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6일 월요일

1973년, 붕괴 직전 캄보디아 정부군의 일화

저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부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붕괴와 공산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 마음을 사로잡혔습니다. 당시의 반공교육을 위한 책자들은 캄보디아의 학살로 대표되는 이 지역의 비극을 생생하게 묘사했고 정체모를 공포감과 함께 상상력을 자극했지요. 나이를 조금 더 먹은 뒤 군사사 서적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어린시절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접근하게 됐습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요즘도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당시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건들입니다. 뭐랄까요,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 여전히 머릿속 한 구석에 짜릿함(?!?!)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그렇습니다;;;;

오늘도 일을 하다가 딴청을 피우던 중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책을 한권 집어들고 예전에 표시해둔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 부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캄보디아 정부가 계속해서 패배하자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던 부대도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의 군사원조관계자들은 캄보디아 정부군의 7사단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1973년) 4월 초 이 사단의 예하 부대는 타케오(Takeo)성의 성도 부근에서 매복공격을 받자 공황상태에 빠져 105mm 유탄포 8문 중 5문과 트럭 40대 분의 포탄을 적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집단적인 기강해이"로 인한 사고는 더 늘어났는데 이러한 사고의 원인은 주로 정부가 병사들에게 제때 월급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5월 중순, 수백명의 병사들이 프놈펜(Phnom Penh) 북서쪽의 방어진지를 이탈해 봉급 지불을 요구하면서 수도의 중심지로 행진했다. 이 병사들은 총사령부를 향해 대로를 따라 가면서 허공에 소총을 난사해 행인들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이 병사들은 봉급을 전혀 지불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3일 동안 급식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크게 놀란 참모장교들은 즉시 병사들에게 올림픽 경기장에서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정심이 많은 대령 한명이 자신의 돈으로 몇 자루의 빵을 사서 지프에 싣고 올림픽 경기장으로 왔다.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지프에서 빵 자루를 내리자 마자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빵을 집어들고는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캄보디아군 중위 한 명이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요?"

새 정부란 미국의 요구에 의해 얼마전에 조직된 '최고 정치 위원회'를 뜻하는 것 이었다.

"나는 그들이 지금 당장 여길 와 봤으면 합니다."

캄보디아군 장교단은 더할나위 없이 무능했으며 여기에 부패하기 짝이 없었다. 크메르 정부가 미국 정부와의 공식적인 합의에 따라 "병사들의 급여에 사용할 자금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전용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방지하는것에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발표한 지 2년이 지난 뒤에 대략 4만명에서 8만명의 '유령'이 군대의 급여 명부에 올라와 있었다. 이런 유령 병사들은 한달에 최고 2백만 달러를 받았는데 이 돈은 부패한 장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미국 국방부의 한 장군은 1973년 5월 상원의 비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서투른 변명을 해야 했다.

"캄보디아 정부군 사령부는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첫 단계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원님께서 주장하신 것과 같은 부패행위, 급여 명부에 없는 사람을 집어 넣는 행위, 전투에서의 무능력함 같은 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Issacs, Arnold R. Without Honor : Defeat in Vietnam and Cambodia,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3, pp.218~219

이왕 군사사에 관심을 가질 바에는 좀 멋진(???)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텐데 하필이면 이런 암울하고 한심한 이야기가 더 솔깃하더군요. 이 책에 표시해 놓은 다른 부분들도 이와 비슷한 한심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이런 혼란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 흥미롭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