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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8일 목요일

재활용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I hope that it can be impressed upon the Department that here we are not dealing with wealthy U.S. educated Koreans, but with early [sic], poorly trained, and poorly educated Orientals strongly affected by 40 years of Jap control, who stubbornly and fanatically hold to what they like and dislike, who are definitely influenced by direct propaganda and with whom it is almost impossible to reason.

- Lt. Gen. John R. Hodge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46 Vol.8,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4, p.630

세월이 흐르고 교육수준은 높아졌건만 근본적인 바탕은 변하지 않았다는 듯한 느낌.

참 난감하죠.

쩝;;;

2009년 5월 10일 일요일

Mission Accomplished???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트루먼 대통령은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다음과 같은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백악관, 워싱턴
1948년 8월 15일.

친애하는 하지 장군.

남한에 합법적 정부를 건설함으로서 장군에게 부여된 어려운 임무가 완결되었습니다. 귀관의 임무는 크나큰 성공으로서 완료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정권이 한국인들에게 이양된 것은 우리 정부가 그렇듯 귀관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할 것이며 귀관은 박해 받는 민족이 자유를 되찾는데 크나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귀관은 미합중국 군대를 지휘해 한국을 잔인무도한 지배자들의 폭정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장군이 담당한 이 불행한 나라의 국민들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자유 선거를 치렀습니다. 해방된 국민들이 선출한 대표에게 부여한 그들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은 매우 막중합니다.

장군은 자신의 수완, 솔선, 외교적 재능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제들을 극복했으며 미국과 한국 국민은 장군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 입니다.

해리 트루먼

********


The White House, Washington,
August 15, 1948

My dear General Hodge

The Achivement of constitutional government in southern Korea completes the difficult task that was assigned to you. Your mission has been accomplished with outstanding success.

As the government of this area is turned over to the Korean people, it must be very satisfying to you, as it is to our Government, to know that you have been largely instrumental in restoring freedom to a persecuted nation.

You led United Stataes troops to liberate Korea form the tyranny of a ruthless conqueror. The people of your area of this troubled country have held a free election in which a remarkably high percentage of the qualified voters participated. How the responsibility for their own destiny rests with the elected representatives of a free people.

By your skill, initiative and diplomacy you have overcome seemingly insurmountable obstacles and you have earned the gratitude of the people, both of the United States and of Korea.

Very sincerely yours.

Harry Truman

August 17, 1948, Press Release on Replacement of Commanding General, US Armed Forces in Korea, RG 319 Army Staff Plans & Operations Division Decimal File 1946-48 091.Korea TS Sec. IV & V Box 22 (Folder #2)

그러나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

2009년 2월 6일 금요일

주한미군의 성병 발병율 - 1948년의 통계에 대해서

필요한 자료가 있어서 하루 종일 하지(John R. Hodge) 중장 문서철을 뒤졌는데 쓸만한 것을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허탕을 치면 정말 허무하고 우울해지죠;;;;;

그런데 자료를 뒤지다 보니 1949년에 작성된 주한미군 의무감실의 문서가 한 건 있었습니다. 1948년도의 의무활동 결산 보고서인데 잠깐 쉬어가는 셈 치고 보고서를 훑어 보다 보니 1948년도 성병 발병율에 대한 통계가 있더군요. 이 통계를 보니 작년에 John Willoughby의 논문을 언급하면서 인용한 표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Willoughby가 인용한 미 제3군의 성병 발병율 통계에 따르면 유색인종이 백인에 비해 성병에 걸리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하지요. 주한미군은 독일주둔 미군과 비교했을때 어떠했을까 궁금해 지더군요. 호기심에 해당 통계를 복사해서 비교해 보니 주한미군의 경우도 백인에 비해 유색인종의 성병 발병율이 높게 나타나더군요.

해당 보고서에 실린 1948년도 주한미군의 성병 발병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록 독일 주둔 미군과 비교하면 낮지만 유색인종이 백인 보다 두 배 정도 높은 성병 발병율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환자 중 82%에 달하는 2924명이 임질(Gonorrhea)에 감염되었고 10%인 360명이 매독(Syphilis) 환자입니다. 나머지 8%인 284명은 기타 성병으로 분류되어있고 구체적인 병명은 기록되어 있지 않군요.

이 문서 외에 역시 하지 중장 문서군에 들어있는 13번 Box의 문서철 두건은 모두 1947년부터 1948년 기간의 주한미군 의무관계 문건들인데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70% 가까이가 성병관계(;;;;) 기록이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문서철은 모두 성병관계 기록이더군요. 한번 구체적으로 읽어 볼까 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덮었습니다. 이걸 일일이 분석해 본다면 아주 흥미로운 글을 한 편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당장 필요한 문건은 아니라서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잡담 1. 그러고 보니 빨리 스캐너를 하나 사야 겠습니다. 표 만드는 것 보다 그냥 스캔하는게 더 편할 것 같군요.

잡담 2. 그런데 역시 골치 아픈 물건들은 통신부호가 가득 섞인 전문들이죠. 어디 까지가 통신부호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2008년 8월 21일 목요일

이청천 장군의 원대한 "建軍" 구상


지난 글에서는 이박사의 허풍 실력을 다뤘습니다. 이미 제 블로그에서는 이박사에 대한 괴이한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몇 번 다룬바 있습니다. 하나 같이 상식을 벗어난 희한한 이야기들이다 보니 반응도 제법 좋더군요.


그런데 40년대 후반의 조선은 매우 어수선한 곳 이었던지라 이박사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인물은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중경 임정의 광복군 사령관 이청천(지청천) 장군 되시겠습니다.

1947년 9월에 이청천은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한국 정부 수립 이후의 국군 창설에 대해 자신의 구상을 담은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 서한은 조금 긴 편인데 주한미군 사령부 정보참모부의 주간보고서에 실린 덕에 오늘날 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청천은 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극동 지역에서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대동청년단을 주축으로 30만명 규모의 한국군을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차피 구상이니 병력 규모가 좀 많은 것은 봐 줄 만 합니다.

표1. 이청천이 주한미군정에 제안한 미래의 한국군 규모

보병연대
차량화연대
항공연대
부대 숫자
15
2
1
장교
10,200
1,200
1,560
부사관/사병
240,000
30,000
10,200
총계
250,200
31,200
11,760
[표 출처 : “Letter from General Lee ChawngChun to General Hodge”(1947. 9. 18), 『在朝鮮 미군 사령부 주간보고서 – 4(G-2 Weekly Summary, HQ. USAFIK)』, 일월서각, 1986, 87쪽]

그런데 중요한 것은 편지에 포함된 이 30만 규모 한국군에 필요한 장비 목록입니다. 이청천이 제시한 30만 규모 한국군에 필요한 군사장비의 수량은 대략 이랬다고 합니다.

표2. 이청천이 주한미군정에 제안한 미래의 한국군 장비 내역

보병연대
차량화연대
항공연대
소총
173,000
15,000
0
자동소총
58,000
1,000
0
권총
62,500
0
3,500
경기관총
1,700
950
0
중기관총
2,000
200
0
12.7mm 기관총
1,150
130
0
60mm 박격포
1,100
80
0
81mm 박격포
550
50
0
57mm 대전차포
400
130
0
75mm 대전차포
130
20
0
75mm 야포
0
40
0
105mm 야포
420
100
0
155mm 야포
210
30
0
경전차
1,600
220
0
중형전차
270
40
0
차량
30,000
6,000
6,000
정찰기/연락기
60
10
200
전투기
0
0
380
공격기
0
0
230
폭격기
0
0
140
[표 출처 : “Letter from General Lee ChawngChun to General Hodge”(1947. 9. 18), 『在朝鮮 미군 사령부 주간보고서 – 4(G-2 Weekly Summary, HQ. USAFIK)』, 일월서각, 1986, 87쪽
]

다른 것은 둘째치고 30만 규모의 군대에 전차는 2,000대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게다가 공군력의 규모도 장난이 아니지요. 그리고 군 편제도 매우 요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보병연대와 차량화연대, 그리고 항공연대의 편제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름만 연대고 실제로는 사단 급 편제입니다. 항공연대의 규모도 굉장히 커서 1개 연대에 저 많은 항공기를 몰아넣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번역상의 실수는 아닌 것 같고;;;;; 일단 저런 요청을 하면 미국이 순순히 저 막대한 양의 장비를 원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거창한 편지를 보낸건지 궁금하더군요.

이청천이 무슨 생각에서 저런 거창한 제안을 한 것인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이청천은 정규적인 군사경력이 짧았기 때문에 국가정책 단위의 군사적 식견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저런 무리한 발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강대국의 위협이라는 맥락을 고려한다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 예전에 한번 언급했었던 상해 임시정부의 군사편제도 이것과 비슷한 어딘가 엉성한 면을 보여주고 있죠. 아무래도 독립운동한 양반들은 군사적 재능은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2008년 6월 4일 수요일

우리 제국주의자 맞아!

미국 대사가 한국인의 낮은 과학상식에 대해 질타한 언론보도를 보노라니 60년전 한 미국 장군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나는 우리가 미국에서 이룩한 높은 생활 수준을 지속해 나가길 원하는 제국주의자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미국이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들에게 이익을 주어 왔다고 굳게 믿는 바이다. 높은 생활수준을 가진 나라들은 모두 제국주의국가였다. 우리 미국의 제국주의는 결코 나쁜 제국주의가 아니다.

I'm enough of an imperialist to want to preserve the standards of living we've achieved in the U.S. and I firmly believe that we have benefited the nations into which we have extended our influence. All nations with high standard of living have been imperialist. Our imperialism hasn't been a bad imperialism

- Lt. Gen. John R. Hodge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정말 대인배들입니다.

2008년 5월 27일 화요일

위대한 기업가 정신

굿펠로우(Preston Goodfellow)와 스태거(John Stagger)는 1949년 10월 남한에 (자신들의 사업을 위한) “전진기지”를 세우기 위해서 이승만과 의논했으며 두 달 뒤 2차대전 이후 남한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 무역 사절단을 조직했다. 1950년 2월에 그는 조선은행 총재인 최순주(崔淳周)의 미국 방문을 계획했으며 그 후 몇 달간 최순주에게 자신이 구상한 한-미 상호교역에 대한 계획을 설명했다. 얼마 뒤(1950년 4월) 최순주는 대한민국의 재무부장관이 되었다. 1950년 4월 굿펠로우는 통신부문 사업 계약의 일환으로 RCA 소속의 기술자 한 명을 서울로 불러들였다. 1950년 12월 굿펠로우는 잿더미로 변한 서울에서 그의 비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철을 대량으로 매입하겠다는 고철상을 찾아 보도록 해, (중략) 한국에는 고철이 넘쳐나잖아.”

Bruce Cumings,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II : The Roaring of the Cataract 1947-1950』,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 p.136

미국인들의 냉철함은 종종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데 위에서 인용한 글도 그런 경우라 하겠습니다. 과연, 정말로 위대한 기업가 정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굿펠로우는 미군정 당시 육군대령의 계급으로 하지 중장의 고문이었으며 동시에 이승만의 개인 고문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