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2일 수요일

How the War was won (Phillips Payson O'Brien 저)

2015년에 나온 필립 페이슨 오브라이언의 How the War was won은 꽤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브라이언의 핵심 주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해전과 항공전에서 결정된 것이며, 동부전선은 인명손실이란 측면을 제외하면 연합군의 승리에 부차적인 존재였다는 겁니다.

오브라이언이 중요시 하는 것은 '인명손실' 보다 경제력(자본 및 자원 소비, 공업생산) 입니다. 동부전선의 지상전은 투입되는 인명이 많기 때문에 거대해 보이지만, 경제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예를들어 쿠르스크 전투와 그 이후 소련군의 반격에서 독일군이 입은 손실을 독일의 공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환산하면 소수점 단위의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고 단언합니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소련의 역할이 과대평가됐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전쟁 중 소련에 대해 잔인할 정도로 비판적입니다. 특히 소련이 해전과 항공전에 기여한것은 정말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저자의 냉소적인 서술에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오브라이언은 일본 육군항공대와 해군항공대가 소련 공군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우수했으며 전쟁 수행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소련 공군에 대해서는 전체 항공기 손실의 40%를 비전투 손실로 잃어버리는 수준낮은 군대라고 가차없이 비난합니다. 독일 공군이 압도적인 숫적 열세에서도 소련 공군과 대등하게 싸운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인지라 오브라이언의 소련공군 비판을 반박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브라이언은 He 111이나 Ju 87 같은 구식 기체가 전쟁말기까지도 동부전선에서 쌩쌩하게 활약한 사실을 예로 들며 소련공군의 열등함을 조롱합니다. 실질적으로 한 일이 없는 소련 해군에 대한 서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책 자체가 공해전을 중시하다 보니 일본에 대한 평가는 엄청나게 우호적입니다. 저자는 일본이 동맹국의 실질적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도 1944년까지 공업생산을 크게 증대시킨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소련은 렌드 리스를 통해 방대한 기술, 자원 지원을 받았지만 일본은 거의 자체적인 자원만으로 미국과 공해전을 수행할 수 있는 공업생산을 했다는 겁니다. 소련이 일본보다 수십배 많은 전차를 생산했지만 지상장비 생산은 일본이 건조한 전함과 항공모함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것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합니다.

오브라이언은 미국과 '영국'의 공해전이 전쟁 승리의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연구들이 비효율적이고 잔인하기만 했다고 비난하는 영국공군의 야간 전략폭격도 독일의 전시 산업생산을 붕괴시키는데 일조한 성공이라고 높게 평가합니다. 1944년 미육군항공대의 성공적인 전략폭격에 대한 평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독전에서도 대서양 해전이 독소전쟁 보다 더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찝찝하게 보는 책입니다. 어찌보면 러시아를 폄하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가득찬 반동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산업화된 전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는 점에서 세계대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댓글 7개:

  1. 킨들로도 구매가 가능하군요. 추천 감사드립니다.

    음... 개인적으로도 동부전선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합니다만, 맨파워를 경시하는건 좀 오류가 아닐까 싶네요.
    영국 항공전에서 영국 조종사 부족이나 대전 후반 독일과 일본의 만성적인 인력부족, 성비가 무너질 정도로 갈려나간 소련 남성인구 등을 생각하면 맨파워는 체감 자체는 공업생산보다 다소 늦게 되더라도 2차 대전을 볼 때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은데요.

    답글삭제
    답글
    1. 이 책의 소련 공군 비판은 99.9% 동의합니다. ㅎㅎ

      삭제
    2. 그거 때문에 샀어요 ㅋㅋ.

      삭제
  2. 독소전빠인 제 입장에선 좀 받아드리기 힘드네요.
    근데 바그라티온 작전에 관한 책을 좀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선 잘 모르겠어서요.....

    답글삭제
    답글
    1. 어떤 책을 원하시는건데요? 추천의 기준이 뭔가요?

      삭제
    2. 작전의 준비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독일군의 대응등을 상세하게 서술한 책이였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지도도 많은 것이 좋고요^^
      제가 독일어를 못 하기 때문에 독일어 책은 빼고요...
      예를 들면 글렌츠옹의 스탈린그라드 삼부작같은 것이요

      삭제
    3. 바그라티온 작전이라면 그리 만족할 만한 책이 드뭅니다.

      스티븐 잘로가가 예전에 오스프리 캠페인 시리즈로 썼던 얇팍한 Bagration 1944 정도가 근접하겠군요. 정리는 잘 된 편이지만 분량이 적습니다.

      Walter S. Dunn의 Soviet Blitzkrieg은 잘로가의 얇은 책 보다는 나은 책 입니다. 출판사를 바꿔가며 간행됐기 때문에 싸게 구할수 있습니다.

      그 밖에 소련군 총참모부 작전 연구가 두 권 번역돼 있죠. 소련군 움직임을 읽는데는 아주 좋습니다. Frank Cass의 Belorussia 1944와 헬리온 출판사의 Operation Bagration가 있습니다. 두 권은 각기 다른 보고서를 번역한 것인데 여유가 있으면 두권 다 있는게 좋습니다. 전자는 소련군의 작전 준비에 대한 서술이 후자 보다 조금 개략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쪽 시각이라면 영어로 번역된 롤프 힌체의 바그라티온 작전 2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 East Front Drama 1944가 있는데 이 책은 민스크 함락을 전후해 퇴각하는 독일군의 작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작전 초기 이야기는 없습니다. 1부는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영어로 번역된 게르트 니폴트의 Battle for White Russia는 독일쪽의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 1980년대 말에 나온 책이라 소련쪽 움직임은 두리뭉실합니다. 무엇보다 헌책 구하기도 어려운 편이고 가격대비 효용이 꽝입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