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9일 목요일

외계문명(?????)의 지혜

꽤 즐겁게 읽었던 소설의 한 토막.

빌리는 지구인들이 벌이는 그 전쟁과 같은 살인 행위에 트랄파마도어인들이 곤혹스러워하거나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지구인들의 잔학성과 굉장한 무기들이 결합되면 결국에는 순결한 우주의 한 부분이, 나아가 전체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염려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에 관한 질문은 한번도 나오지 않았고, 빌리 자신이 말을 꺼낸 뒤에야 비로소 나왔다. 동물원 관객 중에 누군가가 해설자를 통해 지금까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빌리의 대답은 이랬다.

“한 행성의 모든 주민이 어떻게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태초 이래 무의미한 살육에 열중해 온 행성에서 왔습니다. 내 나라 사람들이 급수탑에 넣고 산 채로 삶아 죽인 여학생들의 시체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시 자기들이 절대 악과 싸우고 있다는 긍지에 차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빌리는 드레스덴에서 삶아져 죽은 시체들을 보았다.

“그 뿐입니까? 나는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에는 삶아져 죽은 여학생들의 오빠와 아버지들이 살육한 인간들의 지방으로 만든 촛불로 밤을 밝혔습니다. 지구인들은 우주의 골칫거리임이 분명합니다! 다른 행성들이 지금은 무사하더라도 곧 지구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내게 비결을 좀 가르쳐 주세요. 내가 지구로 가져가서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게요. 어떻게 한 행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빌리는 자기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랄파마도어인들이 작은 손을 쥐어 눈을 가리는 것을 보고는 당혹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그 몸짓이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그가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 이었다.

“제발-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는 몹시 풀이 죽어 안내원에게 말했다.

“내 말이 뭐가 그리 바보 같다는 거지요?”

“우린 우주가 어떻게 멸망할지 아는데-” 하고 안내원이 말했다. “지구는 그 일과 아무 관계가 없소. 지구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만 빼면.”

“어떻게- 우주가 멸망합니까?” 빌리가 말했다.

“우리가 날려 버리지. 비행접시에 쓸 새 연료를 실험하다가 말이오. 트랄파마도어의 시험 조종사 하나가 시동 버튼을 누르면 온 우주가 사라져 버리는 거요.”

그렇게 가는 거지.

“당신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예방할 방법도 있을 것 아니에요?” 빌리가 말했다. “그 조종사가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까?”

“그는 이제까지 늘 버튼을 눌렀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요. 우리는 늘 그에게 그렇게 하게 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요. 그 순간은 그런 식으로 되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하고 빌리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구에서 전쟁을 예방한다는 생각도 어리석은 거군요.”

“물론이오.”

“하지만 이 행성은 평화롭잖아요?”

“오늘은 그렇소. 다른 날들은 당신이 보았거나 읽은 어떤 전쟁보다 잔혹한 전쟁을 벌이지. 우리가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그냥 전쟁을 보지 않을 뿐이오. 무시해 버리는 거지. 우리는 영원토록 즐거운 순간들만 보며 지내요. 오늘 동물원에서 처럼. 이 순간은 정말 멋지지 않소?”

“멋집니다.”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지구인들도 그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요. 끔찍한 시간은 외면해 버리고 좋은 시간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오.”


커트 보네거트 지음/박웅희 옮김, 『제5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아이필드, 2005), 138~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