesday, September 23, 2008

오늘 구입한 책

저녁에 서점에 들렀다가 책을 한 권 샀습니다.


표지가 멋져서(!) 집어들었는데 목차와 본문의 몇몇 부분을 대략 훑어 보니 꽤 재미있어 보이더군요. 돌아오는 버스에서 조금 더 읽었습니다. 대략 훑어 보니 저자가 아시아 문제에 있어서 민족주의의 강화를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한국 부분에서는 노무현 정부 들어 부쩍 높아진 한국의 민족주의 문제가 한-미-일 삼각동맹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꽤 주목하고 있더군요. 대표적으로 2005년에 있었다는, 한국이 미국에게 한미동맹의 가상적으로 '일본'을 넣자고 요구한 민망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헉;;;;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을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책 보다는 조금 딱딱해도 비슷하게 재미있어 보입니다.

Friday, September 19, 2008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군에 대한 약간의 잡설

그냥 잡담입니다. ^^

첫 번째 잡설. 국민당군의 장개석 직할 사단의 무장 상태에 대한 것 입니다. 원래 sonnet님의 글, “회해전투 당시 사단 무장”을 읽은 뒤 관련 자료를 찾아서 트랙백 해야 겠다 하다가 건망증으로 잊어 버리고 이제서야 올리게 되는 군요.

1947년 중순 3각 편제로 편성된 일반적인 “장개석 직할 사단”의 무장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비교 대상으로 비슷한 시기 인민해방군의 군단급 부대인 종대(纵队)의 장비현황도 같이 올려 봅니다.


이 표에서 재미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인민해방군의 한 등급 높은 부대 조차 장비와 화력에서 국민당군 사단에 비해 열세인 것은 사실인데 50mm박격포와 경기관총에서는 격차가 그나마 적다는 점 입니다. 국민당군에 비해서 중화기는 부족하지만 경장비는 그럭저럭 충실한 수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국민당군 보다 장비가 열세인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인민해방군은 차량 같은 경우는 아예 보유하고 있질 못 합니다.

두 번째 잡설. 회해전역(淮海战役) 당시 국민당군의 전투서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회해전역 당시 국민당군의 사단급 전투서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2병단 : 사령 구청천(邱淸泉)
-제5군 : 45사, 46사, 200사
-제70군 : 32사, 96사, 139사
-제74군 : 51사, 57사, 58사
-제12군 : 112사, 238사
-제72군 : 34사, 233사, 122사
-제116군 : 287사, 288사
기병 제1여
독립여

제6병단 : 사령 이연년(李延年)
-제99군 : 92사, 99사, 268사
-제39군 : 103사, 147사
-제54군 : 8사, 198사, 291사
-제96군 : 141사, 212사

제7병단 : 사령 황백도(黃百韜)
-제25군 : 40사, 108사, 148사
-제63군 : 152사, 186사
-제64군 : 156사, 159사
-제100군: 44사, 63사
-제44군 : 150사, 162사

제13병단 : 사령 이미(李彌)
-제8군 : 42사, 107사, 237사
-제9군 : 3사, 166사, 253사
-제115군 : 39사, 180사
-제64군 : 156사, 159사

제16병단 : 사령 손원량(孫元良)
-제41군 : 122사, 124사
-제47군 : 125사, 127사

제12병단 :사령 황유(黃維)
-제10군 : 18사, 75사, 114사
-제14군 : 10사, 85사, 83사
-제18군 : 11사, 49사, 118사
-제85군 : 23사, 110사, 216사

제4수정구(绥靖区) : 사령 류여명(劉汝明)
-제55군 : 29사, 74사, 181사
-제68군 : 81사, 119사, 143사

제3수정구 : 사령 풍치안(馮治安)
-제59군 : 38사, 180사
-제77군 : 37사, 132사

독립 제107군 : 260사, 261사
독립 제20군 : 133사, 134사

이상의 전투서열은 중국 국민당군의 구조에 대해 꽤 재미있는 점을 보여줍니다. 장개석 직계부대와 군벌 계통 부대가 뒤섞여 있는 잡탕이란 점이죠.
회해전역에 투입된 국민당 군의 총 77개 사단 중 장개석 직계, 즉 중앙군 직계 사단은 46개 사단입니다. 원래 동북군계에서 장개석 쪽으로 넘어온 112사와 광동계에서 넘어온 152사를 중앙군 계열로 분류하면 48개 사단이군요. 여기에 기병 1여가 중앙군 직계이니 장개석 직계의 부대는 총 48개 사단과 1개 여단이 됩니다. 나머지 32개 사단은 국민당이 아니라 다른 군벌 소속 부대로 장개석 쪽에 붙은 사단이 되겠습니다.
다시 각 병단 별로 중앙군 직계 사단의 비율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2병단 : 총 16개 사단, 2개 여단 / 중앙군 직계 13개 사단, 1개 여단
제6병단 : 총 10개 사단 / 중앙군 직계 9개 사단
제7병단 : 총 11개 사단 / 중앙군 직계 5개 사단
제13병단 : 총 10개 사단 / 중앙군 직계 7개 사단
제16병단 : 총 4개 사단
제12병단 : 총 12개 사단 / 중앙군 직계 11개 사단
제4수정구 : 총 6개 사단
제3수정구 : 총 4개 사단
독립 제107군 : 총 2개 사단 사단 / 중앙군 직계 2개 사단
독립 제20군 : 총 2개

중앙군 직할 사단의 숫자로 보면 구청천의 제2병단과 황유의 제12병단이 실질적인 주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7병단은 중앙군에 광동계(粤)와 사천계(川) 사단이 뒤섞여 있었고 16병단은 4개 사단 전체가 사천계, 그리고 제3수정구와 제4수정구는 모두 서북계, 독립 제20군은 모두 사천계 사단으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장개석의 북벌 자체도 국민당 직계에 잡다한 군벌 부대를 긁어모아 완성한 것이었고 이런 난감한 구조는 중일전쟁을 거치면서도 결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제롬 첸(陳志讓)이 재미있게 지적한 것 처럼 중국의 상황은 일본의 전국시대와 비슷했는데 장개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었던 것 이죠.

다시 회해전역 이야기로 돌아가면, 인민해방군의 제 1단계 공격으로 괴멸당한 황백도의 제7병단은 서북군벌인 풍치안의 제3수정구가 반란을 일으켜 인민해방군에 가담하면서 퇴로가 차단되어 포위됩니다. 제3수정구의 반란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입니다. 상대적으로 기동성에서 우위에 있었던 제7병단은 어이없게 퇴로가 차단되면서 도보로 추격해온 인민해방군에게 따라잡히게 됩니다. 만약 제3수구의 반란이 없었다면 제7병단은 예정대로 철수를 마쳤을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이렇게 해서 퇴로가 차단된 제7병단은 서주방면으로 돌파하려 노력합니다만 서주에서 증원 나온 제2병단과 제13병단의 지원공격도 반란을 일으킨 제3수구에 인민해방군 산동병단 소속의 3개 종대가 증원되면서 막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제7병단은 그대로 전멸해 버리고 맙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군벌부대가 다수 섞여 있어 전투력이 떨어졌던 것이 제7병단이 돌파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이 점은 나중에 더 공부를 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인민해방군의 회해전역 2단계 작전에서 국민당군의 정예부대인 황유의 제12병단이 섬멸된 문제입니다. 1948년 11월 24일, 장개석은 숙현(宿懸)을 탈환해 진포철도를 개통한 뒤 주력부대를 회남으로 철수시켜 방어에 임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원래 숙현지역을 방어하던 것은 제4수정구 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4수정구도 제3수정구와 같은 서북계 부대였습니다. 제4수정구는 11월 15일 인민해방군 주력의 1단계 공격에 그대로 밀려나면서 숙현을 넘겨줬습니다. 인민해방군은 숙현 탈환을 위해 북상하는 황유 병단을 유인해서 섬멸할 계획을 짰는데 숙현이 제대로 방어됐더라면 이런 덫이 놓이진 않았겠지요. 황유의 제12병단이 예정대로 숙현 탈환을 위해 공격을 개시하자 인민해방군은 유인하기 위해서 일부러 철수했고 이를 추격한 황유 병단은 그대로 포위되어 섬멸됩니다.

그리고 회해전역에서 가장 결정적인 패배는 두율명이 지휘하는 제 2, 제 13병단이 포위되어 섬멸된 것이었습니다. 두율명 집단이 포위된 것은 황유 병단을 구원하기 위해 남하하다가 인민해방군에게 포착되었기 때문이니 결국은 제3, 제4수정구가 문제였던 셈 입니다. 서북군벌계의 이 두 수정구는 장개석의 이탈리아군(?)이 된 셈 입니다.

국공내전시기의 다른 전역에 대해서도 장개석의 중앙군과 군벌계 사단의 전투 양상을 분석해 보면 아주 재미있을 듯 싶습니다.

참고문헌
中国人民革命军博物馆 编,『中国人民解放军战史图集』,中国地图出版社, 1990
曹剑浪,『国民党军简史』下, 解放军出版社,2004
国防大学 “战史简编” 编写组,『中国人民解放军战史简编』, 解放军出版社,1983/2003
국방군사연구소, 『중공군의 전략전술 변천사』, 1996
陳志讓, 박준수 옮김, 『軍紳政權 : 근대중국 군벌의 실상』, 고려원, 1993

라이스에게 어울리는 일

Rice ruft zu Widerstand gegen "russische Aggression" auf

그간 대동강 촌놈들 같이 격에도 맞지 않는 것들을 상대하느라 얼마나 굴욕이셨습니까. 비록 레이건 각하 시절 만큼 흉폭하진 못하지만 곰돌이의 재롱 정도는 되어야 귀하의 그릇에 걸맞을 겁니다. 하필 현재 대통령의 치세 말에 이런 일이 터져서 곰돌이들을 상대할 시간이 몇 달 남지 않은게 아쉽다면 아쉽겠습니다.

Wednesday, September 17, 2008

히치하이커 가이드의 여섯번째 책이 나온다는군요

가디언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Eoin Colfer to write sixth Hitchhiker's Guide book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의 여섯번째 책이 나오게 된다는군요. 더글라스 아담스가 어이없게 요절하는 바람에 시리즈가 끝장난줄 알았는데 아담스의 부인인 제인 벨슨이 다른 작가에게 여섯번째 소설의 집필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사망한 아담스를 대신해서 여섯번째 가이드를 집필할 작가는 오웬 콜퍼(Eoin Colfer)라는 동화작가라고 하는군요. 아동문학쪽으로는 아는게 없어서 콜퍼라는 작가가 어느 정도의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벨슨이 직접 고른 사람이니 한번 믿어 보고는 싶습니다. 매우 유명한 작가인 것 같은데 아담스의 유쾌한 필력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God Delusion을 사망한 아담스에게 바친다고 했던 도킨스는 벨슨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합니다. 도킨스도 아담스의 팬이었던 모양인데 말이죠.

Tuesday, September 16, 2008

Zeitgeschichte Online - 재미있는 논문이 많은 사이트

비록 조금 하락하긴 했으나 유로 환율은 여전히 높습니다. 좋은 책들은 어디에서나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특히 독일어권 서적들은 비싼 유로때문에 여전히 지르기가 두려운 물건이지요. 그러나 어디 단행본만 읽으란 법이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인터넷 덕분에 공짜로도 독일어권의 흥미로운 연구들을 접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사이트는 바로 이곳 입니다.

Zeitgeschichte-Online

이 사이트는 독일 현대사와 관련된 연구논문과 에세이들을 PDF 형식으로 무료 제공하고 있는데 독일 현대사를 다루다 보니 2차대전과 관련된 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초기 냉전시기를 다루는 글들도 많으니 2차대전에 관심없는 분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군요. 물론 본격적인 군사사 논문은 별로 없으나 2차대전에 관한 사회사, 문화사쪽 논문은 많습니다. 그리고 에세이 중에는 영어로 된 에세이도 조금 있으니 독일어를 못하시는 분들도 쓸만합니다.
예전에 이곳을 이용할 때는 서버의 문제인지 2메가 정도 되는 논문 한편을 다운 받는데 10분 정도 걸리기도 했는데 언제 부터인지 꽤 빨라졌습니다. 물론 외부링크로 걸려있는 글들은 해당 기관에 따라 속도가 다릅니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예전에 나온 논문들, 특히 대학들의 외부링크로 걸려 있는 논문들 중에서 링크가 깨진 것이 더러 있는데 이것을 그대로 방치해 놨다는 것 정도 입니다. 그래도 많은 수는 해당 대학의 온라인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바뀐 주소로 연결되니 큰 문제는 없습니다.

Monday, September 15, 2008

언어유희의 매력!

14일에 가디언에 실린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한 Robert Fox의 글 입니다. 제목에 주목하십시오..


George Bush's executive disorder



executive disorder!



executive disorder!!



executive disorder!!!



executive disorder!!!!


으하하. 정말 좋습니다. 이런 센스는!

이런 말장난이 계속되는 한 대영제국은 몰락하지 않습니다.

Sunday, September 14, 2008

장군님의 협상술

지난 7월에 sonnet님과 漁夫님이 공산주의 국가의 협상술에 대한 글을 써 주셨습니다.

How Communists Negotiate - sonnet

지도국 발표 담화 - sonnet

북한식 협상술의 한 예 - 漁夫

이쪽 동네의 상식으로는 황당한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최근 남베트남 붕괴 당시 북베트남에 포로가 되어 고생했던 이대용 공사의 회고록에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더군요.

먼 훗날에 알게 된 일이지만, 1978년 7월 24일부터 인도 뉴델리에 있는 주 인도 베트남 대사관이 소유하고 있는 부속건물인 허름한 독립가옥에서, 한국∙북한∙베트남의 3개국 외교 대표단들이 모여 호치민 시 치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국 외교관들의 석방 문제에 대해 비밀 회담을 하고 있었다.

(중략)

북한측 대표단은 조명일이 수석대표였다. 조명일은 당시 대남비서 김중린 밑에서 사실상 남북대화를 총괄해 온 통일전선부 부부장이었다. 대표로는 노동당 3호 청사 통일전선부의 박영수, 김완수 등이었다.
그들은 나를 압박하여 북한으로 가겠다는 자의 망명서를 받아내는 것과 그대로 석방하여 서울로 보내는 양면시나리오까지 가지고 있었으나, 석방할 때 남한에서 복역중인 남파간첩과 한국 외교관은 교환비율은 뉴델리 3자 회담의 진전을 봐 가며 조절하기로 정하고 있었다. 평양을 출발하기 전에 대남비서 김중린은 이들 대표단을 데리고 당 중앙이며 조직비서인 김정일의 지시를 받기 위해 찾아갔다.

황일호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 김정일은, “남조선에 갇혀 있는 남조선 혁명가(남파간첩)가 현재 얼마나 되느냐?”고 김중린에게 물었다. “400명 될 겁니다만…” 김중린이 대답하자, 김정일은 대뜸, “으음…. 그러면 1명당 150명으로 바꾸자고 그래…”라고 명령했다.
나를 평양으로 데리고 가더라도 나머지 한국 외교관 두 명에 대한 교환비율이 될 수 있고, 또 나를 서울로 보낼 때에는 한국 외교관 세 명에 대한 교환비율이 될 수 있는 수치는 이렇게 김정일의 한 마디에 따라 결정된 셈이다. 너무도 엄청난 편차가 있는 교환비율에 김중린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김정일은 한마디 덧붙였다.

“왜 그러는가? 많아서 그런가? 회담에 임할 사람들이 그렇게 졸장부 여서야 되겠느냐. 회담이든 뭐든 처음부터 판을 크게 치고 내밀어야지… 그러면 얼마로 하려 했는가?”

김정일의 말은 절대로 오류가 없는 신(神)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중린 이하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이대용, 『최후의 월남공사 李大鎔은 말한다 – 김정일과의 악연 1809일』, 경학사, 2000, 130~131쪽

물론 이것은 이대용 공사가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 제 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 이지만 요즘 북한의 해괴한 협상 행태를 보면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 입니다. 북한이 외교협상에서 황당무계한 발언을 일삼은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닌데 정책의 최고결정권자들이 저렇게 해괴한 발상을 탑재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쉽게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Tuesday, September 9, 2008

미군의 파키스탄 영내 공습

U.S. Attack on Taliban Kills 23 in Pakistan

얼마전 미국이 파키스탄 영내로 지상군을 투입했는데 이번에는 미사일을 날렸군요. 흥미로운 기사였습니다.

※ 미군이 처음으로 파키스탄 영내를 공식적으로 공격한 사건은 라피에사쥬님이 며칠전에 글을 하나 써 주셨습니다.
=>Angoor Ada 강습, 미군 처음으로 파키스탄영토에 발을 내딛다.

결국 파키스탄의 국경지대가 탈레반의 '성지'처럼 돼 버렸으니 이걸 그냥 놔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베트남 전쟁과 비슷한 양상이군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이것은 베트남 전쟁당시 미국과 남베트남군이 여론의 비난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라오스나 캄보디아 영내로 진입해 군사작전을 펼친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한 내륙국가들이 길다란 국경을 마주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환경은 비정규전을 펼치는 입장에서 그야 말로 천혜의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정규군이라면 외교적 물의를 무릅쓰고 국경을 멋대로 넘을 수 없지만 이쪽은 그런걸 개의치 않아도 될 상황이니 아주 좋지요. 미국의 라오스나 캄보디아내 군사작전은 반전여론에 기름만 들이 붓고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 했는데 최근 수행된 파키스탄 월경작전도 정치적인 부담만 만들어 주고 끝날 것 같은 생각입니다.

뭐, 앞으로 미국이 파키스탄 문제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관건이겠군요. 어쨌건 미국은 외교적으로 파키스탄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말이죠.

Sunday, September 7, 2008

빈 - 셋째날 : 빈 시내의 Flakturm 답사기

이제 빈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이 밝았습니다. 전날과는 달리 화창한 날씨가 아주 좋더군요. 유감스럽게도 늦게 일어난 덕분에 빈 소년합창단의 합창을 듣지 못해 아쉬웠습니다만...

마지막 날은 빈 시내의 대표적인 2차대전 유적인 대공포탑(Flaktürme)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빈 시내에는 2차대전 기간 중 건설된 대공포탑이 세 곳에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 대공포탑들은 Esterhazypark과 Stiftskaserne에 있는데 후자는 군사시설에 있어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공포탑들은 Arenberg 공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대공포탑들은 Augarten 공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대공포탑"들"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대공포탑은 대공포가 설치되는 전투탑(Gefechtturm, 이하 G-Turm)과 사격관제를 담당하는 지휘탑(Leitturm, 이하 L-Turm)으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탑이 하나의 방공시스템을 구성하는 구조입니다.

※ 대공포탑에 대한 위키 항목

독일어 항목 / 영어 항목

독일어 사이트이긴 한데 이 사이트의 설명도 꽤 괜찮습니다.

Die Flaktürme in Wien


먼저 시내 중심가에 있는 Esterhazypark의 대공포탑을 갔습니다. 이 대공포탑은 지휘탑인 L-Turm 입니다. 전투탑은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 군사시설이어서 방문하지 못 했습니다.


이 지휘탑은 특이하게도 수족관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더군요.




수족관 관람을 마치면 대공포탑 꼭대기로 올라갈 수 가 있습니다. 올라가는 계단 중간 중간 2차대전 당시 대공포탑의 건설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문이 붙어 있습니다.


빈 시내의 여섯개 대공포탑 중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곳입니다. 대공포탑의 꼭대기는 빈 시내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족관과 꼭대기 구경을 마친 다음에는 대공포탑의 지하실에 설치된 고문기구역사박물관을 구경했습니다.



가족단위 관람객으로 북적대는 수족관과 달리 고문기구박물관은 관람객이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전시물이라고는 이런 것 뿐이니 가족단위 관람객이 있을 리가 없겠지요.

관람을 마친 뒤 다음 목적지인 Arenberg 공원의 대공포탑으로 갔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한국처럼 지하철이 매우 한산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Arenberg로 가는 길에는 소련군의 빈 해방 기념비가 있습니다. 오랫만에 이 놈을 보니 반갑더군요.




Arenberg 공원은 동네 놀이터 수준(?)이다 보니 찾아 가는 길이 약간 어려웠습니다. 가는 길에 군사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헌책방도 하나 찾았는데 일요일이다 보니;;;;

드디어 Arenberg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L-Turm이 눈에 들어오는 군요.



그리고 바로 옆에는 G-Turm이 있습니다.



Arenberg의 대공포탑들을 구경한 뒤 간단히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Augarten으로 향했습니다.

Augarten으로 가는 길에 한장. 다들 잘 아시는 프라터 공원의 회전관람차(Riesenrad) 입니다.


그리고 아주 유명한 분의 동상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리싸(Lissa) 해전의 영웅인 테게토프(Wilhelm von Tegetthoff) 제독의 동상입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별 생각없이 지나친 동상인데 뒤에 리싸 해전에 대한 글을 읽은 뒤 이 양반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어떤 인물인지 알고 나서 동상을 보게되니 또 다른 느낌이 드는군요.



테게토프 제독에게 인사를 한 뒤 아우가르텐 공원으로 갔습니다. 아우가르텐은 매우 규모가 큰 공원이어서 조금 전에 갔던 아렌베르크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더군요.



먼저 G-Turm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렌베르크의 것과는 모양이 다르군요.




일반인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으니 바깥에서 구경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탑 위에 올라가 공원 전체를 구경했으면 싶은데 그게 안되니 아쉽더군요.

다음으로는 L-Turm을 둘러봤습니다. L-Turm들은 모두 대략 비슷하게 생긴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빈 시내의 대공포탑들을 모두 구경한 뒤에는 편안하게 도나우강가를 거닐며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다시 저녁 무렵 시내 중심가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빈의 야경을 구경했습니다.

빈을 마지막으로 여행은 끝났고 이제 빈 서부역으로 돌아가 뮌헨행 야간 열차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이 즐겁게 끝나니 역시 남는 것은 아쉬움 이더군요. 밤 기차에서 좀체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Friday, September 5, 2008

The Somme - Robin Prior and Trevor Wilson

지난번에는 솜(Somme) 전투를 다룬 책 중에서 The Battle of the Somme : A Topographical History를 소개했습니다. 오늘 이야기 할 책도 역시 솜 전투에 대한 책인데 의 Gliddon의 책 보다는 평범한 형식입니다.

지난번에도 적었듯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소재를 글의 주제로 삼는 것은 위험한 일 입니다. 아주 잘 쓸 자신이 없다면 좀 특이한 방식으로 접근하던가 하는 쪽이 덜 위험하지요. 그런 점에서 오늘 이야기할 프라이어(Robin Prior)와 윌슨(Trevor Wilson)의 The Somme은 아주 과감한 저작입니다. 저자들은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솜 전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기존의 연구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영국군의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료적 토대가 탄탄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매우 쏠쏠한 좋은 책 입니다. 제가 읽은 솜 전투에 대한 저작 중 가장 최근의 연구성과라는 점도 언급해야 겠군요.

저자들은 매우 용감한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된 분석대상으로 삼는 것은 솜 전투의 입안과정과 솜 전투 첫날을 포함한 초기의 전투입니다. 전투 첫날에 대해서는 미들브룩(Martin Middlebrook)의 The First Day on the Somme 같은 유명한 저작이 있다 보니 더 쓸만한 것이 있나 싶은데 저자들은 신통하게도 기존 연구들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탄탄한 자료에 기반한 글의 강점은 이런 것이다 싶더군요.

솜 전투에 대한 많은 저작들이 독일군의 기관총에 학살당하는 밀집대형의 영국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저자들은 그런 이미지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쟁 중과 전쟁 직후에 출간된 부정확한 저작들의 서술이 과장되게 수용된 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이날 공격에 나선 영국군 보병부대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공격대형을 훈련 받았습니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솜 전투 초기 영국군의 포병 운용의 실패입니다. 먼저 공격 개시 전에 수일간 계속된 공격준비사격이 매우 형편없이 진행되었고 또 공격 당일의 공격준비사격과 이후 보병의 공격과정에서 진행된 탄막사격이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것 입니다. 즉, 영국군의 공격준비사격은 강력한 독일군의 제1방어선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에는 부족했고 또 독일 포병에 대한 제압도 거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또 7월 1일 공격 당일의 포병 운용도 매우 형편없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영국 8군단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8군단의 공격을 지원하는 포병은 독일군의 제1방어선이 제압되지 않았는데도 후방의 독일군 진지로 포격을 돌리는 바람에 제1방어선의 독일군은 방어준비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공격준비사격이 독일포병에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 포병은 영국군 보병부대가 돌격해 오자 바로 맹렬한 포격을 퍼부어 영국군에 기관총 만큼이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영국군의 공격준비사격은 독일군의 제1선 방어진지와 철조망, 후방의 독일 포병 어느 하나에도 충분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고 그 결과는 공격 첫째 날의 가공할 손실로 나타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공격 첫날의 형편없는 포병운용과는 반대의 사례로 제시되는 것은 7월 14일의 공격입니다. 저자들은 이날 영국군의 포격이 독일군의 제2방어선과 후방의 독일 포병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제2방어선이 제1방어선에 비하면 방어력이 취약한 면도 있었지만 포병이 공격에 앞서 2중으로 구축된 철조망선을 뚫은 것은 이날의 공격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 입니다. 저자들은 14일의 전투와 같이 영국군 보병은 충분하고 효과적인 화력지원을 받았을 때 매우 양호한 전과를 거뒀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1915~16년에 편성된 전투경험이 없는 사단들 조차도 훈련 상태에 비하면 양호한 전투능력을 보여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기존의 저작들과는 반대되는 평가여서 재미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구성 면에서도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각 장의 분량이 짧아서 가독성이 매우 좋더군요.

Wednesday, September 3, 2008

이놈들이 거짓말이라니 진짜 같다...

北조평통 "여간첩 사건은 날조 모략극"(종합)

넵. 북조선에서 간첩사건에 대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북조선에서 날조극이라고 하니 오히려 사실 같습니다.

아우. 언제까지 이 거지새끼들을 상대해 줘야 하는건지.

Tuesday, September 2, 2008

The Road

오늘 모처에서 했던 용역일의 한 달이나 밀린 급여가 통장으로 들어왔습니다. 평소였다면 통장을 확인 하는대로 바로 amazon.com이나 기타 유사한 사이트로 이동해 신앙생활을 했겠습니다만… 치솟는 환율을 고려해 일단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어쨌건 또 돈이 들어왔으니 책은 사야겠고 그래서 환율과는 별 상관없는 국내 도서를 사기 위해 반디 앤 루니스를 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사야 겠다고 생각하던 책을 두 권 계산한 뒤 귀가하려는 찰나 소설 코너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The Road 번역판이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요란하게 홍보를 해서 그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평소 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라 좀처럼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 김에 대충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다 읽어 버렸습니다.

소설의 세계관 자체가 제가 좋아하는 종말적 세계관이고 그 우울한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물론 번역본이라 원문의 맛을 100% 느끼진 못하지만)도 탁월했습니다. 생존자들의 피폐한 모습이나 폐허가 된 황량한 세계에 대한 묘사는 오싹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닫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바다를 향해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은 황량한 세계만큼이나 단조롭고 막막하지만 때때로 닥치는 위태로운 장면은 긴장이 넘칩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가 의지할 것은 총 알 두발이 들어있는 권총 한 자루 뿐 입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자신의 의무에 비해 미약한 힘 때문에 항상 불안해 합니다. 자신이 짊어진 무거운 의무에 대해 항상 고뇌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마치 고행하는 수도승 처럼 느껴집니다. 이 두 사람의 여정은 마치 종교적 순례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미국의 평론 중에서 이 책을 성경에 비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여정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지만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쥐어 짜려는지 마지막에는 약간의 장난(???)을 칩니다. 정말 탁월한 글솜씨더군요.

원작을 읽지 못했으니 100% 확신할 수 없지만 번역하신 분의 솜씨도 일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