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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3일 일요일

러시아의 전차 생산에 볼베어링 수급이 끼치는 영향

지난 4월 19일 포브스에 아주 재미있는 기사가 한 편 올라왔습니다. 


What’s Perfectly Round, Made Of Metal, And Keeping Russia From Replacing the 2,000 Tanks It’s Lost In Ukraine?


이 기사의 요점은 러시아의 정밀기계공업 수준이 너무 낮아서 전차 생산 및 개량에 필요한 볼베어링 수급이 어렵다는 겁니다. 러시아군이 T-62나 T-55 같은 고철을 끌고나오는 이유도 이런 고물들은 저급한 볼베어링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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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잃은 2,000대의 전차를 보충하는데 필요한 강철로 만들어진 완벽한 구체는 무엇인가?

데이비드 액스(David Axe)


러시아는 현대적인 광학부품이 부족해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쟁에서 잃어버린 수천대의 전차를 대체할 신형 T-72B3M, T-90M 전차의 신규생산과 구형 T-72, T-80, T-90을 정비하는데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차 생산 기업들이 부족한건 광학부품 뿐이 아니다. 러시아는 볼베어링도 심하게 부족하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산업계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화하기 전 까지는 볼베어링을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했었다.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에서 발표한 최근의 연구를 보면 독립 연구자들이 이 문제를 수개월 전 부터 언급해왔다. 전차를 비롯한 현대적인 기갑차량들은 볼베어링이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러시아는 신형 기갑차량을 꾸준히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볼베어링이 없다.

특히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 또 러시아 경제 전체가 철도 수송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열차 또한 대량의 볼베어링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선택을 해야 한다. 전차를 더 생산하는 대신 철도 교통 체계가 붕괴하도록 두는 것이다. 아니면 철도 교통 체계를 유지하면서 전차 생산 속도를 늦추는 방법도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분석가 맥스 버그만(Max Bergmann), 마리아 스네고바야(Maria Snegovaya), 티나 돌바야(Tina Dolbaia), 닉 펜튼(Nick Fenton), 새무얼 벤데트(Samuel Bendett)는 이 문제를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최고급 베어링을 서구 기업에서 수입해 왔다. 예를들어 2020년에 러시아는 4억1900만 달러 상당의 볼베어링을 수입했는데 이 중 55퍼센트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독일은 2020년 한해 동안 러시아가 수입한 볼베어링의 17%를 공급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북부, 동부, 남부로 진격해 들어가 전쟁이 확대되고 양측에서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나라들은 러시아의 전략 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볼베어링 수출은 최우선 순위에 있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분석가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서구의 베어링 제조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러시아에 대한 판매를 중단했다."

볼베어링 수출 중단의 영향은 아주 빠르게 나타났다. 중단 조치를 취한지 몇 주 되지도 않아서 러시아의 신형 전차 생산과 구형 전차 정비를 담당하는 스베르들롭스크의 우랄바곤자보드와 시베리아의 옴스크트란스마쉬는 일시적으로 생산을 중단했다.

얼마 있지 않아 생산이 재개되기는 했지만 러시아 전차 제조업의 장기적 전망은 매우 나쁘다. 신형전차인 T-72B3M과 T-90M은 신형 광학장비가 필요하지만 이것들은 대개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프랑스 정부가 제재를 강화하자 러시아 전차생산기업들은 신형 전차의 소스나U 디지털 조준기에 필요한 부품을 얻을 수 없었다.

러시아 정부는 소스나U 조준기 부족분을 러시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아날로그 방식의 1PN96MT-02 조준기로 교체했다. 이 조준기는 소스나U 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최소한 러시아 전차병들이 우크라이나 전차병들과 교전을 할 수는 있게 했다.

그런데 볼베어링 문제는 러시아 정부가 해결하기에는 더 어려울 수 있다. 소스나U 조준기를  1PN96MT-02 조준기로 교체한 이후에도 우랄바곤자보드와 옴스크트란스마쉬는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노동자들이 전차를 거의 생산하거나 정비한 상태에서 부품이 떨어져 버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14개월간 악전고투를 하면서 잃어버린 2,000대의 전차를 대체하는데 애를 먹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러시아군은 전선의 전차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1개월에 최소 150대의 신규 생산, 또는 재생한 전차가 필요하다.

물론 전쟁이 장기화 되기 시작했을때 러시아는 소량의 볼베어링 재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철도  교통도 비축된 볼베어링을 필요로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충병력과 장비를 실어나르면서 러시아가 보유한 13,000대의 기관차들은 더 많은 볼베어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전차를 적게 생산할 것이냐 아니면 러시아 전역의 교통망을 마비시킬 것이냐는 선택지 중에서 현명한 선택을 했다. 전차 생산을 줄인 것이다.

우랄바곤자보드와 옴스크트란스마쉬의 활동을 신중하게 분석한 결과 이 두 공장은 매달 몇십대 정도의 신형 전차를 출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형 전차란 새로 생산한 T-72B3M이나 T-90M 또는 기술자들이 장기간 보관되어 있던 것을 가져와 재생한 T-72, T-80, T-90 등이다.

그러니 러시아가 '기술적인 면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이래 보관 상태로 썩어가고 있던 1960년대의 골동품 T-62나 1950년대의 골동품 T-55를 다시 끌고나온 이유를 알 수 있다.

구식 전차들은 최신 부품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고 볼베어링도 적게 들어간다. 이런 구식전차들은 장비 상태가 좋은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정면 대결을 하기에는 답이 없지만 최소한 우크라이나군의 발을 묶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어떤 러시아 당국자는 볼랴 미디어에 이렇게 말했다. "이런 면에서 T-55는 자원을 절약하고 시간을 벌 수 있는 수단입니다."

수백대의 T-62와 T-55가 일시적으로 러시아군의 뚫린 구멍을 메우는 동안 러시아의 산업계는 다른 볼베어링 수급처를 찾아 신형 전차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가장 확실한 대체처는 중국과 말레이시아이다. 하지만 중국제와 말레이시아제 볼베어링은 미국제나 유럽제 베어링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 CSIS의 분석팀이 지적한 것 처럼 질이 떨어지면 치러야 할 댓가가 있다.

"러시아는 서구로 부터 수입하던 베어링의 대체품을 찾아서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군수 분야의 생산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품으로 들여온 베어링은 대부분 질이 떨어지는 것들이라 신뢰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가 품질 좋은 베어링을 질이 낮은 베어링으로 교체해서 전차 생산을 늘리는데 성공할 수는 있다.  또한 현대적인 디지털광학장비를 질이 떨어지는 아날로그광학장비로 교체했던 것 처럼 말이다. 이렇게 만든 전차를 최신형 전차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이렇게 만든 물건들도 껍데기만 보면  T-72B3M이나 T-90M 같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부를 뜯어보면 성능도 떨어지고 내구도도 낮은 전차일 것이다.

2020년 2월 16일 일요일

초기 북한 군수산업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

경북대학교 전현수 교수님이 번역하신 사료집 『소련공산당과 북한 문제 : 소련공산당 정치국 결정서(1945~1952)』을 읽다 보니 초기 북한 군수산업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가 하나 보입니다. 북한의 자체적인 군수산업 역량 확대를 지지하는 1950년 4월 2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에 첨부되어 있는 문서입니다. 이 문서의 내용이 흥미로우니 발췌해 봅니다.

몰로토프 동지에게
미코얀 동지에게
1948년 6월 26일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내각 회의 결정과 1949년 2월 24일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내각 회의 지시는 평양 병기고에서 박격포, 기관단총, 기관단총 탄약, 포탄 케이스, 지뢰 및 수류탄을 생산하는데 조선 측에 기술적 원조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내각 회의 결정에 따라 확정된 병기고의 생산계획에 맞춰 대포 및 박격포 사격에 필요한 일체의 다른 탄약 부품들을 완성품 형태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에서 납품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생산은 조직되었고, 가동이 시작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조선인 기술자들이 (생산기술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업상 김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이미 생산되고 있는 품목의 무기와 탄약 생산을 크게 확대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김책이 제출한 생산 과업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무기와 탄약은 최초의 계획과 비교해서 10~15배나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밖에도 조선인들은 쉬틔코프 동지에게 지금까지 소련에서 수입해 온 탄약 부품들을 조선에서 생산하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여기에는 니트로글리세린과 초산섬유소 화약, 대포와 박격포 사격을 위한 장약, 소화기 탄약용 화약, 기폭장치, 수류탄용 도화선, 대포 탄약통, 대포 탄약통용 뇌관 마개, 박격포 장약용 면 탄약, 라이플총 탄약, 뇌관-발화장치, 뇌관-기폭재, 폭발물의 제조가 포함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업성의 계획 과업에 규정된 수량으로 이미 조직된 생산을 확대하자는 조선인들의 요청을 수용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생산을 조직하자는 조선인들의 요청도 기폭장치, 대포 탄약통, 뇌관-발화장치, 뇌관-기폭제를 제외하고는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에서 이들의 생산을 조직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일입니다. 기폭장치의 생산 기술은 그 자체가 복잡해서 현재의 조건에서 조선인 기술자들이 습득할 수 없습니다.
뇌관-발화장치, 뇌관-기폭제 생산 기술과 경험을 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생산 공정은 다른 나라에서 이 제품들을 생산하는 기술과 구별되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만의 독창적인 것이고, 따라서 특별히 비밀로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조선에서 화약, 도화선, 뇌관 마개, 면 탄약통, 폭발물의 새로운 생산을 조직하는 문제를 해결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도입될 설비의 생산성이 커다란 여유 생산능력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는 점 입니다.
화약, 도화선, 뇌관 마개 생산을 위한 기술 장비의 기본적인 부분은 독일에서 반출한 장비들중에서 현재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공급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면 탄약통 생산 설비는 현재 면 탄약통 생산에 투입된 현존 설비 모델에 따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에서 새로 제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품목들의 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련 공장들에서 220볼트와 60암페어의 전기모터와 시동장치를 제조해야 할 것 입니다. 이것들은 조선민주주의공화국으로 납입되는 모든 설비들을 폭발 위험 없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소련에는 이 제품들의 양산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결정 초안을 첨부합니다.
검토를 바랍니다. 
그로믜코
파르쉰
마르틔노프
예레민
쉬틔코프
안드레이 란코프 엮음, 전현수 옮김, 『소련공산당과 북한 문제 : 소련공산당 정치국 결정서(1945~1952)』 (대구: 경북대학교출판부, 2014) 163~165쪽.


개인적으로 이 결정서에서 흥미로운 내용은 소련의 기술통제가 꽤 낮은 단계에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것과 독일에서 압류한 설비를 원조하자는 논의가 이루어 진 것 입니다. 전자는 꽤 흥미로운 것이 뇌관 같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기술조차 극히 조심스럽게 취급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북한의 기술 수준을 낮게 평가하면서도 낮은 수준의 기술도 유출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죠. 이 분야는 소련의 기술이 미국을 위시한 서방 보다 특별히 나을 것도 없고 오히려 뒤떨어진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 입니다. 이들의 판단 근거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합니다.


2018년 3월 11일 일요일

체임벌린 내각의 공군 전투기 전력 증강에 관한 잡설

‘덩케르크’와 ‘다키스트 아워’에 이어 ‘가이 마틴의 스핏파이어’ 까지 보고 나니 전간기 영국 공군 전투기 전력 증강에 대해 썰을 풀고 싶어지는군요.

극영화의 특성상 ‘다키스트 아워’에서는 네빌 체임벌린을 음모만 꾸미는 음흉한 패배주의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뮌헨 회담 등 치명적인 외교적 실책이 있다 보니 비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전간기 영국의 군비 증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인데 지나치게 과소평가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체임벌린 내각의 국방 정책 중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공군력 증강, 특히 본토 방공을 위한 전투기 전력 증강에 힘을 쏟은 것 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체임벌린 내각이 재무장을 추진하면서 전략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건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먼저 1930년대 영국의 국방비 지출 추이를 살펴보죠.

표1. 1930년대 영국 국방비 지출(단위: 1000파운드)
연도
공군
육군
해군
1930/31
17,800
40,150
52,574
1931/32
17,700
38,520
51,060
1932/33
17,100
35,880
50,010
1933/34
12,780
37,592
53,500
1934/35
17,630
39,660
56,580
1935/36
27,496
44,647
64,806
1936/37
50,134
54,846
81,092
1937/38
82,290
77,877
101,950
1938/39
133,800
121,361
127,295
[G. C. Peden, Arms, Economics and British Strategy: From Dreadnoughts to Hydrogen Bombs(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p.151의 표3.8를 재구성]

이 표에서는 체임벌린 내각에 들어와 공군 예산의 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걸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영국의 재무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35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해에 재무장관 피셔Warren Fisher의 강력한 지지하에  1936/37년 부터 1941/42년에 걸친 재무장 계획이 수립됩니다. 영국 의회는 1937년에 재무장 계획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1937/38년 부터 1941/42년까지를 기한으로 하는 국방융자법Defence Loans Act을 통과시켜 재무장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용이하게 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서 영국 군부는 사실상 제약 없이 예산을 지원받게 됩니다. 물론 과도한 국방비로 균형재정이 무너지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위험도 컸습니다. 1937년 총리로 취임한 체임벌린도 과도한 국방비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되려 재무장 계획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합니다.1) 국방융자법 통과는 국방비의 가파른 증액에 일조합니다. 1937/38년의 총 국방예산 2억6200만 파운드 중 6500만 파운드가, 1938/39년의 총 국방예산 4억 파운드 중 1억2800만 파운드가 이 법안에 따라 증액된 예산이라고 하는군요.2) 이렇게 1936년 이후 급증한 예산을 바탕으로 영국 공군력은 급격히 증강됩니다.

영국 공군의 증강 계획도 독일의 위협 증대와 예산 증액에 맞춰 단계적으로 상향됩니다. 영국 정부가 독일의 재무장에 대응해 처음 내놓은 공군 증강 계획은 ‘F계획Scheme F’로 불립니다. F계획은 1936년 2월 내각 회의에서 채택된 안으로 향후 3년에 걸쳐 8,000대의 신형 군용기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영국의 항공기 생산 능력 부족으로 계획이 종료단계였던 1938년까지 영국 공군이 확보한 신형 항공기는 목표에 미달하는 4,500대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이 중 3,000대는 F계획 이전에 발주된 구형 항공기였습니다.3) F계획은 기본적으로 구형 기체의 교체 외에도 개전 첫 3개월간의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 일선 배치기수의 150%의 예비기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4)
체임벌린 내각은 독일의 전쟁 위협이 증대되고 재무장 계획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1938년 4월 27일 특단의 조치로 ‘L계획Scheme L’을 통과시킵니다. L계획은 향후 2년 내로 공군에 일선 기체와 예비 기체를 합쳐 12,000대의 신형 항공기를 도입하는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전후에 편찬된 영국 정부의 공간사는 L계획이야 말로 영국 공군의 재무장에 있어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5) L계획은 채택되지 못한 K계획을 수정 보완한 것 입니다. 계획 1차년도에는 4,000대의 항공기를 생산하고 2차년도에는 8,000대를 생산해 2년 내로 완료하는게 목표였습니다. 또한 전투기 중대의 중대 당 기체 수를 14대에서 16대로 상향하는 편제개편도 포함됐습니다. 또한 개전 초기의 소모를 감당할 수 있는 예비기체의 확보도 중요하게 고려됐습니다.6)
F계획 부터 L계획에 걸친 영국 공군 증강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2. 1930년대 중후반의 영국 공군 증강 계획
계획안
폭격기
전투기
연안부대
육군지원
총계
완료예정일
비고
중대
기체수
중대
기체수
중대
기체수
중대
기체수
중대
기체수
F
70
1022
30
420
13
162
11
132
124
1736
1939.3.31

H
87
1631
34
476
13
183
11
132
145
2422
1939.3.31
채택되지 않음
J
90
1442
38
532
19
281
11
132
158
2387
1941 여름
채택되지 않음
K
77
1360
38
532
19
281
11
132
145
2305
1941.3.31
채택되지 않음
L
73
1352
38
608
19
281
11
132
141
2373
1940.3.31

[Ian M. Philpott, The Royal Air Force: An Encyclopedia of the Inter War Years Vol.2: Rearmament 1930 to 1939, (Pen and Sword, 2008, Kindle Edition) Location 1582]


영국 정부가 공군력을 증강하면서 추진한 일 중 하나는 항공기 제작회사들에게 하청 회사를 늘리도록 유도한 것 입니다. 영국은 1920~30년 중반까지 세계에서 손꼽히는 항공기 수출 대국이었지만 독일의 재무장에 따라 군비경쟁이 시작되자 생산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영국 항공기 회사들은 유사시를 대비해 여유로운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급속한 군축으로 된서리를 맞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솝위드Sopwith가 여유 생산설비를 유지하다가 군축의 타격으로 부도(...) 난 대표주자죠. 솝위드의 멸망(...)을 보고 경악한 항공 기업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을 실시한 결과 영국 정부가 재무장을 본격적으로 지작한 1930년대 중반에는 항공기 생산능력이 격감한 상태였습니다.
유럽 본토의 정세가 다급하게 돌아가자 영국 정부는 항공기 생산 하청을 적극적으로 권장해 1938년 봄에는 항공성이 정부와 계약을 맺은 항공기 회사에 생산물량의 36%를 하청업체에 배정하도록 권고하기도 합니다.7) 위에서 언급한 L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항공기 하청생산에 참여하는 기업이 급증합니다. 너필드Nuffield 그룹은 빅커스 수퍼마린의 하청업체로 스핏파이어 생산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캐슬 브롬위치 근교에 월간 240대의 스핏파이어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건설에 들어갑니다. 자동차 회사인 오스틴Austin과 루츠Rootes는 폭격기 동체 생산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루츠, 다임러, 스탠다드, 로버 등의 자동차 회사는 브리스톨 허큘리스 엔진 생산에도 참여했습니다.8) 이외에도 수많은 기계 관련 기업들이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항공기 생산에 참여합니다. 항공산업계 외부에서 새로운 사업자들이 나타나면서 1937년 이후 항공기 생산 계획은 탄력을 받습니다. 특히 조선업계의 항공기 생산 참여는 큰 도움을 줍니다. 예를들어 웨스트랜드Westland는 조선기업인 존 브라운John Brown의 투자를 받아 1938년에 재무구조를 튼실히 개선하는데 성공합니다.9) 1930년대 영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의 항공기 생산량은 다음의 표와 같습니다. 체임벌린 내각 수립 이후 영국의 항공기 생산이 급증하는 경향이 눈에 띄게 나타납니다.

표3.1930년대 주요 국가의 항공기 생산량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소련
1933
633
?
368
766
466
2,595
1934
652
?
1,968
688
437
2,595
1935
893
785
3,183
952
459
3,578
1936
1,830
890
5,112
1,181
1,141
3,578
1937
2,218
743
5,606
1,511
949
3,578
1938
2,827
1,382
5,235
3,201
4,800
7,500
1939
7,940
3,163
8,295
4,467
2,195
10,383
[G. C. Peden, Arms, Economics and British Strategy: From Dreadnoughts to Hydrogen Bombs(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p.138 표.3.5.]

또한 항공기 생산을 뒷받침할 기간 산업에 대한 투자도 증대합니다. 영국 정부는 1938년 말 알루미늄 판(Sheet와 Strip 포함) 생산량을 연간 2만 톤에서 3만톤으로 늘리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 봄이 되어 위기가 고조되자 영국의 전체 경금속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는 계획도 수립됩니다.10)

뮌헨 사태는 영국 공군의 재무장을 더욱 가속하는 계기가 됩니다. 당시 영국 정부와 군부는 독일 공군의 전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군력 강화는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1938년 9월 기준으로 영국 전투기사령부Fighter Command 예하 부대는 총 29개 중대에 전투기 406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중 신형항공기는 허리케인 5개 중대(70대)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허리케인은 배치 초기라서 아직 원활한 운용이 힘들었습니다. 15,0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는 기관총 사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죠. 이때까지도 전투기사령부의 주력은 건틀렛과 글래디에이터 같은 구형 복엽기였습니다. 또한 전투기 조종사 2,500명 중 즉시 작전이 가능한 인원은 고작 200명으로, 나머지 인력은 추가로 훈련을 더 해야 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11)  게다가 예비 기체 확보량도 충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전쟁 발발시 예상되는 소모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 75%의 예비기체를 확보하고 있어야 했지만 실제 예비 기체는 30% 미만에 불과했습니다.12)

표4. 1938년 9월 영국 공군 전투기 사령부 전력 현황
기종
중대 수
보유 기체
예비 기체
허리케인
5
70
23
글래디에이터
5
70
40
건틀렛
9
126
33
데몬
7
98
53
퓨리
3
42
11
총계
29
406
106
[T.C.G. James, The Growth of Fighter Command 1936-1940(Routledge, 2014), p.45]

전쟁의 징후가 보이는데도 전투기를 포함한 공군 전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영국 정부는 신형 항공기와 조종사를 대량으로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입니다. 영국 공군본부는 뮌헨 사태에 직면해 1939년 4월까지 허리케인 270대, 스핏파이어 130대를 포함해 총 400대의 신형 전투기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웁니다.13) 영국 항공성은 1938년말 전시생산기획국DPWP, Directorate of Planning of War Production을 새로 설치해 전시 항공기 생산 기획을 총괄하도록 하는 등 전시에 대비한 항공기 생산 태세를 갖추어 나갑니다.14) 전쟁 위기에 직면해 공군력 증강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결과 1939년 상반기 영국 공군의 항공기 도입은 계획량을 초과하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전투기 생산도 급증해서 1939년 4월 1일까지 생산된 허리케인은 315대, 스핏파이어는 130대에 달했습니다.15) 전년도 가을에 수립한 계획 목표치를 조금 상회한 수준을 달성한 겁니다.

표5. 1939년 상반기 영국 공군의 항공기 도입량
계획량
실제도입량
1월
425
445
2월
452
579
3월
504
712
4월
543
364
5월
594
702
6월
637
681
총 계
3,155
3,483

써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대충 우겨넣으니 좀 이상한 글이 됐습니다.^^


1) G. C. Peden, Arms, Economics and British Strategy: From Dreadnoughts to Hydrogen Bombs(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pp.131~132.
4) Ian M. Philpott, The Royal Air Force: An Encyclopedia of the Inter War Years Vol.2: Rearmament 1930 to 1939, (Pen and Sword, 2008, Kindle Edition) Location 1583-1599
5) Postan, Ibid., p.18.
6) Philpott, Ibid., Location 2416-2418.
7)  Peden, Ibid., p.139.
8)  Sebastian Ritchie, Industry and Air Power: The Expansion of British Aircraft Production, 1935~1941(Routledge, 1997), pp.59~60.
9) Ritchie, Ibid., p.188.
10) Ritchie, Ibid., p.66.
11) T.C.G. James, The Growth of Fighter Command 1936-1940(Routledge, 2014), pp.43~45; Philpott, Ibid., Location 3313-3321.
12) James,  Ibid., pp.45~46.
13) James,  Ibid., p.50.
14) Postan, Ibid., p.67.
15) Ritchie, Ibid., p.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