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일 화요일

The Road

오늘 모처에서 했던 용역일의 한 달이나 밀린 급여가 통장으로 들어왔습니다. 평소였다면 통장을 확인 하는대로 바로 amazon.com이나 기타 유사한 사이트로 이동해 신앙생활을 했겠습니다만… 치솟는 환율을 고려해 일단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어쨌건 또 돈이 들어왔으니 책은 사야겠고 그래서 환율과는 별 상관없는 국내 도서를 사기 위해 반디 앤 루니스를 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사야 겠다고 생각하던 책을 두 권 계산한 뒤 귀가하려는 찰나 소설 코너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The Road 번역판이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요란하게 홍보를 해서 그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평소 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라 좀처럼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 김에 대충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다 읽어 버렸습니다.

소설의 세계관 자체가 제가 좋아하는 종말적 세계관이고 그 우울한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물론 번역본이라 원문의 맛을 100% 느끼진 못하지만)도 탁월했습니다. 생존자들의 피폐한 모습이나 폐허가 된 황량한 세계에 대한 묘사는 오싹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닫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바다를 향해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은 황량한 세계만큼이나 단조롭고 막막하지만 때때로 닥치는 위태로운 장면은 긴장이 넘칩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가 의지할 것은 총 알 두발이 들어있는 권총 한 자루 뿐 입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자신의 의무에 비해 미약한 힘 때문에 항상 불안해 합니다. 자신이 짊어진 무거운 의무에 대해 항상 고뇌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마치 고행하는 수도승 처럼 느껴집니다. 이 두 사람의 여정은 마치 종교적 순례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미국의 평론 중에서 이 책을 성경에 비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여정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지만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쥐어 짜려는지 마지막에는 약간의 장난(???)을 칩니다. 정말 탁월한 글솜씨더군요.

원작을 읽지 못했으니 100% 확신할 수 없지만 번역하신 분의 솜씨도 일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