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0일 금요일

이게 다 셔먼 때문이다

어제 패튼과 셔먼 이야기가 나온 김에...

패튼은 별종이라 치고 셔먼을 대표로 하는 미영 연합군의 전차들이 한심하다는 것은 많은 장군들이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브래들리의 경험담도 그렇고 전후 회고록을 쓴 연합군측 장군들은 한두마디라도 이 문제를 언급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쟁 중 영국군 30군단을 지휘한 호럭스(Brian Horrocks)의 회고록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아래 인용문이 포함된 장은 호럭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집필했는데 호럭스의 검토를 거쳤으니 호럭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폴란드 기갑사단장 마첵(Stanisław  Maczek) 장군은 작전에 차질을 초래한 다양한 원인들을 지적했는데 이것들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었다. 마첵 장군은 기갑부대가 좁은 회랑으로 쇄도해 들어가면서 융통성 없는 정면 공격만을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가장 위험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마첵 장군은 이 핵심적인 지구에서 독일군의 방어 체계는 계속해서 강화되었으며 애초에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종심이 깊었다고 지적했다. 나는 작전 지역 전체에 걸쳐 ‘매우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완벽하게 구축된 독일군의 참호를 찾아낼 수 있었으며 이중 많은 수가 길가에 위치해 있었으며 또한 통나무로 보강되었다’고 적었다. 폭격은 이곳과 다른 대부분의 독일군 거점에 대해 효과가 미미했다. 독일군의 진지들은 상대적으로 장애물이 적은 이 일대에 널려있는 숲, 과수원, 생울타리(보카쥬), 그리고 석조 건물들 사이에 잘 은폐되어 있었으며 독일군의 전차병과 대전차포 사수들에게 양호한 사격진지가 되었다.

마첵 장군은 연합군에게는 가벼운 크롬웰과 셔먼 전차 밖에 없다는 것이 약점이라고 지목했다.(두 전차는 각각 27톤과 30톤이었다) 이 전차들은 보다 무거운 독일군의 판터나 티거(이것들은 각각 45톤과 54~68톤 이었다) 를 격파하기 위해서는 500미터 이내로 접근해야 했는데 그 반면 티거에 탑재되었거나 야포로 쓰인 88mm는 2킬로미터 밖에서 연합군 전차들을 해치울 수 있었다. 판터의 주포와 무장도 크롬웰과 셔먼 보다 월등히 우월했으며 4호전차 정도가 비슷한 성능이었다. 그래서 연합군 전차는 독일군의 전차를 숫적으로 압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상 우세하다는 기동성 조차 형편없는 성능 때문에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토 탈라이즈(Totalize) 작전 중 폴란드군은 65대의 전차를 잃었으며 캐나다군은 그보다 더 많은 전차를 잃었다. 시몬즈(Guy Simonds, 캐나다군 2군단장) 장군은 토탈라이즈 작전이 실패한 원인이 두 기갑사단(캐나다 4기갑, 폴란드 1기갑)의 전투 경험 부족에 있다고 탓했지만, 영국에 망명해 폴란드 1기갑사단을 편성하고 훈련시키기 전에 폴란드에서 실전을 경험한 바 있는 49세의 마첵 장군은 두 기갑사단이 그들의 여건에 비해 너무나 과도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Sir Brian Horrocks, Corps Commander, (Charles Scribner’s Sons, 1977), p.43

한줄요약 - 셔먼은 숫자가 많아도 신통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