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6일 토요일

회해전역 패배에 대한 장개석의 반응

장경국이 쓴 장개석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회해전역이 종결될 무렵 장개석의 반응을 서술한 부분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회해전역은 국민당 직계 군이 대규모로 괴멸되어 남경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게 된 계기를 만든 중요한 전역인데 장개석이 그 당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는 꽤 궁금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장경국의 주장에 따르면 의외로 담담했던 모양이더군요. 과연 실제로 그랬을지는 조금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해당 부분을 발췌해 봅니다.

구청천(邱淸泉) 사령관이 오늘(1월 9일) 전쟁터에서 전사 했다. 지난해 11월 22일 황백도(黃伯鞱) 장군이 서방회전에서 전사한 이래로 우리 군의 전세는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 두율명(杜聿明) 부대 역시 근일 정세가 몹시 위급한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 군이 서주에 저장해 두었던 화학포탄을 미리 폐기하지 못한 관계로 공산군이 이것을 이용하여 우리 진지를 파괴하고 많은 장병들을 참살시켰으니 더욱 통분할 일이다. 영성(永城)과 숙현(宿縣) 사이의 청룡집(靑龍集)과 진관장(陳官莊) 지구의 두율명 부대는 이미 반격할 수 없는 곤경에 빠져 버렸다. 아버지는 두(杜), 구(邱) 사령관의 전보를 받고는 전국이 절망 상태임을 판단하고 그들을 데려올 비행기를 보냈다.
두율명 부대가 격파를 당한 뒤 아버지는 일기에 그때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두율명 부대가 오늘 아침 태반이 공산군에게 격멸된 모양이다. 보고에 따르면 그래도 3만 명이 진관장 서남에서 포위망을 뚫고 있다는데 무사히 탈출했는지 말할 수 없이 불안하기만 하다. 내가 여태 남들의 강압 때문에 인퇴를 할 수 없다고 버텨 온 것도 실은 이 두율명 부대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는데, 내 책임을 다 할 수 없게 되었다.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어야 하고 근심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생각하면, 한편 마음이 태연해 지기도 한다.

蔣經國 著/金學主 譯, 『풍운 80년의 나의 아버지 蔣介石』, 澈文出版社, 1976, 183~184

주력군이 붕괴되어 남경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게 되었는데 마음이 태연해 진다니(;;;) 확실히 장 총통 각하도 대인배는 대인배인 모양입니다. 장경국이 인용한 일기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장개석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궁금해지더군요.


※ 회해전역 당시 국민당군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짧은 글을 두 편 썼습니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군에 대한 약간의 잡설

회해전역 당시 국민당군의 전투서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