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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4일 월요일

이제 어려운 단계가 왔다(Now Comes the Hard Part)

이집트 사태를 전망하는 다른 글을 하나 더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이번 글은 2월 10일, 그러니까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직전  포린 폴리시 인터넷 판에 올라온 콜게이트 대학 부교수 브루스 러더포드(Bruce K. Rutherford) “이제 어려운 단계가 왔다(Now Comes the Hard Part)”라는 글 입니다. 사실 이 글은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직전에 씌여진 글이라서 그냥 놔 둘까 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서 올려 봅니다. 현재 진행형인 사태이다 보니 “오 재미있는 글이 올라왔는걸?” 하는 동안 상황이 변해버리니 재미있더군요. 이 글에서는 무바라크 퇴진 이후 미국과 서방세계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따라 각 정파의 이해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날림번역이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이집트 사태의 다음단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이행 과정의 큰 윤곽은 카이로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아마도 이르면 2월 10일 목요일 쯤 호스니 부마라크 대통령이 사임하고 반대파를 포함한 과도 정부가 성립되는 것이 포함된다. 아마도 올해 말 까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이집트의 헌법과 법규를 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누가 상황을 이끌어 갈 것인지 불분명하다.

개혁 과정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은 주로 세 집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로, 물론  가장 중요한 집단은 시위대들이다. 비록 무바라크의 퇴진은 그들의 대의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부패의 척결과 시민 사회 및 정치적 권리의 확대, 그리고 경쟁 선거의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 다수가 대의를 위해 전진하면서 크나큰 고통과 상처를 감내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3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타흐리르 광장에 시위대로 모여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표에 대한 실질적인 진척이 이루어 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해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면 위로 갑자기 부상한 문제는 향후 (권력) 승계의 시나리오 -오마르 슐레이만이 9월 선거 이전까지 과도 정부를 이끌게 된다 -가 새로운 질서에 대한 시위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인 것 같다. 이 계획에 따르면 타흐리르 광장의 군중들이 반대하는 기구인 정보국의 수장을 최근까지 역임했던 슐레이만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일반 반대파 인사들과 노벨상 수상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등을 과도 정부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가 이들을 존중한다 할 지라도 이들이 리더쉽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볼만한 징후는 많지 않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것은 4월 6일 운동의 젊은 지도자들(이들은 원래 2008년 섬유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케파야(Kefaya), 가드(Ghad)당, 민주전선, 그리고 무슬림 형제단 등이 정권과 협상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 고려해야 할 문제는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를 일으킨 청년층이 더 많은 이집트인들을 무기한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집트 정부는 시위대가 지치고 일반인들, 특히 중산층들이 지난 수주간의 경제적 붕괴 상태에 분노를 느껴 점차 시위대에 반감을 가지게 되길 원하고 있다. 만약 타흐리르 광장의 군중들이 줄어든다면 시위대의 정치적 지렛대는 기울게 될 것이다. 기세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그럴듯한 방법은 더 많은 일반 시민들이 타흐리르 광장에서 그들의 휴일(과 기도일)을 시위에 쓸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을 “시위의 날”로 하는 것이다. 만약 금요일의 시위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게 된다면 시위대는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의 핵심적인 집단은 이집트의 군부로 이들은 개혁 절차가 진행되면 그들의 다양한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 장군들이 국방 예산을 지키고 국가 안보에 대한 의사 결정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고수하려 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장군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단지 국방 예산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장군들은 군대를 먹여살릴 뿐 만 아니라 민간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농장, 공장, 무역 회사 등을 통제하고 있다. 또한 군부는 이집트 전역(특히 지중해 연안과 나일강 일대)에 막대한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를 민간 기업에 임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장교단 또한 사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장교들은 정권으로 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와 식비 및 주거비 지원, 휴양지, 사교시설, 그리고 다른 이득을 제공 받아 왔다.

현재의 정치적 이행 과정은 군부에 상당한 무게가 쏠려 있다. 군부는 질서를 유지하고 정치 체제의 공백 부분을 관리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허용할 것 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군부는 이러한 모든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군부는 그들이 부여받은 안보적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어쨌든 이집트군은 465,000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군부가 정치적인 공백 상태를 관리할 능력이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군부가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혹은 민주주의가 좋은 사상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불확실하다.

실제로 장교단을 포함한 정치 엘리트의 다수는 공개된 정치적 경쟁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러한 회의주의는 (무바라크가 집권 초기에 명확히 했던 것 처럼) 이집트 인들이 민주주의에 걸맞는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문화적 소양도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정치에 완전히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민주화가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기술과 판단력을 결여한 카리스마적이고 포퓰리즘 적인 지도자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이용되어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엘리트들 사이에 이러한 견해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이 군부가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필요한 안보와 안정을 뒷받침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군부가 민주화 과정에서 중립을 지키지 않을 수 있으며 보다 명확히 하자면 무슬림 형제단이 민주화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부 이집트 인들과 (그리고 분명히 일부 외국인들은) 군부가 이러한 역할을 해 주는 것을 반길 것이다. (이집트의) 장군들이 25년전 터키의 군부와 달리 정치에 참여하는 모든 세력은 정부의 세속적인 토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건설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이집트의 장군들은 이집트와 지역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구실로 특정한 이슬람주의자들을 제외하는 식으로 정치적인 논의의 범주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장군들이 보다 급속한 변화를 요구하는 집단을 제외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참여하는 이슬람 주의자들을 참여시키는 식으로 이러한 역할을 소극적으로 수행 한다면 그들의 역할은 실제로 긍정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장군들이 강경한 방식을 택하고 (현행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이슬람주의자들을 제외한다면 민주화 이행과정의 정당성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또한 군부가 경제 개혁 과정을 감독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의 대상이다. 이집트의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는 최소한 군부가 소요한 기업 다수를 민영화하고 군부가 통제하고 있는 상당한 규모의 토지를 매각하는 것을 포함해 민간 경제 부문에서 군부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재평가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국방비의 삭감과 (미국의 군사원조의 상당부분을 경제 원조로 돌리는 것과 같은) 미국과 이집트 사이의 군사원조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포함된다. 장군들은 아마도 이러한 조치에 저항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들은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는 많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데 절실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집단은 무슬림 형제단이다. 무슬림 형제단의 시위 참여는 지금까지 미미한 수준이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시위가 시작된지 며칠이 지난 1월 28일 이전에는 공식적으로 단원들에게 시위에 참여하라는 호소를 하지 않았다. 비록 무슬림 형제단은 시위대에 참여하고 있으나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으며 타흐리르 광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에서 가장 잘 조직된 반대세력이며 어떠한 정치적 변화가 있더라도 한 축을 담당할 것이 틀림없다.

지난 15년간 무슬림 형제단의 지도부는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법률을 준수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무슬림 형제단은 현제 이집트의 법률을 받아들이며 평화적이며 의회를 통한 방식으로 법을 개정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 형제단의 위치는 완전히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무슬림 형제단은 여전히 기독교인이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는데 반대하고 있으며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데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 형제단의 대변인은 민주적인 절차에 참여하여 그들의 목표를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달성하길 원한다고 거듭 밝힌바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이집트인들은 이것을 믿지 못하고 있으며 무슬림 형제단이 비밀스러운 계획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두려워 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전체 인구의 거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콥트 기독교인들의 두려움을 달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록 콥트 기독교인들은 이집트 전역에 거주하고 있고 다양한 사회경제 계층에 분포되어 있지만 1월 초 알렉산드리아의 교회에서 일어난 차량 폭탄 테러와 같이 지난 해 기독교 사회에 가해진 여러 차례의 강도 높은 공격에 무력함을 느끼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러한 공격과는 연관이 없으며 이것들을 국가적 통합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콥트 기독교인들은 만약 이집트의 정치적, 안보적 상황이 악화된다면 기독교인에 대한 새로운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두려워 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이 그들은 양의 탈을 쓴 알 카에다가 아니라는 점을 이집트 인들에게 확신 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몇 가지 방안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무슬림 형제단의 소년 단원을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콥트 기독교도 형제들에게 보내 주는 것, 여성들을 무슬림 형제단의 고위 직책에 앉히는 것, 그리고 무슬림 형제단 지도자들과 콥트 기독교도들을 모두 포함한 정당을 건설할 계획을 공표하는 것 등이다. 대부분의 무슬림 형제단 단원들은 이러한 방안들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바로 “새로운 발상(outside the box)” 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이렇게 극적인 제스쳐를 취하는 것 만이 무슬림 형제단이 대다수의 이집트 인들로 부터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유일한 방법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평화로운 이행으로 가는 길은 어렵다는 것이다. 설사 헌법적인 도전을 극복하더라도 미국이 지지하고 있고 슐레이만이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계획은 고위 장교단이 사심이 없어야 하며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한마디로 비현실 적이다. 설사 군부가 일어서더라도 이집트는 이번 봉기로 인해 더 악화된 막대한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이행 과정은 상대적으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만약 알 카에다가 이집트에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면 약간의 차량 폭탄을 잘 활용하는 것 만으로도 - 콥트 교회 밖에서 터뜨린다던가 - 정치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이집트 대중과 국제 사회의 시각을 극단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이행과정을 성공시키기 위한 핵심은 헌법을 개정하고 경쟁 선거를 치르는데 필요한 안정적인 환경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안보와 실업문제를 해결하는데 달려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집트 경제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곧 바로 직면하게 될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원조를 제공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 이것은 아직 미국과 유럽연합 당국의 공식 성명에는 언급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국제 사회는 이집트의 제조업 분야의 개편과 광범위한 민간 경제 분야의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는 어쩌면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이라는 범위 내에서 이집트의 상품에 대한 우선적인 접근권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의회는 대외 원조를 늘리거나 더 많은 특별 무역 협정을 허용할 생각이 없다.

만약 이집트에서 민주화의 시도가 성공하게 된다면 이것은 이 지역과 그 너머의 세계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실패하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심각한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미국의 적대 세력을 강화하고 이 지역의 안정을 해치며 수십년간 민주적인 개혁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사실은 오늘 오후에 RSS 피드를 살펴보다가 이스라엘의 반응에 대한 기사가 몇 편 눈에 들어와서 이것도 조금 번역하다가 왠지 의욕이 없어져서 놔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게 현재 똥줄이 타는 이스라엘의 움직임인데 여기에 대해서 흥미로운 글이 몇 편 나왔더군요. 급박한 사태인 만큼 향후의 추이가 궁금해 집니다.

그리고 러더포드 교수는 2008년에 Egypt after Mubarak: Liberalism, Islam, and Democracy in the Arab World 라는 책을 낸 바 있습니다. 어떤 저널의 서평에 실렸을 때 그냥 보고 지나쳤는데 이 기사를 번역하다 보니 새삼 생각이 떠오르는군요. 과연 이 책에서는 어떤 전망을 했는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2011년 2월 13일 일요일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주의(Mubarakism without Mubarak)

이집트 사태가 전개되는 동안 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신봉자로서 독재자 하나가 물러난 것은 축하할 일인데 이집트의 전망이 썩 밝아보이지 않는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꽤 재미있는 전망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 해 볼까 합니다. 2월 11일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실린 워싱턴 대학과 카이로의 아메리칸 대학 교수 엘리스 골드버그(Ellis Goldberg)의 글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주의(Mubarakism without Mubarak)인데 현재 이집트 군부의 강력한 영향력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현재 이집트 군부는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그리고 통합된 존재이므로 향후 사태의 전개에 가장 핵심적인 플레이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씌여진 글 입니다. 읽어보고 꽤 재미있어서 번역을 해 봤는데 다소 심한 날림번역이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가 시위대의 요구에 굴복하고 카이로를 떠나면서 권좌에서 물러났다. 무바라크는 어제 전 세계에 방송된 연설에서 퇴진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되지도 않아 물러나게 됐다. 그날 오전 최고군사위원회는 ‘첫 번째 공식발표’인 성명에서 군부가 무바라크의 평화적인 퇴진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권력은 군대의 손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동은 이집트의 2월 항쟁에서 군부가 (시민의) 지지를 받는 방관자로 부터 (사태를) 좌우하는 세력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간 마지막 단계였다. 항쟁이 처음 일어나기 시작한 1월 25일 부터 군부는 무한한 자제력을 발휘하여 (항쟁의 중심지였던) 타흐리르 광장 주변을 콘크리트 장애물, 커다란 철판, 그리고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물리적인 통제를 확대하고 심화시켰다. 군부의 늘어나는 행동범위는 그 자체적으로 점진적인 쿠데타(slow-motion coup)의 다음 단계가 되었다. 군부가 간접적인 통치에서 직접적인 통치로 돌아가는 것 이었고 그 기초는 이미 1952년에 마련된 것 이었다.

서방 세계는 이 위기로 인해 이집트에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빨리 도입되면서 무슬림 형제단이 권력을 잡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집트의 정권에서 부패한 민간 정치인들만 탈락하고 군부만이 유일한 행위자로 남게 되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난밤 무바라크에게서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신임 부통령 오마르 슐레이만(Omar Suleiman) 장군은 2월 9일에 이집트 국민들에게 현재의 정권과 군부의 쿠데타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으며 그는 이집트가 인질로 잡혀있다는 분위기만 심화시켰을 뿐이다.

무바라크 통치 하의 이집트의 정치 체제는 가말 압델 나세르와 자유 장교단에게 권력을 부여한 1952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 성립된 공화체제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 이었다. 나세르와 장교단은 이집트의 입헌 군주정을 철폐하고 사실상 한 세대 전체의 민간 정치인과 법조인들을 공직에서 몰아냈다. 나세르와 장교단은 충성적인 군부 인맥으로 그들만의 공화체제를 만들었다. 군부가 기술관료적 통치를 하면서 이집트의 법률가들에게 새 헌법을 만들게 한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법률가들이 작성한 안은 강력한 의회와 제한적인 대통령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었고 장교단은 이것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라고 여겼다. 군부는 이것을 폐기해 버리고 대통령에게 막항한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을 작성했다.

이러한 조치는 군부에게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1953년 이래로 이집트의 대통령은 모두 군대의 장교 출신들이 독점했다. 두 세대에 걸쳐 군부는 대통령을 통해 이집트의 자원 대부분을 국가 안보와 궁극적으로 재앙이 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필요한 군비 조달에 쏟아넣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정부가 경제를 무시한 것과 합쳐저 이집트를 파산 상태로 몰아넣었다. 1975년과 1977년 사이에 이집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시민 봉기가 일어났다. 군부는 통치권을 회복하기 위해 관심사를 전쟁에서 경제발전으로 돌렸다. 군부는 점진적으로 정치에 대한 직접 통제를 완화했으며 권력을 경찰과 이집트 집권당의 다른 강력한 지지세력- 정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이익을 얻은 소규모의 민간 경제인 집단 등에게 양도했다.

무바라크는 1990년대에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내전을 전개했고 군대의 역할은 더 변화했다. 정부가 국내의 경찰력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군대의 규모와 중요성이 감소했다. 그 동안 경찰과 내무부는 군대와 국방부를 대신해 정권의 초석으로 들어 앉았다. 한편, 최근 굴욕을 겪고 있는 철강부호이자 전 집권당 당수 아흐메드 에즈(Ahmed Ezz)와 같이 이집트를 먹여살려온 엘리트 사업가 집단은 더욱 더 강력해 졌다. 무바라크는 이들에게 집권당인 국가민주당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이들은 자신들에게 더 큰 부를 안겨줄 수 있도록  이집트 경제를 국제 무역에 개방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장교단도 경제적인 이익을 통해 일정 수준의 보상을 받았다. 1990년대 동안 군대는 경제에 대한 개입을 확대했다. 이 시기에 군부가 소유한 기업체는 이집트 전체 경제의 5~20퍼센트를 차지했으며 마찬가지로 군 장교들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특권과 같이 다양한 이익을 얻었다.

현재 군대는 질서를 유지하는 세력이자 경쟁하는 적대 세력들 간의 중립적인 중재자로 행세하고 있지만 군부 스스로도 지켜야 할 많은 이권이 있으며 사실은 중립적이지도 않다. 현재 존속하고 있는 이집트 국가의 기본적인 구조는 군부에 이득을 주고 있다. 시위대의 실질적인 요구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긴급 사태를 종료하고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며 국가의 개입 없이 정당을 결성할 수 있는 자유를 허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모두에게 이집트의 사회 정치 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집트를 대통령제에서 자유 선거를 통해 선출한 다수파가 (지금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를 선출하는 내각제로 개편하는 것 처럼 헌법과 기타 법률의 개정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군부가 1952년 만들어 지금까지 유지해온 권력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자유롭게 선출된 의회와 새로 구성된 정부는 군부가 자신들의 영역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공개된 선거는 새로운 기업 엘리트들이 의회에서 권력을 잡고 군부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제한하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이집트의 거의 모든 가정에 취사용 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관에서 부터 의류, 식품, 그리고 호텔에 이르는 군부의 방대한 경제적 자산들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군부는 언제나 이집트가 질서정연하고 위계질서에 따라 통치되는 것을 선호해 왔다. 군부는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설사 장교단이 1950년대의 선배들 보다는 논쟁에 대해 보다 관용적이라 할 지라도 대통령이 내각의 장관들을 임명하는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정치 참여의 대상을 군대에서 생애를 보낸 사람들로 제한하는 것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군부의 지도자들은 체제의 변화를 추구하는 대신 상징적인 제스처를 통해 대중들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군부 엘리트들이 대부분의 부패 기업가와 이들의 정부내 협력자들을 공금 및 공공재산 남용의 혐의로 조사할 것이 확실하다. 동시에 군부 엘리트들은 전직 내무장관을 위기 기간 중 시위대를 고의적으로 살해한 혐의로 수사할 수도 있다.

만약 군부가 통치권을 계속 행사하게 된다면 두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첫 번째는 군부에 강력한 연계를 가지고 있는 슐레이만으로 그는 모든 반대 세력과의 협상에서 중심에 서 있으며 거의 끊임없이 텔레비전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연하게도 슐레이만은 대통령제를 개혁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슐레이만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협상이 선거를 다루고 있는 헌법의 세 개 조항만을 바꾸는 것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이집트의 국방부장관 후세인 탄타위(Hussein Tantawi) 원수로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아니다. 탄타위는 지탄 받고 있는 경찰과 달리 군대는 이집트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낸 배후였다. 사실 군대는 시위대와 그들을 공격한 폭력배 양쪽 모두에게 발포하지 않았고 심지어 시위대는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집트 군이 시위대 일부와 인권 단체 회원들을 체포한 사례를 들었다.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에 따르면 일부 군 장교들은 무바라크가 자신은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했을 때 이를 지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슐레이만은 개혁을 제한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탄타위가 있는 한 군대는 나머지 반대 세력과 체제 이행에 대해 협상하는 동안 최소한 중립을 지키려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존속해온, 막대한 경제적 이권을 정치권과 결탁한 한줌에 불과한 경제인들에게 넘겨 주는 등 부패는 심화되고 무능했던 무바라크 정권은 무너졌다. 군부의 권한과 특권을  축소하여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보다 열린 정체 체제와 책임감을 가진 정부가 등장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리고 군부도 과도기의 권력으로서 군부가 통치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집트 군부는 1950년대와 달리 훨씬 전문적이고 잘 교육 받았으며 많은 장교들이 민주주의의 이익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점진적인 쿠데타가 최고조에 달해 과거의 엄격한 군부 권위주의가 복구되는 것이 보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