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5일 수요일

창군초기 한국군의 사격군기 문제

번동아제님의 쌍령전투에 대한 글을 읽어보니 당시 조선군의 사격군기 문제가 언급되어 있어 꽤 흥미로웠습니다. 화약무기가 도입된 이후 사격군기는 한 군대의 훈련수준을 평가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잘 훈련된 군대일수록 사격군기가 훌륭해서 함부로 탄약을 낭비하지 않지요. 아무래도 저는 근현대 군사문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창군초기 한국군의 사격군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생각나더군요.

창군초기 한국군도 사격군기 문제가 심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순반란진압, 빨치산토벌, 38선 충돌 등 심각한 상황이 잇달아 발생했으니 탄약 소모가 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여기에 사격훈련도 부족하니 불에 기름을 들이 붓는 격이었던 모양입니다.

1949년 여름 옹진반도에서는 연대급 부대가 동원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탄약 소모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미국군사고문단이 신성모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비망록을 보면 8월의 2차 옹진 반도 전투당시 한국군은 총1,022.276발의 각종 탄약을 사용해서 북한군 69명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북한군 한 명을 사살하는데 14,604발의 탄약을 소비했다는 이야기 입니다.1)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은 육군부 기획작전국장 볼테(Charles Bolte) 소장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한국군은 작전 수행중에 탄약을 황당할 정도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측의 요구대로 보급을 해 준다면 문제만 복잡해 질 뿐입니다. 저는 기본적인 문제, 바로 사격훈련과 사격군기의 결여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헤프게 물자를 소비하는 한국측에게 탄약을 공급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합니다. 또한, 최근 옹진반도 전투에서 적이 입은 인명피해와 우리측이 소비한 탄약에 대한 조사를 보면 적 한명을 사살하는데 14,604발의 탄약을 소비했다는 점도 지적하고자 합니다.

(They burn up ammunition at a fantastic rate in operations, and to supply all their requirements only compounds the problem. I have hit at the basic difficulty - lack of marksmanship training and fire discipline - and if we are to get those problems licked, we must stop giving them ammunition with such a lavish hand. In passing, I should like to point out that in a recent battle on the Ongjin peninsula, a study of enemy casualties and our own ammunition expenditure showed that it took 14,604 rounds of ammunition to produce one casualty.)2)
이런 문제는 미국쪽만 지적한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한국군 참전자들의 증언에 크게 의존한 사사끼 하루다카(左左木春隆)의 저작에도 당시 옹진반도에 투입된 2연대의 전투시 탄약 낭비가 극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3)

이 당시 한국군의 사격군기 문제의 중요성은 전술적인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군사 원조가 제한적인 상태에서 보급문제를 더 악화시켰기 때문입니다.


1) Memorandum to Minister of National Defense(1949. 8. 17), RG 338, KMAG Box8 : Brig. General W.L.Roberts(Personal Correspondence), 1949; Birg. General W.L.Roberts(Meomorandum), 1949
6일 동안의 전투에서 2연대가 소비한 탄약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30구경 소총탄 288,071발
30구경 카빈탄 242,989발
30구경 자동소총탄 158,897발
30구경 기관총탄 223,502발
50구경 기관총탄 51,506발
45구경 권총탄 32,140발
2.36인치 로켓탄 634발
60mm 박격포탄 10,269발
81mm 박격포탄 8,696발
105mm 포탄 5,572발
2) 로버츠가 볼테에게(1949. 8. 19), RG 338, KMAG Box8 : Brig. General W.L.Roberts(Personal Correspondence), 1949; Birg. General W.L.Roberts(Meomorandum), 1949
3) 左左木春隆/姜昶求 編譯, 『韓國戰秘史(上) 建軍과 試鍊』(병학사, 1977), 456~457쪽

댓글 18개:

  1. 스카이호크1:16 오전

    참. 저 때의 대한민국이 용케 살아남아 지금까지 온 것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정도면 제3세계에서도 막장레벨 순위권이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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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확실히 6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죠. 군사고문단 기록을 읽다 보면 분통이 터지는게 다반사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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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네비아찌10:19 오전

    웬지 베트남에서 미군이 소모한 탄약 대 사살률 수치가 연상되네요. 저때 북한군의 사격군기는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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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하하. 그래도 미군은 탄약이 충분하니;;;;

      그리고 북한군 노획문서와 미군의 북한군 포로심문기록을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인데 아직 그와 관련된 내용은 찾지 못했습니다. 재미있는 기록이 나오면 별도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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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949년이었으면 정말 훈련부족인 상태였을테니...(다음해라고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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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문단 인력도 부족하고 훈련시간도 부족하니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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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위장효과11:25 오전

    벙커 힐 전투에서처럼 "적군의 눈 흰 부분이 보일 때까지 사격하지 마라!" 이럴수도 없고 말입니다.

    (처음 워싱턴 전기 읽을 때는 이 대목을 "촘호속에 숨어 있다가 적이 그정도로 가까이 오면 사격"이렇게 이해했습니다.-독립전쟁을 1차대전식 참호전으로 이해한 바보...OTL-나중에 영화라든가 삽화를 보고 나서야 그게 뭔 의미인지 이해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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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휘관들도 경험이 부족했으니 꽤 난감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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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뚱띠이11:45 오전

    이런 기록을 보여주실 때마다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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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대로 된 근대적 군대를 가져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좌충우돌하며 여기까지 왔으니 대단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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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니! 일발 필중의 제국 육군혼은 어디두고....ㅋ (농담입니다)

    대단한 탄약 소비량이군요;;; 대전 말기 일본군이 상계작전시 사단에 1회전분으로 고작 백만발 지급했단 이야기 기억이 나는데 한국군은 그걸 연대가 다 써버렸군용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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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 8월의 2차 전투에서 옹진에 증원된 2연대 단독으로만 100만발 이상을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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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niMishel2:22 오후

    미군한테 받아쓸 땐 좋다고 무한탄창 연사하다가 나중엔 그 반발효과(?)로 총알 한 방은 부모님의 피와 땀이 배인 세금(부모님의 땀까진 이해하겠는데 피는 좀... ;; )으로 사는 것이다 하며 일중필살 스나이퍼 엎드려쏴 교육으로...

    미군의 탄 소비도 그렇지만 아프리카 내전지역이나 아프간, 이라크의 기록 영상을 보더라도 훈련안된 병력이나 민간 무장세력의 탄 낭비는 엄청나더군요.

    하긴 총알 아낀다고 단발 사격하다가 저 세상 가느니 저라도 총알이나마 원없이 땡기는 방향으로 기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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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 시기 미군사고문관들이 한국군 지휘관들에겐 보급 개념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혹평을 하는데 실전 사례를 보면 그게 심한 비판도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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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번동아제7:44 오후

    2.36인치 로켓탄 634발은 도대체 어디에 쏜 걸까요.

    토치카에다 사격했으려나.

    하여간 대단한 물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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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생각엔 아마 기관총 진지 같은 곳을 제압할 때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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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큐트봉7:24 오후

    예전에 어렸을 때는 위대한 위인들을 존경했지만 지금은 아버지/할아버지 세대 분들이 제일 존경스럽습니다.

    우리 세대도 잘하면 레베루가 좀 올라가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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