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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5일 월요일

[번역글] 특수군사작전 2년차 : 몇가지 성과들, 향후의 전망

 가끔 미국이나 유럽쪽의 우크라이나 전쟁 연구에 인용되는 러시아 문헌들을 찾아서 번역기로 영역을 해서 읽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를 감안해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조금씩은 나옵니다. 최근에 읽어본 글 중 흥미로운 것을 몇개 올려보려 합니다. 이 글은 Вестник Академии военных наук(군사과학학회보) 2024년 2호에 실린 Два года специальной военной операции:некоторые итоги, вероятные перспективы(특수군사작전 2년차: 몇가지 성과들, 향후의 전망)입니다. 필자는 가브릴로프(А. Д. Гаврилов), 그루디닌(И. В. Грудинин), 마이부로프(Д. Г. Майбуров), 노비코프(В. А. Новиков) 등 입니다. 글이 쓰여진 시점은 우크라이나의 2023년 반격을 막아낸 뒤 전략적 주도권을 되찾았지만 군수물자가 부족해 북한에 포탄을 지원받기 시작했고, 아직 북한군까지 참전하지 는 않은 2024년 초 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민간인 공격을 규탄하는 등 러시아의 파렴치한 프로파간다로 가득차 있지만 러시아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지 않는 이유는 러시아가 정의와 휴머니즘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정신나간 소릴 하는데서는 기절할 것 같습니다. 꼬여있는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총동원을 촉구하는 부분이 주목됩니다.

 영어 중역이라서 번역의 질은 담보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인들은 대충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참고삼아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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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군사작전 2년차: 몇가지 성과들, 향후의 전망


가브릴로프

그루디닌

마이부로프

노비코프


 '특수군사작전'이 개시된지 2년이 넘었으니 군사적, 정치적 측면에서 몇가지 평가를 할 수 있을듯 하다.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에서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려는 범 서방의 지구적 목표가 성공하지 못했음은 명백하다. 러시아가 내부의 모순으로 분열해 붕괴할거라는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푸틴에 대한 지지도가 거의 90%에 달한다. 러시아는 새로운 영토를 얻었다. 일부는 '특수군사작전' 초기에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공화국을 승인함으로서 획득했고 초기의 성공적인 작전으로 자포리자와 헤르손 주를 얻었다. 전투 작전에서 러시아군의 타격력은 크게 증가했으며 장병들은 귀중한 실전경험을 얻었다. 가장 큰 발전을 이룬 분야는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다. 러시아의 군수물자 생산은 크게 증가했다. 서방의 전례없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경제는 '갈기갈기' 찢기기는 커녕 전례없는 회복력을 보여주면서 주요 지표가 확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무시받았던 농업 부문도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러시아는 백년전 처럼 세계 상위권의 농산품 수출국 지위를 되찾았다.

 소련이 붕괴한 뒤 주권을 가지게 된 우크라이나는 (소련 덕분에) 상대적으로 발달한 공업과 농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경제적 독립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서방의 재정 지원에 의지해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 2024년에는 미국 의회의 대립때문에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자금지원이 지연되면서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재정 정책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문명화된 세계를 수호"해야 하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임금과 연금을 주기 어렵다면서 서방에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 의회는 향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부담을 유럽연합에 떠넘기려는 뜻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거부한 뒤 경제 및 사회-정치적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유럽의 산업은 침체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도 높아지고 있다. 농민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쏟아붇고 관공서에 퇴비를 투척하고 있다. 사회복지도 축소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두 번째로 많은 원조를 하고 있는 독일의 군부와 정치 지도자들은 독일 국민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재정 및 군사원조를 계속하려 한다.

 우크라이나의 하계 '반격'이 실패하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낙관적인 선전선동과 최전선의 '가짜 뉴스'에 속아 한껏 높아져있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길거리에서는 군대에 보낼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들이고 있다. 무의미한 개죽음을 당하려고 모병소에 자원입대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을 실시한 이래, 즉 2023년 6월 4일 부터 2024년 2월 15일까지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 우크라이나군의 피해는 전차 및 장갑차 15,000여대, 야포와 박격포 8,000문, 무인기 12,500여대, 항공기 571대, 헬리콥터 266대, 방공미사일체계 500문에 달한다. 적의 인명손실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쳐 약 430,000여명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교체되고 전략적 방어로 전환한 이래 하루 인명피해는 850명에서 950명 수준이다. 유럽에서 군사력이 강하다는 나라들이 보유한 전차는 우크라이나가 여름 공세에서 잃어버린 전차 보다 적다. 독일은 300여대, 튀르키예는 316대, 프랑스는 406대다. 유럽의 나토가맹국이 보유한 전차를 전부 합쳐도 최신 전차(독일의 레오파르트2, 영국의 챌린저2, 프랑스의 르클레르, 이탈리아의 아리에테) 2,300여대, 구형전차 4,000여대(미제 전차 2,500대 포함)에 불과하다. 또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했던 국가에 1,500여대의 소련제 탱크가 있다. 

 하계 공세를 시작할 무렵 우크라이나는 약 2,2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나토 국가들이 추가로 전차 700여대를 지원했다. 실전 결과를 보면 서방의 최신 전차도 구형 전차들 처럼 격파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군 고위층도 전투 부대에 배치된 전차와 장갑차의 50%를 잃었다고 말할 정도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경제 및 군사원조는 전례없는 규모이다. 우크라이나는 외국의 개입 없이는 국가로서 생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및 탄약 지원은 모든 '레드 라인'을 훌쩍 넘었다. 어떤 전문가들은 그들이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 국제법상의 규범, 또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국제법상의 잔재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 재래식 무기, 군사장비, 탄약, 기타 군사관련 물품을 수출하는 나라는 전쟁 상태에 있는 걸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예를들어 소련은 우방국인 베트남에 100문의 S-75 방공미사일체계와 7,000발의 미사일을 제공했고 이로인해 미국은 수많은 비행기와 조종사를 잃고 베트남에서 철수해야 했다. 또 6,000여명의 소련 군사고문단이 베트남을 도왔다. 그러므로 외국인 교관들이 서방 무기체계를 직접 운용한다고 해서 놀랄일은 아니다. 예를들어 2024년 1월 24일 우크라이나군 포로를 태운 Il-76 수송기가 미국제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에 격추된 사건이 있다. 참고로 국제법은 다른 나라에 군사원조를 할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준수하도록 요구한다.

 -원조한 무기를 민간인에게 사용하는 것을 금지함

 -어느 전쟁 당사국의 국민에 대한 대량학살 및 인종 청소를 금지함

 -원조한 무기를 테러 행위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함

 -핵물질 방호협약(CPPNM: Convention on the Physical Protection of Nuclear Material) 준수

 -군사 예산에 대해 표준화된 보고 체계 적용(원조 받는 국가의 재정 지출 중 보건 및 교육 예산이 국방비 보다 높을 때 원조를 가능하게 하는 등) 등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가 마이단 혁명 이후 10여년간 모든 국제법을 위반했음을 보아왔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에서 지원받은 무기를 아무 제약 없이 사용했고, 키이우 정권에서 조건을 위반하지 않겠다는 거짓 약속만 하는걸로 무기를 제공한 나라들은 만족했다. 게다가 '특수군사작전'이 시작된지 2년이 넘은 현재 독일의 장거리 타우루스 미사일, 미국의 F-16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항공기도 지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큰 승리를 거두고 상황이 진전되어 우크라이나군에 더 효율적인 장거리 무기체계가 지원된다면 무력 충돌이 격화될 수 밖에 없다. 

 러시아의 군사과학은 러시아에 대한 안보 위협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군사 기술 측면에서 문제점이 있음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그 원인은 러시아군 수뇌부가 아군의 전투력을 평가하고 잠재적인 적의 의도롤 파악하면서 너무나도 기만에 잘 넘어가고 생각이 짧은데 있다. '특수군사작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부대 운용이 나타났기 때문에 서방의 "협력국"에 대해 네트워크 중심전을 수행하고, 적국이 수행하는 범지구적 단위의 타격과 항공우주 작전을 효과적으로 격퇴할 준비를 갖추며, 짧은 기간에 적을 결정적으로 섬멸할 지상 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연구는 필요하지 않았다. 10여년 전 서방 국가들이 '평화를 애호하는 협력국'이라고 생각하고 군사훈련을 대테러작전 중심으로 전환하고 지상군의 구조를 여단과 군단 체제로 개편한건 치명적인 오류였다. 전술 차원에서는 대대전술단이 널리 활용됐다. 대대전술단에는 모든 병과가 포함되었고 기동력이 높았으며 지휘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대대전술단은 파괴공작과 정찰대를 격퇴하고,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고, 규모가 작고 무장이 허술한 적군을 상대하는 특정한 임무에 적합했다. '특수군사작전' 당시 전선은 1,200-1,300km에 달했는데 대대전술단으로 이런 전장에서 일어나는 전술 문제를 해결하는건 아주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특수군사작전'을 준비하면서 서방의 '협력국'들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기 위해 전례없는 수준으로 단합하리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한 점도 군사-정치적인 예측이 실패한 사례이다. 미국의 지도하에 거의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다른 미국의 위성국가(거의 50여개국)가 반러시아 전선으로 단결했다. 서방은 러시아에 대해 전례없는 수준의 제재를 연달아 부과했다. '특수군사작전'이 시작된 이래 총 15,821건의 제재로 이루어진 13개의 제재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이라는 세계 최구의 인프라를 파괴하는 전무후무한 테러 공작도 일어났다. 헝가리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에 해가 되는 걸 알면서도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 자원을 거부하고 세배나 더 비싼 비용을 내면서 미국에서 수입을 했다.

러시아는 서방의 무기와 교관, 용병의 지원을 받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군대와 대결하게 됐다.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제압한다는 초기의 목표는 실패했다. 혁명적인 사상을 가진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깃발을 흔들고 꽃다발, 빵과 소금으로 러시아군을 열렬히 환영할 거라는 기대도 물거품이 되었다. 우리 군대를 맞이한 적군은 강하고 잘 훈련되었으며 우수한 무기를 갖췄으며, (정보 체계, 지휘 통제 체계, 통신장비, 현대식 무기와 장비, 다양한 정밀 유도무기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서방에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전투 작전의 규모와 결과라는 측면에서 '특수군사작전' 초기의 군사 작전을 평가하자면 그저 낙천적인 생각의 결과물이었다. 정면 3,500km-종심 800km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중요한 군사 시설은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로 일시에 타격할 대상이었다. '특수군사작전'을 시작하고 겨우 2주 동안 800여발의 지대지 및 공대지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사용한 걸로 추산된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 유고슬라비아 사태, 리비아 사태 당시 사용한 것 보다 두 배는 많은 숫자였다. 가장 최신의 고정밀 무기를 사용했다. 이스칸데르, 칼리브르, 킨잘, Kh-101, Kh-555, Kh-69 등 모두 매우 정확하고 치명적인 효율성을 가진 무기였다. 공중강습과 상륙작전도 병행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작은 집단으로 쪼개져 포위망에 갇히거나 요새화된 거점에 고립됐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와 러시아군은 병력면에서 우크라이나군 보다 열세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군사학 기준과 반대되었다. 또 나토식으로 훈련받은 우크라이나군은 전쟁에서 암묵적으로 따르는 규범과 반대로 행동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자국 국민들에게도 무자비했으며 민간인을 지하실에 몰아넣고 인간방패로 사용했다. 초기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우크라이나군의 지휘통제가 무너지고, 우크라이나군의 방공 체계가 제압되었으며, 우크라이나군 비행장과 항공기 대부분을 격파해 공중우세를 달성하고, 우크라이나군 여단과 연대들의 전략적 기동성을 빼앗아 전장에서 효과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었던데 있다. 

 그 다음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저항을 강화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었다. 이 기간 중 양측은 각자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이 80%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서방의 모든 언론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가 곧 승리를 거두고 크름 반도를 탈환할 것이며 우크라이나 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티파티를 열 거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실제 전장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고 지금은 전세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역전되었다. 주된 이유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원조가 지연되고, 미국이 유럽에 부담을 떠넘기려 했기 때문이다.

 '특수군사작전'을 2년 동안 수행하면서 군사조직과 전쟁수행에 있어 몇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술적, 조직적, 기술적 혁신이 결합하면 군사혁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특수군사작전' 수행으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전투 경험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이는 미래의 전장에서 벌어질 전투의 새로운 경향과 본질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한다. 이토록 짧은 기간(사실상 실시간의)에 일어나는 전투 과정의 본질과 내용을 객관적인 평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때문에 연구자들은 전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래식, 또는 최신 전투 수단의 역할과 위치의 관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변화와 이것이 다양한 전투 임무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방식을 구별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은 특히 흥미롭다. 전차 부대는 제병협동전투(작전)의 핵심 타격 요소로서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을 것 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이것을 확신할 수 없다. 작전에서 전차를 운용한 경험에 관해서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결론을 내놓고 있다. '투명한' 전장 상황에서 전차는 전혀 신뢰할 수 없으며 적이 보유한 다양한 무기(지뢰, 포병, 무인기)에 전차가 매우 취약하다는 주장부터 기술적으로 향상된 최신형 전차가 필요하며, 제병협동전투를 준비하고 수행하는새로운 조건하에서  새로운 전차 운용 방법을 개발하고 실증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동시에 요새화된 적 방어선을 전차 부대를 집중해서 돌파하는 전통적인 개념은 완전히 부적절하다는 결론도 내려졌다. 물론 미래의 전투 체계에서 전차가 차지할 위치는 시간과 전장 환경의 변화에 달려있겠지만, 한세기 동안 '전통적'이었던 적극적인 전차 운용 방식이 큰 변화에 직면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차의 공격으로 적 부대를 돌파하는 신속하고 기동적인 전투 작전 대신, 지상군 부대들은 장기간의 진지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적이 공들여 구축한 요새 지대를 점령하는 작전과 도시를 해방하는 작전은 특수한 부대 운용 방식과 많은 노력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독립적인 작전이 되었다. 시가전은 매우 복잡하고 공격측은 큰 손실을 입는다. 전통적인 작전술적 공세의 기본 교리(가장 가까운 목표와 차후 목표를 4-5일의 기간에 점령하는 등)는 더이상 적용되지 못하며 앞으로 한동안 그러할 것이다. 만약 3~4개의 제병협동군과 전차군이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대규모의 공세를 펼쳤다면 특수군사작전의 목표를 보다 일찍, 그리고 확실하게 달성하고 교전 상태를 끝냈을 것이다. 작전술의 원칙을 따랐다면 모든 병과와 병종의 화력을 사용해 3~4일안에 공세 방향의 적을 모두 소멸하고 당당하게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에 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작전으로 양측 모두 큰 인명 피해를 입었을 것이며, 광범위하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포병은 전술 및 작전술 차원에서 주된 파괴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확인했고, 정찰용 무인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정밀유도탄약 사용이 늘어나면서 그 지위가 더욱 강화됐다. 특수군사작전 지역에서 신형 크라스노폴 유도포탄을 사용하면서 포병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 20세기에 개발된 크라스노폴 유도포탄은 신형 레이저 유도 체계를 통합해 새로운 쓰임새를 얻었다. 개량된 크라스노폴 유도포탄은 이동하는 목표에 대해서도 80%의 명중율을 보장한다. 이와 같은 유도포탄은 D-20 곡사포와 므스타-B 곡사포, 아카치야 자주포, 므스타-S 자주포(개량형 포함), 칼리챠-SV 자주포, 말바 자주포  등이 사용한다. 포병부대가 표적 식별 능력을 획득함으로서 포병은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다. 특정한 화력 임무에서 모든 단계의 적 화력 자산을 신속하게 정찰하고, 이를 통합 목표 배분 체계에 통합하는 능력이다. 필요한 데이터를 전송하는 체계만 갖춰지면 화력 임무를 거의 실시간으로 수행하고 목표 식별에서 교전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게다가 적의 화력 교전 체계가 가진 새로운 능력은 필요할 경우 여러가지 형식의 정찰 및 화력 장비,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부대들을 단일한 정찰 및 화력 모듈로 통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무기가 지정된 목표와 교전하도록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다.

 극초음속무기를 포함한 고정밀 무기 체계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이스칸데르, 칼리브르, 킨잘, 그리고 다양한 공중발사, 그리고 해상발사 순항미사일 등으로 방산업체와 같은 우크라이나의 핵심 군사 인프라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이른바 정밀 무기를 이용한 대량보복은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하는 임무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22년 3월 9일 흐멜니츠키주(Хмельницька область) 스타로코스탼티니우(Старокостянтинів)에 있던 우크라이나군과 나토군의 지휘통제통신센터는 킨잘 극초음속미사일에 공격받았다. 푸틴 대통령이 2018년 대국민 담화에서 새로 개발하는 사르마트 미사일과 지르콘 미사일에 관해 이야기 했을때 서방은 이를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비웃었다. 또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은 2017년 12월에 실전 시험을 했다.

 '특수군사작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양상은 방공무기체계가 유인항공기에 우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는 군사전문가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현상이었을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항공기의 폭격이 방공무기체계에 우위를 보이던 경향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전장에서 도전받지 않던 유인 항공기의 우위도 끝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다면 작전술과 전술 차원에서 공군력을 운용하는 근본적인 기반 자체가 본질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무인기의 발전과 정찰, 타격, 전자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운용하는 것은 진정한 혁명적 발전이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에게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군은 2024년 2월 초 무인기 운용인력을 훈련시키고 전투에 투입할 인력과 수단을 군의 독립된 병종으로 만들었다. 소형 무인기가 대규모로 운용되고 그 규모도 갈수록 늘어나면서 전장은 '완전히' 투명한 상태가 되었고, 부대 뿐만이 아니라 장갑차 한대, 병사 한명 조차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없다. 소형 무인기 집단에 단독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공무기체계는 없다. 소형 무인기 집단에 대응하려면 전자전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러시아군이 다양한 종류의 무인기를 대규모로 운용한 것은 우크라이나군에게 진정한 재앙이었다. 가장 중요한 기종으로는 란셋 무인기와 10여종에 달하는 파생형이다. 란셋은 전차, 보병전투차, 병력수송장갑차, 야포 등의 기갑장비와 고정 목표물에 큰 위력을 발휘했다. 란셋1과 란셋3 무인기는 시리아에서 실전 시험을 거친뒤 여러 차례 개량을 했다. 란셋은 지형 지도를 탑재해 위성 통신에 의존하지 않기때문에 전자전으로 교란하기가 어렵다. 또한 레이저에 대한 방어가 가능하며 폴리머 복합재로 만들어져 방공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으며, 유도체계도 갖추고 있다. 공격용 무인기는 전차와 보병전투차가 가장 취약한 상면을 타격한다. 공격용 무인기가 사용하는 탄은 장갑차량의 정면과 측면 장갑을 관통하기 어렵다. 약 50여년전 미국은 "몰려오는 소련 전차"들을 상대하기 위해 '어설트 브레이커(Assault Breaker)' 정찰타격체계(Reconnaissance and Strike System)을 개발했는데, 이 무기체계는 장갑 목표물을 탑재한 탄약으로 정밀 타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현대 무인기의 시초격이다.) 우연히도 수년전 새로운 기술 환경을 바탕으로 이 계획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 국내의 군산복합체는 란셋 무인기와 그 파생형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오부호프(Обухов) 공장 한곳만 해도 3교대 근무로 1달에 3,000여대의 란셋 무인기를 생산한다. 또한 이란의 샤헤드-136 무인기를 기반으로 신형 추진 체계와 재밍 방어능력을 가진 게란-2 무인기의 대량 생산도 시작되었다. 전술 차원의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데 소형무인기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므로 적 무인기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러시아군의 무인기 전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포병 전력을 강화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문제는 대구경 포병 탄약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현재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는 포병 탄약 생산을 늘리는 문제를 극복하는데 있어 우크라이나 보다 훨씬 성공적이며 전선에 배치한 포병 무기의 숫자도 더 많아서 우크라이나군 보다 화력면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특수군사작전' 2년차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군의 포병 탄약은 거의 다 고갈됐으며 나토 국가들의 탄약창도 고갈되기 직전이다. 또 유럽과 미국은 다시 탄약을 생산하면서 자원, 예산, 기타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에도 대구경 포탄 수요가 유지될 지 확실한 보장이 없어서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대구경 포탄 생산을 늘리려는 미미한 시도가 있기는 하다. 특히 독일의 숄츠 총리는 새로운 포탄 공장을 건설하는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또 미국은 2025년까지 연간 포탄 생산량을 120만발로 늘릴 계획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는 1년에 대구경 포탄 450만발을 생산할 수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1백만발의 포탄 중 고작 30만발만 보내졌다. 물류 및 재정 문제로 나머지 포탄을 보내는게 지연되고 있다. 그결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10배 이상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 

 무인기를 대규모로 운용하는 현상은 극히 소수의 전문가만이 예측했다. 우리는 무인기의 대규모 운영으로 인해 공격 무기의 가격과 타격할 목표물의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고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가장 최첨단의 무기 체계가 단순하고 저렴한 무인기, 또는 무인기를 포함한 복합 타격 체계에 효과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초래한 현상은 육해공 모든 분야의 전투의 물질적 환경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만약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 조건이 계속 유지된다면 서방 진영의 군대가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로 '원주민' 군대를 압도하는 식민주의 전쟁은 종말을 맞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는 저항하는 민중과 정부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행위도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재래식 무기체계 전체의 상성관계가 무너지고 무기체계와 이를 운용하는 플랫의 비용과 효율성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악명높은 현대적  '포함 외교'의 주된 수단인 미국의 공군력과 나토 국가들이 보유한 소수의 항공모함은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다.

 심오하고 복잡한 국제 정치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우크라이나 정권을 무장해제하고 탈나치화하려는 '특수군사작전'의 복잡성과 다면적인 성격은 군사술의 발전에 있어 수많은 경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래의 전쟁과 분쟁에서 이런 새로운 경향들은 더욱 강화되고 계속해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칠것이다. '특수군사작전'에서 매우 두드러졌으나 영향력은 끼치지 못할 다른 경향들은 앞으로 사후 분석의 대상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가장 일반적인 경향들과 비교했을때, 무력 충돌의 결과가 통신 환경에 따라 전적으로 좌우되는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하고, 그 중요성도 커질 것이다. 스타링크 시스템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시초격이라 할 수 있다. 스타링크 시스템 처럼 신속하고 고도로 조직화된 데이터 전송 시스템이 없으면 무기 체계 개발, 미래 전쟁에서 군사 조직 및 기타 조직을 운용하는 방식을 발전 시킬 수 없다. 군사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데 있어 통신 체계는 너무나 중요하므로 통신 장비를 다양화하고 적의 강력한 방해공작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예비 장비, 정비 수단, 복구 수단을 갖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특수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수행하는데 관한 세부적인 사항을 통해 앞으로의 전망, 성과, 영향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특수군사작전'의 공식적인 최종 목표는 우크라이나 정권을 비군사화하고 탈나치화하는 것이며, 이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려는 그들의 소망을 현실화하려 한다. 동시에 원래 러시아를 봉쇄하는 목표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것을 최근에 바꾸는 점이 주목된다. 이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찌르지 못하게 막는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하지 못하게 한다.", 또 우크라이나가 패배한다면 세계의 자원을 식민주의적으로 재분배하면서 재정적,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는 "서구 문명"의 존속에 치명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명분을 주로 말하고 있다.

 단합된 서방의 지원을 받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우크라이나를 비군사화하고 탈나치화하려면 우크라이나 정권을 완전히 항복시키고 말살해야한다. 비군사화는 전쟁을 포기하게 하고, 무장을 해제하고 추후에도 무기 획득과 생산을 금지시키고, 요새와 군사시설을 해체시키고 군대를 보유할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정권은 비군사화에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크라이나 군대를 철저하게 패배시켜야 비군사화가 가능하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정부는 법적으로 러시아와 어떠한 협상도 할 수 없게 제약을 걸었으며,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합의도 서방의 요구로 취소됐다. 또 한편으로 어떠한 서방의 정부 기관을 배제하고 우크라이나 정권과 타협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가 민스크 합의다. 서방의 협상 대상국들은 나중에 협상 과정의 진정한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피할수 없다고 간주하는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결을 보다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하면서 협상 자체가 거짓이었음을 드러냈다. 나토가 동쪽으로 더 팽창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명시한 것, 우크라이나가 1991년 소련에서 분리독립할 당시 헌법에서 중립국 지위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도록 명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란 신나치즘 운동을 금지하고 생활 속에서 나치 사상과 행동을 버리지 않고 지키려 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현재의 우크라이나 정권을 무조건 교체하고 입법부 단위의 국가 기관에 해결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권은 권력을 잃을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므로 평화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모두 거부하고 끝까지 권력을 움켜쥐려 할 것이다. 또한 서방도 우크라이나의 내부 자원이 완전히 바닥날때까지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에게는 한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 '특수군사작전'의 목표를 단호하게 달성해야 한다. 우리 필자들은 '특수군사작전'의 핵심 결과는 필연적으로 나치즘 부활의 근원이며, 한치의 영토만 남아있더라도 러시아의 국가 안보에 철저한 위협이 되는 우크라이나라는 국가를 철저하게 말살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크라이나 국가의 말살은 각 지역의 역사적 기원과 국민들의 민족 구성에 따른 우크라이나 국토 분할로 이어질 것이다.

 전선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없는, 전문가들이 뚜렷한 발전이 없는 일종의 교착상태라고 해석하는 이상 이 분쟁은 몇년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이 숫적으로 우세하고 (서방의 군사 및 기술 원조를 받아 특히 첩보 및 정보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진) 현재의 병력 비를 고려하면 '특수군사작전' 목표를 신속하게 달성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틀림없이 서방은 앞으로 전쟁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확전의 다음 단계는 이미 유럽의 군사, 정치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발표하고 논의한 바와 같이 F-16, 타우루스 미사일 같은 장거리 타격 수단을 지원하는 것이리라 본다. 유럽연합은 물론 미국도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재정을 지원하려는 다양한 방안을 고안하고 실행하려 한다. 나토군을 우크라이나에 직접 배치하는 방안(프랑스는 유럽 국가의 연합군을 결성해 이를 준비하려는 의도가 있다.) 나토 주요 국가들이 무기와 군용장비를 생산하는 기업들에게 금융 및 경제, 기타 다양한 우대 조치를 통해 군산복합체를 강화하려는 시도, 러시아의 종심 깊이 위치한 중요한 전략 시설을 파괴하려는 계획 등이 공공연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조율되어 공개되고 있다.

 서방의 전략가들은 이제 공공연히 이번 분쟁에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내에서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 뿐만아니라 나토 회원국 중 하나(아마도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기 위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국가)에 대한 선제 타격을 감행할 가능성까지 논의하고 있다. 이런 추측을 하는 이유는 러시아 지도층과 러시아 국민을 협박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하지만 서방에서 이런 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일이다. 서방 국가들이 꾸준하고 일관되게 확전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적의 도발에 대해 대응하지 않은 러시아의 군사-정치 지도자들의 입장은 명백히 비대칭적이다. 서방은 이 분쟁에 말려드는 길을 걷고 있다. 방탄모, 의료장비 등의 개인보호장구류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시작해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장거리 무기 공급과 같은 노골적인 개입, 유럽에게 전적으로 파괴적인 러시아와의 완전한 경제적 단절과 중국과의 부분적인 단절, 군사-정치 영역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 정보 기관의 직접적인 테러행위(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파괴와 같은)에 대한 노골적인 지원등이다.

 현재까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2022년 2월 24일 이후 러시아에 적용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조치에 대해 단 한번의 대응도 받지 않았다. 서방 동맹은 '확전 경쟁'에서 러시아에 대해 8-10 단계 앞서나가면서 무기고가 바닥나고 있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러시아 지도부가 이토록 자제하는 진짜 이유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가지 짐작되는 것은 러시아가 이렇게 자제함으로서 서방을 포함한 전 세계에 러시아가 정의, 휴머니즘, 그리고 식민주의 엘리트 집단만이 아닌 전 인류가 공평한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러시아가 서방에 대응 조치를 많이 취하지 않는 이유는 서방 동맹국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우두머리인 미국을 은유적인 "군사-정치적 싸움"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마치 우크라이나 해군보병대가 정예 부대들을 꾸준하고 체계적으로 도살장에 밀어넣게 하는 것 처럼 말이다. 타당한 평가인지 확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의 정보만으로 판단할때 갈수록 쇠락하는 유럽 경제가 제살을 깎아먹는 과정이 진행중이며 점차 가속화되는 것이 확실하다. 서방 국가 중에서는 미국 경제만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 이유는 정상적인 사회 경제의 발전 법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로 국방비를 과도하게 지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국의 경제를 뜯어먹기 때문이다.

 또한 2년간 '특수군사작전'을 치르면서도 러시아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수단들이 남아있으며, 장소와 시간, 적에게 끼칠 영향력을 선택할 수 있는 뚜렷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대립을 더 격화하기 위해 고를 수 있는 첫번째 수단은 러시아 영토내의 시설과 민간인을 공격하는 부대와 무기체계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미국과 나토 국가들의 첩보 및 정보 자산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탐지와 목표물 지정, 목표에 무기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고정밀 무기 체계의 직접 통제하는 것이 서방 군사전문가들의 참여하에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 문제를 첫 번째로, 최우선 순위에 두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서방이 "방관자"인척 한발 빠져있는 편안한 상태에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 깊은 곳을 타격할 수 있는 역량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해도 감소시킬 수 는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민간 목표를 타격하는 빈도가 크게 늘어나면서 민간인 피해가 증가하고 있으며 중요한 후방의 정부 및 군사 시설이 파괴되고 있어 민감한 정치적, 선전적 요소가 되어 양측의 대중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강력한 적을 맞아 군사적 대결이 장기화되면서 비극적이지만 인력 자원을 포함한 러시아의 국부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등 거대한 러시아의 국방 잠재력을 끌어낼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전장의 상황을 고려하면 '특수군사작전' 전선에 배치된 러시아군의 전투력이 확고한 우위를 달성하고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결정적인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서방과 협상을 해서 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희망은 부질없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겠다고 발언한 것은 그냥 선거운동 구호라고 봐야 한다. 서방의 이익을 위한 슬라브인의 싸움은 더 커지고 서방은 계속 후원할 것이다. 서방 엘리트 집단의 자질은 아주 저급하며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되어 있어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간에 이익이 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게다가 서방 엘리트들은 자국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미국을 기쁘게 하고 미국의 의도를 이행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유럽연합과 나토가맹국의 대중들은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 서방 정치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전쟁터에 정치적 자산을 모두 걸어놓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우크라이나가 "비참한 최후를 맞을때 까지" 원조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서방 엘리트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전세계에 그들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드러냈으며 문명간의 충돌을 계속할 것임을 확인해 주었다. 따라서 현재 서방 지도자들은 그들의 예외적인 존재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으며 가장 냉소적인 표현 조차 피하지 않고 있다.(주제프 보렐[Josep Borrell, 당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유럽은 정원이다. 우리는 정원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작동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금껏 인류가 만들어낸 체제 중에서 정치적 자유, 경제적 번영, 사회적 통합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했다. 나머지 세계, 세계의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글이다. 정글이 정원을 침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전반적으로 우리는 자발적인 동맹과 협력에 기반한 강력한 네트워크라는 상대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국제적인 체제라는 식탁에 앉지 못한다면 메뉴판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상 서방의 모든 지배 엘리트들이 이런 성향을 드러내고 있으니 (최소한 지금의 정치 체제하에서) 서방의 대표들과 건설적인 접촉을 하겠다는건 허망한 일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러시아의 국가적 안보를 강화하는 목표를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공개적으로 선언한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여 '특수군사작전'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에서 '특수군사작전'을 수행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근본적인 상황이 러시아군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우크라이나의 '하계공세'는 실패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막대한 군사장비와 병력을 잃었다. 서방의 무기와 군사장비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황에는 이렇다 할 영향이 없었다. 러시아 국내의 군산복합체가 모든 종류의 군사장비, 무기, 탄약 생산을 늘리면서 소모전을 하는 것도 유리하다. 정찰, 지휘, 통신, 전자전, 무인무기체계, 정밀유도무기, 기타 무기 체계도 많이 개발되어 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특수군사작전'의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려면 국가와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하에 군사, 정치, 경제적 도전을 골고루 해결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전쟁은 이겨도 평화를 얻지 못했던 저주를  무슨 일이 있어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것에서 배워야 할 때이다.

2026년 3월 19일 목요일

유럽의 재래식 군사력 쇠퇴 원인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하나

 미육군전쟁대학에서 간행하는 Parameters에 실린 Imitating US Doctrine cost Europe its heavy combat power라는 논문을 읽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주장을 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논문의 필자 네메스(Bence Nemeth) 교수는 유럽의 재래식 군사력이 약체화된 근본적인 원인은 21세기에 들어와서 미국과 유사하게 대비정규전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군사력 개편을 했기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네메스는 비록 유럽 국가들이 장기간 군축을 하기는 했어도 미국식 교리를 추종하지 않았다면 재래식 군사력이 현재와 같이 약화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이 연구에서 분석 대상으로 선정한 국가는 캐나다, 독일, 영국 등 세 나라입니다. 제목에는 유럽이라고 써놓고 캐나다군까지 분석대상으로 집어넣은건 이상합니다만 캐나다도 NATO의 일원으로 동유럽에 파병을 하고 있긴 하지요. 네메스는 이 세 국가를 선정한 이유는 캐나다, 독일, 영국이 발트3국에 전개된 전방지상군 전투단(Forward Land Forces battlegroup)의 중핵이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1990년, 2001년, 그리고 2022년에 분석 대상 3개국이 실제로 보유했던 전차, 보병전투차, 야포 및 다연장의 숫자와 '만약' 미국 교리를 따르지 않고 기존의 재래식 중시 교리를 유지했을 경우 보유했을 경우의 숫자, 그리고 킬 세계경제연구소와 브뤼겔 연구소 등이 추산한 '현 시점에서 러시아의 발트3국 침략을 막는데 필요한' 장비의 숫자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1990년은 냉전이 막 종식되는 시점이고 2001년은 탈냉전 이후 본격화된 군축의 영향이 나타난 동시에 대테러전쟁이 시작된 시점, 마지막으로 2022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략하면서 유럽의 군사적 취약성이 명백해진 시점입니다. 이 연구에서 분석의 핵심은 2001년부터 2022년까지의 기간입니다. 이기간 동안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교리에 따라 대비정규전 중심으로 군을 개편했기 때문입니다. 네메스는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캐나다, 독일, 영국 세 나라 모두 지상군 총병력 대비 전차부대와 포병부대의 숫자가 격감했다고 지적합니다. 교리의 변화가 없었다면 전차부대의 비율은 훨씬 높았을 거라고 가정하는 겁니다.

 이 연구는 교리의 변화가 없어서 기갑과 포병의 비율이 감소하지 않았다면 2022년 기준으로 캐나다군은 56대, 독일군은 462대, 영국군은 230대 더 많은 전차를 보유했을 것으로 봅니다. 마찬가지로 야포와 다연장의 경우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캐나다군은 실제보다 33문, 독일군은 실제보다 142문, 영국군은 실제보다 98문 더 많은 포병 무기체계를 보유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보병전투차량은 교리 변화의 영향을 덜 받은 무기체계이므로 실제와 큰 차이는 없거나 오히려 약간 줄어들었을 걸로 봅니다.

 네메스는 근본적으로 교리의 변화로 인해 실제로 보유한 장비의 숫자가 줄어서 유럽이 재무장하는데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킬 세계경제연구소와 브뤼겔 연구소 등 유럽의 싱크탱크들은 NATO가 러시아의 침략으로 부터 발트 3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1,400대의 전차, 2,000대의 보병전투차, 700문의 야포와 다연장이 필요하다는 연구를 내놓았습니다. 네메스는 기존의 정규전 중심 교리가 유지되었다면 캐나다, 독일, 영국 3개국이 보유한 전차만 총 1,340대, 야포와 다연장은 596문으로 킬 세계경제연구소와 브뤼겔 연구소가 제시한 기준에 근접했을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차와 포병 무기체계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2022년에 이 3개국이 실제로 보유한 전차는 593대, 포병 무기체계는 323문이었습니다. 

 결국 교리 변화로 인해 전차와 포병 무기체계가 격감했기 때문에 유럽의 재무장 비용도 커졌다고 평가합니다. 필자는 킬 연구소와 브뤼겔 연구소가 제시한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312억 유로가 필요하지만 교리의 변화가 없었다면 139억 유로만으로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예산 감축 보다 교리의 변화에 주목하는 점에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20년 2월 2일 일요일

[번역글] 독일은 군대를 더 키우고 강화해야 한다


블룸버그의 오피니언란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네요. 엉망진창인 독일의 안보상황에 우려하는 독일인이 외국 매체를 통해 자국의 현실을 질타하는 내용입니다.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계속하고는 있으나 독일연방군이 회복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요.





독일은 군대를 더 키우고 강화해야 한다


안드레아스 클루트(Andreas Kluth)


최근 독일 기갑차량 승무원들은 폴크스바겐의 미니버스로 훈련을 하고 있다. 푸마 장갑차 4대 중 3대는 정비 중이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정비 받을 날 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원인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관료주의에 있다. 독일군은 배낭, 방탄복, 방탄모, 모자 같은 군장류를 보급받는데 수년이 걸린다. 군대 정원은 20,000명 가까이 미달이다. 청년들이 군대에 가고 싶어하질 않기 때문이다. 장교들은 입대 기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신병들은 날이 갈수록 뚱뚱해지고, 허약해지고, 멍청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독일 연방의회가 임명한 감찰관 한스 페터 바르텔스(Hans-Peter Bartels)가 독일연방군을 조사한 결과이다. 바르텔스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렸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현재의 독일연방군은 나토와 서방 동맹국의 통합방위에 충분히 기여할 수 없다.

사실 독일의 동맹국들은, 동쪽의 폴란드부터 서쪽의 미국에 이르기 까지 이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비판을 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지적한 방식은 외교적으로 부적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전임 미국 대통령들도 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독일 정부에게 이 문제를 두고 격렬하게 비판했었다. 이들은 독일이 더 이상 무임승차를 해서는 안되며 국방비 투자를 감축해서도 안되고, 공동의 임무에 있어서 책임을 경감하려고 해서도 안된다고 말해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는 동맹국들의 비판을 정중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침공했을 때 많은 독일 관료들이 독일은 국제적으로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해 말 웨일즈에서 열린 나토 회담에서 메르켈 총리는 다른 동맹국 정상들과 함께 10년 내로 국방비를 최소 GDP2%으로 증액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때 한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바르텔스는 베를린의 어느 누구도 진지하게 국방비를 GDP2%로 증액할 생각이 없는듯 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독일 정부는 냉전이 끝난 뒤 크게 삭감했던 국방비를 다시 증액하기 시작했다. 밑바닥에서부터 말이다. 액수만 놓고 보면 작년 독일의 국방비는 432억 유로(476억 달러)였다.(사실 불합리한 관료주의 때문에 이걸 다 쓰지도 못했다.) 올해에는 451억 달러가 될 것이다. 또한 추가로 예산을 더 증액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바르텔스는 이정도 규모로는 국방비를 2024년까지 GDP1.5% 수준으로 증액한다는 인색한 목표조차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제2차세계대전 전후의 독일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미국 국내선을 탔을 때 기장이 하는 방송을 들었다. 군인이 탔다고 하자 기내의 모든 승객이 열렬하게 박수를 쳤다. 독일은 그 반대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뒤인 1955년 서독이 군대를 새로 만들었을 때 군인들이 군복을 입고 외출을 했다가 시비를 걸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독일인들은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일으켰다는 죄책감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반전, 반군사적인 정체성을 가지려고 했다.

이러한 과거사에 대한 반응은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반응은 좀 괴상한 자부심으로 변질되었다. 오늘날 독일인은 전쟁을 하지 않고 무역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절대적인 기도문 처럼 되어버렸다. 독일은 사실상 자국의 국방과 국제질서에서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을 미국에게 외주를 줘버렸다. 미국 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스와 영국도 독일의 부담을 나눠지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독일인들, 특히 좌파 정치인들은 기고만장하여 독일의 동맹국들이 전쟁광이라는 훈계나 늘어놓고 있다. 그러면서 독일은 경제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며 국제질서를 악용하고 있다.

독일 정계 지도자들 중 일부는 이런 구조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2010년에 독일 연방 대통령 호르스트 쾰러(Horst Koehler)는 독일이 무역로 보호와 같은 국익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해외파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시 격렬한 비난이 확산되었고 그야말로 히스테리 적이었다. 쾰러 대통령은 사임할 수 밖에 없었다. 더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하면 독일 정계에서 매장당한다는 것을 많은 정치인들이 알게 되었다.

이래서는 안된다. 세계는 위험한 곳이다. 나토는 수많은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유럽통합군은 그저 공허한 꿈에 불과하다. 유럽의 가장 큰 위협은 여전히 러시아이다. 스웨덴 국방부의 연구자들은 러시아가 지난 10년간 군사력을 강화했으며 하이브리드 전쟁과 재래식 군사력, 그리고 신형 미사일 배치를 통한 핵무기 위협 등으로 유럽을 무찌르거나 협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누가 독일 국민들에게 이것을 말할 것인가? 하나는 메르켈의 뒤를 이어 연방 총리가 될 것으로 꼽히는 후보 중 한명인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국방장관이다. 크람프-카렌바우어 국방장관은 독일군이 주도하는 시리아 파병을 주창하기도 했으며 아프리카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프랑스와 더욱 긴밀히 협력할 것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크람프-카렌바우어 국방장관이 이런 주장을 할 때 마다 대중적 지지도는 폭락했다. 

결국 남는 것은 메르켈 뿐이다. 메르켈은 총리 연임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밝혀서 레임덕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의 신망이 높으며 믿을 수 있는 인물이다. 메르켈 총리는 14년간 집권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같은  수많은 위기를 거쳐왔다. 지금 그녀는 리비아 내전을 비롯한 다른 분쟁들을 중재하려는 중이다. 그리고 미국이 유럽 평화를 보증하는 역할에서 발을 빼려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제 메르켈에게 남은 기간은 2년 뿐이다. 메르켈은 남은 재임 기간 동안 독일 국민들이 군대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역사적인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2017년 2월 27일 월요일

[번역글] Merkel and Whose Army?

폴더를 정리하다가 번역하려고  긁어놨다가 까맣게 잊어먹은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트럼프 당선 직후 멘붕해서 독일 찬양가를 부르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독일 연구자의 포린 폴리시 칼럼 “Merkel and Whose Army?”인데 내용이 하드 파워를 중시하는 제 취향에 딱 맞아 번역을 해 봅니다. 자국의 문제를 냉철하다 못해 시니컬하게 비판하는 점이 아주 좋습니다. 제목은 좀 의역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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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그런데 군대는?


한스 쿤드나니Hans Kundnani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엄마’라고 불린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직후 전 세계의 부정적인 반응을 고려하면, 조만간 다른 나라들도 메르켈을 그렇게 부를지 모른다. 트럼프가 미국이 “자유세계의 지도국” 역할을 그만둬야 한다는 뜻을 내비칠 수록 메르켈의 독일을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 본인도 인정한 것 처럼 그런 생각은 말도 안된다. 메르켈은 지난 11월 20일 총리 4선에 도전하면서 한 연설에서도 이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독일의 국력이 항상 유럽이라는 지역에 국한됐다는 점이다. 독일은 전 세계적 규모의 강대국이 아니며, 아시아에 있는 취약한 서방의 동맹국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독일은 미국을 대신해 ‘자유 유럽의 지도국’ 정도나 될 수 있을까 싶다.


사실 독일은 ‘자유 유럽의 지도국’ 조차 버겁다. 만약 리더쉽이라는 단어를 순수하게 ‘도덕적 상징성’에 국한한다면 독일은 그 기준을 충족할 지 모른다. 물론 그러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리더쉽에는 냉전 이래로 다른 국가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확고한 군사적 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독일은 그럴 능력이 없다. 독일의 군사력은 최소한도의 수준인데다 독일인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화적 국력 조차 발휘할 의지가 없다.
뉴욕 타임즈의 캐롤 지아코모는 미국 대선 직후 독일이 “나토에서 미국을 대신할 지 모른다”는 예측을 했다. 하지만 어떤 나라가 장갑차에 기관총 대신 검은색으로 칠한 나무막대기를 달고 다니는 나라에게 그 역할을 맡기려 들겠는가. 독일이 2014년 나토 훈련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그냥 단순히 독일과 미국의 국방비만 비교해도 답이 나온다. 2015년 기준으로  IISS의 통계를 보면 미국의 국방예산은 5975억 달러였다. 하지만 독일의 국방예산은 367억 달러로 미국의 1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의 국방예산은 프랑스(468억 달러)나 영국(562억 달러) 보다도 적다. 게다가 프랑스와 영국은 미국과 같은 핵무기 보유국이다. 현재 프랑스와 영국의 정치적 상황이 엉망이긴 해도, 군사력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나라가 독일 보다는 ‘자유세계의 지도국’에 더 적합할 것이다.


독일의 국방예산 규모는 독일의 경제력과 비교했을때 더 심각하다. 나토 가맹국들은 GDP의 2퍼센트를 국방예산으로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하면 오직 그리스, 에스토니아, 폴란드, 영국 등 4개국만이 이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독일은 고작 1.3퍼센트만 국방예산으로 지출했는데 이것은 나토 가맹국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1.2퍼센트 미만으로 까지 떨어졌다. 겨우 올해에 와서야 메르켈은 GDP의 2퍼센트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공표했다.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 독일 총리는 재차 이 목표를 표명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 정부가 실천한 것은 2017년에 국방예산을 8퍼센트 증액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GDP의 고작 1.22퍼센트가 됐다.


국방예산도 그렇고 독일군의 능력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냉전당시 독일연방군은 소련의 유럽 침공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약 50만의 병력과 레오파르트2 전차 2,50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독일연방군은 176,752명과 레오파르트2 전차 200대로 줄어들었다. 병력면에서 보면 130만에 달하는 미군의 7분의 1 남짓한 규모다. 독일 공군은 109대의 유로파이터 타이푼과 89대의 구식 토네이도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미국 공군은 수많은 F-35, F-22, F-16, F-15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을 비교하면 그 격차가 더 크다. 미 해군은 12개 항모전투단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해군의 가장 강력한 군함은 프리킷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달랑 10척이다.


올해에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독일 국방부장관은 향후 15년간 군장비에 1300억 유로(14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예산은 신규장비 구매에 편성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산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장비를 유지보수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일련의 보고서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장비들은 2010년 이래의 국방예산 감축으로 운용할 수 없게된 것들이다. 즉 독일군은 전투력을 증강하는게 아니라 겨우 현존 전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예를들어 독일 공군의 유로파이터 109대 중 42대, NH90 헬리콥터는 겨우 2대만 운용가능한 상태이다. 그리고 2014년 나토훈련에서 있었던 악명높은 검은 나무막대기 사건의 원인은, 독일연방군 내부 보고서를 인용한 독일 공영방송 ARD 보도에 따르면 중기관총이 부족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독일의 낮은 국방예산 수준과 독일연방군의 부족한 능력은 독일의 전략 문화에 그 원인이 있다. 독일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원인이 독일이 과거 일으킨 군사적 재난에 대한 반동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현상은 지난 25년간 진행되었던 일이다.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첫 10년간 군사력 사용 문제에서 프랑스 및 영국과 협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경향은 독일이 1999년 코소보 전쟁에 개입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독일의 대외정책에서 “또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구호가 “아우슈비츠를 되풀이 하지 말자”로 바뀌는 듯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의 군사 개입이 실패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또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독일은 2011년 리비아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독일인들이 이 결정을 지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전략적 충격 조차 독일인들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못했다. 지난 여름 독일 외무장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는 독일도 참여한 나토 군사훈련을 ‘무력 도발’이라고 했다.


독일인들은 자국을 평화세력(Friedensmacht)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단어는 원래 냉전당시 동독이 자국을 칭하면서 사용했으며 1980년대에 녹색당에서 활동하다가 극우 정당으로 전향한 전직 독일공군 대령 알프레트 메흐터샤이머가 1993년 독일에 적용한 것이다. 독일인들은 미국 처럼 군인을 영예롭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 군인들은 공항에 들어설 때 미국인들로 부터 박수 갈채를 받지만 독일 군인은 그럴 일이 없다. 그래서 독일 연방군은 모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국방부는 모병을 위해 TV 리얼리티 쇼 까지 끌어들였다. 지난 5월 라이엔 국방장관은 2023년까지 독일군을 7,000명 증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독일인들의 태도도 조금 바뀐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독일연방군사사-사회과학 연구소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설문 대상자의 절반이 국방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이것은 2000년 이래 처음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독일 연방군 증강을 지지했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발트 3국이나 폴란드 처럼 러시아를 위협으로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여론이 급변한 원인은 난민 문제였다. 난민 문제를 러시아 보다 독일에 더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 보다 난민이 독일을 휩쓰는 것을 더 우려해 안보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듯 하다. 최근 정부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인의 다수는 안정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훈련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전투 작전을 중요시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21세기에는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한 사건이나 아시아에서 전개되는 영토 분쟁과 군비경쟁에 미뤄 볼때 설득력이 없다. 독일 처럼 수출, 즉 해외 시장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국가에게 있어 경제력은 국력의 근원이면서 약점이다.


독일이 유럽 바깥에서는 군사력이건 경제력이건간에 하드파워를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메르켈은 기껏해야 ‘자유 세계의 도덕적 지도자’ 정도나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유로 위기에서 메르켈이 보인 행태를 보면 그 조차도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메르켈을 성토할 그리스인, 스페인인, 이탈리아인이 넘쳐난다. 설사 메르켈이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된다 해도 전체주의의 부활을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보다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교황에 대해 했다는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래 교황은 몇개 사단이나 가지고 있소?”

2014년 7월 5일 토요일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핵무기 사용계획에 대한 어떤 제독의 비판

1960년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전쟁계획을 보다보면 미국과 NATO만큼이나 핵무기의 대량 사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게 섬뜩합니다. 예방공격을 위한 계획들을 보면 전술핵은 물론 전략로켓군도 동원되는 점이 눈에 띄는데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려 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이 점에서는 미국과 NATO의 계획도 마찬가지 이긴 합니다만.) 이런 정신나간 계획에 대해서는 당대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언급했었던 서독 국방장관 슈트라우스의 발언에 나타난 것 처럼 핵무기라는 존재는 당대의 전략가들을 꽤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소련해군의 데레뱐코 제독이 당서기장 흐루쇼프에게 보낸 서한은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소련 군인들이 핵무기 사용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단 한가지 사안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핵무기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미래에 살아갈 행성은 어디이며, 이들이 군대를 보내 영토를 정복하려고 계획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핵무기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핵무기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우리 군대를 어떤 혼란에 빠트릴지 알고는 있을까요? [중략]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대가 전쟁 초기에 추구해야 할 전략적인 목표는 아군, 특히 공수부대와 차량화 부대를 활용한 신속한 돌파와 공격을 통해 서유럽 중부에 있는 침략국가들의 영토를 점령하고 신속하게 대서양까지 진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군이 진격하게 될 전 전선에 걸쳐 방사능으로 토지와 물, 공기가 오염된 장벽을 만들겠다는 자들은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아군이 하루에 최대 100km를 진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공격 자체가 좌절될 수도 있습니다. 서유럽과 같이 좁은 지역에서 핵무기를 이렇게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방사능에 오염된 수백만의 민간인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서풍으로 인해 우리의 군대와 소련의 우랄 지역에 이르는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들까지 수십년 동안 방사능 오염에 시달리게 될 것 입니다. [중략] 핵미사일을 이용해서 승리하겠다는 생각은 집어치워야 합니다. 핵무기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나름대로 전략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현대 전쟁의 다양한 양상과 방법을 좌우할 수는 없습니다. 

콘스탄틴 데레뱐코Константин И Деревянко 제독이 1961년 8월 1일 흐루쇼프에게 보낸 서한 

Matthias Uhl, ‘Soviet and Warsaw Pact Military Strategy from Stalin to Brezhnev : The Transformation from “Strategic Defense” to “Unlimited Nuclear War”, 1945-1968’, Blueprint for Battle : Planning for War in Central Europe, 1948~1968(University Press of Kentucky, 2012), p.40

2014년 6월 23일 월요일

Russia’s Struggle for Military Reform: A Breakdown in Conversion Capabilities

지난번에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7호 1권의 러시아 국방개혁특집을 간략히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27호 1권의 특집에는 전반적으로 러시아의 사회경제적 한계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이 많이 실렸습니다. 27호 1권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 있기 전에 기획되었기 때문에 최근의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할 것인지가 궁금했는데 바로 27호 2권에 최근의 사태를 반영한 글이 한편 실렸습니다. 필자는 조지타운 대학교의 제임스 마샬James A. Marshall이고 제목은 “Russia’s Struggle for Military Reform: A Breakdown in Conversion Capabilities”입니다. 전반적인 내용은 27호 1권의 특집과 논조가 유사합니다. 러시아의 사회경제적 토대가 허약하기 때문에 러시아군의 국방개혁의 전망은 밝지가 못하다는 것 입니다.

필자가 첫번째로 지적하는 것은 인구와 예산과 같은 전략적 자원 문제입니다. 러시아군은 아직까지도 모병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징집병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인구가 줄어드는 동시에 병역기간이 단축되어 징집병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2002년에는 335,000명의 징집병이 필요했는데 2009년에는 병역기간의 단축 때문에 필요한 징집병의 숫자가 625,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같은 기간 동안 러시아의 인구가 1억4520만명에서 1억4200만명으로 격감했다는 것 입니다. 병력자원이 부족해서 징집병의 숫자만 채워넣는 형편인데 한해 징집되는 병력 중에서 실제로 군복무에 적합한 건강상태를 가진 인원은 전체의 40~45%수준이라고 합니다. 체력은 물론 다른 질도 크게 떨어지는데 징집병 중 상당수의 문맹자, 알콜중독자, 범죄자가 있다고 합니다. 징집자원의 낮은 질과 함께 여전이 열악한 군인에 대한 처우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필자가 적용한 이론적 틀은 쉴즈Shils와 재너위츠Janowitz가 2차대전기 독일군을 연구할 때 사용한 좀 오래된 기준이긴 합니다만 ‘군생활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상관과의 관계’와 같은 기준은 현대 러시아군에 적용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공식통계를 인용한다 하더라도 러시아군의 탈영율은 평화시라는 것을 감안했을때 꽤 높은 편이며(공식통계에 따르면 2,265명) 필자는 한발 더 나가 실제 탈영율이 공식통계를 상회할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사회에서 극우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곤 있다 해도 소련 붕괴이후로 지속된 민족주의의 약화도 군의 사기를 유지하는데 있어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봅니다.
국방예산의 경우 푸틴의 집권이후 급증해서 현재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예산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국가총생산의 3.9%를 국방예산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부정부패 때문에 증액된 예산의 상당수가 횡령되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군검찰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국방예산의 20%가 횡령되고 있고 비공식 통계로는 30% 가까이 횡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또한 국방예산의 40%가 핵전력을 유지하는데 소모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재래식전력의 현대화에 돌아갈 수 있는 기회비용이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다음으로는 러시아의 군수공업이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연구개발 기반이 붕괴되어 이것을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데다가 러시아의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전체 제조업 종사자의 20%에 달해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이 주된 요인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군수기업들이 보유한 설비의 70%는 사용한지 20년이 넘은 것이기 때문에 노후화가 심해서 생산 효율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두번째로는 러시아의 안보환경과 이에 대한 대응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러시아 내부의 비대칭 위협, 중국의 군사적 부상, 그리고 숙적(!)인 NATO의 존재 등 세가지 요인을 지적합니다. 러시아 내부의 비대칭 위협으로는 체첸 민족주의자들의 테러활동을 꼽고 있습니다. 필자는 다양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러시아의 경제수준으로 유지가 가능한 소규모의 정예 직업군인 위주의 군대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규모 군대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위협은 러시아 내부의 비대칭 위협 정도일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 숫적으로 우세한 중국군이나 기술적으로 우세한 NATO에 대한 대응은 핵전력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러시아가 추구하는 군사력 감축과 정예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 입니다. 푸틴은 2000년대 초에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부사관의 정예화를 추진했지만 이것은 푸틴이 다시 대통령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세르듀코프가 국방부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추진한 장교단 감축이 완료되지 못한 이유도 러시아군 부사관단의 수준이 여전히 낮기 때문에 서방국가에서는 부사관의 담당하는 임무를 담당하기 위해 장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러시아 군부가 여전히 전면전에 대비한 대규모의 병력동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점도 장교단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봅니다. 필자는 세르듀코프 시기에 강하게 추진된 병력감축과 군구조 개편에 대해서도 미심쩍은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구조 개편에 대응하는 교리상의 혁신이 있었느냐 하는 것 입니다. 얼마전에 있었던 크림 반도 병합에 대해서도 러시아군의 개혁이 성공한 증거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견해를 보여줍니다. 먼저 우크라이나군은 조지아군 보다도 전투의지가 약해 싸움 자체를 회피했으며, 크림 반도에 투입된 부대는 러시아군의 최정예인 특수부대와 공수부대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군구조 개편의 대상이었던 지상군의 대부분이 아직 전투를 통해 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는 필자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필자는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군의 전투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크림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로는 러시아가 국가적인 역량을 국방개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역량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먼저 러시아의 취약한 민군관계를 지적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부분은 세르듀코프의 해임입니다. 그 원인이 푸틴이 장교단 감축과 같은 급격한 국방개혁에 저항하는 군부 보수파의 손을 들어준 것에 있다는 것 입니다. 필자는 군부가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는 원인을 스탈린 사후 문민통제가 약화되면서 군사적 전문성을 가진 군부가 강력해진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고르바초프 집권기에는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강화됐고 소련 붕괴 이후의 러시아에서는 이것이 더욱 고착화 되었다는 것 입니다. 필자는 헌팅턴의 민군관계 모델로 이것을 설명하는데 러시아군의 문민통제 유형을 주체적 문민통제Subjective Civilian Control가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군부가 강력한 독립성을 가지는 객체적 문민통제Objective Civilian Control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군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군부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으며 군부의 이해관계는 대규모 전면전을 대비해 방대한 군조직을 유지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군장교단은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징집병에 의존하는 현재 체제를 유지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징집병들이 군지휘관들의 사적인 사업에 노동력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요. 반면 자원병은 지휘관이 사적으로 착취하기 곤란한 대상입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군에서는 징집병의 비율이 오히려 높아졌다고 합니다.
또한 러시아가 여전히 NATO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에 비중을 두는 점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NATO에 대응하기 위해 핵전력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붙다 보니 재래식 전력을 개선하는데 투자할 기회비용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입니다. 필자는 러시아의 잘못된 위협 인식이 국방개혁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러시아의 군사교리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최근 전쟁의 중요한 특성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군부가 여전히 대규모 전면전을 선호하고 있어서 군사교리의 전환이 어렵다는 것 입니다. 필자는 최근(2010년) 러시아의 군사교리가 신속전개능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전시동원을 위한 대규모의 예비군 확보를 명시하면서도 두가지 상충되는 목표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르듀코프 시기의 군병력 감축과 군구조 개혁에 관련된 내용도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민간 관료들이 원하는 목표와 군부의 요구가 어정쩡하게 반영된 타협물이라는 것 입니다.

러시아군의 개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관찰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주장을 전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위험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 러시아군이 실전을 치르게 된다면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겠지요. 관찰자인 제3자의 관점에서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2013년 9월 5일 목요일

나토의 전진방어전략에 대한 체코슬로바키아군의 평가

지난번에 올렸던 “1960년대 독일연방군 제1군단의 방어계획”과 관련해서 포스팅을 하나 합니다. 잠깐 언급했던 1965년에 작성된 체코슬로바키아군 참모부의 정보평가입니다. 1960년대 초반 나토군의 전략 변화에 대해 평가한 내용인데 인용한 책의 해제에 따르면 소련에서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보고서라고 하는군요. 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권의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냉전기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사료가 많아졌지만 러시아의 자료 공개는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과거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속했던 소련 위성국들의 자료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점은 꽤 아쉬운 점입니다. 아무래도 소련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하위 동맹이었던 국가들의 부분적인 자료를 통해 전체를 재구성 해야 하니 말입니다.


이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나토군의 전략 변화를 공세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즉 독일 영내에서의 방어전 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공세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로서 “전진방어”를 채택했다고 보는 것 이지요. 그리고 2차세계대전의 경험을 반영해서 독일군에 대한 평가가 높은 편입니다.


영어 중역인 점을 감안하고 읽어 주십시오. 영어로 번역하면서 편집자가 생략한 부분이 많은게 유감입니다.


[...전략] 나토 사령부는 현재 사회주의 국가들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군사력을 비교하는데 있어 전면적인 핵전쟁은 물론 제한적인 전쟁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이에따라 제한전에 대한 이론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는데 이 이론은 중부유럽전역의 연합군의 작전 준비태세, 특히 최근 수년간의 준비태세를 반영하고 있다.
[...중략] 제한전쟁은 두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가지는 부여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 충분한 병력을 신속하게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 문제는 군사력을 운용하면서  제한전쟁이 전면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서방은 유럽에 충분한 재래식 전력을 배치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전쟁에서 제한적인 핵무기 사용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중략] 제한전 개념은 특히 미국이 선도하고 있는데 이 개념에서는 군사적인 목적과 정치적인 목적을 점진적으로 달성하는 동시에 전면적인 핵전쟁이 발생할 위험을 최소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수뇌부는 전면핵전쟁의 파괴력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나토에서는 국제적인 긴장이 단기간, 혹은 장기간 이어진 이후 전면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유리한 군사적, 정치적 정세가 조성될 경우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전면 핵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유리한 정세로는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거나 어느 한 진영의 지도국가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군사력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경우로는 단계적으로 특정한 제한조건을 넘어서면서 제한전쟁이 전면 핵전쟁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꼽을 수 있을 것인데 이 경우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어느 한 참전국이 사용하는 수단에 전혀 다르게 대응하거나, 어떤 징후를 잘못 해석하거나, 사람의 실수나 장비의 오류 때문에 제한전쟁이 전면 핵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나토군 수뇌부는 기습적인 전면 핵전쟁을 감행하는 계획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중략]  국가안보에 대한 직간접적인 위협에 직면해서 필요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전쟁 말고는 없을 경우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모호한 개념은 여전히 나토군 수뇌부, 특히 미국이 전면 핵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나토가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의 전략개념인 이른바 “유연 대응flexible response”은 제한전, 그리고 유리한 상황이나 어쩔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전면전을 수행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개념은 군사적인 관점과 정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공격적이고, 해로우며 결과적으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제한전 이론은 이론적인 측면, 특히 전쟁의 정치적, 군사적 목표, 병력과 군사적 수단의 활용, 그리고 목표의 선정이라는 관점에서 봤을때 명확하지 않은 요소로 가득차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나토군 수뇌부는 평화시에도 양 진영의 강력한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는 유럽 전역에서 제한전이 적절하게 수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산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제한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문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나토군 수뇌부는 나토군이 심각한 손실을 입거나 요충지를 상실하게 될 경우, 혹은 재래식 전쟁으로 의도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에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제한전 이론이 특히 중부유럽전역의 정세하에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략…]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과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되면서 1963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과 다른 유럽내 나토 가맹국들의 주도로 ‘전진 방어Forward Defense’라는 새로운 개념이 채택되었다. 이 개념에서 다루고 있는 영역은 단지 독일연방공화국의 영토 뿐이다. 본질적으로 전진 방어 개념에는 유럽전역의 환경에 새로운 원칙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적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개념은  독일연방공화국의 영토를 지켜내는 한편 공세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여 단기간 내에 전장을 독일민주공화국과 체코슬로바키아로 옮기기 위해서 독일연방공화국의 동부 국경에서 능동적인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중략] 나토군의 작전 준비태세에 대한 전략 개념의 영향력. 
연합군의 작전적 준비태세를 보면 전면핵전쟁과 함께 나토군이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함께 사용하는 제한전쟁을 감행하는 것을 고려하는 전략 개념을 채택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1960년 경까지 실시되었던 대규모의 훈련들은 동서양진영이 무장 충돌을 하게 된다면 어떠한 경우건 모든 종류의 핵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것에 입각한 “대량보복” 개념에 따라 실시되었으며 병력 동원과 예비 전력의 집결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 반격으로 이행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 유연한 방어를 전개하였다. 핵공격을 가하는 수단은 공군이 유일했다.[중략…] 
이 무렵 실시된 훈련들은 모두 방어 작전을 위해 실시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에 존재하던 개념과 나토 지상군의 임무를 반영한 것이었다. 나토군의 전쟁 시나리오는 전쟁의 위협이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을 가정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군부대의 전투 대비태세를 완료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며, 동원에 필요한 일부 조치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고 사전에 준비된 작전 조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핵공격이라는 전략적 수단 중에서 공군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전쟁에서 완벽한 기습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되었다.[중략…]
[...중략] 훈련 시나리오에서 “대량보복” 개념에 입각한 중요한 변화들은 “전진방어” 개념의 채택으로 폐기되었다. 이러한 훈련들은 유럽전역에서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제한적인 전쟁을 수행한다는 나토의 개념을 따른 것이었다. 교전은 방어작전으로서 짧은 기간 동안 수행되었다. 방어작전 단계에서는 재래식무기만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에서는 작전-전술단위, 전술단위의 핵무기가 동원되었고 그 시기는 작전이 개시되고 수시간에서 수일이 지난 뒤였다. 나토군은 보통 적군이 선제 핵공격을 실시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했다.
이 시점에서 전쟁의 위협이 증대되는 기간이 훨씬 짧아졌다. 이때문에 전투 준비태세를 갖춰야 할 시간도 훨씬 짧아졌다. 전투 태세를 준비하고 완료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적이 아군의 준비 태세를 감지하는 것과 대응 수단을 마련하는 것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작전적 기습을 가능하게 했다.
“전진방어”를 채택함으로써 군의 작전 편성은 1960년 이전의 군사 훈련에서 적용되었던 것과 비교하여 근본적으로 변화했으며 특히 중부 집단의 경우가 그러하다. [중략...] 적의 일선 제대는 두개의 야전군(미 제7군과 프랑스 제1군)으로 구성되었고 일선제대와는 별도로 1~2개 집단의 제2선 예비 제대가 편성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하는 제1선 제대에 프랑스군 집단(제3기계화사단, 제1기갑사단)이 배치된 것, 또는 독일군 제2군단이 프랑스 제1군의 작전 통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로 필센Plzeň-뉘른베르크Nürnberg와 린츠Linz-뮌헨München 축선의 중부 집단 우익이 크게 강화되었다.
이러한 개념상의 변화는 초기 전투 기간에 작전을 수행하는데도 반영되었다. 지금까지의 군사훈련을 보면 나토 연합군이 초기에는 기동 방어를 실시하고 있지만 갈수록 능동적으로 작전하고 있으며 전체 전투 주기가 (2~3일 정도로 ) 짧아졌다. 또한 후퇴 종심도 (최대 120km 정도로) 현저히 짧아졌다. 비록 반격으로 전환하는 것은 훈련하지 않았지만 이전 보다 더 빨리 반격을 하기 위해서 방어 단계를 강력한 역습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중략] 1962년 이래로 중부유럽전구에서는 제한전 개념에 따라 훈련을 실시했다. 초기에는 1개 집단군 단위의 훈련(그랜드슬램1Grand Slam 1과 그랜드슬램2)에 적용되었으나 1963년 부터는 중부유럽전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훈련(Lion Ver)에, 1964년에는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한 훈련(Fallex-64)에 적용되었다. 
나토군은 1964년 이전에는 적군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만 핵무기를 사용했다. 1964년 훈련에서는 나토군 방어선의 돌파구를 분쇄하거나 공세를 성공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했다. 이에 대한 적군의 대응, 즉 보복을 위해 핵무기를 무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전면 핵전쟁으로 이어졌다.
[...중략] 1962년의 훈련에서는 전투 작전이 시작된 지 3일차(46시간)에 적을 저지하기 위해 국경에서 50~150km 떨어진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1963년에는 전투 작전이 시작되고 불과 10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핵무기를 사용했다. 적군의 진격은 30~100km 정도에서 돈좌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우 나토군의 성과는 무시해도 될 정도였다. 1964년 가을의 기동훈련에서 핵무기는 전쟁이 시작된 지 34시간차에 사용되었으며 이 시점에서 전방의 방어선이 돌파당해 적군은 국경에서 30~80km를 돌파해온 상태였다.
[...중략] 이같은 훈련을 보면 연합군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전투를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원인은 전력 격차가 크기 때문이며, 이점은 재래식 전쟁이 시작된 초기에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나토군 수뇌부는 전력격차가 크다는 점 때문에 제한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전면 핵전쟁을 감행할 수 있도록 군의 준비태세를 갖추려 하고 있다. 

[...중략] 요약, 결론.
[...중략] 각 국의 참모진 중에서 이것을 가장 잘 준비하고 있는 것은 독일에 주둔한 미군 참모부다. 독일주둔 미군은 지난 한해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를 했다. 미군은 연합 훈련에 참가하는 것 외에도 자체적으로 대규모의 훈련을 실시했다. 
서독군 참모부는 작전적 준비태세를 갖춘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서독군은 연합훈련을 진행하면서 연합군의 범주 내에서 임무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서독군 참모부의 고급 장교들은 대부분 과거 히틀러 군대에서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얼마 안가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독일군의 작전적 준비태세는 미육군과 거의 맞먹는다. 
프랑스군에서 가장 준비가 잘 된 참모진은 제1군의 참모진이다. 프랑스 본토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참모진은 준비태세는 최근에 와서야 강화되었다. 프랑스군은 오랫 동안의 식민지 전쟁으로 생긴 문제점을 없애고 미군과 동등한 수준으로 준비태세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프랑스군 참모진은 특정한 상황하에서의 전투 행동에 필요한 조직과 운영에 있어서는 많은 경험을 갖추고 있다. 

영문번역 : Marian J. Kratochvil.
“Document No.28 : Warsaw Pact Intelligence on NATO’s Strategy and Combat Readiness, 1965”, Vojtech mastny and Malcolm Byrne(ed.), A Cardboard Castle? : An Inside History of the Warsaw Pact 1955~1991, (CEU Press, 2005) pp.170~173.

2013년 8월 22일 목요일

1960년대 독일연방군 제1군단의 방어계획

Blueprint for Battle : Planning for War in Central Europe, 1948~1968을 읽는 중 입니다. 진도가 더뎌서 이제야 겨우 헬무트 하머리히Helmut Hammerlich가 쓴 제10장 “Fighting for the Heart of Germany”를 읽고 있습니다. 제10장은 1960년대 초반 북독일의 방어를 담당한 독일연방군 제1군단의 전시 방어계획을 다루고 있습니다.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해 방어종심이 짧은 독일의 전략적 고민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더군요.


제10장에서는 1963년 9월에 나온 연합군중부유럽사령부CINCENT, Commander in Chief, Allied Forces Central Europe의 긴급방어계획EDP, Emergence Defense Plan 1-63호 이후의 방어 계획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긴급방어계획 1-63호는 주방어선을 베저Weser-레흐Lech 강을 잇는 선으로 설정해 독일연방공화국 영토의 90%를 방어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전까지의 방어계획이 주방어선을 엠스Ems-네카Neckar강으로 설정해서 독일연방공화국 영토의 50%를 포기하는 것에 비하면 방어구역을 크게 늘린 것이고 독일이 정치적으로도 용납할 수 있는 범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최대한 전방에서 바르샤바조약군의 주력을 맞아 싸우기 위해서 지연전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작전적 융통성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토를 최대한 사수해야 하니 선택의 폭은 좁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제1군단, 영국 제1군단, 벨기에 제1군단과 함께 독일 북부의 방어를 담당한 독일연방군 제1군단은 예하에 제3기갑사단, 제1기갑척탄병사단, 제11기갑척탄병사단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제11기갑척탄병사단은 예하의 제33기갑척탄병여단을 나토 북부집단군NORTHAG, NATO’s Northern Army Group 예비대인 제7기갑척탄병사단에 배속하게 되어 있어서 실제 전력은 2개 기갑척탄병여단으로 제한되었습니다. 이 3개사단의 기갑전력은 전차 600대와 장갑차 700대였습니다. 그런데 독일 제1군단이 1차로 상대하게 될 소련 제3충격군은 4개 전차사단과 1개 차량화소총병사단, 전차 1,600대와 장갑차 1,400대를 보유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제2파 제대로는 제2근위전차군, 또는 제20근위군 소속의 11개 사단이 투입될 것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전쟁 초반에 압도적인 병력의 열세를 감당하면서 최대한 좁은 지역에서 적을 저지해야 하는 것 이었습니다. 1965년에 계획을 개정해서 제7기갑척탄병사단을 독일 제1군단 예비대로 지정하기 전 까지는 이렇다 할 예비대가 없었으니 더욱 난감한 계획이었습니다. 기본적인 방어계획은 각 사단이 1개 여단과 사단 기갑수색대대로 지연부대를 편성해 최전방에서 지연전을 펼치는 동안 나머지 2개 여단이 주방어선에서 방어를 준비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연부대가 주방어선까지 밀려오면 이것을 후방으로 돌려 사단예비대로 운용하도록 했습니다. 굉장히 협소한 방어구역과 제한된 전력이 결합되어 지휘관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가 지독하게 적었던 것 입니다.


이런 제약을 상쇄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은 잘 알려진 대로 핵병기였습니다. 독일 제1군단 포병의 경우 연합군 유럽최고사령관SACEUR, Supreme Allied Commander Europe의 허가를 받아 10킬로톤까지의 핵포탄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자인 하머리히는 자세한 사격계획이 명시된 사료를 찾지 못해 개략적인 내용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핵 포격과 함께 사용되는 수단은 핵지뢰였습니다. 핵지뢰는 4~5km 간격으로 설치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베저강 서쪽에 설정된 핵지뢰 사용 지대가 120km 가량이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독일 제1군단에 할당된 핵지뢰는 30개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여기에 항공지원을 담당한 제2연합전술공군ATAF, Allied Tactical Air Force도 핵폭격을 하도록 되어 있었으니 전쟁이 터졌다면 전쟁 초반부터 독일은 핵으로 쑥대밭이 될 판이었습니다. 나토측이 전진방어를 채택하면서 핵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은 바르샤바조약기구 측에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주)


사실 독일 본토에서 핵을 사용한다는 것은 독일측으로서도 썩 달가운 방안이 아니었습니다. 박살나는건 독일이니 말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까지 나토 북부집단군 방어구역에서 핵 타격 목표를 선정하는 것은 영국군에 의해 좌우됐고 1966년 이후에야 독일측이 핵무기 사용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일로서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은 문제였습니다. 당시 독일 제1군단 포병사령관은 작전상 개전 초반부터 핵무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으며 독일군의 전력이 획기적으로 증강되지 않는 이상 재래식 화력전은 어렵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군의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개전 초기에 대량의 핵무기를 사용하는 계획이 계속 수립되었습니다. 1966년 부터 독일공군 참모총장을 맡았던 슈타인호프Johannes Steinhoff는 이런 계획으로는 작전적인 기동이 불가능하다고 비난하고 독일을 파괴하는 전술핵의 대량 사용을 재래식 방어에 포함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영토를 방어하면서도 핵무기 사용은 피해야 한다는 딜레마는 결국 독일이 재래식 전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만듭니다. 사실상 이것이 독일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주) “Document No.28 : Warsaw Pact Intelligence on NATO’s Strategy and Combat Readiness, 1965”, Vojtech mastny and Malcolm Byrne(ed.), A Cardboard Castle? : An Inside History of the Warsaw Pact 1955~1991, (CEU Press, 2005) pp.172~173.

2011년 7월 3일 일요일

제국의 유지비용

  20세기 영국의 몰락은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은 제국이라 2차대전 이후에도 식민지들에 대한 영향력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이런 발버둥의 일환으로 영국은 경제가 엉망으로 망가져가던 1960년대 까지도 세계 각지의 해외주둔군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다지요.

  영국 군부는 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을 맞이한 뒤에도 해외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특히 중동지역은 유전이 존재했을 뿐 아니라 폭격기의 작전 기지로서도 중요하게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지역은 영국이 ‘전통적’으로 이해관계를 가진 지역이었던 만큼 전략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2차대전으로 사실상 패권국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1952년 영국 군부는 국제전략보고서Global Strategy Paper에서 중동지역에 고정적으로 배치할 영국군을 육군 1개 사단에 항공기 160대 정도로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1)
  이미 2차대전 이전에도 식민지 유지에 땀을 빼던 대영제국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에는 그게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영국은 2차대전을 미국의 원조에 의해 겨우 치러냈고 2차대전 이후에는 더욱 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연구자가 시니컬하게 지적하고 있듯 2차대전 이후의 영국은 자체적인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강대국의 기능을 미국의 원조로 해나가는 형편이었던 것 입니다.2)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국제활동은 미국의 지원에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이 그리스 내전에서 손을 뗀 것도 유명하지만 수에즈 사태당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은 이런 현실을 전세계에 명백히 보여준 사례이지요.

  그리고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경제가 슬슬 엉망이 되어가자 얼마 되지않는 영국의 해외주둔군 마저 풍전등화의 상태가 됩니다. 영국은 2차대전 직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국’의 역할을 하기 위해 국방력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55 회계연도만 하더라도 영국 GDP의 9.0%에 달하는 비용이 국방비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였다지요. 하지만 이것은 영국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었고 이미 1959/60 회계연도에 6.9%로 6%대로 떨어진 뒤 1969/70 회계연도에는 5.3%로 추락합니다.3)  영국의 경제가 계속해서 악화되면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군사력은 점차 부담스러운 짐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영국 수상 맥밀런이 1959년 7월 26일 일기에 썼던 것 처럼 영국내에서는 “왜 영국이 큰 무대에 남아있으려 발버둥 쳐야 하는가?(Why should the UK try to stay in the big game)”하는 회의감이 오래전 부터 일고 있었던 것입니다.4)
  영국 재무성의 경우 이미 1960년 부터 중동과 아시아에 배치된 영국군의 철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재무성의 관료였던 리처드 클라크Sir Richard Clarke는 국방비를 GNP 성장률의 테두리 내에서 억제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극동지역에서 병력을 감축하는 것이 상황을 호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라크는 1960년 7월 극동지역에 주둔한 영국군을 감축하자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싱가폴에 영국군을 주둔시킨다고 해서 영국의 경제와 무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미군이 있으니) 또한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영국이 얻는 경제적 이익이 연간 6천만에서 6천5백만 파운드 사이인데 비해 아시아 지역에 주둔한 영국군에 소요되는 비용이 연간 6천만 파운드에 달해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그리고 1963년에는 중동지역에 주둔한 영국군도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중동지역의 영국 석유기업들이 연간 1억 파운드를 벌어들이는데 이 지역에 주둔한 영국군은 1억2천만에서 1억2500만 파운드를 까먹고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습니다.5)

  물론 영국 정부는 단순히 재무성의 주장에만 휘둘리지 않았고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상황과 군사적인 요인을 함께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영국이 정말 돈이 없다는데 있었습니다. 결국 해외주둔군을 줄일 수 밖에 없었는데 서독주둔군의 경우 미국 및 NATO회원국들과 협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은 만만한 중동과 아시아 주둔군이 목표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6) 결국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뒤 1965년에는 아덴Aden을 포함한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철군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어서 아시아 지역의 영국군 감축이 잇따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영국이 몰락할 무렵에는 미국이라는 훨씬 쓸만한 대체재가 존재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영국군이 철군한 뒤에도 미국의 존재는 중동과 아시아지역에서 공산권의 세력확대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지요. 다행히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패권국이고 우리는 그 패권국이 제공해주는 안보에 기대어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여전히 패권국으로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나쁘지 않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한국이 미국에 있어서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점 입니다. 냉전이후 한미관계를 다시 돌아보자는 목소리가 자주 나오고있고 그럴때 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생각합니다. 한국은 미국이라는 제국에게 있어 수지타산이 맞는 곳인가?



1) John Baylis·Alan Macmillan, “The British global strategy paper of 1952”,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16: 2, p.218
2) Dan Keohane, Labour Party Defence Policy since 1945(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3), p.20
3) G. C. Peden, Arms, Economics and British Strategy : From Dreadnoughts to Hydrogen Bomb(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p.308
4) Curtis Keeble, Briatin, the Soviet Union and Russia(MacMillan Press, 2000), p.259
5) G. C. Peden, ibid., p.332
6) G. C. Peden, ibid., p.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