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20일 화요일

주말에 헤어초크 특별전을 보고나서...

내가 헤어초크(Wener Herzog)의 영화를 좋아하는 건 영화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쓴 영화에 대한 글들을 몇 번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가 영화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 세상 고통을 저 혼자 다 떠안은 냥 인상 박박쓰는 주인공, 조금 통통하고 잘 벗는 여주인공, 신나게 때려부수기, 짜증 안 날 정도로만 욕하기 정도다.
아마도 나처럼 영화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인간이 헤어초크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진지한 영화팬들은 분노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제 별 영양가 없는 본론.

이번 주 역시 입에 풀칠 하기 위해 무성의 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던 중 일주일이 지나갔다. 토요일에는 새벽 5시 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네 하고 꼴값 떨다가 철지난 옛날 게임을 때리고 잤다.

눈을 떠 보니 오후 1시 26분.

대충 빨래를 하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해야할 일이 있지만 주말에 어디 일이 되나…) 웹사이트를 뒤지던 중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헤어초크 특별전을 한다길래 얼씨구나 하고 당장 나갔다.

주말에 본 것은 1987년 작 Cobra Verde와 1972년 작 Aguirre, der Zorn Gottes, 그리고 다큐멘터리인 1999년 작 Mein Liebster Feind 였다.

세 물건의 공통점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클라우스 킨스키다.

클라우스 킨스키는 꽤나 흉악한 인상을 자랑하며 그의 딸내미가 나스탸샤 킨스키라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의 조건을 상당히 충족 시키고 있다. 핫.

Cobra Verde와 Aquirre는 둘 다 킨스키가 맡은 역할이 지독하게 찝찝한 최후를 맞는 영화다.
특히 Aquirre의 마지막 장면은 나의 기준에서 볼 때 100점 만점에 99점의 거의 완벽한 엔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멋진 장면이다.
아마존 강을 떠 내려가는 시체와 원숭이로 뒤덮인 얼기 설기 엮인 엉성한 뗏목 위에서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한 남자의 모습이라니! 우오…. 생각만 해도 죽음이다.

Cobra Verde의 마지막 장면도 멋지긴 하다. 물론 Aquirre에는 비교하기 어려우나.

바다로 나가기 위해 보트를 끌다가 지쳐 파도에 쓰러지는 킨스키의 모습은 정말 멋지다는 표현 말고는 쓸 만한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우울한 장면들이 멋져 보이는 건 킨스키의 찝찝한 인상에 90% 이상 의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우울하게 똥 폼 잡는 영화는 굉장히 많지만 사람의 짜증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멋지다는 생각을 주는 영화는 매우 드문데 위의 두 영화는 그런 드문 예에 속한다.
물론 주연 배우가 제법 그럴싸하게 무게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고 보니 헤어초크의 다큐멘터리를 전부 모은 DVD 세트가 나온 모양이다. 다음 월급이 나오면 지를지 말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겠다.

마지막으로. 위키피디아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