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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31일 수요일

★기적의☆ 인류학(?!)


제국주의 시대의 절정기에 있었던 이탈리아-이디오피아 전쟁과 러일전쟁은 백인의 인종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을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먼저 있었던 이탈리아-이디오피아 전쟁은 아프리카 전역이 식민지로 전락하던 무렵 유색인종이 처음으로 유럽의 '백인' 군대를 격파했다는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안겼습니다. 백인 군대가 '검둥이'들에게 박살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미국에 전해지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아두와 전투의 소식이 미국 전역을 뒤흔들기 하루 전날, 애틀랜타 컨스티튜션(Atlanta Constitution)이라는 신문은 아프리카로의 귀환 운동을 전개하던 300명의 흑인이 3월 1일 조지아주의 사바나를 출발했다는 소식을 조롱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아프리카는 모두 유럽인에 의해 분할될 것이기에 아프리카인들은 주권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남부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3월 1일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주장을 전개하는게 이치에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3월 1일 이후로는 그러한 신념이 흔들리게 되었다.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의 논조는 짐 크로우(Jim Crow) 법안과 유럽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던 당대의 기류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1896년의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에서 미국 대법원은 짐 크로우 법안의 기저에 깔린 "분리하되 평등하다"는 주장이 미국 헌법에 합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애틀란타에서 발행되던 신문들은 이른바 '대서양을 아우르는 지배권'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즉 아프리카의 미래는 유럽의 통치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 또한 유럽계 미국인의 통치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미국에 남건 아프리카로 돌아가건 간에 유럽인에 의해 지배받는 암울한 미래만 있을 뿐이라고 전망했다. 즉 짐 크로우 법안은 제국주의의 절정기에 팽배한 인종적 우월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제국주의는 짐 크로우 법안의 친척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두와 전투는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의 기사에서 아프리카인의 열등성을 주장할 수 있도록 했던 신념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최소한 전투의 소식이 알려진 직후에는 말이다. 3월 4일의 머릿기사는 이디오피아인들이 3천명의 이탈리아군을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탈리아군 지휘관 오레스테 바라티에리(Oreste Baratieri)가 패배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오보도 실렸다. 이후에 실린 기사들도 아프리카에 대한 엄청난 무지와 심리적인 충격 때문에 오류 투성이었다. "이탈리아의 불운"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이디오피아가 아프리카 남부에 있다고 썼으며, 이탈리아가 실패한 것이 이디오피아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라고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은 이디오피아인들이 검둥이가 맞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아비시니아인에 대한 의문"이라는 기사에서는 아프리카인의 인종적 특성에 대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독자들에게 이디오피아인들의 특성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라는 제언을 했다. 이 기사는 이디오피아인에게서는 "호텐토트 인종에게서 나타나는 평발과 펑퍼짐한 코"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콩고에 사는 아프리카인들과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실 이디오피아인들은 완벽한 흑인이 아니라 "페니키아인을 조상으로 두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시각은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에 실린 삽화들에도 반영됐다. 이 신문에 처음 실린 메넬리크의 초상화는 그를 1895년에 즉위한 러시아의 짜르 니콜라이 2세와 놀라우리 만치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아도와 전투에서 이디오피아인들이 거둔 승리의 규모가 자세히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남부의 언론들만 메넬리크가 백인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뉴욕 월드(New York World)지도 기사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으며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도 다음날 뉴욕 월드의 기사를 전제했다. 미국 남부와 중서부, 그리고 대서양 지역의 주요 언론들은 모두 이디오피아인이 백인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 월드는 "아비시니아인의 대부분은 코카서스 인종이다"라고 쓰고 여기에 덧붙여 "이디오피아인들은 외모가 수려하고 멋지다"고 주장했다.
Raymond Jonas, The Battle of Adwa: African Victory in the Age of Empire, (2011, Harvard University Press), pp.268~269.

2011년 4월 16일 토요일

제3세계에 대한 어떤 관점

“리비아/예멘 지도자 인물평”을 읽고나니 생각이 하나 떠올라서...

최근 수개월간 중동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엄청난 국제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비교적 국제문제에 무관심한 한국에서도 최근의 중동은 큰 관심을 끌었지요. 정치와는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중동 문제가 다뤄진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의 대지진 등 굵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지금은 중동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들길 했습니다만.

하지만 좀 아쉬운 점이라면 한국 내에서는 갑작스럽게 관심이 끓어오른 것에 비해서 흥미로운 글이 부족했다는 것 입니다. 주류언론의 기사들은 정보 전달이 중심이었지만 한국의 언론들이 일반적으로 국제문제, 특히 한반도 주변국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취약한 편이었으니 그다지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꽤 흥미로웠던 것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올라온 일반인들의 글이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글이 중동 사태를 단순한 독재세력vs민주화세력의 대결로 보고 있었고 특히 한국의 경험을 단순하게 대입시켜 보고 있었던 것 입니다.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한 고찰없이 단순한 선악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이 좀 답답했는데 진보를 자처하는 몇몇 언론들도 유사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관점은 리비아 사태와 뒤이은 서구의 군사개입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한 인터넷 언론의 다음 기사가 이런 관점을 잘 보여주는 것 같군요.


사실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이 제3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런 구제불능의 발상은 하루이틀 된 것이 아니라서 더 재미있습니다. 1965년에 씌여진 다음 글을 보시지요.

1965년 4월 반둥 회의의 기조연설을 통해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은 “우리 인도네시아인이나 그 밖의 아시아·아프리카 제국(諸國)의 형제국들이 겪어온 고전적 형태의 것으로만 식민주의를 생말자. 식민주의는 이 밖에도 일국내의 소수의 외래적 집단에 의한 경제적 지적 물질적 지배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현대적 의상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식민주의는 능숙한 솜씨로 과감히 행동을 하는 적이며 여러가지 가장을 하고 나타난다. 식민주의는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던간에 이 지구상에서 뿌리를 뽑아야 할 악이다.” 이와 같은 수카르노의 기조연설 내용은 전후 후진국 개발원조라는 휴머니즘 탈을 쓰고 지배복종의 관계를 수립한 신식 제패형태, 즉 유선형의 제국주의적 신식민주의의 출현을 단적으로 말하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신형태의 제국주의와 대항하여 투쟁을 아끼지 않고 있는 신생 민족국가의 움직임은 아시아·아프리카를 비롯한 전세계의 후진지역 전반에 긍(亘)하여 확대되고 있으며 이 들의 횡적인 연대와 단결의 힘은 금일 세계사 상황의 주요한 새로운 원동력으로  등장함으로써 안으로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사회정의의 실현과 완전한 정치적 경제적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밖으로는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신생제국이 달성한 독립의 과정과 형태는 일정하지 않고 각양각색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은 주의깊게 관찰해야 할 점이다.

朴哲漢,「新生民族國家의 基本動向」,『靑脈』8호(1965. 5), 130-131쪽

저 글은 기본적으로 서구는 제국주의적인 惡이고 제3세계는 평화를 애호하는 善이라는 관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1965년은 한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불과 20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한국은 여전히 빈곤한 후진국이었던 때 입니다. 한일국교정상화가 가시화 되어 일본의 새로운 침략을 우려하던 때였으니 진보적 지식인들이 제3세계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이 21세기에도 저것과 다름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우울한 일이지요. 인용문에서 제국주의 반대를 소리높여 외친 인도네시아만 하더라도 동티모르에서 똑같이 ‘제국주의적인’ 행태를 보였던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서방세계의 선진국들이 현실정치적인 바탕에서 움직이듯 제3세계의 모든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 이죠. 뭐, 제가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이곳을 들러주시는 분들이라면 아주 잘 알고 계실 것 입니다. 하지만 인용문이 씌여진 지 40년이 훨씬 넘었건만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별로 발전한게 없어 보입니다. 정말 우울한 일이죠.

진보적 지식인들의 서구와 제3세계에 대한 이분법적인 인식은 앞으로도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한국의 식민지 경험과 강력한 민족주의가 가장 큰 원인일 것 입니다. 한국의 역사적인 경험은 마찬가지로 식민지 경험을 가진 제3세계에 대한 객관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입니다. 1960년대의 지식인들이 그러했던 것 처럼 식민지 경험이라는 공통요소는 제3세계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게 만듭니다. 21세기의 한국은 더 이상 제3세계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국가가 되었지만 과거의 경험은 너무나 깊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2009년 8월 13일 목요일

The Ideological Origins of Nazi Imperialism, 그리고 잡담 약간

Woodruff D. Smith의 The Ideological Origins of Nazi Imperialism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읽은지 꽤 돼서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어수선해서 그런지 한 번 더 읽었지만 읽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최근의 ‘간도떡밥’ 때문인지 재미있게 읽히긴 하더군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인 9장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입니다. 저자인 Smith 또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제국주의적 정서’가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1920년대에 제국주의적 팽창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는 1926년에 출간된 그림(Hans Grimm)의 소설 “Volk ohne Raum”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유사한 종류의 소설 중 성공한 작품으로 1926년부터 1935년까지 315,000부가 팔렸다고 하는군요.
이 소설의 저자인 그림은 유럽 외부의 식민지 획득을 옹호하고 Lebensraum을 동유럽에서 찾는 나치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팽창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Lebensraum 사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며 정치적 보수주의를 확신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게 읽힌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얼마 전 튀어나온 간도 반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간도 반환 문제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 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주기적으로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같은 언론사가 간도 회복 캠페인 같은 짓을 앞장서서 하기도 했지요. 2009년이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간도 떡밥은 미래에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런 대책 없는 망상을 무책임하게 유포하고 있는 대중매체들입니다. 한국이야 독일 같은 강대국이 아니니 극우 정당이 집권해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개념 없는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판을 치는 것은 단순히 웃어 넘길 일은 아닙니다.

독도와 같이 민감한 문제가 튀어 나올 때 마다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호들갑에서 볼 수 있듯 민족주의적인 정서는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입니다. 그리도 한반도 균형자론 같은 외교적 망신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싸구려 민족주의를 팔어먹으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것은 어떻게든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끼칠 것 입니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나치 독일처럼 파국적으로 폭주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2008년 6월 4일 수요일

우리 제국주의자 맞아!

미국 대사가 한국인의 낮은 과학상식에 대해 질타한 언론보도를 보노라니 60년전 한 미국 장군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나는 우리가 미국에서 이룩한 높은 생활 수준을 지속해 나가길 원하는 제국주의자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미국이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들에게 이익을 주어 왔다고 굳게 믿는 바이다. 높은 생활수준을 가진 나라들은 모두 제국주의국가였다. 우리 미국의 제국주의는 결코 나쁜 제국주의가 아니다.

I'm enough of an imperialist to want to preserve the standards of living we've achieved in the U.S. and I firmly believe that we have benefited the nations into which we have extended our influence. All nations with high standard of living have been imperialist. Our imperialism hasn't been a bad imperialism

- Lt. Gen. John R. Hodge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정말 대인배들입니다.

2008년 5월 17일 토요일

상상속의 베트남인

지난 3월에 sonnet 대인께서 베트남전이 전하는 이라크의 교훈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써 주셨습니다. 좀 뒷북이긴 한데 저는 특히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불행하고 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은 진짜 이라크가 아니었다. … 잘못된 이라크 속에 뛰어든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서도, 미국인들은 진짜 이라크인들은 우리 꿈 속의 이라크인들처럼 행동해야 하며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우겨댔다. 그 결과는 좌절과 낙담, 그리고 이라크인들의 '광기'에 대한 분노였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태도는 지난 60년간 별로 변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대응력 : 바오 다이(Bao Dai)의 지지세력들 중 상당수는 어떠한 형태의 제국주의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정부는 공산주의에 저항하고 있으며 미국의 군사 및 경제원조를 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 국민의 대부분은 현재 외부의 위협(중국)에 대항하는 것 보다는 프랑스의 간섭을 제거하는데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베트남 국민 대부분이 공산주의의 진정한 실체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만족할 만한 정치적 해결이 이루어 진다면 베트남인 대부분은 중국을 혐오하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의 압박에 대항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50년 3월 8일, 미국무부 Office of Intelligence Research Report No.5178-2

결과는 다들 잘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