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1일 일요일

14-15세기 잉글랜드와 기타 몇몇 동네 군대에서 보병의 규모(재탕!)

또 재탕이다.. 헐..

이것 저것 쓰긴 했는데 글의 요지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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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서유럽의 군대하면 기사를 떠올리는게 일반적이지만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의외로 보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부사관의 어원이 되기도 한 Sergens가 대표적인데 12세기 후반 라틴왕국의 기록을 보면 라틴왕국의 각 도시들은 국왕의 소집명령이 떨어지면 총 5,025명의 Sergens를 동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간을 한참 건너서...

14세기의 잉글랜드 군대도 보병의 비중이 꽤 높았던 군대로 보인다.

1314년 배녹번(Bannockburn)전투 당시 잉글랜드군의 병력 구성을 보면 Men at Arms는 2,500명에 보병이 약 15,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백년전쟁 당시의 잉글랜드군은 기사를 포함한 기병의 비율이 프랑스군 보다 낮은 편이다. 이것은 스코틀랜드 전쟁이후 잉글랜드가 무장을 잘 갖춘 보병을 많이 확보하려 노력한 것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백년전쟁이 시작될 무렵의 병종 구성을 보면 그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339년 2월의 소집 명부에 기록된 잉글랜드 군대의 병력은 아래와 같았다고 한다.

[Men at Arms / 기마보병(Armati) / 궁수(Archer)]

Yorkshire 200 / 500 / 500
Glouchestershire 63 / 250 / 250
Worcestershire 30 / 120 / 120
Staffordshire 55 / 220 / 220
Shropshire 55 / 220 / 220
Herefordshire 30 / 120 / 120
Oxfordshire 20 / 80 / 80
Berkshire 15 / 60 / 60
Wiltshire 35 / 140 / 140
Devonshire 30 / 120 / 120
Cornwall 25 / 100 / 100
Hampshire 30 / 120 / 120
Somersetshire 35 /160 / 160
Dorsetshire 35 /160 / 160
Sussex 50 / 200 / 200
Surrey 20 / 80 / 80
Kent 35 / 140 / 140
Essex 35 / 160 / 160
Hertfordshire 18 / 70 / 70
Middlesex 10 / 40 / 40
Cambridgeshire 18 / 70 / 70
Huntingdonshire 18 / 70 / 70
Buckinghamshire 20 / 80 / 80
Bedfordshire 20 / 90 / 90
Lancashire 50 / 300 / 300
Norfolk 40 / 160 / 160
Suffolk 25 / 100 / 100
Northumberland 70 / 250 / 250
Westmoreland 25 / 150 / 150
Cumberland 50 / 200 / 200
Lincornshire 80 / 350 / 350
Nottinghamshire 35 / 150 / 150
Derbyshire 35 / 150 / 150
Leicestershire 25 / 120 / 120
Warwickshire 30 / 120 / 120
Northamptonshire 35 / 160 / 160
Rutland 10 / 40 / 40
총 계 : 1,407 / 5,600 / 5,600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류상의 소집 명부였던 것 같다.

백년전쟁 초기의 전투를 보면 아직 Men at Arms의 숫자가 잉글랜드 내에서 벌인 전투 보다는 많은 편이다. 아마도 기사가 많은 프랑스와 전쟁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백년 전쟁 초기의 깔레 포위전 당시의 기록을 보면 Men at Arms만 4,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물론 이 기록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1359년에 에드워드 3세가 군대를 소집했을 때의 기록에도 Men at Arms의 숫자는 꽤 많은데 기사 700명을 포함해서 3,000명에 달한다.

그런데 왜 14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갑자기 Men at Arms의 비율이 급격히 떨어졌는가? 많은 영국 중세사가들은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잉글랜드 국왕들이 비용을 많이 잡아 먹는 Men at Arms를 많이 유지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것이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

1322년 당시의 기록을 보면 보병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다음과 같았다.

중무장 보병 : 일 4 펜스
경무장 보병 : 일 2 펜스

그리고 14세기 후반 말을 가진 궁수들의 일당은 일 6펜스 였다.

그렇다면 Men at Arms는 얼마나 들어갔을까? 1324년 당시의 예를 하나 들어 보자.

William de Norwell의 기사들에게 지급된 비용

Men at Arms : 일당 2 실링

1 실링이 12 펜스니까 일반 Men at Arms는 중무장 보병에 비해 일당이 여섯배, 말을 가진 궁수에 비해 네 배는는 더 됐다는 이야기다. 백년 전쟁 당시의 여러 전투들을 본다면 비용대 효과면서 궁수가 상당히 쓸만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14세기 후반부터 Men at Arms 대 궁수의 비율은 1 대 3 정도가 되기 시작했다. Andrew Ayton은 1380~90년대에 잉글랜드 군대에서 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시기 프랑스 군대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15세기로 들어가면서 궁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다. Anne Curry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15세기 전반기 프랑스로 파병된 잉글랜드 군대의 병종 구성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1428년 : Men at Arms 444명, 궁수 2250명
1437년 : Men at Arms 299명, 궁수 1777명
1441년 : Men at Arms 801명, 궁수 2997명
1443년 : Men at Arms 600명, 궁수 3949명
1449년 : Men at Arms 55명, 궁수 508명
1450년 : Men at Arms 255명, 궁수 2380명

보통 1 대 5에서 심한 경우는 1 대 9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15세기에 들어가면 보병 비율의 증가는 잉글랜드 만의 것이 아니라 서유럽 전체에서 보편화 되었다. 초보적인 화기의 등장과 보병 전술의 발달로 서유럽 각국에서 보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병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다. 카스티야 왕국이 15세기 말 재정복 전쟁을 벌일 당시 병력 규모는 다음과 같았다.

1485년 기병 11,000명 보병 25,000명 계 36,000명
1489년 기병 13,000명 보병 40,000명 계 53,000명

16세기로 넘어가면 사실상 기병이 보조적인 위치로 확실하게 굴러 떨어지고 보병이 전장의 주역이 된다. 물론 그 싹은 몇 백년 전 부터 이미 나타난 셈 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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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의 책들을 대충 베껴서 정리한 것이다.

Anne Curry and Michael Hugh(ed), Arms, Armies and Fortifications in the Hundred Years War.
John France, Western Warfare in the Age of the Crusades 1000~1300
J. R. Hale, War and Society in Renaissance Europe 1450~1620
Maurice Keen(ed), Medieval Warfear : A History
Charles Oman, A History of the Art of War in the Middle Ages
Michael Prestwich, Armies and Warfare in the Middle Ages : The English Exper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