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정부군의 병사들은 각각 소속 종파를 찾아 탈영했다. 슈프 산악지대에서는 드루즈파가 팔랑헤당을 무참히 부수었다. 이스라엘군과 레바논 정부군이 지원하지 않으면 팔랑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 해병대가 재건한 레바논 정부와 정부군은 와해되고 있었다.
확실히 민족, 정파 구성이 복잡한 국가에서 멀쩡한 단일 통치체제를 확립하는 것은 어려운 과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문제는 19세기 민족주의의 창궐 이후 여러 국가들을 엿 먹였지요.
근대 민족주의의 최대 피해자라면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꼽을 수 있을 것 입니다. 두 국가 모두 민족주의가 제국이 붕괴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지요.
그래서 다인종으로 구성된 국가의 문제점을 언급할 때 많이 언급되는 사례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제국이 항상 끼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제국은 당장 큼지막한 덩어리로 쪼개더라도 독일인, 헝가리인, 폴란드인,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크로아티아인, 루테니아인 등으로 나뉘고 발칸 반도의 그저 그런(?) 민족들 까지 넣으면 더욱 더 골치가 아파집니다.
민족 구성이 복잡했던 덕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제국의 군대에서는 사용 언어가 명령어(Kommandosprache)와 직무어(Dienstsprache), 그리고 지휘 및 통신용 언어로 나뉘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신민들 중 상당수가 황제폐하가 사용하시는 Deutsch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 입니다.
명령어, 그리고 지휘 및 부대간 통신 언어는 독일어였지만 직무어는 민족별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빈이나 짤즈부르크 등에서 편성되는 독일인 부대의 경우 명령어와 직무어가 모두 독일어 였지만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인 부대는 명령어는 독일어, 직무어는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Erwin A. Schmidl의 짧은 에세이, Die k.u.k Armee : intergrierendes Element eines zerfallenden Staates? 에는 1차대전 발발 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육군 참모부에서 각 부대별 사용 언어를 조사한 결과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조사에 따르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육군의 각 연대 및 독립대대 중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부대는 142개 였고 2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부대는 163개, 그리고 3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부대가 24개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런 경향은 국경지대, 혹은 민족별 접경지역에서 심했는데 예를 들어 프세미시우(Przemysl) 10보병연대는 연대 병력 중 47%가 루테니아어, 43%가 폴란드어, 10%가 기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66보병연대는 46%가 슬로바키아어, 25%가 헝가리어(magyarische), 22%가 루테니아어, 7%가 기타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부사관의 임무에는 병사들 간의 ‘통역’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하며 또 전쟁이전 임관한 장교들은 배치된 연대의 공식어를 배워야 했다고 합니다.
언어에 따른 지휘계통상의 문제가 기술적인 것 이었다면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 아주 골치 아픈 물건이었습니다. 평화시에 입대한 직업군인 장교나 부사관들은 민족에 상관없이 황제에 충성하는 편 이었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소집된 장교나 부사관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 대학생이나 아비투어 합격자는 장교로 소집됐는데 이들 중 많은 수는 대학에서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채 들어왔다는 점 입니다. 당연히 많은 수가 말도 안통하는 황제에게 충성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이나 아비투어 합격자의 20%가 유대인이었다는 점 도 문제였습니다. 유대인은 민족을 불문하고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었죠. 유대인들이 장교로 충원되니 반유대정서를 가지고 있는 병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는 뻔 했습니다.
결국 이런 사회적인 문제는 군대의 편제, 교리, 장비 만큼이나 전쟁 초-중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연달아 참패를 당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러시아군의 공세가 개시되면 폴란드나 체코인 부대는 대규모로 항복해 버렸다고 하지요.
그러나 sonnet님의 중동문제에 대한 글들을 계속 보다 보니 21세기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신 레바논같은 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쨌든, 대한민국 군대에 민족문제가 없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지역 문제가 있다고는 해도 최소한 경상도 말이나 전라도 말이 서로 못 알아먹을 수준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럭저럭 균질적인 사회구성을 가진 덕에 이런 저런 문제가 많아도 국가가 유지되는게 아닐까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서로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은 동네와는 60년전에 일찌감치 헤어졌구요[..]
답글삭제네. 그렇지요. 그 과정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긴 했습니다만...
삭제이중제국(...)에는 의회만 12개가 있었다고 했죠(먼산)
답글삭제콩가루 제국이지요!
삭제그나마 인종, 종파 갈등은 없어서 다행이려나요...
답글삭제뭐, 인종 갈등이라 해 봐야 안산역의 외국인 건달들 정도고 종파 갈등이라봐야 명동역의 예수천국 아줌마/아저씨들 정도니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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