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6일 토요일

세 달 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세 달 만에 극장에 갔습니다.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극장에 가는 편이니 한참 만에 간 셈 입니다.

오늘은 두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한 편은 시사회 부터 호평이 줄을 이었던 '추격자'고 다른 한 편은 뭔가 요상한 제목으로 개봉한 '명장'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추격자는 평론가들의 호평이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수작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라고 하니 감독이라는 양반은 내공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비슷하게 정신세계가 기묘한 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룬 '세븐데이즈'는 도입부가 지나치게 요란해서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추격자'는 약간의 추격 장면을 제외하면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점이 신선했습니다.(물론 느리다고 해서 지루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미 스포일러가 충분히 돌고 있으니 흥미를 잃은 분들도 더러 계실 듯 한데 이야기는 평범(?) 하지만 그걸 끌고 나가는 방식이 대단히 훌륭합니다.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진행이 정신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말 그대로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진행 방식과 함께 인물 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연인 김윤석은 이런 이야기에 제법 어울리는 인간쓰레기 부류를 연기하고 있는데 이 인물은 사건이 진행되면서 인간성이 개선됩니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잘못 묘사하면 굉장히 유치해져서 영화를 말아먹을 공산이 큰데 다행히도 그런 참사를 피했을 뿐 아니라 상당히 설득력 있게 묘사됐습니다. 연쇄살인범의 묘사도 좋았지만 주연배우 만큼 인상 깊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 잔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사지절단 피칠갑 영화가 될 수 있었지만 그랬다면 역효과가 났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말이 매우 우울한데 허접한 해피엔딩 보다는 바람직 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명장'은 제목이 다소 요상해 지긴 했습니다만 좋은 영화였습니다. '영웅' 이래로 허우대만 그럴싸한 중국제 '대작' 영화들이 계속해서 신경질을 나게 했었는데 명장은 다행히도 물량을 잘 활용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의형제의 의리에 목숨을 거는 바른생활 마초들이라 정은 가지 않더군요. 이연걸은 '영웅'에서 대의를 위한답시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니 '명장'에서는 대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도륙하고 의형제까지 죽입니다. 중국인들이 대작영화에서 '대의'를 뺀다면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