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9일 수요일

Weapons and Warfare in Renaissance Europe

번동아제님이 쓰신 군기시(軍器寺)터 발굴에 대한 글을 읽던 중 '건물지 11호'에서 조선시대의 화약이 출토되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번동아제님이 지적하신 것 처럼 이를 통해 조선시대 화약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읽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Bert S. Hall의 Weapons and Warfare in Renaissance Europe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중세말기~르네상스 시기의 군사적 발전을 '기술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인데 3장 전체를 할애해 15세기의 화약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어서 읽을 당시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생각이 난 김에 이 책에 대해서 조금 소개를 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출간한 기술사연구(Johns Hopkins Studies in the History of Technology)의 열 다섯번째 저작입니다. 몇 년전 2차대전에서 근대유럽전쟁 전반으로 관심사가 옮겨가면서 근대전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기의 전쟁에 대해 쓸만한 서적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Bert S. Hall은 중세말~르네상스 시기의 군사기술이 전쟁의 양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라면 유사한 주제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과 어떠한 차이점이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올 법 합니다. 네. 그래서 Hall은 화약 무기에 대한 기술적 분석과 전술의 변화를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약 무기의 생산을 뒷받침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분석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저자는 14세기에 공성병기로서 화약무기의 사용이 확산된 데 대해 대포의 위력뿐 아니라 1380년대를 기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한 화약의 가격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반에 걸쳐 화승총으로 대표되는 개인용 소화기가 급속히 발달하게 된 데에도 단순히 화약의 개선과 기술적인 요인만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자는 화승총의 개발과 확산이 독일과 이탈리아에 의해 주도된 데 주목하여 이 지역의 분열된 정치체제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봅니다. 즉 영국, 프랑스와 달리 작은 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치자들은 공세적인 전쟁을 치르기 보다는 자신들의 영역을 방어하는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이때문에 방어 전투에 적합한 개인용 소화기가 급속히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입니다.(이러한 주장은 초기 화승총의 운용이 야전에서도 창병과 참호의 지원을 받아 방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단순히 군사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전쟁의 변화를 고찰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중한 설명으로는 해결하기 곤란한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또한 기술적 측면에 대한 분석도 충실합니다. 15세기 화약 생산을 분석한 3장과 초기 화약무기의 탄도적 특성을 분석한 5장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장의 경우 20세기에 실시된 15~16세기 화약무기에 대한 실험 등 초기 화약무기의 기술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을 분석하여 기술적 한계가 어떻게 화약무기를 활용한 전술을 형성했는지 고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1988년 부터 1989년 사이에 오스트리아에서 실시된 실험인데 이 실험의 결과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저자는 활강식 총신과 탄두의 형태로 인한 낮은 명중율과 원거리에서의 위력 부족으로 초기의 소화기는 근거리에서 대규모 일제사격을 퍼붓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런 전술에서는 명중율 보다 발사속도가 중요해 질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총신에 강선을 파는 방식으로 명중율을 높이는 방법이 있음에도 널리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장전속도가 느려져 대규모 보병전투에는 약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이런 구성은 꽤 마음에 듭니다. 이렇게 한 시기의 전술적 변화에서 다른 시기의 전술적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면서 중간에 변화의 요인이었던 기술적 문제에 대해 별도의 장을 활용해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지는 장을 이해하는데 훨씬 편리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술적 변화와 전술적 변화를 함께 서술하는 것 보다 명료한 구성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예로 들고 있는 역사적 사례가 매우 풍부하다는 점 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영미권 학계에서 이 시기의 전쟁을 기술 할 때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어느정도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독일, 이탈리아, 보헤미아, 스페인 등 기술적, 군사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다른 지역의 사례도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후스전쟁과 이베리아 반도 재정복전쟁 말기의 화약무기 운용에 대한 부분입니다. 후스전쟁에 대한 군사적 분석은 꽤 드문편이라 읽으면서 반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대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저작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