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8일 목요일

모범답안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미국의 안보 관련 기관들은 왜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미육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50년 7월 21일, 미육군은 한국전에 대한 육군 참모총장 콜린스(J. Lawton Collins) 대장의 의회 특별 보고에 대한 문건을 작성합니다. 이 중 정보 실패에 대한 해명은 육군부 정보국장 어윈(S. LeRoy Irwin) 소장이 직접 작성했습니다. 이 문건은 총 3쪽으로 되어있는데 꽤 재미있습니다.

한반도 사태에 대한 우리 정보기관의 성과에 대해 많은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본인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태는 우리가 수집한 정보에 비추어 볼 때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는 점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정보기관들은 우방국들의 국경에 소련과 그 위성국의 군대가 언제든지 공세에 나설 수 있을 만큼의 병력과 물자를 배치했음을 보고해 왔습니다. 이중 일부 지역에서는 공격 행동이 임박했다는 충분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현실화 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소련이 어떤 국경에 이미 배차한 전력으로 공격 행위를 취하려 했다면 어떠한 사전 경고도 없이 공격이 가능했을 것 입니다.

한반도의 경우에는 언제든지 남한에 대해 공세를 취할 수 있는 강력한 북한군이 38선 인근에 배치되었다는 점이 모든 정보기관들을 통해 보고되었습니다. 실제로 북한군은 남한에 대해 여러차례에 걸쳐 심한 경우에는 대대급 전력으로 제한적인 공세를 감행해 왔으나 매번 교전을 계속하지 않고 철수했습니다. 이와 같은 공격(전면공격)에 대한 경보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습이 완벽하게 가능했던 것 입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모든 활동을 통제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한미국대사 무초의 관할이었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하셔야 합니다. 무초 대사의 군사 참모진은 한 개의 부서, 육군 무관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주한미군사고문단(KMAG)으로 알려진 한 집단의 육군 장교들로 구성된 사절단은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한 국제연합의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대한민국의 국내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한군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주한미군사고문단은 이러한 각종 훈련 임무외에 정보 업무를 직접적으로 담당하지 않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북한의 활동과 그 의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나 수단이 없었습니다. 중앙정보국(CIA)이 모든 비밀 정보활동을 담당한 이래 군사고문단은 모든 형태의 첩보활동에서 배제되었으며 사실상 군사고문단원이 정보활동에 투입될 경우 고문단의 외교적 지위를 위태롭게 함으로써 정책에 위배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극동군사령관은 군수지원과 주한미국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거류민들을 철수시키는 임무 외에는 한반도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없었으나 그가 관할하는 구역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허가는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가 극동군사령관의 지휘하에 있지 않았으므로 그가 한반도의 상황을 주시할 수 있는 자체적인 수단을 확보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었습니다.

5월 24일에 육군 정보참모부로 부터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이 방첩 활동을 강화했기 때문에 정보의 양과 질이 심각하게 감소했으며, 많은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정보 인력을 감축한 것과 미국의 경제 위축의  여파로 각 지역의 정보 인력이 감소한 점을 보고 받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도 적절할 것 입니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국외 정보 수집하는 것과 국내에서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  심각하게 약화되었습니다. 사실 정보참모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국방 정보 기구들이 러시아의 공격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우리의 정보력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인은 이러한 보고를 받은 뒤 미국과 동맹국의 군대가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경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몇몇 문제점은 바로잡을 수 있었으며 그 밖의 것들은 본인의 책임 범위내에 넣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의 공격에 대한 경보를 때맞춰 받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정보 수집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모든 정보기관들은 세계 정세로 인해 그들의 앞에 놓여진 막대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부분 동원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정보기관들이 항상 적 지휘관들의 마음을 읽어내서 적군이 이미 전개되어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적의 지휘관들이 언제쯤 공격을 결심할지 알아내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점을 여러분께 설명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매우 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들은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Tab D, Special Presentation to Congress”(1950. 7. 21), pp.1~3, RG 319, 319.12 Records of the Office of the Assistant Chief of Staff, G-2, Intelligence, 1918~78, Top Secret Correspondence, 1941~62, Entry 47, Top Secret Decimal File, 1942~52 Italy 1950 to 350.066 1950, Box 12

제목그대로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문건을 작성한 인물이 육군 정보국장인 어윈 소장인 만큼 자기 부서의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려는 것이 잘 드러나있지요.

여기서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1. 정보 실패의 근본적인 책임을 국무부와 CIA에 돌리는 점.
2. 육군은 책임을 질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
3. 예산 문제를 강조하는 점.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

물론 정보 실패의 책임이 국무부와 CIA에 있다는 주장은 문제가 많습니다. 극동군사령부는 물론 주한미군사고문단도 자체적으로 대북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지요. 문제라면 북한의 전력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 못했다는 점인데;;;;

이 문건은 좀 궁색하긴 하지만 조직을 방어하는데 있어서는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 콜린스 장군의 의회 특별보고에 대한 기록을 찾아서 비교해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