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짤막한 포스팅 하나 합니다. 늘 그렇지만 긴 포스팅을 할 만한 시간이 도통 나질 않습니다.
옛날 책을 한권 읽다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나와서 올려봅니다. 아래의 증언은 김점곤 소장이 한국전쟁 40주년기념 국제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증언 자료라서 진위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꽤 재미있더군요. 여포가 방천화극 끄트머리에 화살을 맞춰서 유비와 원술을 중재했다는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일화입니다.(.....)
"나는 52년부터 9사단장을 역임했다. 그때 미국 사람들이 우리에게 예산이 문제된다는 명분을 앞세웠으므로, 나는 포탄 사용을 제한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당시의 미국 신문은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 즉, 당시에 미국의 언론들은 미국의 어떤 육군 장군이 잘못 알고 포탄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즉, 포탄을 제한해가며 전쟁을 치른 것이 일개의 육군 장군의 오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당시에 우리는 포탄을 쏘지 않고 4.5mm(4.2인치의 오기로 추정) 박격포 이하로만 싸워서 고지를 탈환했던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오늘 나오신 정장군께서 증인이 되실 수 있을 것이다. 정장군께서는 그 당시에 부군단장으로 계셨으므로 나중에 포탄을 너무 많이 썼다는 이유로 당시에 포병사령관이 감찰조사를 받은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다.
나도 물론 그때 증인으로 입회한 적이 있다. 아믛든 감찰조사에서 5만 몇천 달러인가 15만 몇천 달러를 우리가 초과사용했다는 것이 문제시 되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포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는 그들에게 일종의 내기를 걸었다. 내가 권총으로 매를 떨어트리면 우리를 인정할 수 있겠냐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다행히 나는 첫발에 매를 명중시켰다. 그리고 난 뒤에 보고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에 대해서 전혀 문책이 없었다."
라종일 편, 『증언으로 본 한국전쟁』, 예진, 1991, 211~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