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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0일 수요일

백선엽 회고록의 숙군 당시 박정희 구명에 관한 서술

백선엽의 회고록은 여러 차례 출간된 바 있습니다. 백선엽 회고록의 사료적인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창군 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 백선엽의 회고는 내용이 풍부한데다 백선엽의 지위 때문에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회고록이 여러 차례 나오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서술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숙군당시 체포된 박정희가 구제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는 2009년 시대정신에서 간행한 『군과 나』와 2012년 책밭에서 간행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에 실린 내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한편 숙군 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된 군인 중 유일하게 구제된 경우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박정희 소령이었다. 방첩대 수사반은 남로당 군사책 이재복李在福이 육군사관학교에 조직을 침투시켜 일부 중대장을 통해 생도들까지 좌익 활동에 가담시킨 사실을 포착했다. 이 수사에서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체포된 사람이 육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었고, 당시 육본 작전교육국 과장이던 박 소령이었다.

숙군 1단계 작업이 완결될 즈음인 1949년 초 어느 날, 방첩대 김안일 소령(준장 예편ㆍ육사)이 나에게 “박 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말이 있다고 간청하고 있으니 면담을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박 소령이 조사 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 조직을 수사하는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실 사관학교 등 군내 좌익 조직 수사는 최초 단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었다.

나는 면담을 승낙했다. 당시 내 사무실은 국방부와 방첩대 두 곳에 있었다. 내가 박 소령을 만난 곳은 명동 구 증권거래소 건물 3층 정보국장실이었다. 박 소령은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한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작업복 차림의 그는 초췌해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태도는 전혀 비굴하지 않고 시종 의연한 자세였다. 평소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들어 알고 있었으나 어려운 처지에서도 침착한 그의 태도가 일순 나를 감동시켰다. 그래서였을까.

“도와드리지요.”

참으로 무심결에 내 입에서 이런 대답이 흘러나왔다.

약 20분간 면담을 마치고 그를 돌려보냈다. 나는 일단 내 입으로 한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숙군 작업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로버츠 미 군사고문단장도 간여하고 있었다. 나는 정보국 고문관 리드 대위로 하여금 참모총장 고문관 하우스만 대위와 로버츠 준장에게 박 소령 구명에 관해 양해를 구했다. 동시에 육군본부에 재심사를 요청했다. 육본은 참모회의를 거쳐 형집행정지를 내렸고, 박 소령을 불명예 제대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백선엽, 『군과 나』(시대정신, 2010), 416~417쪽.

2012년에 나온 회고록에서 서술하는 내용은 약간 미묘하게 다릅니다.

박정희 소장, 그는 내가 군대 생활을 하면서 자주 머리에 떠올렸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 또한 나와는 함께 근무한 적이 없어 개인적인 관계만을 따지면 특히 걸릴게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순간 숙명처럼 내 앞에 다가온 적이 있다. 아주 결정적인 장면이었으나, 나는 그가 나중에 5ㆍ16을 일으키고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그를 떠올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만큼 그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군인은 아니었다.

그는 1948년 좌익 남로당의 군사책이라는 혐의를 받아 숙군 작업에 걸려들었다. 단심인 군사재판에서 결국 무거운 혐의를 벗지 못해 사형을 판결 받고 말았다. 나는 당시 숙군작업을 모두 지휘하는 입장이었고, 그는 밧줄에 묶인 사형수로서 지금의 명동에 있던 증권거래소 지하 감방에 갇혀 있었다.

나는 이전에 내가 펴낸 회고록에서 이를 자세히 서술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1949년 1월 어느 날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군 생활을 하면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어 그의 얼굴을 나는 기억했다. 그는 수갑을 찬 상태였다. 그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정보국 방첩과 김안일 과장이 그 만남을 주선했다.

나는 숙군을 지휘하는 정보국장이어서 김안일 과장이 마지막으로 그의 동기생인 박정희의 구명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퇴근 무렵 내 사무실에 들어선 박정희 당시 소령은 구명을 위해 내 앞에 섰으나, 분위기는 매우 침착해 보였다. 그는 내가 먼저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권유에도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다소 긴 침묵이 흐른 뒤 그는 “한 번 살려 주십시요...” 라면서 말끝을 흐리다가 눈물을 비치고 말았다. 나는 그 모습이 어딘가 아주 애처로워 보였다. 당시 그의 혐의 자체는 무거웠으나 실제 남로당 군사책으로 활동한 흔적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숙군작업의 진행을 위해 솔직하게 남로당 군사 조직을 조사팀에게 제공해 개전의 여지를 보였다.

나는 그런 내력을 감안해 그의 구명 요청을 들은 뒤 “그럽시다. 한 번 그렇게 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육군 최고 지도부에 그의 감형을 요청했고, 결국 그는 풀려나 목숨을 구했다. 나는 또 군복을 벗게 된 그의 생계를 염려해 정보국 안에 민간인 신분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나는 정보국에 김종필을 비롯한 나중의 5ㆍ16 핵심 멤버를 이룬 육사 8기생 31명을 선발해 정보국에 배치했다. 역사의 우연이라면 큰 우연이다. 나는 꺼져가는 박정희의 생명을 붙잡았고, 결국 육사 8기생까지 선발해 그와 만나게 한 셈이었다.

백선엽,『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책밭, 2012), 124~125쪽.

뭔가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서술입니다. 2012년에 나온 회고록에 실린 내용은 진영에 따라서 아주 재미있게 다룰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군요.

2011년 1월 5일 수요일

창군초기 한국군의 사격군기 문제

번동아제님의 쌍령전투에 대한 글을 읽어보니 당시 조선군의 사격군기 문제가 언급되어 있어 꽤 흥미로웠습니다. 화약무기가 도입된 이후 사격군기는 한 군대의 훈련수준을 평가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잘 훈련된 군대일수록 사격군기가 훌륭해서 함부로 탄약을 낭비하지 않지요. 아무래도 저는 근현대 군사문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창군초기 한국군의 사격군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생각나더군요.

창군초기 한국군도 사격군기 문제가 심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순반란진압, 빨치산토벌, 38선 충돌 등 심각한 상황이 잇달아 발생했으니 탄약 소모가 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여기에 사격훈련도 부족하니 불에 기름을 들이 붓는 격이었던 모양입니다.

1949년 여름 옹진반도에서는 연대급 부대가 동원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탄약 소모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미국군사고문단이 신성모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비망록을 보면 8월의 2차 옹진 반도 전투당시 한국군은 총1,022.276발의 각종 탄약을 사용해서 북한군 69명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북한군 한 명을 사살하는데 14,604발의 탄약을 소비했다는 이야기 입니다.1)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은 육군부 기획작전국장 볼테(Charles Bolte) 소장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한국군은 작전 수행중에 탄약을 황당할 정도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측의 요구대로 보급을 해 준다면 문제만 복잡해 질 뿐입니다. 저는 기본적인 문제, 바로 사격훈련과 사격군기의 결여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헤프게 물자를 소비하는 한국측에게 탄약을 공급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합니다. 또한, 최근 옹진반도 전투에서 적이 입은 인명피해와 우리측이 소비한 탄약에 대한 조사를 보면 적 한명을 사살하는데 14,604발의 탄약을 소비했다는 점도 지적하고자 합니다.

(They burn up ammunition at a fantastic rate in operations, and to supply all their requirements only compounds the problem. I have hit at the basic difficulty - lack of marksmanship training and fire discipline - and if we are to get those problems licked, we must stop giving them ammunition with such a lavish hand. In passing, I should like to point out that in a recent battle on the Ongjin peninsula, a study of enemy casualties and our own ammunition expenditure showed that it took 14,604 rounds of ammunition to produce one casualty.)2)
이런 문제는 미국쪽만 지적한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한국군 참전자들의 증언에 크게 의존한 사사끼 하루다카(左左木春隆)의 저작에도 당시 옹진반도에 투입된 2연대의 전투시 탄약 낭비가 극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3)

이 당시 한국군의 사격군기 문제의 중요성은 전술적인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군사 원조가 제한적인 상태에서 보급문제를 더 악화시켰기 때문입니다.


1) Memorandum to Minister of National Defense(1949. 8. 17), RG 338, KMAG Box8 : Brig. General W.L.Roberts(Personal Correspondence), 1949; Birg. General W.L.Roberts(Meomorandum), 1949
6일 동안의 전투에서 2연대가 소비한 탄약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30구경 소총탄 288,071발
30구경 카빈탄 242,989발
30구경 자동소총탄 158,897발
30구경 기관총탄 223,502발
50구경 기관총탄 51,506발
45구경 권총탄 32,140발
2.36인치 로켓탄 634발
60mm 박격포탄 10,269발
81mm 박격포탄 8,696발
105mm 포탄 5,572발
2) 로버츠가 볼테에게(1949. 8. 19), RG 338, KMAG Box8 : Brig. General W.L.Roberts(Personal Correspondence), 1949; Birg. General W.L.Roberts(Meomorandum), 1949
3) 左左木春隆/姜昶求 編譯, 『韓國戰秘史(上) 建軍과 試鍊』(병학사, 1977), 456~457쪽

2010년 7월 14일 수요일

지금 당장 더 많은 군대를!

 1948년 8월 30일,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이범석은 임시군사고문단장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과 국방부 조직, 국방조직법*을 협의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이 밖에 임시군사고문단 참모장 라이트(W. H. Sterling Wright) 대령, 보스(Voss) 대령, 하우스만(James H. Hausman) 대위와 이범석의 통역(신원미상)이 동석했습니다.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의 문서철에는 8월에 진행된 이범석과의 회의 속기록이 남아있어서 이날 회의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날 논의된 내용 중에서는 국방부와 각군 본부의 조직문제가 핵심사안이었는데 한국측은 규모가 큰 조직을 원했던 반면 미국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전 략 - 헌병병과 관할 문제)

이범석 : 좋습니다. 좋습니다. 해군과 공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국방부 편제에 추가할 겁니까?

로버츠 : 여기서는 육군만을 논의하는 것 입니다. 해군이나 공군은 아닙니다. (국방부 조직도를 보여주며) 라이트 대령이 짠 조직도는 육군만 해당되는 것 입니다.

라이트 : (이범석의 통역에게) 국방부장관께 이것은 국방조직법이며 의회에 상정되어 법안으로 확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십시오. 이것은 상위조직에 대한 문제이며 저것은 하위조직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범석 : 하위조직이라. 알겠소. 대령은 이것이 육군에만 해당된다는 것이군요.

로버츠 : 그렇습니다. 장관님께서 규정을 만드시는 겁니다.

이범석 : 알겠소. 알겠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국방부 참모총장의 아래에 해군과 공군의 참모장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로버츠 : 국방부 참모총장과 육군총참모장은 여기에 있습니다.

라이트 : (로버츠에게?) 한국측에게 이것(국방조직법 초안)을 주기 전에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해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상위조직에 대해 한미간에 합동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입니다. 육군, 해군, 국립경찰, 그리고 공군 총참모장은 이 조직 아래에 두게 될 것 입니다. 오늘 오전에 논의할 것은 육군 문제입니다.

통역관 : 한국에서는 이것을 그냥 참모총장으로 번역합니다. 이것은 총참모장보다 더 높은 직위를 뜻하는 것 입니다.

이범석 : NP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이트 : 국립경찰입니다.

이범석 : 한국에서는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을 총괄하는 단 한명의 참모총장이 있을 뿐 입니다. 채병덕(Mr. Chae) 입니다.

라이트 : 미국에서는 (합참의장을) 한번은 해군이, 다음에는 육군이, 다음에는 공군이 맡는 식 으로 합니다.

로버츠 : 이 조직도에 있는 국방부 참모총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습니다. 합동참모본부입니다. 삼군과 하나의 위원회, 하나의 협의체를 두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국방부 참모총장은 아마도 육군 출신으로 임명될 테니 말입니다. 미국에서 하는 것 처럼 하나의 협의체인 합동참모본부를 두는 것이 더 잘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이범석 : 그 문제는 여기서 논의할 사안이 아닌 것 같소.

로버츠 : 합동참모본부를 법안에 의거해 만들어야 한다면 현재의 초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국방조직법을 만들면 될 것 입니다. 새로운 법안 말입니다.

로버츠(?) : 국립경찰도 국방부 예하에 두는 것 입니까?

이범석 : 아니오. 그건 아니오.

로버츠 : 그렇다면 경찰 부분은 지우고 그 자리에 공군을 넣으면 되겠군요.

이범석 : 3군의 총참모장이 국방부 참모총장(Big C/S)를 보좌할 것이오.

라이트 : (로버츠에게?) 이범석은 국방부장관의 직속으로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를 하나 두려는 모양입니다.
(이범석에게) 그 법안은 무엇입니까? 저희는 이것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 했습니다.

이범석 : 국회에서 만든 법안이오. 헌법 말이오.

로버츠 : 마샬은 육군만을 지휘했습니다. 그는 해군이나 공군까지 통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참모총장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모든 병종을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통제합니다. 하나의 협의체 말입니다.

로버츠 : (통역에게?) 이러다간 하루가 36시간이 되겠군. 국방부 장관에게 말하게.

이범석 : 육군에 대한 구상은 매우 좋습니다. 첫 번째는 강력한 참모총장, 두 번째가 육군과 해군, 공군이오.

로버츠 : 그것은 장관님이나 국방부 차관이 담당할 업무입니다.

이범석 : 유감스럽게도 그게 불가능하오.

라이트 : 저희가 반대하는 이유는 국방부 참모총장은 육군 출신이 될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육군에만 신경을 쓸 겁니다. 해군에 대해서는 지랄같겠죠.(to hell with the navy)

로버츠 : 미국에서는 매우 좋은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삼군의 참모총장이 한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를 명확하게 처리하는 것 입니다.

이범석 : 육군 출신은 참모총장이 되어도 육군 위주로 생각할 것이오. 나도 국방부장관인데 육군 문제만을 생각하고 있소.

로버츠 : 그런데 그는 공군 출신입니다.(누굴 지칭하는지 불명)

이범석 : 국방부 장관은 삼군 모두를 신경써야 하는 직위요. 국방부 참모총장도 삼군 모두를 신경써야 하오. 넓은 아량과 지혜를 갖춘 좋은 인물이어야 하오.

라이트 : 국방부 참모총장은 어디 출신입니까? 육군입니까, 해군 아니면 민간인 출신입니까?

이범석 : 아직은 국방부 참모총장을 어디 출신으로 할 지 말할 수 없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육군 장교들 말고는 좋은 사람을 구할 수 없소.

라이트 : 그게 문제입니다.

이범석 : 그래서 육군 출신으로 임명하게 될 것 같소. 그렇지만 국방부 참모총장 아래의 각군 총참모장은 해군, 육군 그리고 공군 출신이 될 것이오. 국방부 참모총장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요.
인도에서 전문을 하나 받았소. 해군 장교인데 매우 유능한 인물이오.***

하우스만 : 아마 영국해군 출신이었지오? 아닙니까?

이범석 : 그렇소 영국 해군 출신이지. 선장이오. 장군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오. 56살인가 54살인가 할 것이오.

라이트 : 그가 해군총참모장이 되는 것 입니까? 허?

로버츠 : 그를 국방부 참모총장에 임명해도 되겠군요.

이범석 : 유감스럽게도 그는 육군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오. 해군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오.
내 생각에는 아마 1년 정도의 협력으로는 육군 업무 만을 다룰 수 밖에 없을 것 같소. 두번째 단계에서는,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다면 1년이나 2년 정도 미국의 협력으로 해군 업무를 조금 추진할 수 있을 것이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세가지 구상이 있소. 4년 내지 5, 6년이 지난 뒤 미국 대통령이나 맥아더 장군과 회견을 하는 것이오. 이 문제는 한국의 고위 정치, 고위급 문제이오(? 통역의 문제로 미국측이 이해를 못함) 만약 대한민국이 전시에 미국과 협력하지 못한다면 나는 물러나야 하고 여기서 죽어야 할 게요. 우리 나라는 민족적 민주주의 국가요. 우리는 미국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오.

로버츠 : 설사 지금 올바르게 하지 못하더라도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범석 :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 참모총장 세명 말이오?

-라이트 대령과 로버츠 준장은 합동참모본부의 업무, 임무, 기타 제반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이범석 : 귀측의 구상이 마음에 들지만 나는 권한이 없소.

하우스만 : (국방부) 참모총장을 민간인으로 해도 되겠지요.

라이트 : 아냐. 이범석 장관에게 물어봤지만 아직까지는 모르겠다잖아.

로버츠 : 나는 삼군을 모두 총괄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인재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하우스만 : 우리 미군에서도 찾을 순 없을 겁니다.

이범석 : 만약 참모총장이 무능하다면 교체할 수는 있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로버츠 : (통역에게) 이범석 장관에게 미국에서도 그런 인재를 찾을 순 없을 거라고 말하게.

이범석 :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로버츠 : 왜 국방부차관이 그 업무를 담당할 수 없습니까? 한국 내에서 유능한 인물을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국방부차관을 국방부 참모총장으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범석 : 큰 문제가 있소. 한 사람이 두개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오.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로버츠 : 그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그 업무를 다룰 수 있을 겁니다.

이범석 : 장군과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정치인들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에는 많은 문제가 있소. 정치인들은 국방부를 비난할 것이고 아마도 엉망이 될 것이오.

로버츠 : 국방부 조직을 우리가 제안한 대로 하고 한 두달 정도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도록 하지요. 천천히 진행하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조직을 개편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범석 : 만약 국방부 참모총장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헌법에서 국방부 참모총장을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오.

라이트 : 우리는 국방에 대한 부분을 언급한 대한민국 헌법의 영문 번역본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역시 유능한 번역가가 담당해야 겠지요...

이범석 : 아마도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개념은  만주국군, 소련군 또는 일본군 등과 비슷한 것 같소.

로버츠 : 명칭은 무엇으로 합니까? 우리는 이 참모총장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범석 : 영어로는 Chief of Stafft이오. 한국어로는 다르오.

라이트 : 이 직위를 국군 참모총장으로 불러도 되겠지요. 그리고 한국어로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단어로 부르면 될 겁니다.

<이 단어의 번역을 두고 토의가 이어졌는데 내가[속기록 기록자] 듣기로는 COMO CHONG JON 이었다. CHONG은 모든 것을 총괄한다는 뜻으로 로버츠 준장이 제안한 supreme에 해당된다>

로버츠 :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Supreme C/S로 부르기로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누굴 임명합니까? 어떤 사람을 임명합니까?

이범석 : 대통령 각하께 여쭤보겠소. 만약 쓸만한 사람이 아니면 대통령 각하께 다른 사람을 제안해 보겠소. 전문가들 몇몇에게 문의해 볼 수도 있겠고. 만약 참모총장이 신통찮다면 000<한국어로 길게 이야기 했는데 로버츠 준장은 이것을 kick him out으로 요약했다> 할 수 있을 것이오.

라이트 : 참모총장은 매우 중요한 직위이기 때문에 조언을 할 참모진이나 그 비슷한 것이 필요할 겁니다.

로버츠 : 한국의 문제는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높은 직위에 몰려있어 각 연대를 지휘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만약, 국방부 참모총장을 두게 된다면 그도 유능한 장교들을 필요로 할 것 입니다. 이 유능한 장교들, 이 유능한 장교들을 참모총장의 참모진으로 데려간다면 일선 연대장 자리에는 쓰레기 같은 자들 말곤 남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이범석 :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만약 그가 생각을 잘 한다면 유능한 인재를 모두 쓸어가진 않을 거요.

로버츠 : 아닙니다. 저는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범석 :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능력이 있소. 어떤 사람은 보급에, 어떤 사람은 일선 지휘관에, 어떤 사람은 의무나 그밖의 다른 능력이 있을 것이오. 이런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을 참모부의 각 직위에 임명하는 것이오.

로버츠 :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군이) 학교에 가야 할 어린아이 같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기 전에 잠옷, 교복, 정장과 제복을 사줘야 합니다. 시작은 단순합니다. 뒤에 계속 추가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군은 아직 초창기이고 앞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 입니다. 한국군의 성장에 맞춰 추가해 나가는 것 입니다.

이범석 : 맞소. 맞소. 같은 것이오. 미국은 지금 대국입니다. 미국의 육군, 해군, 공군은 전쟁을 치르면서 세계 최고가 되었소. 장군도 아시다 시피 이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니잖소? 아마 300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소. 일본은 60년에 걸쳐 육군과 해군을 건설했소. 그리고 그들은 아마 25년이면 다시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오. 대한민국은 지금 당장 신속히 대규모 육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해군과 공군도. 장군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소.<시계를 보니 0900였다>
미안하오.
한국군은 500명의 대위와 100명의 소령만 있소. 작은 군대요. 반드시 증강되어야 하고 고급 장성도 많이 필요하오.(Must expand; many big generals)

라이트 : 추장만 있고 부족원은 없군요.(All Chiefs and no Indians)

이범석 : 대한민국 전역에서 군 문제에 대해 경험이 있는 인재를 모아들이고 있소. 현재 사정이 매우 어렵소. 우리는 많은 육군을 가져야 하오.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오. (한국어로 길게 이야기 함)

라이트 : (통역관에게) 내 생각에는 국군조직법을 이범석 장관의 뜻에 따라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공군은 육군 예하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범석 : 해군은 사소한 문제요. 육군은 큰 문제고.

로버츠 : 당분간 공군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논의할 수 있겠지요.

이범석 : 우리는 미국으로 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

로버츠 : 예. 우리나라가 귀국에 비행기를 준다면 공군부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후략 - 족청단원의 군입대 문제)

“Conference between Lee Bum Suk, Premier of Korea, Gen Robts(1948. 8. 30)” RG338, KMAG, 1948-53, Box 4, Files : Brig. General W. L. Roberts

*이 당시에는 아직 명칭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만.
**1948년에는 국방부장관과 국방부차관, 국방부 참모총장과 참모차장 아래에 육군 총참모장과 해군 총참모장이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크게 다르죠.
*** 신성모 이야기인데 사실과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통역이 실수한 것인지 아니면 이범석이 실수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성모는 2차대전 중 소식이 두절되어 있다가 1948년 8월에 생존해 있다는 것이 한국에 알려졌지요. 신성모의 생존에 대한 동아일보기사(1948. 8. 5)

 농담삼아 이야기 하면 이미 건국초부터 육방부의 재앙(???)을 예측한 사람들이 있군요. ㅋ

 이미 로버츠 준장의 지적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한국군의 증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는 유능한 장교의 부족이 꼽히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1947년 부터 시작된 조선경비대 증강당시에도 지적된 문제입니다. 단순히 원조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닌 것이죠. 실제로 한국전쟁이 터진 뒤에 미국의 원조가 본격화 되었지만 육군의 증강, 특히 포병이나 기갑등의 증강이 매우 매우 더디게 진행된 이유 중 하나도 유능한 장교의 부족이었습니다. 사실 냉전의 최전방에 던져진 대한민국으로서는 군대의 증강이 시급한 문제였지만 여러가지 제반여건들은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습니다.

2009년 6월 3일 수요일

퍼레이드용 군대

1949년 8월 19일, 미군사고문단 단장인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은 육군부 계획작전국(Plans and Operations Division)의 볼테(Charles L. Bolte) 소장에게 한국의 상황에 대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는 광복절 기념식에 대한 로버츠 준장의 짤막한 감상이 실려 있는데 꽤 의미심장합니다.

(광복절도) 다른 “중대한” 날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육군의 열병식은 굉장했습니다. 한국군은 마치 베테랑 군인들 처럼 보였습니다. 장비, 군복, 차량 모두 흠 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만약 한국군이 열병식을 하는 것 만큼만 싸울 수 있다면 우리가 여기 있을 필요도 없을 겁니다.

As is usual on these “critical” days, nothing happened.* The Army parade was a knock-out. They looked like veterans – equipment, uniforms, vehicles all spotless. If they can only fight as well as they parade, we are “in”.

로버츠 준장이 볼테 소장에게(1949. 8. 19), RG 338, KMAG, Box 8, Brig General W. L. Roberts(Personaal Correspondence, Memorandum) 1949

*북한의 도발이 없었다는 내용.

미국인들은 한국군 장교들이 겉치레를 중시하고 위세를 부리는데 신경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고문관들의 불평 중 하루 종일 훈련은 하지 않고 대대 전체를 동원해 사열준비만 하는 경우도 있는걸 보면 한국 장군들은 사열식 페티쉬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 이죠.

박정희가 사단 급 병력을 동원해 사열식을 하는 등 요란한 전역행사를 했던 걸 보면 정말 한국 장군들은 폼 잡는걸 너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12월 29일 월요일

김석원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미군사고문단의 평가

원래는 어제 올렸던 한국전쟁 이전 국군의 사단편제에 대한 글을 좀 더 보강해서 올릴 생각이었는데 재미있는 자료가 조금 더 굴러 들어와서 이 글은 다음 번에 더 보강해서 쓰려고 합니다. 그 대신 땜빵 포스팅으로 김석원 이야기나 조금 해 볼까 합니다.

예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미군사고문단장이 평가한 한국군장성들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은 보통 일본군 출신 장교들의 군사적 능력을 중국군 출신 장교들에 비해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예외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1사단장을 지낸 김석원 준장이었습니다.

로버츠 준장은 1950년 3월 18일 신성모에게 보낸 서한에서 김석원의 군사적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혹평했습니다.


각하(신성모) 께서도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지난해 7월과 8월 김석원이 공금횡령과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부패한데다 공직을 남용하고 장교에게 필요한 윤리와 도덕적 기준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를 자행한 데 관한 저의 견해를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이미 지적한 문제점 외에도 제가 직업군인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평가하면 김석원의 군사 과학과 전술에 대한 지식은 매우 형편없습니다. 김석원은 그가 맡은 방어책임구역의 방어 준비를 하는데 기본적인 원칙조차 이해하지 못했으며 설사 말단 초급장교라 하더라도 용납 못할 정도로 전술원칙에 대해 근본적으로 무지합니다. 저는 김석원이 전술가로서의 능력이 형편없기 때문에 만약 그가 더 책임 있는 직위를 맡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s you will remember, I expressed myself unequivocally on the subject of this ex-officer last July and August when his peculations, dishonesty, corruption, misuse of public office and total disregard of the ethics and moral standards required of an officer were brought to light. In addition to the deficiencies I have just cited, it was my considered opinion at the time, as a professional soldier, that his knowledge of military science and tactics was extremely limited. He had failed to grasp the basic principles of the organization of his sector for defense and exhibited a fundamental ignorance of tactical principles which I would not tolerate even in a very junior officer. I feel that his deficiencies as a tactician would, if he were placed once more in a responsible position, seriously jeopardize the security pf the Republic.

March 25, 1950, ‘Activities of Brig Gen. Kim Suk Won’, Enclosure 1; RG 59, Records of State Department

굉장한 혹평입니다. 특히 전술적 능력이 초급장교 보다 못하다고 하는 부분은 왜 저렇게 심각한 비난을 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혹평은 김석원을 옹호하는 측에서 주장하듯 김석원과 군사고문단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 주된 원인일까요?

김석원은 1949년의 38선 충돌에서 핵심적인 지역이었던 개성 방면의 1사단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전쟁 이전에 그의 전술적 능력을 평가할 만한 기회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1949년 여름에 미군사고문단이 1사단의 방어구역을 시찰하고 김석원의 부대 운용에 대해 분석한 내용입니다.

이번 조사의 결과 현재 1사단 구역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방어상의 위험한 취약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a. 경계 순찰이 전무한 상태이다.

b. 현재 38선상에서 돌파되어 침범당한 지역에 전초저항선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

c. 사단 정면에 주저항선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단 주력이 북한군으로부터 공격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d. 11연대가 부적절하게 투입, 배치되어 있다. 이 부대는 연대지휘소와 대대가 개성에 위치해 있는데 현재 위치에서는 개성 회랑 동쪽으로 부터의 공격에 후방이 차단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이 연대는 개성-문산 도로의 약간 남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개성-문산 도로를 따라 종심 깊게 배치되는 대신 연대 전체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배치가 잘못 되어있다. 만약 임진리의 교량이 적의 신속한 진격에 탈취될 경우 1개 연대와 여기에 배속된 포병은 고립될 것이다. 제대로 된 군대가 적용하는 올바른 부대 배치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 진다. 각 대대와 중대는 소수의 병력만 전방에 배치하고 예비대를 확보한다.; 최소한 1개 연대에는 1개 대대가, 1개 사단에는 1개 연대가 예비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1사단은 사단 예비는 물론 연대 예비대도 전무한 상태이다. 사단장은 예비대 없이는 보다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e. 나머지 2개 연대 -12연대와 13연대- 도 마찬가지로 종심이 깊지 못하고 예비대가 전무한 상태로 전술적으로 불안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This investigation revealed the following deficiencies and dangerous defensive weakness in the present zone of the 1st Division.

a. Total absence of security patrolling

b. No established outpost line of resistance to present penetration and violation of the 38th degree North Parallel.

c. Absence of a main line of resistance on the Division front, thus exposing the Division’s main element to an attack and possible demoralization by North Korean Forces.

d. Improper placement and disposition of the 11th Regiment. This unit, with the Command Post and battalion located at KAESONG is, in its present position, highly vulnerable to being cut off and destroyed by a force attacking east through the KAESONG corridor. This regiment is incorrectly disposed, inasmuch as it is slightly south of KAESONG-MUNSAN road and the entire regiment is facing directly north rather than being astride the above-mentioned road and disposed in depth. If the bridges over the Im-Jin-ni River are taken by a quick thrust of the enemy, over one regiment and artillery will be cut off. Correct dispositions, as applied by all real armies, are as follows : each Battalion and Company Keeps few troops in front and each has a Reserves; at least 1 Battalion of a Regiment must be in reserve; at least 1 Regiment of a Division must be in reserve. As it is, there are no Regimental reserves nor Division reserves. Not having these, the Division Commander is unable to accomplish much decisively.

e. The two remaining Regiments – the 12th and 13th – are similarly placed in tactically-unsound position in that they are not disposed in depth and no reserves have been established.

August 1, 1949, ‘Tactical Disposition of the 1st Division, Korean Army’; RG 338, KMAG, Box 8, Brig General W. L. Roberts(Personaal Correspondence, Memorandum) 1949

일단 위의 보고서에서 지적된 것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김석원이 ‘예비대’라는 것을 전혀 확보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비대를 확보하는 것은 부대 지휘관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인데 김석원은 사단장이 되어 제대로 된 예비대 없이 사단 전 병력을 전방에 배치해 놓은 것 입니다. 초급장교 만도 못하다는 혹평이 단순한 비난이 아닌 것이죠. 전면전도 아닌 상황에 사단의 전 병력이 전방에 배치되어 방어 종심도 얕아 제대로 된 공격을 받으면 한방에 붕괴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예비대도 없으니 만약 이 상태로 전면전이 발발했다면 개성-문산 지구는 순식간에 붕괴됐을 것 입니다.

김석원의 후임으로 부임한 유승렬과 백선엽은 이런 비상식적인 부대운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개전 당시 1사단은 11연대를 예비대로 확보해 놓았고 기습 공격과 전력상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선전합니다. 김석원이 하던 대로 1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면 서부전선이 일거에 붕괴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8년 10월 15일 수요일

한국군 장성들에 대한 주한미군사고문단장의 평가

며칠 전에 쓴 '김홍일 장군의 원대한 "建軍" 구상'에서 김홍일 소장의 기계화부대 건설 구상을 다소 비판적으로 다뤘습니다. 그런데 이거 어째 김홍일 소장을 졸지에 몽상가로 만들어 버린 듯 해서 찝찝하더군요. 초기 한국군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홍일 소장은 중국군 출신에 대해 비판적이던 미군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군측은 일본식 교육을 받은 장교들이 중국식으로 교육받은 장교들 보다 우수하다고 보았고 중국식 교육을 받은 장교들에 대해서는 극도로 비판적이었는데 예외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김홍일 소장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서 한국전쟁 발발 직전 군사고문단장이었던 로버츠(W. L. Roberts) 준장의 한국군 장성들에 대한 평가를 인용해 보지요. 아래의 인용문은 로버츠 준장이 육군본부의 볼테(Charles L. Boltes) 소장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인용한 것 입니다.

일본식으로 교육받은 장교들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중국식으로 교육받은 장교들에 비해 월등히 우수합니다. (그러나) 일본식으로 교육받은 장교들은 내버려 두면 일본식으로 지휘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중국식으로 교육받은 장교들은 높은 계급과 체면을 중시하며 그들이 중국군에서 가지고 있던 계급보다도 더 높은 계급을 원합니다.

(중략)

한국군의 고위장교단의 지도력은 매우 매우 부족합니다.

총참모장은 일본군 시절 소령으로 병기창에서 근무했던 인물입니다. 매우 열심히 노력하며 우리의 조언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물자를 횡령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현재 한국군 장성 중에서는 가장 총참모장에 적합한 인물일 것 입니다. 그는 비만이지만 호감을 주는 인물이며 또 소장으로 진급하길 원하지만 좋은 조언자인 자신의 고문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모차장은 한국군 지휘관중 가장 유능한 인물이며 훌륭한 전술가로 사단장으로도 적합한 인물입니다. 최근 그는 지리산 지구 전투사령관으로 남부 지역의 공비들을 섬멸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정(일권) 입니다.

행정참모부장(원용덕)은 준장으로 원래는 군의관이었으며 반미주의자이고 무능함 때문에 사단장(5사단)에서 해임되었습니다.

호국군무실장은 준장으로 시대에 뒤떨어진(fuddy-duddy) 일본식 교리만 아는 인물로서 주의 깊게 감시하지 않는다면 사고를 칠 것(put it over) 입니다. 그의 이름은 신(응균)입니다.

한국군 1사단장(김석원)은 정치적 배경으로 임명된 준장으로 한국군 총참모부와 국방부장관이 싫어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지휘하는 사단은 38도상의 개성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1사단장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만약 미국인 고문관이 제어하지 않는다면 그자는 군벌처럼 될 것 입니다. 그는 사단의 8개 대대 중 7개 대대와 1개 포대를 특별히 중요한 일도 없는데 전방에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고문단에서는 그를 보통 곤경에 빠진 장군들이 가는 남쪽(게릴라 토벌)으로 전출시키려 시도 중입니다. 우리측에서는 예비대가 부족한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에 1사단의 후방에 추가로 부대를 배치했습니다.

7사단장(이준식)은 준장이고 이범석의 정치적 친구입니다. 고문단은 이제 겨우 그를 제어할 수 있게 됐습니다. 7사단은 바로 서울 북쪽의 38도선상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6사단장(유재흥)은 괜찮은 인물입니다. 우리측에서 그를 추천했습니다. 그는 제주도를 평정했으며 고문단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한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동북해안지구에 배치된 8사단장(이형근)은 베닝(Fort Benning)에 교육을 보낸 세 명 중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장군이 되더니 맛이 갔으며(burst his buttons) 더 이상은 안되겠습니다. 그는 통위부 시절이 전성기 였습니다. 그의 고문관인 중령도 당시에는 잘 나갔지만 너무나 쉽게 출세한 나머지 먼저 한 명이 나가 떨어지고 그리고 나머지가 그 뒤를 따르게 될 것 입니다.

수도경비사령부 지휘관(권준)은 대령으로 중국군 출신입니다. 즉 별 능력이 없으며 그는 그에 걸 맞게 행동합니다. 정치적 배경으로 임명되었으며 우리는 반드시 그를 해임시킬 것 입니다.

2사단장 송호성은 준장이며 한국군 최초의 장성입니다. 중국군 출신이며 원래 국방부장관이었던 이범석과 정치적 앙숙입니다.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져있으며 이범석파는 그를 가을쯤에 외국(아마도 중국대사관 무관)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그는 작은 거래에는 서투른 편입니다. 사단장병들에게 훈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술적으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며 특히 여순반란에서는 최악이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그에게 온갖 칭찬을 다 했지만 실제로 일을 담당한 것은 풀러 대령(현재 25보병사단 참모장인) 이었습니다.

3사단장은 이응준 소장으로 그는 일본군 대령이었습니다. 한국군 장군 중에서는 매우 유능한 편이지만 예전에 그의 예하 대대장 두 명이 대대를 이끌고 월북해서 곤경에 처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응준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에 임명하길 원합니다. 이응준은 한국군 장성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5사단장은 사단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육본 정보국장이었습니다. 이름은 백(선엽) 입니다. 우리는 그를 지지하며 저 또한 그가 좋은 지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대령 중에도 유능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중국군 출신 장군 중 가장 유능한 사람은 김홍일 소장이며 현재 그는 육군사관학교장으로 있습니다. 나이는 50이며 매우 명석하고 성실하며 학자풍인 인물이고 미국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한국군 지휘관들이 전술적 지식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중요한 작전이 전개된다면 우리 고문관들이 전술적 실수를 막아줄 수 있겠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체면을 중요시하며 많은 경우 말 보다 행동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Roberts to Boltes'(1949. 8. 19), RG 338, KMAG, Box 8, Brig General W. L. Roberts(Personal Correspindence), 1949; Brig General W. L. Roberts(Memorandum), 1949

매우 주관적인 평가지만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전반적으로 중국군 출신 장성들에 대해 혹평을 하고 있지만 김홍일 소장에 대해서는 평이 좋습니다. 물론 이런 후한 평가는 그가 Americanize 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만;;;;

추가) 로버츠 준장은 한국군 고급장교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한국군 사병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역시 같은 보고서에서 한국군 병사에 대한 평가를 발췌해 봅니다.

사병들은 훌륭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군 사병들은 6개월 정도의 훈련이면 상당히 좋은 병사로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군 사병들의 주의 깊음, 극기정신, 훈련에 대한 욕구, 명령에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의지, 완고함은 미군 병사들이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Roberts to Boltes'(1949. 8. 19), RG 338, KMAG, Box 8, Brig General W. L. Roberts(Personal Correspindence), 1949; Brig General W. L. Roberts(Memorandum), 1949

2008년 8월 19일 화요일

이박사의 허풍실력

이승만은 매우 머리가 잘 돌아가는 정치인 인데다 꽤 괴상한 감각을 가진 도박꾼이었습니다. 보통 선수들끼리 한판 벌인다면 상대방이 뻔히 알고 있는 문제를 건드려서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짓은 하지 않을 텐데 이박사는 그런 상식을 과감히 무너뜨리는 면이 있었습니다. 다음의 일화는 그런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박사 : 반대로, 우리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남한의 국민들 뿐 만 아니라 북한의 동포들의 생명도 책임지고 있소. 최근 25만에서 30만 사이의 잘 무장된 공산군이 공격 준비를 마쳤다는 정보를 입수했소. 공산군은 해주에서 서울을 포격할 수 있는 4문의 아주 큰 대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오.

로버츠 준장 : (해주에서 서울까지는) 44마일이나 됩니다! 저는 그런 대포가 있다는 이야길 처음 듣습니다.

President : On the other hand, from the Korean point of view, we are responsible for the lives of the Korean people in the south as well as in the North. We are informed that some red army from 250,000 to 300,000 well equipped, are ready to attack. They have four big gun that when they are fire them from Haiju the shells will land in Seoul.

Gen Roberts : That is 44 miles! I have not heard of this.

「Conference at Capitol, August 12, 1949」, 『RG 338, Provisional Military Advisory Group, 1949~53 Box 12』

이승만은 1950년 이전 군사원조를 요청할 때는 제정신과 광기를 오락가락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 경우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물론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보고 받는 로버츠가 이승만의 저런 허풍에 속아넘어갈 리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게다가 70km나 날아가는 장거리포(!)가 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황당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승만의 이런 황당한 허풍은 종종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물론 이승만을 혐오하게 되는 역효과도 동반하긴 했습니다만.

가끔 이박사의 이런 황당한 측면을 패러디 해서 한국판 뮨하우젠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