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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6일 금요일

독일군의 돌격포에 대한 평가와 돌격포의 교환비에 대한 잡설

윤민혁님 페이스북에서 독일 전차와 돌격포의 교환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생각나는 걸 조금 끄적여 봅니다. 2차대전 후반기에 독일군의 일각에서 돌격포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개인적으로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차 교환비에 대해서 끄적이던 포스팅이 하나 있었는데 자료 정리가 덜 돼서 일단 생각나는 약간의 자료를 가지고 돌격포에 대해서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돌격포는 2차대전 중 많은 무용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단 한대의 돌격포가 하룻 동안 여러대의 소련 전차를 격파했다는 이야기는 단골 소재였지요.


먼저 지난번에 소개했었던 NARA소장 독일 기갑총감부 문서, T-78 R619에 들어있는  제200돌격포보충훈련대대Sturmgeschütze Ersatz und Ausbildung Abteilung 200의 대대장이 작성한 보고서에 있는 내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 보고서는 제200돌격포보충훈련대대의 대대장이 1943년 8월 30일 부터 9월 22일 까지 동부전선에 배치된 12개 돌격포대대(912, 226, 184, 190, 185, 189, 270, 600, 904, 191, 243, 210)를 시찰한 뒤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포병병과의 입장에서 씌여졌기 때문에 약간 편향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꽤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돌격포가 전차보다 우월하다고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전차 배치 상황이나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비교대상이 된 것은 아마도 3호전차나 4호전차 같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차는 돌격포에 비해 방어력과 광학장비가 열세하고 높이가 높아서 더 쉽게 피격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돌격포에 대해서는 방어전투에서 특히 대활약을 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소련 전차를 격파하는데 있어서는 물론 소련 보병의 공격을 격퇴하는데도 유용하다는 것 입니다. 이 보고서에 인용한 익명의 독일군 지휘관들의 평가는 돌격포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1개 기갑사단 보다 1개 돌격포대대가 더 좋다.(Eine Sturmgeschütz-Abteilung ist mir lieber als eine Panzerdivision)” - 익명의 고위 지휘관 

“전차 10대 보다도 돌격포 2대가 낫다.(2 Sturmgeschütze ziehe ich 10 Panzern vor)” - 익명의 보병연대장.1)  

(무슨 홈쇼핑 광고 같군요!)


소련군에 대해서는 전차는 형편없지만 대전차포가 위협적이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소련군이 구경이 더 큰 대전차포를 배치하는 것을 중요하게 꼽고 있습니다. 소련군 전차에 대한 평가는 최악인데 독일군이 노획한 소련군의 명령서에 따르면 일부 소련 전차부대에는 독일군 돌격포와의 교전을 회피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하는군요.2)


보고서에는 돌격포 지원을 늘려달라는 일선 지휘관들의 요청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1943년 여름의 방어전투에서 돌격포 대대들이 혹사당했음을 보여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한 돌격포 대대는 10일간 전투를 치르면서 배속된 사단이 11번이나 바뀌었다고 합니다.3) 그야말로 정신없이 여기 저기 불려다닌 셈입니다.


이 보고서의 결론 부분에는 제200대대장이 시찰한 돌격포대대가 1943년 8월에 거둔 전과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표1. 독일군 돌격포대대의 전과 및 손실(1943년 8월)
돌격포대대
적 전차 격파
돌격포 손실
912
21
0
226
10
2
184
27
0
190
17
0
185
87
4
189
76
0
270
62
2
600
18
1
904
55
7
191
7
1
210
43
1
(표 출처 : “Bericht über die Ostfrontreise des Kommandeurs der Sturmgeschütz Ers. u. Ausb. Abt. 200 vom 30. 8. 1943 bis 22. 9. 1943”, NARA T78 R619, p.7.)


현재 시점에서 러시아 자료와 교차검증을 하기 어려우니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지만 꽤 재미있는 경향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좀 더 정리가 잘 된 통계 하나를 올려 보지요. 1944년 1월 부터 1944년 8월 까지 서부전선을 제외한 전 전선, 주로 동부전선에서 돌격포여단이 거둔 전과와 손실에 대한 독일군 자체 집계입니다. 1944년 6월 부터 8월까지는 잇따른 참패로 인해 집계가 불완전 하지만 표1과 비슷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표2. 1944년 1월 부터 8월까지 전체 돌격포 여단의 전과 및 피해(서부전선 제외)
적 전차 격파
돌격포 손실
1944.1
860
61
1944.2
429
71
1944.3
578
177
1944.4
542
121
1944.5
147
15
1944.6
245
34
1944.7
1019
138
1944.8
847
96
(표 출처 : Peter Müller und Wolfgang Zimmermann, Sturmgeschütz III : Rückgrat der Infanterie Band 1, Geschichte, Entwicklung, Herstellung und Einsatz, (History Facts Dokumentation, 2007), p.265..


작년에 정리했던 통계,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전차 및 돌격포 손실률”과 함께 비교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Bericht über die Ostfrontreise des Kommandeurs der Sturmgeschütz Ers. u. Ausb. Abt. 200 vom 30. 8. 1943 bis 22. 9. 1943”, NARA T78 R619, p.3.
2) “Bericht über die Ostfrontreise des Kommandeurs der Sturmgeschütz Ers. u. Ausb. Abt. 200 vom 30. 8. 1943 bis 22. 9. 1943”, NARA T78 R619, p.2.
3) “Bericht über die Ostfrontreise des Kommandeurs der Sturmgeschütz Ers. u. Ausb. Abt. 200 vom 30. 8. 1943 bis 22. 9. 1943”, NARA T78 R619, p.4.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후퇴전에서 기갑부대의 전차 손실에 대한 잡상 - 바그라티온 작전의 독일 제4, 5기갑사단의 경우

1944년 벨로루시에서 소련이 감행한 하계대공세,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의 기갑부대 운용에 대한 글을 조금씩 쓰는 중입니다. 작전 위주로 간략하게 써보려 하는데 자료를 보면서 조금씩 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독일군이 전략적인 기습을 당한 상황에서 혼란에 빠져 대응하는 양상이다 보니 기갑사단들의 투입도 축차적으로 이루어져 어수선하게 운용되는 양상이라서 정리하는 것이 꽤 재미있더군요.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눈에 띄는게 독일 기갑사단들의 장비 가동율입니다. 소련군의 맹렬한 반격에 독일군이 정신없이 난타당하는 와중에 그나마 전력이 양호한 기갑사단들이 지연전과 역습의 핵심이 될수 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전차 전력이 중요한 요소이니 말입니다. 사실 전반적인 양상은 2차대전사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쉽게 예측하실 수 있습니다. 전투에 돌입하면 가동율이 급속히 저하된다는 점입니다.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사실들이지만 구체적인 통계를 살펴보는것도 나름 재미있으니 짤막하게 이야기를 해 보죠. 이 글에서는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을 예로 들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두 기갑사단은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될 당시 중부집단군 지구에 투입된 완전편성된 기갑사단이었기 때문에 완편되지 못한 기갑사단들에 비해 소모의 양상을 보여주는데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은 1944년 초의 격전에서 중부집단군의 최우익인 제2군 소속의 제56기갑군단 소속으로 싸웠습니다. 그런데 독일군이 1944년 하계공세가 북우크라이나 집단군에 가해질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5월 30일 제56기갑군단에 소속된 2개 기갑사단은 북우크라이나 집단군의 지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중부집단군은 전차전력의 82%를 잃어버렸습니다.1) 5월부터 6월 사이에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은 다가올 소련군의 하계공세를 앞두고 병력과 장비를 대대적으로 보충받았기 때문에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기 직전에는 동부전선에서 가장 강력한 기갑사단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기 직전 이 두 기갑사단의 기갑전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표1. 독일 제4기갑사단의 기갑전력(1944. 5.~1944. 6)
4호전차 총계
4호전차 가동
판터 총계
판터 가동
1944.5.31
70
68
0
0
1944.6.20
74(79)
51
76(81)
70
[표 : 1944년 5월 31일 통계는 Thomas L. Jentz, Panzer Truppen Vol.2 : The Complete Guide to the Creation & Combat employment of Germany’s Tank Force 1943~1945(Schiffer Publishing, 1996), p.205; 1944년 6월 20일 통계는 Joachim Neumann&Dietrich von Saucken, Die 4.Panzerdivision 1943-1945 : Bericht und Betrachtung zu den zwei letzten Kriegsjahren im Osten, (Selbstverlag, 1985), p.362 이 책에서는 이외에 4호와 판터 지휘전차 7대가 별도로 있었다고 기술; Kamen Nevenkin, Fire Brigades : The Panzer Divisions 1943-1945, (J.J.Fedorowicz, 2008), p.148에서는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제4기갑사단이 4호전차 81대와 판터 79대를 보유한 것으로 서술]

표2. 독일 제5기갑사단의 기갑전력(1944.5.~1944.6)
4호전차 총계
4호전차 가동
판터 총계
판터 가동
1944.5.31
59
57
0
0
1944.6.20
78
?
79
?
[표 : 1944년 5월 31일 통계는 Thomas L. Jentz, Panzer Truppen Vol.2 : The Complete Guide to the Creation & Combat employment of Germany’s Tank Force 1943~1945(Schiffer Publishing, 1996), p.205; 6월 22일 통계는 Kamen Nevenkin, Fire Brigades : The Panzer Divisions 1943-1945, (J.J.Fedorowicz, 2008), p.171]

또한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은 예하 대전차대대가 4호구축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제4기갑사단의 제49대전차대대와 제5기갑사단의 제53대전차대대는 1944년 6월까지 21대의 4호구축전차를 지급받은 상태였습니다.2)

소련군의 대공세가 개시되자 북우크라이나 집단군의 제4기갑군 소속 예비대로 있던 이 두 기갑사단은 중부집단군 지구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먼저 제5기갑사단이 6월 25일 이동명령을 받아서 6월 28일 부터 중부집단군 지구에 도착해 소련군을 상대로 한 지연전에 투입됩니다. 제5기갑사단은 완전편성된 상태였으며 여기에 제505중전차대대를 배속받아 사단급 전력으로는 매우 강한 편이었습니다.3) 제5기갑사단과 제505중전차대대를 핵심으로 한 자우켄 전투단은 민스크로 진격하는 소련 제5근위전차군을 상대로 보리소프에서 지연전을 전개했습니다.
제4기갑사단은 제5기갑사단 보다 조금 늦게 출동명령을 받았습니다. 제4기갑사단은 6월 26일 출동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고 6월 27일 부터 철도로 바라노비치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제4기갑사단은 7월 1일 부터 슬루츠크 일대에 전개해 지연전을 시작합니다. 제4기갑사단도 육군 직할부대들을 배속받아 전투력이 강화되었는데 먼저 7월 1일에는 제904돌격포여단을 배속받았고 7월 9일에는 제507중전차대대를 배속받습니다.4)

전반적인 작전 전개에 대해서는 따로 준비하는 글이 있으니 생략하고 일단 기갑전력이 소모되는 양상을 살펴보지요. 먼저 제5기갑사단의 1944년 7월 5일과 9일의 기갑차량 가동현황입니다.

표3. 제5기갑사단의 기갑차량 가동현황(1944년 7월5일)
4호전차
판터
4호구축전차
1944.7.5
25
25
?
1944.7.9
6
12
6?
[표 : Gerd Niepold, Mittlere Ostfront Juni ‘44, (Mittler&Sohn, 1985), p.207, 241]

다음은 제4기갑사단입니다. 제4기갑사단 역시 전선에 투입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동가능한 기갑차량이 심각한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1944년 7월 6일과 7월 7일의 통계를 보면 제4기갑사단의 가동가능한 기갑차량의 대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표4. 제4기갑사단의 기갑차량 가동현황(1944년 7월6일~8일)
4호전차
판터
4호구축전차
1944.7.6
19
31
5
1944.7.7
17
35
5
1944.7.8
13
25
3
[표 : 1944년 7월 6일 통계는 Gerd Niepold, Mittlere Ostfront Juni ‘44, (Mittler&Sohn, 1985), p.218; 7월 7~8일 통계는 Joachim Neumann&Dietrich von Saucken, Die 4.Panzerdivision 1943-1945 : Bericht und Betrachtung zu den zwei letzten Kriegsjahren im Osten, (Selbstverlag, 1985), p.387, 390]

불과 일주일 남짓한 전투로 가동가능한 기갑차량이 격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용한 통계에서는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의 수리중인 전차 숫자가 누락되어 정확한 손실을 알 수는 없지만 4기갑사단의 경우 7월 21일의 통계를 가지고 대략적인 양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듯 싶습니다.

표5. 제4기갑사단의 기갑차량 현황(1944년 7월 21일)
가동가능
단기 수리
장기 수리
4호전차
21
40
23
판터
13
27
27
[표 : Joachim Neumann&Dietrich von Saucken, Die 4.Panzerdivision 1943-1945 : Bericht und Betrachtung zu den zwei letzten Kriegsjahren im Osten, (Selbstverlag, 1985), p.415]

1944년 7월 21일의 통계를 보면 4호전차의 총 보유대수는 84대이고 판터는 67대입니다. 그런데 제4기갑사단의 제35기갑연대는 지연전이 한창이던 1944년 7월 15일에 17대의 4호전차를 보충받았습니다.5) 그러니 4호전차의 완전손실은 총 98대의 4호 전차중 14대이고, 판터는 총79대 중 12대 입니다. 판터의 손실이 아주 살짝 적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수준이라는 게 흥미롭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5기갑사단은 비교할 만한 자료가 아직 없어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꽤 흥미로운 경향이긴 합니다.

완벽한 통계는 아니지만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이 지연전을 마치고 도펠코프Doppelkopf 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세작전을 시작한 8월 12일에서 16일의 통계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두 기갑사단은 8월 10일 공세를 위해서 전선에서 이탈하여 15일까지 공세준비를 했으므로 이시기의 전차 보유대수는 큰 변동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표6.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의 기갑차량 현황(1944년 8월 12~16일)
4호(가동가능)
4호(수리중)
판터(가동가능)
판터(수리중)
제4기갑(8.15)
32
31/5
15
23/9
제4기갑(8.16)
32
31 / ?
15
23 / ?
제5기갑(8.12)
22
13
19
15
제5기갑(8.16)
24
10 / ?
14
14 / ?
[표 : 제4기갑과 제5기갑의 8월 12일, 8월 15일 통계는 Kamen Nevenkin, Fire Brigades : The Panzer Divisions 1943-1945, (J.J.Fedorowicz, 2008), p.149, 172 그리고 Joachim Neumann&Dietrich von Saucken, Die 4.Panzerdivision 1943-1945 : Bericht und Betrachtung zu den zwei letzten Kriegsjahren im Osten, (Selbstverlag, 1985), p.455; 8월 16일 통계는 Gerd Niepold, Panzeroperationen : >Doppelkppf< und >Cäsar< Sommer’ 44, (Mittler&Sohn, 1987), p.35

이 통계를 보면 4기갑사단은 총68대의 4호전차와 47대의 판터를, 제5기갑사단은 35대의 4호전차와 34대의 판터를 보유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제4기갑사단은 7월 15일에 17대의 4호전차를, 8월 1일부터 6일까지 16대의 판터를 보충받았고 제5기갑사단은 7월 18일에 17대의 4호전차를, 8월 1일부터 6일까지 24대의 판터를 보충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바탕으로 바그라티온 작전과 이어지는 지연전 도중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이 완전히 상실한 전차는 다음과 같이 추산해 볼 수 있습니다.

표7. 바그라티온 작전 기간 중 제4기갑사단과 제5기갑사단의 전차 손실
4호전차
판터
제4기갑(1944.7.1~8.10)
28
50
제5기갑(1944.6.28~8.10)
60
69

성능이 더 우수한 판터의 손실이 4호전차 보다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 의외입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고려해 볼만한 요인이 있습니다. 판터가 연료소모가 크고 좀 더 회수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제4기갑사단의 판터대대는 바그라티온 작전 기간 중 유류부족으로 운용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 Gerd Niepold, Mittlere Ostfront Juni ‘44, (Mittler&Sohn, 1985), p.21
2) Kamen Nevenkin, Fire Brigades : The Panzer Divisions 1943-1945, (J.J.Fedorowicz, 2008), p.148, 171
3) Rolf Hinze, Der Zusammenbruch der Heeresgruppe Mitte im Osten 1944, (Motorbuch Verlag, 1980), p.184
4) Joachim Neumann&Dietrich von Saucken, Die 4.Panzerdivision 1943-1945 : Bericht und Betrachtung zu den zwei letzten Kriegsjahren im Osten, (Selbstverlag, 1985), p.363~370, 391; Tiger in Combat 1권에는 7월 8일 제507중전차 대대가 4기갑사단에 배속되었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배속명령을 받은 날자이고 실제 배속은 7월 9일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5) Kamen Nevenkin, ibid, p.149