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6일 월요일

Wolfram von Richthofen : Master of the German Air War

독일공군에 관한 책은 세기 힘들정도로 많지만 독일공군의 장군을 다룬 평전은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저작으로는 악명높은 데이빗 어빙David Irving이 집필한 독일공군원수 밀히Erhard Milch의 전기인 The Rise and Fall of the Luftwaffe : The Life of Field Marshal Erhard Milch 정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2008년에 출간된 제임스 코럼James S. Corum의 리히토펜 전기, Wolfram von Richthofen : Master of the German Air War는 독일공군 장성을 주제로 삼은 보기 드문 저작입니다. 제임스 코럼은 독일공군의 창설에서 프랑스전역 까지를 다룬 The Luftwaffe: Creating the Operational Air War, 1918-1940의 저자로서 독일공군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제임스 코럼은 기존의 저작에서도 리히토펜의 역할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는데 결국에는 리히토펜을 독립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확대했습니다. 그 결과물인 이 전기는 제 기준에서 본다면 상당히 좋은 저작이라고 생각됩니다. 보기 드문 독일공군 장성에 대한 전기일 뿐만아니라 상당히 균형이 잡혀있으며 독일공군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는 저작입니다.

먼저 리히토펜에 대한 군사적인 측면의 서술을 살펴보지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코럼은 기존의 연구에서 독일공군 내에서 리히토펜의 역할에 대해 다룬바있습니다. 군인으로서 리히토펜은 독일공군의 교리와 조직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개척자이자 유능한 야전지휘관으로 요약됩니다. 스페인내전에서 보여준 탁월한 지휘능력과 현대적인 공지협동작전의 기틀을 확립한 것 만으로도 리히토펜의 군사적 능력은 높게 평가받을 만 합니다. 저자는 2차대전 초기 리히토펜이 승승장구하면서 항공사단장에서 항공군단장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공군원수로 진급하여 항공군을 지휘하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합니다. 또한 스페인내전과 2차대전 기간 중 보여준 탁월한 군사외교가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리히토펜은 스페인내전 당시 부터 탁월한 정치감각을 보여줬으며 2차대전 발발 뒤에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 군사외교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동맹국과의 관계가 원할하지 못했던 독일에서 리히토펜과 같은 인물은 독특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리히토펜의 성공을 단순히 그의 능력만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탁월한 군사사가 답게 리히토펜이 참여한 각 전역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농업국가로서 근대적인 공군을 건설할 능력이 부족했던 폴란드, 규모는 컸으나 근대적인 항공전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했던 프랑스와 소련 공군에 대한 서술은 독일공군이 어떻게 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리히토펜이 살았던 시대와 그가 몸담았던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독일이 소모전에 말려들어가면서 서서히 패배로 치닫는 과정에서는 독일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영국본토항공전에서 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정보력의 부족, 그리고 독소전쟁으로 이어지는 거시적인 전략의 결여로 인한 방향성 상실은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독일육군과 마찬가지로 작전 단위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독일공군이 잘못된 전략으로 소모되는 과정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독소전쟁에서 리히토펜의 제8항공군단이 운용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독일공군이 능력이상의 임무를 담당하면서 서서히 붕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독일공군이 소모전으로 붕괴되는 모습은 리히토펜이 마지막으로 지휘한 지중해전역에서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리히토펜이 1940년 공군소장의 계급으로 항공사단을 지휘했을 때 1943년에 공군원수의 계급으로 항공군을 지휘했을 때 보다 더 많은 항공기를 지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전략의 결여로 인한 소모전의 결과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이 저작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데이빗 어빙의 밀히 전기가 독일측의 시각을 강하게 반영해 우호적인 논조로 씌여졌다면 코럼의 리히토펜 전기는 서술대상의 과오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스페인내전 당시 게르니카 폭격에 대한 서술에서 이 점이 두드러집니다. 코럼은 케르니카 폭격은 민간인을 목표로 한 ‘테러폭격’이 아니었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간인 피해도 과장된 것임을 지적하지만 동시에 리히토펜은 군사적인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인으로 스페인 민간인의 희생에는 무관심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아마 어빙과 같이 독일측에 우호적인 저자가 같은 내용을 서술했다면 게르니카 폭격이 민간인에 대한 테러공격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리히토펜에 면죄부를 주려 했을 것 입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히틀러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저자는 리히토펜이 다른 귀족 출신들과 마찬가지로 바이마르 공화국체제 보다는 나치즘에 우호적이었으며 또한 히틀러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음을 지적합니다. 코럼은 1944년 7월 20일의 쿠데타에 보여준 태도를 통해 완고한 보수주의자로서의 리히토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리히토펜이 히틀러를 지지한 동시에 히틀러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서 나치체제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비단 히틀러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프로이센 군사귀족으로서의 보수성에 대한 서술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리히토펜의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타국에 대한 우월감은 그런 사례의 하나입니다. 저자는 리히토펜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서 리히토펜을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오류들이 있어 다소 아쉽기는 합니다. 특히 군사용어나 인명의 오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 입니다. 코럼은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를 계속해서 ‘폰 파울루스’라고 적고 있는데 코럼 같은 군사사가가 이런 실수를 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육군이나 소련군의 부대명칭을 표기는 데 있어서도 사소한 오류가 몇개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몇가지 오류에도 불구하고 리히토펜 전기는 매우 훌륭한 저작으로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 입니다.

댓글 4개:

  1. 어린양님같은 분들이 좋은 원서를 인터넷을 통해 국내에 소개시켜주시지만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는 경우는 적으니....
    그렇게 번역을 기다리다 시간이 흘러가는게 안타까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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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도 80년대에 비하면 외국서적 구하기가 월등히 쉬워졌으니 다행 아니겠습니까. 인터넷을 통해서 사전정보도 더 많이 접할 수 있고요.

      국내의 도서시장이 작다보니 재미있는 책들이 한국어로 소개되지 못하는 점은 저도 매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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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위장효과5:56 오후

    일단 초대에 감사드리고!!!

    볼프람 폰 리히토펜이라...중요하면서도 잘 안 알려진-대전에 관심있는 밀덕이라면 누구나 다 알지만^^- 인물에 대한 책이군요. 사촌형과 더불어 1차대전때 공중전 에이스로도 이름날렸던 인물인데 새로운 조류에 대해서 어떻게 눈을 떴고 전술의 기초를 다져나갔는지 그거 참 흥미롭습니다.
    (문제는 이노무 영어 울렁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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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의아니게 비공개로 운영하게 돼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겠네요. 개인적으로 이런 폐쇄적인 방식을 싫어하는데 오프라인에서 약간 곤란한 일을 겪고 나니 어쩔수 없게 됐습니다.

      말씀하신 부분과 관련해서는 스페인내전 시기의 경험이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2차대전 발발 초기 독일과 연합국을 가른 가장 큰 차이가 실전경험의 유무였으니까요. 코럼은 통신과 근접항공지원, 전략폭격에 대한 사상, 대공포 부대의 지상전 운용, 공군의 보급지원 문제 등 다양한 부문에서 이루어진 발전을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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