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6일 금요일

굿우드 작전 당시 제503중전차대대 122호 티거2 격파에 관한 잡설

얼마전 Panzersaurs Kez님이 굿우드 작전 당시 격파된 독일 제503중전차대대 122호 티거2에 관한 글을 써 주셨습니다. 유명한 독일 기갑부대 연구자 볼프강 슈나이더의 Tiger in Combat에 소개된 독일과 영국 양측의 주장을 균형있게 소개하면서 분석하는 글 입니다. 자세하게 분석을 해 주셔서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영국쪽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입장이지만 꽤 복잡한 문제라서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Panzersaurs Kez님이 좋은 글을 써 주셨으니 저도 몇가지 이야기를 더 하는게 좋겠습니다.(타이젠과 고어맨의 증언은 Panzersaurs Kez님의 블로그에 있으니 이 글에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영국에서 나온 문헌들은 여전히 존 고어맨(John Gorman)의 주장을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비교적 최신 저작으로 2015년에 나온 Stephen NapierThe Armored Campaign in Normandy, June~August 1944도 존 고어맨의 증언을 신뢰하고 있습니다.1) 다만 고어맨의 증언만 인용할 뿐 참고문헌에 있는 슈나이더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반박하지는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네이피어가 어째서 볼프강 슈나이더의 주장을 기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굿우드 작전에 관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저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이안 대글리시(Ian Daglish)Operation Goodwood에서는 기본적으로 고어맨의 주장에 힘을 실어 서술하면서 동시에 타이젠의 증언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글리시는 전투 현장에 독일군 대전차포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타이젠의 증언도 어느정도는 근거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2) 
 
제가 잠정적으로 고어맨의 주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고어맨의 증언이 시기적으로 더 빠르다는 점 외에도 그가 원래 탑승한 셔먼을 잃고 갈아탄 파이어플라이 승무원들이 고어맨이 이날 전투로 전공십자훈장(Military Cross)을 수여받았을때 반박을 하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고어맨의 전공십자훈장은 아일랜드 근위연대 제2전차대대가 노르망디 전역에서 처음 수여받은 것 입니다. 고어맨의 주장이 허위라면 수훈 심사과정에서 파이어플라이 승무원들이 충분히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영국군 측에서 해당 전차의 잔해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으니 영국군은 고어맨의 주장을 검증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영국군의 전과 검증 체계는 독일군과 비슷한 신뢰도를 지닌다고 평가합니다. 미군의 경우는 이들보다 신뢰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보고, 소련군의 검증 체계는 가장 믿을 수 없다고 봅니다.) 
 
503중전차대대사가 영어로 출간되고 볼프강 슈나이더의 연구가 나온 이래 영어권에서도 고어맨의 주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고어맨에 대한 비판 중 주목해야 할 하나는 그가 말년에 한 주장이 약간 달라졌다는 점 입니다. 고어맨은 말년에 회고록을 냈는데 회고록에 실린 해당 전투의 정황은 다음과 같습니다.3) 
 
원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타이거 로얄(티거2)’ 같은 단어는 그대로 옮깁니다. 
 
이제 우리 중대는 상당한 거리를 진격했으며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해 보니 독일군은 이미 혼란상태를 극복한 듯 했다. 이윽고 우리 앞에 제11기갑사단의 전차 여러대가 나타났다. 대부분의 전차가 피격되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승무원들은 불타는 탱크에서 전우들을 구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참담한 광경이었다.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 이날 아침만 해도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던 궤도식 구급차가 많은 장병의 목숨을 구했다.

제임스 바론(James Baron)에게 최대 속도로 가속하라고 명령했다. 하빈슨(Harbinson) 하사의 전차는 200야드 정도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송전탑을 표지판 삼아 따라가다가 우리 중대의 본대를 발견했다. 우리 중대는 카니(Cagny) 서쪽에서 돈좌되어 있었다. 토니 도먼(Tony Dorman: 중대장)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계속 전진하라고 격하게 손짓을 했다. 이번 작전의 전략은 샐리스버리 평원과 요크셔 고원에서 했던 기동훈련 처럼 신속하게 돌격해 카니의 동쪽으로 우회하는데 성패가 달려있었다. 도먼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해서 밀밭으로 전진했다. 밀밭 끝의 생울타리까지 간 뒤 방향을 전환해 생울타리를 따라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이동했다. 우리의 오른쪽에 또 다른 생울타리가 직각 방향으로 나 있었다. 
이 방향으로 들어서자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졌다. 300야드 전방에 한 대의 타이거 로얄이 있었고 그 뒤에는 타이거 세대가 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타이거 로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잠깐 설명하자. 독일은 전차 생산에서 양보다 질을 우선했다. 그들은 미국의 전차 생산량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꺼운 장갑과 포신이 20피트에 달하는 88mm 대공포를 단 전차를 설계했다. 그야말로 전쟁 중에 생산된 것 중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전차라 하겠다. 이런 괴물이 있다는 정보는 우리도 알고 있었다. 바론 상병과 나는 이럴때 어떻게 할 지 의논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만약 타이거 로얄을 마주친다면 해군의 충각 전술을 따라서 그냥 들이받아 버리자고 결정했다. 그는 타이거 로얄의 88mm 포탑이 선회속도가 느리니 셔먼의 속력을 이용해 대응하는게 좋다고 동의했다. 좀 미친것 같지만 75mm 포를 단 셔먼으로 대응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타이거 로얄의 포탑은 우리 쪽에서 90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방향은 제2대대 토니 도먼의 전차가 있던 쪽이었다. 우리 전차는 고폭탄을 장전하고 있었다. 내 사수 앨버트 숄리스(Alber Scholes)와 나는 철갑탄은 아무 효과가 없으니 차라리 고폭탄 쪽이 낫다는데 동의했다. 이건 꽤 괜찮은 판단이었다. 바론 상병이 타이거 로얄을 향해 돌진하는 동안 숄스는 50야드 거리에서 적 전차의 포탑에 고폭탄을 명중시켰다. 이 폭발은 좁은 포탑안의 승무원들에게 충격을 줬고 우리가 돌진하는 순간 적 전차장이 포탑 밖으로 머리를 드러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을 못하고 어리벙벙한 것 같았다. 다른 타이거 세대의 지원을 받고 있던 타이거 로얄의 전차장은 강력한 장갑의 보호를 받으며 우수한 88mm포로 아군 전차들을 공격하려 하던 중 근거리에 나타난 우리 전차를 쏘기 위해 포탑을 느리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우리 전차는 적 전차의 좌측 후방을 들이받았다. 독일 전차병들은 전차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다른 타이거 3대가 우리 전차를 조준하고 있었다나는 탈출하라고 명령했다. 독일군과 우리는 두대의 전차 사이의 좁은 공간에 갇혔다. 
이때 하빈슨 하사의 전차가 생울타리 귀퉁이에서 나타나 용감하게도 타이거 3대를 상대로 전투를 개시했다. 바론 상병이 외쳤다. “어서 피하십시오!” 나는 승무원들을 데리고 생울타리 쪽으로 도망쳤다. 우리는 무성하게 자란 밀밭으로 모망쳐 일단 숨었다. 하빈슨 하사의 전차는 근거리에서 타이거 전차의 명중탄을 맞았다. 우리는 승무원 다섯명이 모두 전사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의논하고 있는데 불쑥 한 사람이 은신처로 뛰어들었다. 전방 기관총 사수 애그뉴 일병이었다. 내가 탈출 명령을 내렸을때 애그뉴 일병은 해치를 열고 나오다가 적 전차의 사격을 받아 다시 전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는 포탑쪽의 해치를 열고 나오다가 몇 사람이 오른쪽 방향의 생울타리로 도망치는걸 언뜻 보았다. 그래서 그리로 따라가 그들이 숨어있던 도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타이거 전차의 승무원들이 아니던가. 애그뉴 일병은 독일군들에게 경례를 한 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줄행랑 쳤다. 운이 좋아 우리와 합류할 수 있었다.

서부전선에서 마주친 단 한대의 타이거 로얄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지만 승리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뭔가를 하다가 만 느낌이었다. 나는 승무원들에게 숨어서 기다리라고 명령한 뒤 밀밭을 가로질러 400야드 쯤 떨어진 아래쪽의 숲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한대의 파이어플라이를 발견했는데 승무원들이 버린 것 처럼 보였다. 포탑 위로 올라가 안을 들여다 보니 머리가 날아간 워크맨(Workman) 하사의 시체가 포미 위로 쓰러져 있었다. 사수와 장전수는 충격을 받아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내가 전차를 발견하기 전에 타이거 로얄에 명중탄을 맞아 워크맨의 머리가 날아간게 분명했다.

나는 승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워크맨 하사의 시체를 치운 뒤 조준경과 페리스코프를 닦았다. 조종수에게 타이거 로얄을 발견했던 밀밭 끄트머리의 생울타리 쪽의 좁은 길로 전진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그는 지체없이 전진했다. 그때는 다행히도 타이거의 포탑이 우리를 겨냥하고 있지 않았다. 생울타리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속도를 줄였다. 세대의 타이거가 아까 봤던 위치에 있었다. 타이거 로얄과 내가 원래 탔던 발리라게(Ballyraggett)’는 충돌한 채로 멈춰 있었다. 첫번째 목표는 타이거 로얄이었다. 초탄은 너무 높이 날아갔다. 포수가 떨고 있었다. 두 번째 탄이 타이거 로얄을 맞췄다. 그 다음에는 발리라게를 쏴서 적이 회수하거나 조종하지 못하게 했다. 다른 세대의 타이거가 내가 탄 파이어플라이쪽으로 포탑을 돌리고 있어서 생울타리를 따라 100피트 정도 이동한 뒤 다시 적 전차가 보이는 위치로 이동했다. 이때 적 전차의 포탑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네 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이 중 두발이 명중했다. 타이거 한대가 다시 우리쪽으로 포탑을 돌렸다. 사격 위치를 바꾸기 위해 길 쪽으로 후퇴했다.

불타는 셔먼 전차쪽으로 다가가자 구덩이에서 불 붙은 허수아비 처럼 보이는 세개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하빈슨 하사와 그의 사수, 장전수였다. 우리는 이들을 셔먼의 엔진 데크 위에 태우고 전속력으로 밀밭을 가로질러 후퇴했다. 연대 구호소를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군의관 립만(Ripman) 박사의 의료진이 있었다. 하빈슨과 다른 두명의 승무원은 치료를 받았다. 이날 밤 하빈슨 하사는 성형외과 전문의 매킨도(McIndoe)씨가 있는 링필드의 화상전문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하빈슨 하사는 그후 2주 정도 더 생존했으며 그의 어머니와 누나에게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신의 50%에 심한 화상을 입어서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셔먼 전차는 워낙 불에 잘 타다 보니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토미 쿠커라는 스토브로 요리를 하곤 했는데 독일군은 이걸 가지고 섬뜩한 농담을 했다. 셔먼 전차에 토미 쿠커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고어맨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는 쪽에서는 고어맨이 말년에 한 증언이 초기의 증언과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미심쩍게 생각합니다. 고어맨의 회고록이 좀 부정확한 점도 비판을 받습니다. 그는 노년에 노르망디 전역 당시 제503중전차대대 3중대에서 소대장으로 있었던 로젠(Richard Freiherr von Rosen)을 만나 이때의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어맨의 회고록에는 부대명 부터 틀려있습니다. 503중전차대대를 제204중전차대대라고 쓰고 있는 것이죠.4) 노년에 기억력이 감퇴해서 이런 착오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고어맨의 증언에 의문을 표하는 측에서는 이런 오류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물론 타이젠도 자신이 탔던 전차의 차량번호를 잘못 기억하는 등의 오류가 있습니다.5) 두 사람의 증언을 검증할 수 있는 자료가 좀 더 있으면 결론을 보다 확실히 내릴 수 있겠죠. 
 
대립하는 두가지의 주장이 있는데 고어맨 쪽은 최소 두대의 전차에 탄 승무원들이 증언을 해 주었고 훈장 수여 심사에서도 이것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유리합니다. 반면 타이젠의 증언도 논리적이고 무엇보다 독일군의 대전차포 배치현황 등 그의 증언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도 있습니다. 일단 저는 약간 유보적인 입장에서 고어맨의 주장을 지지하는 쪽인데 122호 전차의 피격 상태를 자세히 분석한 보고서만 하나 있어도 이렇게 헷갈리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1) Stephen Napier, The Armored Campaign in Normandy, June~August 1944, (Casemate, 2015), p.221.
2) Ian Daglish, Operation Goodwood(Pen and Sword, 2004), pp.163~166.
3) John Gorman, The Times of My Life(Pen and Sword, 2003), pp.38~40.
4) John Gorman, Ibid., p.51.
5) Franz-Wilhelm Lochmann(Hrsg.), Erinnerung an die Tiger-Abteilung 503 - Die schwere Panzerabteilung 503 an den Brennpunkten der Front in Ost und West(Verlaghaus Würzburg - Flechsig). p.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