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 유럽 각국의 군대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민간인을 달고 돌아다녔습니다. 여기에는 군대에 식료품을 납품하는 상인, 장인, 그리고 대포를 조작하는 기술자(17세기 이전까지 대포는 민간인 기술자가 발사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체계적으로 포병을 양성한건 프랑스가 최초라고 하지요), 약간의 거지와 건달, 그리고 잡일을 거들거나 매춘을 하는 여성이 포함됐습니다. 16-17세기 유럽 군대를 연구한 저작들을 보면 이 시기의 군대에는 전투원의 1.0~1.5배 정도의 민간인이 따라 다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대부분이 여성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숫자였을 것 이라는게 군사사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G. Parker나 J. Lynn등등) 17세기 중반까지도 여성들은 전투 부대를 따라다니며 식사 준비, 빨래, 간호 등의 일을 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예산을 무지막지 잡아먹었다는 점 입니다.
프랑스 군대도 이 점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의 군대들과 비슷했습니다. 루이 14세 때까지 프랑스군 병사들은 허드렛 일을 거들 하인(goujats)를 거느리는 것을 법으로 허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사관 정도면 두 명 까지 거느릴 수 있었다는군요. 이 경우 여자를 데리고 있는 사례가 간혹 있었던 모양입니다. 뭐, 빨래도 해주고 밤일도 해준다면야 나쁠게 없겠죠. 여기에 외국인 용병들은 가족을 달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들은 부대를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한 독일인 부대는 부대와 같은 숫자의 가족을 달고 왔다는 이야기도 있죠.
루이 14세는 부대비용 절감을 위해 전투 부대에 딸린 여자의 숫자를 줄여보려 노력했습니다만 이걸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 했습니다. J. Lynn에 따르면 루이 14세가 요단강을 건너간지 한참 지난 1772년의 기록에 프랑스군 전체에 걸쳐 보병 1개 대대당 15명에서 20명 정도의 여성이 잡일에 종사했던 것으로 나와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여성들은 빨래 같은 잡다한 일을 담당했기 때문에 야전 지휘관들은 여자들이 전쟁터로 따라 오는 것을 좋게 봤다지요.
잡일을 거드는 여성 외에 vivandieres라고 불리는 여성 잡상인(?)들도 꽤 많았다고 합니다. 부대를 졸졸 따라다니며 술, 담배를 판매했다고 하는군요. 술과 담배는 병사들에게 필요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이들 잡상인들은 부대 주둔지 내에 천막을 치고 영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야전 지휘관들로부터 보장 받았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병사들의 결혼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일반 사병들은 결혼하는 것이 자유로웠지만 대신 결혼할 경우 진급에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월급도 아까운데 거기다가 입을 더 보태는게 좋게 보일리는 없었겠지요. 특히 탈영을 방지하기 위해서 주둔지의 여성들과 결혼하는 것은 다른 지역 여성과의 결혼보다도 엄격하게 금지됐습니다. 장교도 비슷한 규정을 적용 받았다고 하지요. 기혼자는 모병 대상에서 엄격히 걸러졌기 때문에 루이 14세 재위 기간 동안 프랑스 육군에서 기혼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5% 내외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30년전쟁 시기인 1630~40년대의 프랑스군에서 기혼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0%~45% 정도로 추정되는 것과 비교하면 태양왕 시기에 기혼자 비중이 얼마나 떨어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결혼 자체는 엄격하게 통제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할 경우에는 군인 가족의 복지에 일정한 혜택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프랑스 정부는 1706년에 병사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부대 관사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듭니다.
이 밖에 전투원으로 참여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있는데 이건 꽤 재미있는 이야기이니 따로 다루는게 좋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