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4일 월요일

귄터 그라스의 인터뷰

귄터 그라스가 Frankfurter Allgemeiner Zeitung을 통해 자신이 전쟁 말기에 무장친위대 대원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세상이 조금 시끄러워졌다.

이게 8월 11일자 기사이니 한참 뒷북은 뒷북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귄터 그라스가 무장친위대 대원이었다는 이야기 가지고 시끄러운게 많으니 한번 올려본다.

번역이 엉망이고 문장이 투박해서 읽으시는 분들의 양해를 먼저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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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60년이 지나서야 침묵을 깼는가?

2006년 8월 11일

귄터 그라스가 60년 만에 최초로 자신이 무장 친위대(Waffen SS) 대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15세에 잠수함 승무원에 지원했었으며 17세에는 노동봉사단으로 “소집(einberufen)” 됐다가 무장친위대 “프룬츠베르크” 사단으로 입대하게 됐다. 그라스는 9월에 출간될 자신의 회고록 “양파 껍질을 벗길 때(Beim Hauten der Zwiebel)”에서 단치히에서 보낸 유년기와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군인으로 보낸 전쟁 막바지 기간, 그리고 포로 시기와 전쟁 직후의 혼란기에 대해 이야기 할 예정이다.

-회고록의 제목이 “양파 껍질을 벗길 때” 입니다. 여기서 양파란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이번 회고록을 어떤 식으로 쓸 것인지 결정해야 했는데 이건 매우 어려운 일 이었습니다. 우리의 기억과 자화상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왜곡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요.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대해 변명하고, 미화하며, 하나의 일화로 치부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진실성에 대한 의문은 모든 문학적 회고록이 안고 있는 문제인데 나는 이런 문제들을 드러내고 밝히는 형식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양파라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마치 양파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껍질이 나오 듯 글을 쓸 때 계속해서 문장이 이어지면 그 의미가 다소 명확하고 읽을 만 해 지지만 결국 생동감은 잃게 됩니다.

-회고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나는 회고록에 대해 이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회고록을 쓰기에 앞서 시작의 어려움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회고록들은 독자들이 한 가지 사실이 그랬고 다른 것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고 합니다. 나에게 있어 형식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서술하고 싶습니다.

-이번 회고록은 유년기부터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 대신 전쟁이 발발한 열 두 살 되던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차 세계대전은 요점(Drehpunkt)이자 핵심(Angelpunkt) 입니다. 전쟁의 발발로 제 가족도 외부의 문제에 휩쓸리게 됐기 때문에 2차 대전은 제 유년기의 끝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삼촌은 폴란드의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연락이 끊어졌고 다시는 사촌들과 만날 수 없게 됐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즉결재판으로 처형 됐다고 하더군요.
제 어머니의 외가인 카슈브계(Kaschubish) 친척들은 전쟁 이전만 해도 자주 왕래가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처음으로 외할머니가 우리를 찿아 오셨는데 농장에서 어떤 물건을 가져 오셨고 우리집에서 석유를 얻어 가셨죠. 물자가 부족해져서 외할머니가 계신 곳에서는 석유를 구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가족간의 유대는 더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제 부모님은 나중에는 현실에 맞춰 그때 그때의 실정에 맞춰 생활해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기억과 성향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찾고 있습니다. 회고록을 쓰는데 도움이 된 가족들의 자료는 없습니까?

저는 피난민 꼬마(Flüchtlingskind) – 저는 이제 80대를 바라보는 나이 이지만 아직도 스스로를 이렇게 부릅니다 – 이기 때문에 그런 물건이 없습니다. 제 책에서 보덴제, 아니면 뉘른베르크 출신인 친구들이 여전히 졸업증명서와 그들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지금 남은 것은 제 어머니가 보관하신 사진 몇 장이 고작 입니다. 또 저는 나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선생님이 전쟁 중 잃어 버린 유년기의 물건 중에는 처음으로 쓴 소설의 원고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그 소설은 신성로마제국의 제위가 공석이었던 13세기의 대공위시대(Interregnums)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 이었습니다. 그 소설은 중세의 비밀 재판,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몰락, 죽음과 혼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소설에서 제가 창조한 가공의 인물들은 1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모두 죽습니다. 다시는 등장하지 않지요. 그렇지만 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뒤로 등장인물들을 효율적으로 쓰게 됐습니다. 툴라 포크립케(Tulla Pokriefke)와 오스카 마체라트(Oskar Matzerath)는 처음 등장한 소설에서도 살아 남고 그 뒤에 쓴 소설에도 등장하지요.

-선생님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쉬라흐(Baldur von Schirachs)의 진술을 듣고 나서야 독일의 대량 학살에 대해 알게 됐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최근 처음으로 무장친위대 대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왜 지금 그 사실을 밝히시는 것 입니까?

무장친위대 대원이었다는 사실은 언제나 저를 짓눌렀습니다. 이 시기에 대해 그 동안 침묵했던 이유는 이번에 나올 회고록에 설명해 놓았습니다. 드디어 털어 놓을 때가 된 것이지요...

-무장친위대에 배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입대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아니면 친위대로 징집된다는 명령이 따로 있었습니까?

저 자신도 제가 어떻게 친위대로 징집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소집 명령서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제가 처음 드레스덴에 도착했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됐을까요? 저는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노동봉사단에 소속돼 있었을 때 동료들과 무장친위대에 입대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은 없습니까? 그시기에 소년들이 모이면 그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회고록에도 적어 놨는데 당시 소년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칼을 연마하는 것 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이것 뿐 이었습니다. 저는 황달에 걸렸었는데 한 2주 정도 병을 앓았습니다. 황달이 나은 뒤에는 다시 칼 가는 것을 했고 낡은 도구들로 약간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기록했습니다.

-그것을 꼭 기록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느 누구도 선생님에게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스스로 원해서 한 것 입니다.

-왜 자원해서 군에 입대하려 했습니까?

나는 그저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답답함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이런 것들을 끝내고 싶었기 때문에 군에 자원해서 입대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억에 남는 일 이었습니다. 군에 지원했을 때 저는 15세 였는데 지원 이후의 과정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같은 나이 또래들이 많이 있었는데 노동 봉사단으로 배치됐고 일년 정도 지난 뒤 갑자기 전출 명령서를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마 드레스덴에 도착해서야 우리가 무장 친위대로 가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셨습니까?

그 당시에 말인가요? 아닙니다. 나중에서야 친위대에 입대한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지게 됐습니다. 나는 이후 항상 의문을 가지게 됐습니다. 나는 그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없었는가?

-선생님은 같은 세대 중에서는 처음으로 과거의 과오를 밝히고 독일 역사의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다뤘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위해 비판을 하셨던 것 입니까?

네. 오늘날 독일에는 나치에 저항했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히틀러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을까요?
50년 전으로 되돌아 가서 내가 처음 양철북을 구상하게 된 발단을 알려주고 싶군요. 무조건 항복이 아니라 독일이 붕괴된 1945년 이전에 어떤 일이 일어 났었습니까?
독일의 상황은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불쌍한 독일인들은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의 유혹에 빠져들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 이었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이 모든 것을 생생히 체험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열광과 감격에 휩싸인 채로 말입니다. 그리고 또 저 역시 유혹에 빠진 것 입니다.
저는 양철북과 곧 출간될 제 회고록을 통해 이 열광과 이것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