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8일 목요일

재활용 (2)

한국전쟁 직전까지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전차라던가 105mm M2 같은 사단 포병급 이상의 화포는 전혀 지원되지 않았지요.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중장비의 지원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105mm M2나 107mm 중박격포가 원조되긴 했지만 사단의 편제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라서 한국전쟁의 나머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군의 보병사단은 사단 외부에서 배속되는 부대를 제외하면 사단 당 1개 대대의 포병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도 한동안 한국군의 전투력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장비의 지원은 전쟁 이후에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미국이 계속해서 한국군 보병사단을 경장비 사단 수준으로 묶어둔 덕분에 한국전쟁 내내 한국군 보병사단을은 부족한 화력으로 싸워야 했지요.

이 점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측의 불만요인이었습니다. 이승만이 다양한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군사원조의 증대를 요청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실제로 국민방위군 창설 초기에는 미국이 국민방위군에 대한 장비 제공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캐나다를 상대로 소총구매를 추진한 일 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미국이 중장비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자 이승만은 좀 색다른 방안을 강구했던 것 같습니다. 이승만은 1951년 2월 10일 임병직(林炳稷) 외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습니다.

(전략)

(미국의 고철 수집과 관련해서)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본인의 관심을 끌고 있소. 장관은 북한 공산도당이 전차와 중포를 가지고 쳐들어 왔을 때 우리 국민이 끔찍한 피해를 입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오. 우리 국민들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도 전차와 중포를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소. (버려진) 전차와 기관총이 매우 많이 있소. 이중 대부분은 파손된 상태지만 우리 기술자들에 따르면 이것들은 80% 정도 수리가 가능하다고 하오. 제8군은 버려진 전차와 장비들을 긁어모아 분해한 뒤 고철로 만들려 하고 있소. 미국측의 당국자들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그것들을 인수하는 대신 고철을 공급하겠다고 요청하시오. 그리고 만약 미국측이 그것들을 판매하려 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사겠다고 하시오. 이렇게 한다면 대한민국의 방위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오. 미국측이 버려진 장비들을 매일 같이 파괴하고 있으니 빨리 미국의 동의를 받도록 하시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의 사령부나 무초 대사에게 우리가 버려진 장비들을 가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시오. 맥아더 장군과 무초 대사에게 이것은 우리 정부의 요청이라고 하시오.

「이승만 대통령이 임병직 장관에게」(1951. 2. 10), Oliver Paper 1951-2(국사편찬위원회 등록번호 HA0000004648)

하지만 버려진 전차와 중화기를 한국이 인수하는 것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미국이 원조를 하는 것이나 버려진 전차를 회수해서 쓰는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인력과 기술, 물자의 지원이 필요한 일이니 쉽게 승인해 주기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승만과 한국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원조 요청을 하고 독자적인 장비 획득을 추진한 것이 미국의 일정한 반응을 이끌어 내기는 했으니 비판적으로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 과정이 깔끔하진 않지만 어쨌든 조금 더 많은 원조를 뜯어내는 데는 도움이 되긴 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